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이제는 끝
열하루가 걸린 프랑스에서의 여정은, 인야가 프랑스 남부의 대도시 뚤루즈(Toulouse)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났다. 고생이 많았던 행로였는데, 그나마 원래의 계획을 다 채운 모양새였다.
'계획'이랄 것까지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디까지는 가겠다'던 그 나름대로의 목표는 채운 셈이었다.
그러니 그 역시 홀가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일도 없었고, 안락한 자신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이 길에 어떤 특별한 의미나 목적을 두고 걸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소감이랄 것도 딱히 없었지만... 프랑스 땅을 걸어보니 스페인과는 또 다른 결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특히 숲길을 많이 걸었던 기억이 컸다.
나무들로 빽빽이 우거져 음침하고 습도까지 높은 숲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인야에게는, 반갑지만은 않은 지형이자 행로였다. 물가가 스페인보다 조금 비싸 더 옹색한 여정이 됐던 것이고, 언어 소통이 안 되다 보니... 언뜻 벙어리가 된 기분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인야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건, 그 며칠 사이 마주쳤던 몇몇 사람들에게서 느낀 은근한 냉대와 무시였다. 스페인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종류의 시선들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꽃을 가득 실은 미니 트럭을 몰다 지친 순례자를 태워주었던 천사 같은 이도 있었다.
다만 스페인 안에서 걸을 때보다 훨씬 절박한 떠돌이 생활이었던 것만은 분명했기에, 좋은 사람들도 여럿 만났지만... 몇몇 이들에게서 받은 멸시와 천대가 그 '선함'을 압도할 만큼,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길이었다.
초반의 아름다웠던 피레네 산맥의 경치에 일었던 찬미의 감정이, 그 며칠 사이 주민들과의 접촉으로 점점 무뎌져가다 못해... 마침내는 도망치고 싶은 감정으로 변했다. 몇몇 이들의 이해하기 힘들었던 언행들이, 인야에게는 생존을 위한 긴박한 긴장으로까지 이어져, 마음이 더없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운들, 사람의 정만큼 사람을 붙들어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인야 자신과는 잘 맞지 않는 분위기와 정서, 이제 거기서 벗어나는 것밖에 남은 게 없었다.
뚤루즈에 만 하루 정도 머무는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비싸지 않은 아랍풍 식당에서 받았던 따뜻한 인정의 음식과 대접이었다.
그리고 이제 떠나기 위해 뚤루즈에서 서둘러 올라탔던 안도라(Andorra)행 호텔 버스가 유독 길게만 느껴졌던 것도, '어서 떠나자'는 생각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시 피레네 산맥으로 들어섰다.
안도라에 가까워질수록 눈발이 보이더니, 급기야 눈 송이가 펑펑 날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안도라에서 바로 마드릳행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현지에 도착하니... 그런 노선이 없다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그래서 알아 보니, 안도라 출발 버스는... 어차피 바르셀로나를 거쳐야만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번엔 시간이 충분치 않아 그냥 지나치리라 마음먹었던 바르셀로나를 결국 가게 되는 셈이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그렇게 바르셀로나행 결정을 내리면서 인야는 오히려 마음이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아무리 서둘러 간다 해도, 바르셀로나에서는 기껏해야 이틀 남짓.
인야는 한 시라도 빨리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뚤루즈에서 안도라를 오던 길보다 더 큰 조급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오후 3시 버스를 탔다.
뭔가 설레고, 1분 1초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버스 안에서도 안절부절못했다.
그 안에서 인야는, 자신이 얼마나 바르셀로나를 좋아하는지를 새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인야는 예전에 살던 '깐 까라예우(Can Caralleu)'로 올라가 호아낀 씨와 아말리아를 만났다.
다음 날은 이미 연락이 되어 있던 마놀로의 집으로 갔는데, 까르멘이 인야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푸짐하기 이를 데 없는 '깔도 가예고(Caldo Gallego)'를 먹으며, 갈리시아의 정에 흠뻑 젖었다.
그날 저녁에는 시간을 쪼개, 누리아와 그녀의 언니 아나(Ana)와 함께 한국인 친구 B의 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인야에게,
"너무 말랐다!" 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인야 자신은... 그저 살이 빠졌을 뿐, 스스로 느끼는 컨디션은 오히려 최상이라고 말했다.(사실이었다. 두달 넘게 까미노를 걸어왔던 사람이니, 건강해져 있었음은 당연했다.)
또 한결같이,
"스페인까지 와서, 어떻게 바르셀로나를 들르지 않고 가려 했느냐?" 하며 나무랐지만,
그런 핀잔과 나무람마저도 인야에게는 그저 따뜻한 정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시간상 그리고 운 좋게도 싼 항공권이 걸려, 인야는 비행기를 타고 마드릳으로 갔는데... 그때까지 가지고 다녔던 지팡이만을 위한 운임으로 20유로를 더 지불해야만 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타야 할 마드릳에서의 일정 사흘이 남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