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극제가 끝난 지 거의 보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 여운 속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금년 오월을 정리하면서 느지막하니 평화연극제의 후기를 써볼까 한다. 기억할 수 있는 줄거리나 이미지는 많이 흐려졌겠지만 내가 관객으로 느낀 평화연극제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퀄리티있는 작품들을 단지 몇 일만에 한꺼번에 만나서인지 연극제 기간의 일상생활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나름대로 내가 본 작품들의 후기를 적어내리지 않으면 나 나름대로의 평화연극제를 끝마칠 수 없을 것 같은 다소 개인적인 연유에서 이렇게 적기 시작하고 있다.
‘ 5.18 무대에~서 길을 물었다. ’ 광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귀에 진이 박히게 5.18이야기를 들었던 나로서 평화연극제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해결되지 못한, 결코 해결되지 않을 5.18희생자들과 그들 유족의 한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것이 뻔 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고, 요즘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삶 안에서도, ‘평화’라는 단어를 읊조리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는 기분이 들어서 냉랭한 마음에 작품들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녁에도 일이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라 평일과 주말 저녁 시간을 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시간분배 끝에 인큐베이팅공연 1작품, 특별공연 중 낭독공연 2작품과 주제공연 5작품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극단의 어떤 작품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시간순서대로 본 작품중 몇 작품에 대해서만 적어 볼까 한다.
5월6일(일) 인큐베이팅 공연 극단 ‘얼.아리’의 『꿈...(회상5월)』 (작 양태훈/연출 양정인)은 이번 평화연극제의 출품작품 중 처음으로 본 작품이다. 작년 단막주제 공연 때 보지 못한 터라 기대를 크게 갖고 공연장을 찾았다. 내가 본 이번 8개의 작품 중 가장 리얼리즘적인 작품이었다. 상징적인 (희곡 내) 표현이나 무대장치의 사용보다는, 32년 전 희생된 평범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회상해볼 수 있는 따뜻하지만 슬픈 이야기였다. 5.18당시 도청을 사수하려다 목숨을 잃은 여러 연령과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의 소소한 꿈 이야기를 극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시간의 유기적 구성으로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서사적으로 이야기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상황을 이해하기도 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살아있지 않은 인물들이란 것을 깨달은 순간, 무대 위의 모든 연기자들은 마지막 장면 무대에서 뿜어져 나왔던 연기처럼 순간의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혼은 나의 마음속으로 깊게 박혔다. 인물 한명 한명의 에피소드들이 막이 진행되면서 다소 지루하게 반복적으로 연결되기도 했고, 관객이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극이 전개되어 나가기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년 단막공연의 느낌이 더욱 궁금해졌다. 본지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 자세히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음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간헐적으로 감정의 흐름을 놓치기도 했다. 음향의 잘못된 선택보다는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빠져나가지 못했던 기술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연극에서 음향과 조명은 연극인들에게는 모든 부분을 조합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지만, 관객에게는 맨 처음 느낄 수 있는 연극의 느낌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여러 이야기를 각설하고 이 작품은, 광주시민으로서 오월을 맞아 보내고 있으면서 광주 시내 이곳저곳에 걸려 있는 5.18관련 포스팅지를 보고도 식상해 고개를 돌렸던 나를, 창피하게 만들기 시작했던 평화연극제의 첫 작품이었다.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그날의 아픔을 다시금 느끼며 먹먹해진 마음을 안고 공연장을 조용히 나섰다.
