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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nter With Thanksgiving
Psalms 100:1-5 (NKJV) A Psalm of Thanksgiving.
1 Make a joyful shout to the LORD, all you lands! 2 Serve the
LORD with gladness; Come before His presence with singing. 3 Know that the LORD, He is God; It is He who has
made us, and not we ourselves; We are His people and the
sheep of His pasture. 4 Enter into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into His courts with praise.
Be thankful to Him, and bless His name. 5 For the LORD is
good; His mercy is everlasting, And His truth
endures to all gene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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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 감사 충만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설교제목은 "감사함으로 들어가라"입니다.
감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시편들 중에 하나가 100편입니다.
4절을 함께 읽읍시다.
마음을 다해서 나는 우리가 진정 하나님에 의해 축복을 받은 사람이요 민족임을 믿습니다. 여러 분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의해 복을 받은 자임을 믿습니까 ?
믿으시면 두 손 높이 들고 아멘하세요.
우리 모두는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 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
여러 분의 건강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사는 국가에 대해서 감사 합니까 ?
물론 그러한 감사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 보다 나의 구원에 대해 더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날마다 나에게 쏟아 부으시는 성령과 자비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라면 우리는 감사의 조건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은 이와 같이 선포했습니다.
"이 추수감사의 날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는 모든 민족들의 의무요, 그 분의 뜻을 순종하고, 그 분의 은택을 감사하고 그 분의 보호와 은총을 겸손히 간청하는 날입니다."
나는 시편100편은 감사의 태도를 다루기 위해, 또 감사해야 할 우리의 필요를 회상시키기 위해, 감사의 태도를 유지하도록 쓰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감사의 근원.
시편100편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그리고 따뜻한 가정에 정착할 때, 먹을 것이 많을 때 나를 잊지 말라.
내가 너희를 광야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왔다"
15) 이 시가 쓰여졌을 때 그것이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
첫 구절은 "모든 땅"에 주었다고 말합니다.
또 마지막 구절은 "모든 세대"를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감사의 메세지는 너무나도 깊고 넓습니다.
그래서 이생의 모든 계층, 모든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국가 공휴일로써의 추수감사 날을 가지고 있지 못함은 참으로 슬픈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의 장벽을 깨뜨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장벽을 깨뜨립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처럼 추수감사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정하고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100편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1,2,3,5절에서, 여러 분은 주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감사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근거는 주님입니다. 우리는 먼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감사의 근거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복의 공급자입니다.
2. 이 본문에서 5개의 감사명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를 더 조심해서 볼 때, 우리는 다섯 개의 명령이 주어졌음을 발견합니다.
첫째명령은 1절에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했습니다.
그것은 나팔소리의 힘으로 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것은 우리 존재의 깊음에서 나오는 여호와를 향한 기쁨의 외침입니다.
확실히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야 할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제공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시편기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주 선하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존재의 깊음으로부터 당신의 기쁨을 주님께 외칠 것입니다."
둘째 명령은 "기쁨으로 주님을 섬겨라".입니다.
그것은 목사를, 지도자를, 조직을 섬겨라 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섬겨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증인이 된다면, 배고픈 자를 먹인다면, 벗은 자를 입힌다면 그것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마태복음25:40 예수님이 마태복음25:40에서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세 번 째 명령은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찌어다"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명령 속에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기쁨으로 외쳐라, 기쁨으로 섬겨라, 노래로 나아가라."
잠시 여러 분 주위에 있는 사람을 보시오. 그들이 행복하게 보입니까 ?
혹은 그들이 그들의 얼굴에 얼굴을 찌푸리고 그저 앉아 있습니까 ?
시편기자는 "그 앞에 와서 그를 섬겨라, 마음에 기쁨으로 그의 찬양을 노래하라." 고 말합니다.
4번 째 명령은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심을 알라"입니다.
우리를 만드신 분은 바로 그분이며, 우리는 그분의 것이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그의 목장의 양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뼈와 모든 골수를 취하여 힘줄과 근육으로 함께 주물러 피부로 그것들을 덮었습니다.
