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과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
십자가를 잡고 십자성호를 긋는다. 이어서 사도신경을, 첫 번째 알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손가락으로 세어가는 묵주 알이 늘어날수록 마음에는 평화가 자리한다. 매번 바칠 때마다 다르고, 수천 번을 반복해도 느낌이 다르다는 묵주기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묵주기도는 길이 아니라 공간이다. 그러기에 묵주기도는 목표를 가지기보다 깊이를 지닌다.” 독일의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중세 시대 탄생한 묵주기도는 가톨릭의 오랜 전통 중 하나이다. 2002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빛의 신비’를 선포한 이래,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묵주기도는 5개의 큰 구슬과 50개의 작은 구슬을 꿰어 만든 묵주를 사용하여 단순하지만 심오한 기도를 바친다. 우리는 묵주 알을 굴리며 기도문을 외는 동시에 복음 장면을 묵상한다. 귀와 입, 손가락 등 여러 감각 기관이 동원된다. 이런 점에서 묵주기도는 마음과 행동을 온전히 봉헌하며 내맡기는 기도라 할 수 있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복은 자신을 고요함에 적응시키는 방법입니다. 그것은 각 단어의 의미에 의식적으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방법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차분한 반복과 안정적인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묵주기도의 내용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하며
“묵주기도 안에는 네 개의 신비가 들어있지만, 저는 특별히 환희의 신비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 안에 담긴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면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많아요.”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심을 알려주는 그 신비를 전하며 교구장 대리 문희종 주교의 표정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의 여운이 엿보였다. “성모님은 사제들의 어머니이시고, 사제 생활을 하면서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할 때가 많지요. 어려움에 봉착하면 늘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며 어려움을 이겨내려 애씁니다.” 문희종 주교는 자신이 소장 중인 묵주 두 개를 꺼내었다. 하나는 조금 작은 묵주알들로 이어져있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위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묵주였다.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제가 서품 받고 난 후,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묵주에요. 가볍고 튼튼해서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지요. 이 기적의 패는 유학시절 가게 된 프랑스 파리에서 얻게 되었어요.” 성모님께서 성녀 카타리나 라브레 성녀(1806~1876년)에게 발현하시어 성모 공경에 대한 패를 만들라하신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진 않지만, 여기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새겨져 있어요.” 그는 패의 뒷면에 새겨진 예수님의 성심과 성모님의 성심도 보여주었다. “내가 20년 가까이 애용하고 있는 묵주입니다.” 묵주알들과 독특한 모양의 십자가는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손때가 묻어있다.
“다른 하나는 몇 년 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미사’가 있었을 때 받았다고 기억합니다. 침대 머리맡에 두는 묵주이지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한반도 위에 계시는 모습이다. 문희종 주교가 처음 묵주기도를 듣게 된 것은 예비신자 교리시간이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개종을 하게 되었지요. 할머니와 부모님 두 분도 그때 세례를 받았지요.” 당시 본당 수녀가 성모님께서 신자들의 어머니라며 무척 강조하셨던 기억을 들려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
문희종 주교는 누구나 삶의 굴곡이 있지만, 성모님께 청하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 없다고 강조했다. “묵주기도는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에요. 그 안에 주님의 기도도 있고,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영광송도 있고, 성모님을 찬송하는 성모송도 있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사도신경도 들어 있잖아요.”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매순간 손에 묵주를 드는 것은 묵주기도의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은총을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멋모르고 의무적으로 기도할 때가 많았죠. 신학교 때는 묵주기도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기도를 했고… 신부가 된 이후에 그 신비를 서서히 음미하게 되었어요.” 십자고상에서 묵주기도가 시작되고 끝나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생도 그리스도의 생애의 신비들을 거쳐 가는 하나의 순례가 된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저희 집안의 신앙 규율을 세우셨지요. 매일 밤 저녁식사 후에는 안방에 모여서 저녁 기도를 바쳤어요. 늘 첫 번째는 묵주기도였고, 기도들을 순서대로 하면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 흘렀어요.” 그는 저녁 기도를 함께하지 못하면 그 다음날부터는 할머니의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보충수업 때 ‘묵주기도만이라도 제발 해라’ 하시면서 할머니는 묵주 반지를 건네셨어요.” 문희종 주교는 신학생 시절 방학을 맞아 집에 가면 항상 할머니와 아버지가 새벽부터 묵주기도를 바치는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고 했다. “제가 집에 없을 때도 항상 기도를 바치신다고 어머니가 전해주곤 해셨지요. 그래서 저는 수원교구의 어느 사제 부모님이든 자녀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매일같이 바치시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과 바치는 묵주기도
신앙인들은 기도를 하는데 있어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씩 성숙해가며 주님 안에 동화되어 간다. “저녁 때 교구청 앞 서호천을 걸을 때가 있어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하고 운동을 하는데 종종 묵주를 들고 기도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문희종 주교는 그들을 모두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고 했다. “저분들에 의해서 수원교구가 이뤄나가고 있구나 싶어서 감동스럽습니다.” 그는 자녀들과 묵주기도를 자주 함께 바치기를 권했다. “1단이든, 2단이든, 5단이든 시간이 날 때마다 자녀들과 함께 해보세요. 그들이 참사람으로 성장하는 큰 도움이 됩니다. 어릴 때 같이 했던 묵주기도는 일회적인 교육이 아니라 평생의 신앙교육으로 남을 수 있죠.” 치열하게 사는 세상에서 묵주기도는 그분에게서 희망을 찾고 앞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한다. “비록 글을 모르셨던 할머니이지만 성가 ‘사랑하올 어머니’는 다 외우셔서 저녁 기도 때마다 그 성가를 부르자고 하셨어요.”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의 모성을 깊이 체험한다면 삶의 마지막 날까지 하늘 땅 어디에서나 성모님을 찬미하고자 할 것이다.
“사랑하올 어머니여 우리 위로자시여 고귀하온 동정녀여 우리 보호하소서”(가톨릭성가 236번 ‘사랑하올 어머니’ 중).
[외침, 2018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