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란 무엇인가? 이는 곧 우리들의 본래 갖춘 진여眞如 불성이고, 선종에서 말하는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이다. 선종에서는 언어상에서 또렷이 설파하지 않고 행인으로 하여금 참구하여 스스로 깨닫게 할 뿐이다. 그래서 선종의 언어는 이와 같다.
실제는 곧 주관의 능能도 없고 객관의 소所도 없으며, 즉해서 고요히 그치고 즉해서 비추어 관하며, 분별. 사려가 조금도 없이 현전하는 경계를 빠짐없이 다 아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자리이다. 정토淨土란 무엇인가? 이는 곧 믿음과 원력으로 부처님 명호를 집지하여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함이지, 이체의 유심정토惟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치우쳐서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선이 있다(有禪)」 함은 곧 참구하는 공력이 절정에 이르러 분별. 염려가 고요하고 범부의 정집情執이 사라져서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철저히 명견함이니, 곧 이른바 명심견성이다. 「정토가 있다(有淨土)」 함은 즉 진실로 광대한 보리심을 발하고, 믿음을 내어 발원하고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집지 칭념하여, 서방극락세계에 태어나길 구함을 말한다.
선종과 정토는 다만 교법이체에 근거해서 말한 것이고, 선이 있음과 정토가 있음은 중생의 근기와 수행에 근거해서 말한 것일 뿐이다. 교법과 이체는 항상 모두 이와 같아 설령 부처님도 그것이 늘어날 수 없고 범부라도 그것이 줄어들 수 없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와 수행은 반드시 교법에 의지해 수행하여야 한다.
극치에 이르도록 수행하면 이체를 증득할 수 있으니, 진실로 자신의 마음속에 갖추고 있는 자성을 깨닫게 한다.
이 양자는 비록 문구상으로는 비슷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뜻은 크게 달라서 자세히 참구하고 설명해야지 그대로 받아들이고 두리뭉실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설령 참선으로 개오開悟하지 못하였거나 혹자는 개오하였지만 철저하지 못하면 모두 「선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설사 염불이 있을지라도 유심정토에 치우쳐 집착하고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이 없거나, 혹은 믿음과 발원이 있어도 진실하고 간절하지 않고 한가롭게 그저 흘려보내며 건성으로 적당히 염불하거나, 혹은 수행 정진할지라도 마음속으로 육진경계에 미련이 있거나, 혹은 내세에 부귀한 집에 태어나 오욕과 쾌락을 누리길 바라거나, 혹은 천계에 태어나 천인의 복보와 안락을 누리길 바라거나, 혹은 내생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불법을 한번 들으면 천 가지 도리를 깨다ㅣㄷ고 불법의 대총지를 얻어서 불법의 정도를 널리 홍양하고 일체중생을 두루 이롭게 할 수 있길 바라거나 하는 이러한 갖가지는 모두 「정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역주】 「선이 있다」 함은 단지 (이치를) 깨쳤을 뿐 (사상을) 증證함이 아니고, 대부분 명자위 및 관행위에서 만약 상사위에 이르도록 증득하지 않으면 초과에 들 수 없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 타락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없다. 초과는 위불퇴에 속한다.
「선이 있다」함은 만약 상사위 춴칠신위에 이르도록 닦을 수 없으면, 자력으로 견사혹을 끊어 없애어 자력으로 삼계를 수직으로 벗어날 수 없다.
「정토가 있다」함은 수증계위의 제한이 없고, 믿음과 발원이 진실한 여부를 논할 뿐이다. 비록 염불공부를 논하지 않을지라도 염불공부의 높고 낮음이 오히려 임종왕생의 자재여부를 결정하고 겸해서 임종시 결정코 왕생하는지 여부를 결정한다. 어떤 사람은 믿음과 발원이 확고하기만 하면 곧 결정코 왕생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논단은 엄밀하지 않다.
우익대사께서는 《미타요해》에서 “극락세계에 왕생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있고, 품위의 높고 낮음은 전적으로 집지명호의 깊고 얕음에 달려있다.”
말씀하신 유명한 문구에서 매우 많은 사람은 그 문장을 끊어서 뜻을 취해 본래 문구의 의미와 달리 자기 입장에 맞도록 사용한다. 이 문구의 위 아래에서 “믿음과 발원은 지혜의 행이고, 집지명호는 수행의 행이다.... 지혜의 행으로 앞장서서 인도하고, 수행의 행으로 바르게 닦아나가야 하니, 이는 마치 눈과 발을 함께 움직여야 바라는 곳에 이를 수 있는 것과 같다” 고 말하니, 그 말의 맥락(語境)을 살펴보라.