우리에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셨고, 생각하는 뇌를,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손가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안과 밖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신비입니다, 그렇죠 ?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은 미완성품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기질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의 약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분은 아직도 우리의 삶 위에 일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분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다섯 번째 명령은 이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성전에 들어갈 때 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그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만나는 장소는 "성소"라 불려집니다.
그러나 여러 분도 알다시피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고속도로에서 여러 분이 운전할 때도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직장에서 일을 하실 때도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를 돌볼 때에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의 모든 순간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감사의 근원입니다, 그렇죠 ?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라" 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그것은 처음부터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 문에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라"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젊어지게 되고, 감사하면 기쁨이 오고, 감사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감사로 아침을 맞이하고 감사로 저녁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좋을 때도 감사하고 어려울 때도 감사합시다.
저는 오늘이 여러 분과 여러 분의 가족을 위하여 의미 있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시편 100편을 다시 읽도록 시간을 만드세요.
만약 그러한 명령들을 주의한다면, 여러 분의 마음은 주님을 향한 감사로 흘러 넘칠 것입니다.
진정한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2. ENCOUNTERING JESUS IN OUR LIFE
Luke 5:1-11
1 So it was, as the multitude pressed about Him to hear the word of God, that He stood by the Lake of Gennesaret, 2 and saw two boats standing by the lake; but the fishermen had gone from them and were washing their nets. 3 Then He got into one of the boats, which was Simon’s, and asked him to put out a little from the land. And He sat down and taught the multitudes from the boat.4 When He had stopped speaking, He said to Simon, “Launch out into the deep and let down your nets for a catch.” 5 But Simon answered and said to Him, “Master, we have toiled all night and caught nothing; nevertheless at Your word I will let down the net.” 6 And when they had done this, they caught a great number of fish, and their net was breaking. 7 So they signaled to their partners in the other boat to come and help them. And they came and filled both the boats, so that they began to sink. 8 When Simon Peter saw it, he fell down at Jesus’ knees, saying, “Depart from me, for I am a sinful man, O Lord!” 9 For he and all who were with him were astonished at the catch of fish which they had taken; 10 and so also were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who were partners with Simon. And Jesus said to Simon, “Do not be afraid. From now on you will catch men.” 11 So when they had brought their boats to land, they forsook all and followed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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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를 아십니까 ?
그를 만나 본 적이 있습니까 ?
전 미 대통령 클린턴은 타이그 우즈와 같이 골프 한 번
치는 것이 평생 소원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분 골프 칠 줄 아십니까 ?
가능하시다면 골프황제와 한 게임 하시지요 ?
1997년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상금을 탔습니다. 홀연히 그는 갑부가 되었
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새로운 더 좋은 기술을 위해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전하는 것은 아름답다" 라는 말 무어라고 생각합니까 ?몇 달 후에 그
는 자기 코치를 불렀습니다.
그는 그에게 자기 스윙을 바꾸기를 원했다는 것을 말했습
니다. 그는 자기 스윙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감히 자기 스윙을 개선하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자기 삿을 다루는 기술을 개선하고자 했습니
다.
그의 코치는 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코치는 수 백의 볼을 치는 것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스윙에 대한 비디오 태입을 연구하면서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그가 자기 스윙을 개조하고 있었을 동안, 그는 다음 19달
안에 단지 한 번 토너먼트를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했습니다. 그는 결코 개선하기를 포기하
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때가 왔습니다.
그는 자기 스윙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삿을 전보다 훨씬 더 좋게 다룰 수 있
었습니다.
다음 14 토너먼트에서 그것들 중 10번을 이겼고 $6
million dollars 을 탔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가 어떻게 자기 스윙을 개선했는지
모릅니다.
왜 그가 바꾸었습니까 ? 왜 그는 좋은 것을 바꾸었습니까 ?
그 이유는 그가 더 좋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어떤 것들, 심지어 좋은 것들도 변
화시키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루고자 원하셨던 어떤 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벌써 여기 무엇을 하시고 계셨음을 보세요.
