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깨어나니 머리가 띵~하다. 하긴, 힘든 산행은 어제로 마감되었고 그 기분에 마음껏 마셨으니 제 정신이면 정상이 아니지. 오늘은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한반도 최남단 이 곳 땅끝까지 왔으니 서둘러 귀경하기에는 뭔가 아쉽다. 더구나 내일은 일요일이라 여유가 있으니 당초 계획대로 목포에 들러 항구도시의 분위기를 맛보고 가기로 한다.
아침 일찍 땅끝마을 터미널에서 목포행 버스에 오르니 늘 그랬듯이 자동으로 눈이 감긴다. 이동 중 바깥 경치를 감상해도 좋으련만 이어진 산행과 마시기 운동으로 모두들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생각했던 것 보다 두 배쯤 시간이 더 걸렸는지 눈을 뜨니 벌써 10:30, 목포터미널이다. 덕분에 충분한 수면으로 몸과 마음은 다시 쌩쌩해 진다.
고문님은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일행에게 물으신다. 공부하지 않은 대장님과 시몽은 묵묵부답,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신 회장님께서 제안하신 남농(南農)기념관으로 일단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탄다. 영산강 하류를 따라 목포항까지 나란히 누워있는 넓고 깨끗한 도로를 따라 택시는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기분 좋게 달린다. 도로 양 옆으로는 자연사박물관, 문학관 등 각종 館들이 즐비하다. 아마 시에서 관광 특구로 조성한 듯 하다.
기사분은 친절하게도 목포에서 볼 만한 곳을 설명해 주면서 갓을 쓴 사람 형상인 갓바위를 보라고 권하고 이내 일행을 용해동의 남농기념관 앞에 내려놓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입구 간판에는 연중무휴라고 버젓이 써놓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시몽은 ‘남농기념관’이 남쪽지역 농업에 대한 그렇고 그런 기념관 아니겠냐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근데 그게 아니다. ‘남농’은 조선시대 한국 南宗畵의 대가 ‘허건’의 號라고 회장님이 귀뜸해 주신다. 좀 더 부연 설명하면, ‘운림산방’의 3대 주인인 허건, 그의 부 허영, 조부 허련의 유물과 작품을 보존하고 한국 남화의 전통 계승을 목적으로 한 미술관으로 조선시대 유명 화가들과 현대 중진 작가들의 작품도 어울려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미술은 시몽도 관심이 좀 있는데 발 길을 돌리려니 서운하기는 하다. 이제 뭘 한다? 햇볕이 강하니 갓바위 보려고 아스팔트 도로를 한참 걷기도 참~그렇고, 특별히 다른 아이디어도 없고, 궁리 끝에 일단 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 탄다.
점심 장소는 고문님께서 미리 점 찍어 두신 ‘독천식당’이라는 낙지 요리 전문점이다. 12시도 채 안되었는데 식당은 포화상태를 넘었다. 우리는 번호표를 받고 이십 분 남짓 밖에서 기다리다 겨우 이층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순하고 멀건 연포탕과 맵고 진한 낙지볶음 이 인분씩을 주문한다. 남도음식축제 대상 수상, 방송 3사의 맛집 소개 업소 등 타이틀도 많다. 그래서인지 맛은 그런대로 훌륭했지만 느긋함과 휴식이 필요한 지친 여객들에게는 다소 복잡하고 소란한 감이 있다. 에라, 우리도 식당 분위기에 어울려 놀아보자! 아줌마, 여기 소주 두 병이요! 잎새주로!
잘 먹고 재미있게 식당을 나오니 힘과 기분이 한층 UP 된다.
우리는 귀경을 보장하기 위해 우선 목포 터미널에 들러 6시 출발 버스표를 확보해 놓는다. 이제 6시에 와서 버스를 타고 눈을 뜨면 서울이겠지. 지금이 한시 좀 넘었으니까 네 시간 정도의 여유는 부릴 수 있다. 목포에 오면 빼 놓을 수 없는 명소 중 하나가 유달산이다. 일행은 유달산 노적봉 관광안내소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유달산은 해발 228m로 산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목포 시가지를, 서쪽으로 율도 등 작은 섬이 산재해 있는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8년 전쯤에 자동차로 노적봉까지 온 적이 있었지만 마침 해 진 직후라 목포시 야경만 잠깐 눈에 담고 간 기억이 있다. 정상까지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하고 오늘은 쾌청한 날씨에 시야도 좋으니 경치도 감상할 겸 정상에 오르기로 합의한다.
