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고병구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내가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역할이 뒤바뀐 것 같아 웃음 이 나올 때가 있다. 아프리카 오지나 난민촌 아이들이 뉴스에 나올 때면 새까맣고 바 싹 마른 몸에다 얼굴에는 하얗게 마른버짐이 핀 나의 어릴 적 모습 이 떠오른다. 걸핏하면 설사와 구토를 하다 보니 영양실조로 야맹증 에 걸려 밤에는 기둥이나 벽에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잔병치레 로 초등학교도 친구들보다 늦게 들어갔는데, 어느 겨울 아침 등굣길 에 너무 추워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자신이 끼고 있 던 장갑을 벗어 내 손에 끼워준 5학년 선배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오후 수업 시간에 점심 먹은 것 을 교실 바닥에 모두 토하여 친구들을 혼비백산케 했을 때 뒤치다꺼리를 해준 친구는 내게 마음의 빚을 남긴 채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의예과에 입학하던 해의 봄, 고열과 오한, 두통에 시달리며 밤마 다 땀을 비 오듯 쏟고는 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앓기 시작하여 기 말시험 직전까지 시달리는 바람에 세 과목 학점을 놓쳐 계절수업과 이듬해 재수강까지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본과 공부를 하면서 내가 앓았던 병이 장티푸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흔세 살 되던 해 4월 갑자기 대장에 천공이 생겨 장절제술을 받고, 곧바로 B형 간염 이 걸려 심한 황달을 동반한 간 기능장애로 몸무게가 13kg이나 빠 지고 거의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거짓말처럼 회복기로 접어들 때가 11월이었는데, 소문은 이미 내가 죽었다고 퍼져 있었다. 그 후 큰 탈 없이 지내왔으나 언제 생겼는지 2cm가 넘는 담석 두 개가 쓸개 속 을 굴러다닌다. 말썽을 부리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처럼 허약하고 병치레만 하던 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건강이 좋아지더니 지금은 생애 최고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종일 바쁘게 보내도 피곤함을 모른다. 두 해 전에는 28년 동안 몸속에 버티고 있 던 B형 간염균이 사라지고 자연항체가 생겼다. 후배인 동료 의사의 말을 빌리면 ‘로또에 당첨된 만큼 드문 일’이란다. 입맛이 떨어져 밥 남겨본 적이 없고, 어릴 때는 일 년에 겨우 몇 번 먹기도 어렵던 고기인데, 지금은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서운하 다. 나물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봄나물 먹는 재미에 봄이 기다려 질 정도이다. 순 살코기에다 싱싱한 채소는 환상의 콤비이다. 달콤 한 음료엔 손도 안 대지만, 날 과일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비빔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다.
‘밥이 보약이다. 골고루 먹어라.’ 이말은 진리가 아닐 수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오던 운동을 환갑이 되어 시작한 지 12년 이 지났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몸을 다질 수 있는 나만의 비법 도 갖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운동’이다. 기 회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있다. 지금 몸 상태는 20년 을 거꾸로 돌려놓은 느낌이다. 실내 자전거를 타면 심장 박동이 분 당 120회를 넘어 140회가 되면 은근히 걱정스럽지만 심장에 부담 은 오지 않는다. 평지에선 젊은 사람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빨리 걷고, 웬만한 산길은 가볍게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자주 들 려주는 말이 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대학 입학 후 선배들 이 강제로 담배를 입에 물리고 뒤통수를 치면서 빨도록 했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따르지 않았던 게 얼 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담배 연기에는 7,000여 개의 화학물질이 들 어 있고, 그중에 70여 개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폐암은 물론이 거니와 후두암, 구강암, 식도암, 위암, 췌장암, 신장암, 방광암, 백혈 병 발생의 주요 원인이 된다. 거의 모든 암의 30%는 담배 탓이라 해 도 과언이 아니다. 담배는 호흡곤란을 초래하는 만성 기관지 질환이 나 동맥경화로 인한 뇌와 심혈관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비흡연자보 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30%나 높고, 우울증도 더 많이 걸리며, 피부 노화도 더 빠르다고 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행인 것은 담배를 끊고 10년이 지나면 그 위험성은 전혀 피우지 않은 사람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이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게 건강한 삶의 비 결이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더 많이 노력하고,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속에 불평 이나 불만을 심어두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지만, 건 강하게 사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고병구
백양제일내과의원장(부산)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원, 부산의사문우회 회원
수상집: 《좋은 의사를 만난 환자는 행복하다》 《마음으로 여 는 창》
kobgd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