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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 이 무렵이 되면 동해 쪽에선 속이 꽉 차오른 대게가 미식가들의 발길을 기다린다.
‘대게’ 하면 경북 영덕 아닌가. 그래, 3월엔 동해 파란 바다가 반기는 영덕 강구항으로 가보자.
그곳에서 고소하고 살살 녹는 대게 속살 맛을 보리라. 하지만 어찌 대게 맛에만 빠지겠는가.
영덕에서 강구항까지 이어지는 산행 내내 빼어난 바다 조망이 펼쳐지는 고불봉이 있거늘.
겨울과 봄 사이는 대게의 계절이다. 대게는 기온이 내려가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맛볼 수 있으나 속살이 꽉 차고 담백한 맛을 보려면 2~3월이 가장 좋다. 일단 대게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덕 대게’를 떠올린다. 물론 이웃의 포항과 울진 앞바다에서도 대게가 잡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영덕=대게’로 인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덕 대게’로 명성이 높은 강구항
영덕의 젖줄인 오십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있는 강구항(江口港)은 지금은 영덕 대게로 이름 높지만, 1997년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로 알려지기 전까지는 외지인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항구였다. 낙동정맥 동쪽에 치우쳐 있고, 고속도로가 연결되지 않아 접근이 쉽지 않은 탓이었다.
강구항이 항구로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일본이 자국민의 어업기지로 만들기 위해 축항공사를 하면서부터다. 광복 후엔 대게 통조림 가공공장이 생겨 대게의 집산지가 됐고, 현재는 강구항 주변으로 영덕 대게 전문식당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어느 바다나 마찬가지지만, 강구항 사람들의 활기 찬 기운을 느끼려면 이른 아침에 위판장을 찾을 일이다. 항구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밤새 거친 바다에서 조업한 배들이 하나 둘 부두로 들어선다. 만선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갯짓하며 환영한다. 대게잡이 어선도 매일 아침 항구로 들어온다.
대게들이 위판장 콘크리트 바닥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크기별·품질별로 도열되면 영덕 대게를 표시하는 빨간 리본을 다리에 붙잡아 맨 뒤 경매가 시작된다. 손가락으로 입찰값을 표시하는 ‘수지 호가 경매’다. 이내 상인들의 눈짓과 손짓이 바빠진다. 상인들이 손가락으로 입찰가를 정하면 경매인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상인의 번호를 불러 낙찰을 알린다.
대게를 고를 땐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을 택해야 한다. 싱싱하지 않으면 살이 말라붙어 속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크기가 똑같다면 무겁고 다리가 긴 녀석을 고르는 게 좋다. 속이 훨씬 알차다. 그렇지만 꼭 큰 녀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작은 녀석 여러 마리라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큰 녀석은 물게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배를 눌러봐서 물렁물렁한 것은 물게이니 피하고, 단단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10만 원 정도면 한가족이 맛볼 수 있어
또한 게뚜껑 위에 검은 팥알 같은 갑낭이 많은 녀석을 고르는 게 좋다. 이는 게와 공생하는 일종의 기생충으로 게딱지로부터 풍부하게 영양분을 공급받았다는 증거인데, 대게의 영양 상태가 양호할수록 많다.
대게로 차릴 수 있는 요리는 찜·회·매운탕·튀김 등 다양하다.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살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찜이 최고다. 게다리를 떼어내 속살을 빼먹고 나중에 등딱지에 담겨있는 게 장(臟)에 밥을 비벼 먹으면 별미다.
강구항 북쪽의 축산면 경정리 차유마을은 영덕군에서 지정한 대게 원조마을이다. 마을에서 보면 북쪽에 죽도산이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 죽도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죽도산의 대나무와 흡사해 대게, 즉 죽해(竹蟹)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이곳의 대게는 다리가 길고 토실토실하며 껍질이 얇고 살이 많으며 속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여 박달대게라 부른다.
대게는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한문으로는 죽해(竹蟹)라 쓴다. 대게는 우리나라 동해안 전역에서 서식하며, 특히 함경북도 연안의 냉수역 지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나 특히 많이 잡히는 곳은 구룡포에서 죽변항 앞바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바다 속 섬이다. 후포항 앞바다 20km 해역에 있는 ‘왕돌잠’, 영일만 위쪽 칠포 앞바다 9km쯤의 ‘무화잠’, 영덕 축산항 앞바다 7km쯤의 ‘신바위’가 그곳이다. 이곳을 이른바 ‘대게 벨트’라 한다.
수심이 5~200m 정도의 대륙붕을 이루고 있는 이 바다 속 섬들은 양질의 모래가 바닥에 깔려 있고, 한류와 난류가 만나 연중 10℃ 안팎의 수온을 유지해서 대게가 대량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췄다. 결국 동해의 대게 벨트에서 잡은 ‘진짜’ 대게라면 어디서 잡혔든 맛이 거의 비슷하다는 게 미식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영덕 어부들은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의 연안 해저는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해양환경이 타 지역 것보다 다리가 길고 속살이 많을 뿐 아니라 맛이 쫄깃쫄깃한 고품질의 ‘영덕 대게’를 만드는 것이라며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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