오포대를 지나 조금 걸으니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불렀던 ‘목포의 눈물’이란 옛 가요가 한 켠 노래비에서 끝없이 흘러 나온다.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노랫말과 멜로디가 구성지다 못해 아려온다. 일제 강점기에 처한 민족의 한과 설움을 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은 듯 하다.
물오른 체력을 바탕으로 대장님은 역시나 성큼성큼 앞서 가시는데 오늘따라 고문님과 회장님은 다소 지쳐 보인다. 이만원 내고 예약하면 발포체험을 할 수 있다고 적힌 천자총통을 지나 유선각에서 한 숨을 돌리고 다시 국기봉이 보이는 고지를 향해 도달하니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고문님 말씀에 순간 다리가 풀릴 뻔 했다.
유달산 정상은 일등바위라고 불리는데 그 곳까지 가려면 아래에서 우측으로 빠져야 했단다
. 머~그럴 수 있지요. 계단으로 지루하게 이루어 진 길을 약 삼십 분 헥헥대며 오른다. 계단 앞에 서면 작아지시는 회장님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왜 그리 즐거운지, 시몽은 발걸음도 가볍다. 2:30, 드디어 대장님, 고문님, 회장님 순으로 정상에 집합, 기념사진을 찍고 잠시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유달산은 웅장하지 않지만 큰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 부근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나름 기백과 멋스러움이 있다.
이로써 우리는 매일 산 하나씩 오른 셈이니 기분이 뿌듯해 온다. 하산길에 유선각에 들러 대장님이 챙기신 홍주를 병뚜껑에 따라 한 뚜껑씩 홀짝 털어 놓고는 이내 총알같이 내려간다. 산행이라고 하긴 했으니 그냥 갈 수 없다. 노적봉 주차장 옆 구멍가게에서 맘씨 좋은 주인 아가씨가 ‘싸비스’로 내온 마른 과자 한줌을 안주 삼아 병맥주로 속을 시원히 적신다. 고문님이 제안을 하신다. 지금이 세시 반이니까 버스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도 두시간 이상 남았는데, 앞 당겨 출발하자는…그래서 서울에서 최종 뒤풀이 하자는…대충 그런 말씀이시다. 누가 반대하랴! 네 시 넘어 터미널에 도착해 창구에 물어보니 다행히 4시 20분발 버스가 있다고 한다. 얼른 표를 바꾸고 시간이 되어 버스에 승차한다.
일행은 또 다시 수면모드로 자동 돌입한다. 약 두 시간 후 버스는 휴게소에 정차해 12분간 휴식시간을 준다. 마침 출출한 터라 우리는 우동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버스에 오른다.
틈 나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시는 대장님의 갑작스러운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우동집에 지갑과 배터리를 두고 오신 것이다. 시몽이 챙긴 음식 영수증에 적힌 번호로 고문님이 연락을 취해 다행히 수습이 잘 되어 택배로 받기로 한다. 에고고…그 동안 대장님 어쩌신디야?
정체구간 없이 버스는 씽씽 잘 달려 저녁 아홉 시가 되어 반포터미널에 도착한다. 아직도 초저녁이니 약속대로 여행 마무리 뒤풀이 집으로 지하상가의 아구찜 식당(주점이란 표현이 맞겠다)에 배낭을 내려 놓고 주문을 한다. 한 테이블 건너 옆에서 술 마시는 분들 중 한 여성분이 오늘 회사에서 해고되었는 지 이미 만취해 한도 끝도 없이 기막힌 이야기와 육두문자를 동석한 남자 두분에게 쏟아낸다. 두 남자들은 묵묵부답, 인내심이 대단하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우리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우리만의 여행 이야기로 우리만의 테이블을 밝히며 서로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 즐겁고 유익했던 지난 이박삼일의 해남 여행을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세 번의 산행 중 유달산 산행이 제일 힘들다더니 그 이야기는 왜 빼셨나요? 그리고 복습은 많이 하셨네요. 산행기 읽는 분을 위해서요. 감사!
목포에 "금메달 집"이라고 흑산도 홍어로 유명한데~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서 1인분 겨우 시켰는데 혼자 너무 잘 먹으니 자꾸 더 주셔서 홍어로 배채우고 왔었던 기억이~ㅎㅎ 다음에 같이 갈 기회 생기면 제가 안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