5월11일(금) 특별공연으로 낭독공연이 진행되었다. 낭독공연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공연장을 찾았다. 두 개의 작품이 연속으로 진행되었다. 두 번째 작품인 『내 이름은 강』(작 고연옥/ 연출 김광보) 은 앞 공연의 작품성을 감당못한 배우들의 허술함에 대한 나의 실망감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대사 하나하나 그리고 등장인물 한명 한명이 너무나도 마음을 울렸다. 모래 언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었던 소녀가 한물간 광대 둘을 만나 ‘오늘’이라는 귀엽고 아련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오늘이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이 곳에 혼자 버려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 부모님을 찾아 원천강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배우들과 악사가 무대에 모두 등장한 채로 관객을 향해 타원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본을 보고 대사를 읽어 내려갔으며 악사가 오른쪽 타원형 끝부분에서 자연스럽게 극을 진행하는 모습이 매우 신선했다. 그리고 악사가 오늘이의 이동을 무대 위에서의 연주로 이끄는 극의 흐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제까지는 이름이 없었지만 오늘부터 이름이 생긴 '오늘'이는 농부, 역무원, 노인(소년), 과학자 그리고 뱃사공을 한명 한명 만나면서 부모님이 살고 있는 원천강을 향해 간다. 원천강은 이미 오염이 되어 있었지만, 오늘이는 자신의 부모님이 바로 강이며 자신은 그 강에서 나온 한방울의 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이가 깨달은 순간 나도 오늘이처럼 깜짝 놀라며 내가 마치 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며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이가 한 사람씩 만나가며 자리를 옮겨가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그 과정을 등장하지 않지만 등장해 있는 다른 인물들이 대본을 보며 집중하고 있는 장면도 새로웠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에 대해 해결해주리라 약속했던 오늘이는 부모님을 만나 자신이 강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그 과정에서 우리도 자연으로부터 해답을 찾아 우리의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5월 13일(일)에는 주제공연 2작품을 감상했다. 첫 번째 작품은 극단‘민애’의 『연꽃속의 불』(작 김나정/연출 김성환) 이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연극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던 공연이었다. 옆 자리 여자 분과 공연을 보면서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울기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눈물을 훔쳤는데, 공연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때 보니 그 분은 김나정 작가님이셨다. 희곡을 쓴 작가와 함께 봤던 이 공연에 대한 내 서글픔은, 어떤 관객의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처럼 나의 무언가를 이 작품이 건드렸기 때문에 많은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공연을 본지 보름이 거의 지난 지금도 여배우의 에너지를 잊지 않고 있을 정도로, 이 공연은 여자 역을 맡은 배우 이윤숙님의 온 마음을 다 바친 것처럼 느껴지는 깊은 작품 분석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에너지를 캐릭터 소화에 다 쏟아 부은 진정성 있는 연기로 인해 ‘그녀’의 한이 슬프게 빛이 났다. 팜플릿에는 50대 여자로 명시되어 있었지만, 내가 느낀 여자는 60대 70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518에서 잃은 아들에 대한 한을 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렇지 않지 못하게 사는 분이다. 그녀의 한에 서린 서글픈 눈빛은 관객을 소름 돋게 했다. 자식에게서 권유받은 정신과 치료과정에서 풀리는(?) 그녀의 한. 아니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고통은 자식과 부모와의 생이별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의 족쇄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용서를 권유하는 의사에게 그녀는 용서받을 생각도 없는 놈한테 무슨 용서를 하라는 거라며 호통을 친다. 슬픔을 승화시키라는 의사를 향해 불같이 달려들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극이 말미로 흐르면서, 그녀가 의사를 아들로 여기며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하면서 얽혀있던 슬픔을 조금씩 내려 놓는다. 삼각형 모양으로 의자를 배치하여 배우 2명이 그 공간의 안과 밖을 오가며 극을 진행하는 모습이 실험적으로 보여 의미를 자꾸 스스로에게 캐묻게 했다. 연 등속에 불을 켜 두어 그녀의 슬픔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5월 15일(화) 극단 루트 21의 『테러리스트』(작.연출 박재완) 는 평화연극제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극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을 봤으면 더욱 재밌게 봤을까. 혹은, 그 작품을 접한 후에 이 공연을 봤으면 감동이 조금 덜 했을까. 아무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당통의 죽음을 응용했는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이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었다. 우선 배우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평화연극제 모든 작품을 통틀어 공연이 끝난 후 가장 큰 박수를 보냈던 작품이었다. 박수 칠 때 내 손바닥에 들어간 힘은 단지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흥분하게 만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책이든 공연이든 사람과의 대화이든, 그 시간 이후에 나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킨 순간들에 대해 나는 희열을 느낀다. 이 작품이 나에게 그런 작품이었다. 권력자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창녀였던 마리옹의 대립. 그 극이 깨질 때 드러나는 배우들의 연습과정에서 생기는 갈등. 그리고. 폭.력.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이제 막 마음속에 묵히려던 작품들을 끄집어내기가 어려웠다. 테러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내가 이번 평화연극제를 즐긴 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마디의 후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마리옹역인 여배우 윤영을 유린한 세 배우가 퇴장하고 조명은 어두워지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관객을 바라보던 여배우의 눈빛. 내가 그 눈빛에서 본 사그러들지 않는 그 희망을 붙들고 ‘빛’을 향해 가고 싶다. 마리옹처럼. 윤영처럼. 내가 설득되지 않은 상황에 내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 2012 이번 평화연극제는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광주사람으로서, 연극을 무척 짝사랑하는 관객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5월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게 한 연극제였다. 끝!
첫댓글 관극후기 너무 잘 봤습니다.
5월 작품...5월얘기...
잊어서도 안되고 잊어졌어도 안되는 얘기...
발전없는 반복되는 행대...
점점 전신행정으로 변모 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