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에 익태가 사진 올린대로
7월 31일 영미 왔다고 모임을 했는데
4년만에 귀국한 성민이(태풍이)도 왔어.
성민이는 시카고에서 익태가 하던 변호사 사무실을 이어받아 일을 하고 있지.
2.0이 안되는 대학성적으로 미국 대학 문을 두드렸던 얘기를 하더라.
과 교수 중엔 추천서를 써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언더우드의 후손 원일한씨를 찾아가니 성적표를 가져오라 하더래.
성적표를 보더니 그 사람 우리말로
"나도 체면이 있잖아." 하더래.
그래서 대학 성적이 2.0도 안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했대.
고향 광주, 광주민주화 항쟁, 대학생활, 현장, 그리고 다시 공부를 결심하기까지.
그분이 추천서 10부를 써 주셨는데
9군데 응시하고 한 부를 뜯어서 뭐라 썼나 봤더니
'이 학생은 대학 성적도 나쁘고 앞으로 잘 하리라는 확신도 없다.
하지만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광주는 어떤 곳이고,
그래서 그의 대학생활이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했던 이에게 공부할 기회를 줘보자.'
뭐 이렇게 쓰셨더래.
그래, 우린 모두 공부할 기회를 박탈 당했었지.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 들어가
영문학만 해서(?) 영어회화는 잘 못했던 태풍이,
울산에 있을 때 구타 관련 문제로 엠네스티에서 조사를 왔는데
태풍이보고 만나라 하더래.
태풍이, 맞는 거 보다 더 무섭더란다.
88년인가, 우리학교에 외신 기자들이 많이 왔잖아.
집회가 끝나고 어떤 외국인 기자가
지금은 봉하마을에 있는 용욱이에게
고대가는 방법을 물었대.
용욱이가 '의연'하게
"Go to the 신촌로타리, ride seven 다시 one" 하더라나.
dash가 아니라 '다시'라고.
나이가 많아 공부를 하니 아무래도 생각은 젊은 애들 보다 나은 면이 있어
교수가 왜그렇게 written English와 speaking English가 차이가 나냐고 하더래.
그래서 written English만 배우고 speaking English는 배우지 않았다고 했대.
요즘과 달리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러긴 했지.
4년 전에 왔을 땐 이런 얘기도 했었어.
처음 한 학기동안 딱 한 번 말을 했는데
서너명 듣는 수업에서 한 학생이 안 와서 교수가 누가 없냐고 물었대.
태풍이가 "OO요" 라고 대답했다더라.
그 태풍이 미국에서 변호사 한다.
법리적인 걸 다툴려면 언어에 능통해야할텐데 이젠 되나봐.
다른 남성동기들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뱀발) 태풍이 이한열장학금 1년치를 내고 갔다.
첫댓글 재밌다...^^
경란이는 기억력이 참 좋구나~ㅋㅋ...그대로 옮기는 이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