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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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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연변 조선족 자치주
자치주가 자치 주도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은 1949년 공산혁명 전까지
재중동포 조선족에게 자치구를 약속해 놓고 어느날 자치주로
국무원 승인을 받았다.
조선족의 사회주의혁명의 기여도나 그 이외 충분한 조건이
충족되었음에도
자치주로 인준한 것은 아마도 훗날 한 .중 관계를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요즈음 중국이 고구려가 중국 변방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같은 맥락이 아닐까 추측한다.
연변은 중국 조선족의 주요 거주지역이며 조선족
자치구역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2만 6,000년 전, 구석기 말기의 연변 대지에는 이미 안도인(安圖人 :구석기 시대의 인류)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 698년, 북옥저北沃沮의 후예인 말갈씨 대조영이
진국震國을 건립했다.
713년에 발해국으로 고쳐 통치했으나 결국 당왕조에 귀속되었으며,
수도는 오동성(敖東城 :오늘의 돈화시)에 세웠다.
그 후에도 원, 명, 청조시대 모두 이곳에 수도를 설치했었다.
<연변>이란 말은 1920년 전후에 생겨났는데, 이 지역이 조 . 중 . 러 3국의 접경지역으로
연길변무공서延吉邊務公署의 관할 밑에 있었기에 이 말을 줄여서 연변이란 말이 나왔다.
일제가 동북을 점령한 후 1934년 12월, 연변에 간도성을 설치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후 중국 공산당은 연변에 간도성 정부를 수립했으며,
같은 해 11월 연변행정독찰전원공서로 고쳤다.
1948년 3월에 연변전원공서를 수립했다가 1952년 9월 3일 민족구역자치를 실시하면서
연변공서를 취소하고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수립, 산하의 1개 시, 5개 현을 관할했다.
1958년에는 돈화현을 연변에 귀속시켰고, 1965년에 도문을, 1985년, 1987년, 1993년에
돈화, 용정, 훈춘, 화룡현을 시로 승격시켰다.
현재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연길, 도문, 돈화, 훈춘, 용정, 화룡 등,
6개 시와 왕청,안도 2개 현을 관할하고 있다.
자치주 정부의 수도는 연길시이며 정부도 그곳에 함께 있다.
1952년 9월 3월에 수립된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동북지역의 유일한 소수민족 자치지역이다
자치주의 총면적은 42,700만km2로 길림성 총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남한 면적의
절반에 가깝다.
지형은 산지, 구릉, 분지 등 3개 계단식 지형이며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전 토지는 산 80%, 하천 10%, 경작지 10%씩을 차지한다.
주의 인구는 218만 4,500명이고, 그중 한족이 58.54%를 차지하며 조선족은 38.55%,
기타 민족이 2.9%차지한다.
자치주가 수립된 이래 당과 정부는 연변의 건설과 발전을 중요시했다.
주은래, 주덕, 등소평, 장택민, 리붕, 주용기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계속 연변을
시찰하고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전국의 모범적인 자치주로 건설하며,
훈춘과 두만강을 개발해 동북아 각국과의 선린 합작관계를 발전시키려
계획하고 있다.
장기간 당의 정책아래 연변 각 민족은 화목하게 지냈다.
평등, 호혜, 단결, 합작하면서 민족 단결의 영광스러운 전통을 형성해 중국
30여 소수민족 자치주에서 유일하게 연속 2차례나 국무원으로부터 '민족단결진보모범주'
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연변은 지리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다.
연변은 조 . 중 .러 3국의 교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러시아와 인접해 있고,
남으로는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반도와 인접해 있다.
국경의 총 길이는 755.2km이며, 그 중 한 . 중 국경선 길이가 522.5km, 중 .러 국경 길이가
232.7km이다.
연변은 국경과 인접한 현과 시가 5개 있고 22개 국경 향진과 238개 국경촌(648개 자연 마을)
이 있다.
국경선에는 대외개방통상구가 10곳(중 . 조 간에 8곳 중 .러 간에 2곳)이 있다.
연변은 길림, 흑룡강, 요녕 등, 3성에 접해 있어
중국 동북의 대내의 중요한 창구이며
동북아지역의 경제, 인구, 지리의 중요한 접경지역으로서
아시아와 유럽,
미주의 육지와 해상수송을 잇는 중요한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
연변은 장백산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이 광활하고 자원이 풍부하다.
연변 자치주 관할 내에 1억 톤이 넘는 석유 매장량이
탐지되고 있다.
