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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5:1-25절, 언약하시고 언약하신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
요절 : 8절,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시편 105편은, 78편, 106편 등과 함께 역사(歷史) 시(詩)인데, 하나님께서 이루어 오신 구속사(救贖史)를 노래로 진술하면서,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행사(行事)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1)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는 표제가 없지만 1-15절의 내용이,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한 후에 찬양하게 한 역대상 16:8-22절에도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윗의 시로 여겨집니다.
105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리라”(11) 하시는 언약으로부터 시작하여, 야곱 대에 애굽으로 들어갔다가(23), 모세를 들어서 애굽으로부터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어”(37),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저희에게 주시는”(44)는데 까지, 약 5백년 기간의 구속의 역사를 진술하는 내용입니다. 왜 이렇게 행해주셨는가?
중심점은 도표에 표시된 대로,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言約)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9-10) 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세워주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라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명심해야할 핵심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세원주신 언약이, 그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메시아언약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역사 시는 우리로 하여금 어찌하여 성경을 구속사(救贖史)라는 관점으로 보아야만 하는가 하는 도전을 받게 합니다. 분량 상 두 문단(1-25, 26-45)으로 나누고, 여기서는 첫째부터 셋째 단원까지를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4) 감사하며 알게 하라
둘째 단원(5-15) 한 가문을 택하여 언약을 세우심
셋째 단원(16-25) 애굽으로 들어가 종이 됨
넷째 단원(26-36) 모세를 들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심
다섯째 단원(37-45)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주심
첫째 단원(1-4) 감사하며 알게 하라
첫째 단원은 서론적인 말씀인데 그러므로 중심점은 “감사와, 전하라”는데 있습니다. 주권적으로 언약을 세워주시고, 이루어나가시는 하나님의 구원행사를 생각할 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① “여호와께 감사(感謝)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行事)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1)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적인 언약을 통해서 무조건적인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하는 일이고, 사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행사를 “알게 하는” 전파입니다.
㉡ 이점을 2절에서는,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 지어다” 합니다. 그러면 “감사, 찬양, 전파”해야 할 하나님의 “행사”(行事)가 무엇인가?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한 “출애굽”으로 주어졌고,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한 영적 출애굽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② 그래서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 지로다”(3) 합니다.
㉠ “그 성호”(聖號)란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을 가리키는데, “그 성호를 자랑하라”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1-2절에서 말씀한 “행사”(行事)와, 기사”(奇事)보다 우선하는 것이며 더욱 높은 신앙의 단계인 것입니다.
㉮ 왜냐하면 나에게 이렇게 행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면, 그렇게 행해주시지 않는다면 원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짐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단 3:18)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성호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여호와를 구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호 6:3, 엡 1:17) 하고, 하나님 자신을 알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 그런 후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 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 지어다”(4) 합니다.
㉮ “그 능력을 구할 지어다”,
㉯ “그 얼굴을 항상 구할 지어다” 말씀하는데, 경건한 자들은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시는 것(30:7)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점을 80편에서는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80:3, 7, 19) 하고, 3번이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감사하며 찬양하며 알게 하라”입니다.
둘째 단원(5-15) 한 가문을 택하여 언약을 세우심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3번 등장하는 “언약”에 있습니다. 105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언약(言約)으로부터 시작(8-10)하여,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42) 하고 언약(言約)으로 마치는 구조(構造)입니다. 이것이 중심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요, 모든 근거가 언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 하고, 언약에 근거(根據)하여 시작하고 있습니다.
③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5상) 합니다.
㉠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의 자손”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분명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을 통해서 하사하신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國家)적인 조상은 야곱이요, 아브라함은 “언약”의 조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롬 4:16-17) 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記憶)할 지어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5하-7) 합니다. 기억하라는 “그의 행하신 기사(奇事)와 그 이적”(異蹟)이란, 출애굽의 행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야곱의 자손들을 애굽으로 들어가게 하셨으며 또한 인도하여 내셨는가?
④ 이점을 8-15절에서 진술하고 있는데,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8),
㉠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言約)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律例)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言約)이라”(9)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말씀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 하셨습니다.
