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프로그램 30호 가수 이승윤은 장르를 뛰어넘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력뿐만 아니라 사고와 인격이 팬덤을 이루고 있고, 심사위원을 패배자로 만들 만큼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경연을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경쟁을 즐겨야 살아남고,
패배자를 짓밟아야 더 곤곤히 탑을 쌓는 이 시대에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율법 학자의 질문은,
이 땅에 모든 것을 다 얻었으니, 이제는 영생만 얻으면 된다는 것처럼 보인다.
구도자의 심정이 아닌,
초등 전교 1등이 대학교수를 테스트하는 맹랑한 질문이다.
이렇게 싹이 노란 녀석은 혼 내주어야 하는데,
주님은 1+1은 뭐냐고 물어본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 대답한다.
주님은 잘했다 칭찬하신다.
기고만장한 초딩이 또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말은 내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내 기준, 내 생각, 내 경험, 내 종교..
견고한 카르텔에 갇힌 탑에서 그들만의 삶을 전부라 생각하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강도 만난 자는 유대인이었지만,
그가 존경하는 제사장, 레위인은 종교적 의무를 빙자해
양심을 저버리고 죽어가는 그를 지나쳐 버렸다.
반면 찌질이 같은 사마리아인은 자기 옷을 벗어 상처 난 부분을 싸매고,
여관에 맡기는데 두 달 치 요금에 해당하는 선불을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은 추후에 지급하기로 한다.
바가지 씌우는 주인에게 오히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한 것이다.
그는 강도 만난 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 물질, 정성’을 쏟아부었다.
예수께서 율법 학자에게 물으신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 좋은 질문에 좋은 답이 나와야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사람입니다.” 나쁜 대답이다.
‘그’가 아니라 ‘사마리아인’이라 말해야 했다.
견고한 선을 넘기 싫어하니 차마 사마리아인라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자.
교인 하나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고,
나를 위해 삼겹살은 아깝지 않고, 주차비 천원 아깝다 여기는 찌질함,
내 존재 무능함과 연약함이
교만의 선을 넘어 예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만져 주시길,
주님의 마음을 더욱 알기를
그래서 마리아가 주님 발 앞에 엎드린 것처럼,
나는 할 수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긍휼한 마음을 주시고 아낌없이 영혼을 돕는
역사를 바라보자.
나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다.
그분께서 일하심을 본다.
경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긍휼과 회복하는 교회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얼마나 좋을까? 모든 영혼이 영원히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는 그 날을..
주께서 그날의 기쁨을 지금 이 시각 우리에게 주시길 기도한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얻는다.
경쟁이 아닌 사랑이 이기는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누가 선한 사마리아인가?
예수님이다! 그분이 죽어가는 나를 구원해 주셨다.
할렐루야!
(눅10: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