그는 군중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포로 된 청중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때 자기주의를 매혹시켰던 그 밖에 어떤 것을 보
았습니다.
그는 물가에 두 배들을 보았습니다. 두 개의 낡은 배들이
고기잡이를 위해 사용 되었습니다.
고기잡이들이 종종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함께 일했
기 때문에 배가 두 개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이 그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했던 그
들의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가 하시고 계셨던 것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멈추었습니다. 그는 그 배에 갔습니다.
그 어부는 시몬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에 앉아서 사
람들을 계속 가르쳤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다른 장소에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왜 그 배 안에서 말씀하시기를 원하셨는지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배의 주인 시몬과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분은 군중에 관심 뿐 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당신에 관
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만나는 것 결코 너무 바쁘시지 않
습니다.
예수님은 학급선생 되는 것은 물론 개인교사 되시는 것을
좋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학급 뿐 만 아니라 개인도 관심이 있었습니
다.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기꺼이 군중을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은 한 사람에게 접근 하십니까 ?
왜 예수님은 한 그룹에서 한 사람에게로 그의 초점을 바
꾸고 싶었습니까 ?
다른 말로, 왜 예수님은 완전히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부
터 바꾸고 싶었습니까 ?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실 때, 그것은 우리를 얕은 믿음에
서 더 깊은 믿음으로 취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초첨을 맞추시는 것은 예수
님이 우리를 더 얕은 믿음에서 더 깊은 믿음으로 인도하
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몬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오셨을 때 베드로는 그물을 씻고 있었습
니다.
그는 해야 할 다른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충분히 먹고 돈을 벌 수 있도록 그를 의지
했습니다.
시몬은 여러 분 중 몇 사람처럼 자기 직업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여러 분도 알다시피, 직업과 함께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하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인생에 특별한 어떤 것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3절을 주목하세요.
예수님이 배에 도착하자 마자, 시몬에게 해변에서 조금
띄기를 요청하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백성들을 가르치기를 마치신 후, 그는 시
몬에게 고기잡이를 위해 깊은 물로 가도록 명령했습니다.
얕은 물에서 더 깊은 물로 가는 이 움직임이 예수님이 시
몬의 믿음생활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을 표면적이며 반 마음에서 더 깊고, 더 개
인적이고, 그리고 실제적 헌신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이와 같이 항거했습니다.
" 주여, 우리가 밤 낮 수고했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당신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5)"
다른 말로, "나는 벌써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말씀하시니 다시 한 번 더 시도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얕은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가도록 어
떻게 취하십니까 ?
예수님은 우리를 아주 신사적으로 밀어 줍니다.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안정성의 수준에서 더
높은 수준의 장소로 밀어 줍니다.
더 깊은 물에서 무엇이 일어 납니까 ? 그 곳은 더 무섭습
니다.
그 곳은 더 불안정 합니다. 그 곳은 더 생소합니다.
그러나 그 곳은 더 많은 고기가 있는 곳입니다.
어부들은 결코 그 해변으로부터는 많은 고기를 잡지 못합
니다.
그들은 더 큰 고기를 그리고 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깊은 물로 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의 안락한 해변라인에서 더 깊은
장소로 두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위해 더 많은 음식을 찾을
수 있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아픔도 고통도 위기도 시련도 사용하십니
다.
예수님은 정말로 그러한 상황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과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분은 예수님이 당신과 함께 그 배에 앉아 계심을 압
니까 ?
배의 선장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선
장은 압니다.
더 깊은 물로의 여행은 항상 하나님을 더 잘 알도록 우리
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관심하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이 관심
하시는 것으로 변화 시킵니다.
우리는 항상 육체적인 것들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둡니다.
내가 예를 들겠습니다. 야구 플레이오프 동안, 나는 야
구팀, 삼성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님은 자기 팀, 그 교회
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는 먹을 음식에 관심이 있지만, 예수님은 배고픈 영
혼을 위한 음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불할 청구서에 관심을 두지만, 주님은 우리가
죄 때문에 지불해야 할 영원한 청구서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는 입을 옷에 관심을 두지만, 주님은 우리의 영적 벌
거벗음을 덮을 의의 옷에 관심을 둡니다.