토지자원이 풍부하며 임지면적이 농업용 토지 총면적의 87%를 차지하며, 경작지가
5.2%, 초지가 0.9% 차지한다.
인구별 경작지 소유면적은 1.5무(1무 : 300m2)로써 전국全國과 전성全省의 평균보다
많은 편이다.
수자원이 풍부하여 자치주 내에 크고 작은 하류가 487갈래로
연유량이 150억m2이다.
지하수의 총저장량은 27.4억m2, 채수량이 13.3억m2나 된다.
물 에너지 저장량은 140.5만km이며 실제 이용량은 4.7만km이다.
연변에는 생물자원이 풍부하여 삼림 총면적은 322.8만ha이고,
삼림 면적은 79.2%이다.
삼림자원도 아주 풍부한 바, 야생 경제식물이 1,800여 종이나 된다.
그중 약재용 식물이 875종이며, 야생동물은 500여 종이 있다.
연변에서 생산되는 인삼, 녹용, 수달피는 동북의 3대 보배로 친다.
연변의 벼, 담배, 사과배, 소는 국내외적으로 이름이 나 있다.
광물자원 또한 풍부하다.
이미 발견된 금속광물이 50여 종이고 비금속광물이 40여 종이다.
황금 매장량과 생산량은 길림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석회석 매장량은 6.67억 턴으로 현재 연간 채탄량이 309만 톤이며,
석유 매장량도 1억 톤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자연적 여건이 좋으니 살기가 좋고 따라서 교육 . 문화가 발달했다.
연변은 예전부터 교육을 중요시해 왔기에 교육의 공향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
연변대학은 이미 국가와 211공정(중국 국내에서 선정한 21세기 100개 명문 대학)에
들었으며 농학, 의학, 이공, 사범 등, 12개 학원을 망라한 종합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치주 내에는 또한 각종 성인대학교 3개, 중등전문학교 7개가 있다.
자치주의 1만 명당 대학 단과 이상 수료자가 304명으로 전국의 평균치보다 2.1배 높다.
자치주 내 과학기술 종사자가 10.4만명으로
인구 1만 명당 477명이나 된다.
그러기에 연변은 도시화 진행 속도가 빠르고 노동자의 자질 또한 국내 어느 지역보다
우수하다고 하겠다.
혁명의 본거지에서 경제전진기지로
8 .15 광복 전 연변은 동북 항일혁명 근거지의 하나였다.
연변의 각 민족은 일제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고 선열들의 피는 연변의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항일전쟁, 해방전쟁 등, 전쟁에서 희생된 연변의 열사는 1.6만 명으로 당시 총인구의 2%를 차지했다.
말 그대로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열사비였다.
개혁 . 개방 후 연변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00년 연변의 생산 총액은 87.6억 위안으로 전해 대배 8.5%성장했다.
또 제1산업의 증가치가 12.8억 위안으로 전해 대비 0.2%, 제2산업의 증가치는 44.2억 위안으로
전해 대비 12%, 제3산업의 증가치는 30.6억 위안으로 전해 대비 7.3% 성장했다.
재정수입은 14.96억 위안에 달했다.
특히 특정 분야의 발전이 빠르다.
의약, 식품, 광산품, 임업생산, 대외무역, 관광업 등이 연변 경제의 기둥 산업이
되고 있다.
제2산업으로 목재가공, 제지, 의약, 담배, 방직, 에너지, 건축자재, 화학공업 등,
10여 중점 업종이 있다.
또 연길 담배공장, 길림 아송실업주식유한공사, 연변 알루미늄 그룹 등, 중요기업이 있다.
비즈니스업을 위주로 하는 제3산업의 발전도 비교적 빨라 그 성장 폭이 전국의 평균 수준을
능가한다. 연변의 인구당 국내 생산총액과 재정수입은 전국 30개 소수민족 자치주 가운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기초시설이 비교적 잘 구비되어 있다.
연변은 비록 국경에 자리 잡고 있지만 교통과 통신이
아주 편리하다.
몇 년 사이 연변은 교통, 통신, 에너지 등, 기초시설 건설에 60억 위안을 투자해
기초환경을 크게 개선했으며, 육 . 해 .공 입체 교통망을 형성하고 있다.
훈춘에서 북한의 나진을 거쳐 한국 부산에 이르고, 러시아 보스토치니를 거쳐 일본
니이끼다에 이르며, 러시아 자루비노를 거쳐 한국 속초에 이르는 등,
카페리 운항이 양호하다.