또 우익대사께서 “묻건대, 산란한 마음으로 칭명하여도 역시 죄가 소멸되는가? 답하되, 부처님의 명호는 수많은 공덕을 갖추고 있어 불가사의한데, 어찌 죄가 소멸되지 않겠는가? 다만 반드시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산란한 마음으로 칭명한) 한없이 많은 산선으로는 (힘이 충분하지 않아) 무시이래 세세생생 쌓아온 온갖 죄들에 대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직 일심불란에 이르도록 염불해야만, (수승한 역용이 있다) 마치 용맹하고 건장한 장수가 적군의 겹겹이 둘러진 포위망을 뜷고 탈출하여 빠져 나와서 다시는 삼군(견사, 진사, 무명의 삼혹)의 힘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신 이 단락의 법문을 살펴보라. 또한 《관무량수경》에서 “선남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명호를 불렀기에 갖가지 죄업이 사라졌도다! 그래서 내가 와서 그대를 맞이하노라!” “(마음마다 극락의 관하는 경계에 안온히 머물러) 이와 같이 상심에서 관하는 경계가 나타남을 거칠게나마 극락국토의 보배땅을 보았다고 하느니라. (이로부터 계속 나아가) 만약 (정수가 상응하여) 삼매를 증득하면 저 국토의 보배땅이 분명하게 또렷이 보일 것이니, 그 미묘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바로 「지상관」이니, 「제3관」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길, “그대는 부처님의 말씀을 수지하여 오는 세상의 일체 대중, 무릇 고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렇게 땅을 관하는 법을 선설할지어다. 만약 이 보배 땅을 관상하는 사람은 팔십억 겁 생사의 중죄를 없앨 수 있고, 임종시 몸을 버리고 세상을 떠날 때 반드시 청정국토에 태어날 것이니, 일심으로 정념을 유지하되 의심하지 말지라.” 하신 법문을 살펴보라.
삼악도에 떨어질 죄인은 임종시 염불하여 여러 죄를 소멸시켜야 비로소 왕생할 수 있다. 우익대사께서는 “산란한 마음으로 칭명하면...반드시 왕생하는 것이 아니다.”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여러 죄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작법참으로는 성죄를 없앨 수 없고, 취상팜으로도 성죄 정업을 없애기 어렵기에, 반드시 정심에 이르도록 참회하여야 한다). 그 밖에 세존께서는 단지 16관 중 제3관 지상관을 이룰 때 비로소 이 염불삼매를 얻은 자에게 임종시 결정코 왕생하리라 수기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1관 일상관과 제2관 수상관을 이룰 때는 오히려 어떠한 수기도 하시지 않는데, 이는 모두 깊은 뜻이 있다. 제3관을 이룰 때 《묘종초》에 따라 그 계위를 판정하면 관행위 초품에 있지만, 제1관 2관을 이룰 때는 모두 명자위이다.
관행위 초품에서 염불인은 이미 염불삼매, 즉 미혹을 조복한 사일심불란의 가장 낮은 수준을 얻었다. 정심定心 염불로 정선定善을 닦을 수 있고, 정신으로 지극히 무거운 정업定業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이 계위의 염불인은 더 이상 천재와 사람으로 인한 화, 심각한 고질병 횡사 등 악한 과보를 만나지 않게 된다.
또한 우익대사의 《미타요해》에 따르면 일심불란의 경계를 증득한 사람은 더 이상 미혹을 일으켜 업을 짓지 않고, 이와 같은 횡사에 이르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며, 숙세에 지은 횡사의 정업定業이 이미 사라진 까닭에 임종시 결정코 선종善終을 얻고 세존께서는 비로소 그에게 결정코 왕생한다고 수기할 수 있다.
산심위 사람의 경우 믿음과 발원이 확실할지라도 산심염불로는 정업을 없애기 어렵고 반드시 염불하여 “여러 죄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명자위는 믿음과 발원이 입으로는 확고하다 말하지만 미혹을 조복하는 힘이 없어 만약 오역 십악을 짓는 여러 인연을 만나면 곧 파계하고 악을 지어 횡사에 이르는 새로운 업이 더 늘어나고, 게다가 숙세에 지은 횡사에 이르는 구업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어 임종하기 전에 여러 가지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니, 횡사가 정해지지 않고 정념도 정해지지 않으며, 미혹을 조복할 수 없어 임종이 역연이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이 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십육관에서 제1관과 2관을 이루지 못한 자에게는 어떠한 수기도 주지 않으셨다.
설령 고승대덕이 방편법문에서 “염불인이 믿음과 발원이 확고하면 곧 결정코 왕생할 수 있다.”고 우연히 말씀하셨을지라도 이 가운데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잘 알고서 맹목적인 미신을 지녀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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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정토 극라도사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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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위 초품에서 염불인은 이미 염불삼매, 즉 미혹을 조복한 사일심불란의 가장 낮은 수준을 얻었다. 정심定心 염불로 정선定善을 닦을 수 있고, 정신으로 지극히 무거운 정업定業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이 계위의 염불인은 더 이상 천재와 사람으로 인한 화, 심각한 고질병 횡사 등 악한 과보를 만나지 않게 된다.....!!!감사합니다 무량공덕이 되소서 수고하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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