㉡ 조상들에게 세워주신 것을, “언약, 맹세, 율례”(9-10)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119편에만도 “율례”라는 말이 22번 이상 언급하면서,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119:5) 합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대번에 “모세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律例)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言約)이라” 하고, “율례와, 언약”을 같은 의미로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그러면 어찌하여 언약이 율례라는 뜻도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고 “언약”을 세워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모세(출애굽) 때 이르러서는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이 “유월절 어린양, 5대제사(祭祀), 3대 절기” 등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를 실체(實體)가 오시기까지 망각하지 않도록 자손 대대로 지키라 명하셨기 때문에 “율례”(律例)라 하는 것입니다.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구약을 강론할 때에 모세 율법만을 내세우고,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이 실종(失踪)되는 과오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왜 그렇게 되는가? 성경을 구속사라는 맥락(脈絡)으로 보지를 않고 교훈적인 점(点)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메시아언약, 즉 복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변증서라 할 수 있는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 3:17) 하고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세워주신 언약이 무엇인가?
⑤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11) 합니다.
㉠ 아브라함에게 세워주신 언약은, ㉮ “땅을 주리라, ㉯ 자손을 주리라, ㉰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한, 세 가지인데, 핵심은 “자손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11)은 자손 곧 그리스도가 탄생할 땅을 예비하심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 만민으로 하여금 구원의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워주실,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12-13) 하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야곱까지의 형편을 말씀함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대는 인수(人數)가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은 한 가문(家門)이었고, 정착을 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유리하는 나그네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 첫째는,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이 “우리와 통혼하자”(창 34:9) 하고 제의한 대로 동화(同化)될 위험이고,
㉯ 둘째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고, 이삭이 그랄로 내려감과 같이 약속의 땅을 떠날 위험입니다.
㉢ 그러나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14-15) 하고,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보존(保存)하여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초점이 가나안이라는 “땅”에서,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고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우리가 창세기에서 보는바 대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저들을 보호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천하 만민으로 복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중간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길 위기에서,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창 20:7) 하고, 열왕을 꾸짖어 만지지 못하게 하고 해하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일까요?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하고 말씀합니다.
㉤ 이점에서 족장들을 가리켜 “나의 기름 부은 자, 나의 선지자”라 부르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 야곱”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예언적인 말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선지자의 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한 가문을 택하여 언약을 세우심”입니다.
셋째 단원(16-25) 애굽으로 들어가 종이 됨
셋째 단원의 중심점은,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23)는 말씀에 있습니다. 이는 야곱이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출애굽”을 통해서 보여주시려는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념해야할 점은 “기근이 있게 하심, 한 사람을 앞서 보내심, 이스라엘을 애굽에 들어가게 하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심” 등이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主權)적인 행사로 말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⑥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16) 하는데, 이는 창세기 42:1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동기를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17) 합니다. 표면만을 본다면 요셉은 형들의 시기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이런 통찰력이 있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는 성경을 구속사라는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18-19) 합니다. 오늘의 설교자들은 구속사의 수레바퀴가 훨씬 진전(進展)된 신약시대에 세움을 받았음에도 이런 말씀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의도는 외면한 채, 교훈만을 일삼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20-22) 하는데 이는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의 약 16년간의 역사를 압축한 것입니다.
⑦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23),
㉠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사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또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24-25) 하는 말씀은, 창세기를 거쳐 출애굽기 1장까지의 역사입니다.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시편 기자는 철두철미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 기근이 임하게 하신 것도(16) 하나님이 주권적인 행사요,
㉯ “요셉이 종으로 팔린 것도”(17),
㉰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도”(23),
㉱ “애굽에서 번성케 하신 것도”(24),
㉲ 심지어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25),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 취급을 하도록 허용하신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사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해방시키는 출애굽을 통해서 영적 출애굽, 즉 사탄의 노예에서 자유케 되는 구원의 방도를 계시하시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 어찌하여 성경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아야만 하는가?
㉮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구속사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언약하시고 주권적으로 성취해나가시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을 세워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 둘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의 거룩함으로 한번 맹세하였은즉 다윗에게 거짓을 아니할 것이라”(89:35) 하심 같이, 언약하신 바는 반드시 지켜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경이 곧 언약서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셋째는 언약서인 성경의 권위와, 이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성취해 오신 구속의 역사를 증거함으로 하나 남은 재림의 약속도 분명히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 넷째는 정체성에 대한 각성을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도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계시록에서 완성이 되는 구속사의 동일 선상(線上)에 서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각자의 사명과 위치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각성인 것입니다.
㉲ 다섯째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입니다. 이상의 확신을 통해서 신앙이 견고(堅固)하여 지고,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며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자손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적용 :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전파해야할 내용은 구속의 은총입니다. 그 은총이 구약의 성도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은 출애굽으로 주어졌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보수해야할 “율례”(45)요, 증거 해야 할 복음인 것입니다.
묵상
㉠ 첫째 문단에서 진술하는 역사적인 내용이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 핵심이 되고 근거가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
㉢ 감사하고 찬양하고 전해주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