중 .러의 훈춘에서 카메쏘아야까지 국제철도도 이미 통행 운용하고 있다.
도로 교통도 사통팔달해 있다.
연변의 버스 터미널은 동북지역에서 최대로 꼽힌다.
연길의 공항도 개조를 거쳐 이미 국제수준에 이르러 대 .중형 여객기가 취항하고
있으며,
현재 연길에서 북경, 장춘, 심양, 대련, 상해 등, 20개 국내 항공노선이
개통되었다. 2000년에는 연길에서 서울까지 국제항공선이 개통되었고,
연길에서 해삼위를 거쳐 속초에 이르는 해항노선도 개통하게 된다.
연변 내 10개 대외통상구의 연간 화물 수송량은 500만 톤이며 연간 승객왕래는
연 100만 명 이상이다
2000년 6월에는 훈춘 수출 가공실험구가 국가의 검수에 통과되어 동북지역의
중요한 수출 가공기지로 자리 잡았다.
연길의 4개 성급 개발구도 기초시설 건설을 서둘러 기본적인
투자조건이 갖추어졌다.
아울러 관광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연변은 독특한 자연경관과 인조경관을 구비하고 있다.
접경의 장백산은 중국의 10대 명산에 속한다.
훈춘의 방천, 돈화의 육성산, 정각사 등, 독특한 경치와 조선족의 민속 및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는 해마다 수많은 국내외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2000년 연변은 국내외 관광객이 연 156만 명이나 되어 전해 대비 13% 성장했고
이에 따른 관광수입은 6.1억 위안으로 전해 대비 31.1% 성장했다.
2000년, 연변은 평양 용정 칠보산, 연길, 등, 북한 . 중
관광 코스를 개발했다.
중 .러 국경 관광도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또한 자루비노에서 속초에 이르는 해상노선이 개통되어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들고 있다.
2000년 연변은 규모가 비교적 큰 연길 민속관광박람회와
장백산 눈축제도 거행했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잠재력이 크다.
연변은 중구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며,
현재 조선족이 84만 2,000명으로
전국 조선족의 43%를 차지한다.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 이외 한민족(동포)은 전세계에 600여 만 명으로 그 중
중국에 200여만 명이 살고 있다.
그 외 나머지가 러시아,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홍콩, 서구 등의 국가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연변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은 상기 나라들의
동포들과 긴밀한 친선과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특수한 인맥을 이용해 외자와 기술, 인재를
유치하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며
국제 합작의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2000년 연변의 대외 수출총액은 3.1억 달러에 달해 전해 대비 10% 성장했다.
외국과 홍콩, 대만 등의 지역에서 연변에 투자(협의, 계약)한
자금이 1억 661만 달러로 실제 외자 이용액이
3,837만 달러나 된다.
북한 . 중 국경의 물물교환 교역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훈춘의 중 .러 국경
믈믈교환 또한 증대하고 있다.
한편 국외 인력 송출 비중이 늘고 있다.
2000년 연변의 송출인원은 연 1만 1,500명이며, 국외에서 연변은행으로 송금한
외화가 2.4억 달러이다. 그리고 2000년 말 현재까지 연변에 투자한 외자 기업은
561개이며, 실제 외자 이용액은 누계 5억 달러나 된다.
연변은 국경 개방지역에 속한 소수민족 지역이어서 국가와 지방 정부는 자금 투자와
정책 등 여러 방면에서 우대하고 있다.
또한 2001년부터 국무원은 연변의 서부 대개발 우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연변 자치주는 국가로부터 민족 자치 개혁 . 개방 실험구역으로 확정되었다.
또 자치주 내에는 국가급 개발구인 훈춘 경제합작구와 연길 개발구,
안도 장백산 관광 개발구, 돈화개발구, 도문개발구 등,
4개 성급 개발구가 있다.
연길시는 국가의 종합개혁 시범 도시로, 용정시 조양천진은 성급 소도시 종합개혁지구로
선정 되었다.
연변에는 일반 무역 수출입 경영권을 가진 기업이 79개이고, 국제 무역 경영권을
가진 기업이 56개, 대외 공사도급과 기술합작 기업이 6개나 된다.
향후 연변의 발전 목표는 전국의 모범자치주를 건설하여 정부의 민족정책을 홍보하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변은 전국 30개 자치주 가운데서 가장 종합소득이
우수한 연해지역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며,
길림성에서 선진적인 지역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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