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시편 67(66),2)
2024년 갑진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새 해 첫 시작을 알리는 오늘, 교회는 특별히 새 해의 첫 날을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한 해 동안 총 10번에 걸쳐 성모님과 관련된 축일을 지냅니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과 함께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성모님과 관련된 가장 큰 축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작은 마을의 이름 없는 처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잉태하여 하느님의 아들을 낳는 영광과 영예를 얻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음을 기억하는 날이 바로 오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는 새 해 첫 날인 오늘을, 이 같은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믿음을 고백하도록 초대하는 이유는 분명 그 안에 담긴 신앙적 의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모님의 모습을 닮아 한 해의 삶을 시작하기를, 그리고 그 모습으로 한 해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교회의 분명한 뜻이자 당부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새 해의 첫 날인 오늘 성모님의 어떤 모습을 기념하며, 또 우리는 성모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 2024년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오늘의 말씀의 흐름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 1 독서의 민수기의 말씀은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하는 축복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민수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새 해 첫 날 듣게 되는 제 1 독서의 민수기의 이 말씀은 분명 우리에게 큰 힘이자 위로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복을 내려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당신의 얼굴을 비추시어 우리에게 은혜와 평화를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은 새 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사제의 역할을 하는 모세와 아론의 축복을 통해 그 모든 은총과 축복이 내려진다는 말씀은 새 해 첫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먼 바다를 향해 달려갈 것이 아니라, 성당에서 미사성제 안에서의 축복을 기원하는 것이 마땅한 신앙인으로서의 우리의 자세임을 일깨워줍니다.
한편, 오늘 제 2 독서의 갈라티아서 말씀은 오늘 제 1 독서의 민수기의 말씀 안에서 약속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약속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이들, 곧 한 명도 소외되거나 배제되는 일 없이, 모든 이들이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얻게 되었음을 다음의 말로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7)
이처럼 오늘 제 1 독서와 제 2 독서의 말씀이 전하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으로 그 절정을 이루며 그 분의 삶을 통해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 하느님의 결정적 구원 사건을 오늘 독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으며, 히브리서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은 그 구원 사건의 전말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전해줍니다.
“하느님이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히브 1,1-2)
하느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구원 사건, 이 모든 시작이 바로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모 마리아의 순종과 순명으로 이루어집니다. 갈릴래아의 작은 마을 나자렛의 이름 모를 처녀 마리아의 순명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이 모든 구원 계획이 가능해집니다. 바로 그 마리아의 순명의 모습을 오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여정 중에 몸 누일 방을 찾지 못해 마굿간에서 급하게 아이를 낳은 마리아와 요셉은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목자들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게 됩니다. 갑작스런 목자들의 방문도 놀랍거니와 그들이 전하는 말, 곧 마리아가 낳은 아기에 대해 천사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목자들이 전해주자 마리아와 요셉의 놀라움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일이 무슨 뜻과 의미를 담고 있는지 // 마리아와 요셉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모든 일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하느님 그 분의 뜻에 순종합니다. 마리아의 이런 모습이 오늘 복음의 다음의 표현 안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8-19)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바로 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묵묵히 받아들이신 분.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 중에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으면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 그 어떤 의심도 품지 않으신 분. 목자들이 찾아와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며 찬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일들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모든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 모든 것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겨 놓으시는 분. 성모님이 보여주신 이 굳고 신실한 믿음의 자세를 교회는 기념하며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같은 성모님의 이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움이 주는 가슴 설렘과 함께 삶의 무게로 인한 부담이 동시에 존재하는 새 출발의 선에서.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시고, 우리가 힘들어 쓰러질 때 손을 내밀어 우리를 끌어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에 기대어 보십시오. 사랑이신 하느님께 의지하고 의탁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느님 그 분께서 오늘 제 1 독서의 민수기의 말씀처럼 여러분 모두에게 복을 내려주시고 여러분 모두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영성체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며 여러분 모두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국제적 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전쟁 역시 악화일로입니다.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은 날로 심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럴수록 사회 가장 약한 노동자과 소외계층들이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2024년의 첫 날인 오늘, 성모님의 믿음의 모습을 본받아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 앞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굳은 믿음으로 그 분의 곁으로 다가가 그 분이 허락하시는 참 자유와 기쁨 속에서 새로운 한 해의 삶을 시작하시기를, 성모님의 믿음의 모습으로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다.”(히브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