크리스챤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관심하지만 주님은
아직도 당신을 모르는 그들의 인생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은퇴 퇴직금에 관심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을 알지 못하고 은퇴하는 사람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기에 관심을 두지만 주님은 사람에 관심을 둡니
다.
우리는 물질에 관심을 두지만 예수님은 사람에 관심을 둡
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만남을 가질 때는 언제나, 그 분은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관해 더 관심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와 만나고자 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보다도 더 영적으로 인생을 보아야 합
니다.
우리의 물질도, 성공도 재정의 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더 신뢰하기 시작하는 더 깊은
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깊은 물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다시 말해 큰 고통 속에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더 큰 고통 속에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령한 수확이 많은 더 깊은 물로 인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시몬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특별한 믿
음교훈으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그 분은 더 많은 믿음이 요구되는 더 깊은 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곳이요, 전에 알지 못한 곳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있는 곳이 더 깊은 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내리
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더 큰 믿음, 더 넓은 비젼, 그리고 더 깊은 헌신을 갖기
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없이는 인생의 건물은 소용없습니다.우리가 이 교훈을 배울 대,
그 때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우리 안에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부들을 취하여 사람 낚는 어부들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우
리의 직업과 함께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능, 은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도록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취하실 때 두려
워 말라.
그 분은 우리를 위해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심하거나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
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생의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3. God‘s Formula For Success
Joshua 1:5-9
5 No man shall be able to stand before you all the days of your life; 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ot leave you nor forsake you.6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for to this people you shall divide as an inheritance the land which I swore to their fathers to give them. 7 Only be strong and very courageous,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e law which Moses My servant commanded you; do not turn from it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that you may prosper wherever you go. 8 This Book of the Law shall not depart from your mouth, but you shall meditate in it day and night, that you may observe to do according to all that is written in it. For then you will make your way prosperous, and then you will have good success. 9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of good courage; do not be afraid, nor be dismayed, for the LORD your God is with you wherever you go.”
-------------------------------모든 사람 안에 성공을 느끼는 흔한 갈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성공이 어떠한 것이냐에 대해 기초적인 것에 우리의 가치를 측량합니다.
우리가 그 성공을 측량하는 것이 종종 경건한 표준보다 오히려 세상적 표준 위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세상적 표준에 의한 성공은 가끔 사치, 부, 소유, 성취, 평판, 그리고 명성, 미, 두뇌, 근력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세상적 표준으로 측량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성공적인지 아닌지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견해를 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측량표준은 세상적 표준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네드 그로스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삶에 있어서 어떻게 성공하는 가를 말했습니다.
삶에 있어서 성공하는 방법.
1.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된다.
2.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결정하라.
3. 당신이 지불해야 할 값을 결정하라.
4. 값을 지불하기를 헌신하라.
5. 항상 열심히 일하라.
결코 포기하지 말라.
나는 성공에 대한 다른 책도 읽었습니다. 그것은 첫 번 것과 비슷하게, 성공을 위한 3가지 방식을 소개했습니다.
진짜 흥미 있었던 것은 그 책을 발견한 곳입니다. 그것은 배제된 책장에 있었습니다.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법칙은 완전히 세상적 법칙과 다릅니다.
그의 법칙은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역사합니다, 그것이 학교에서든, 우리 사업에서, 우리 가족에서, 혹은 우리 교회에서든 역사합니다.
성공을 향한 참 된 오솔길은 성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법칙을 실행하지 않은 어떤 사람에 의해 여행 되어질 수 없습니다.
성공을 위한 이러한 원리들은 본문에서 취하여 집니다.
원리1.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앞에 이 명령을 몇 번 가져오는지 주목하시오.
우리는 세 번 볼 수 있습니다. (6,7,9)
용기가 무엇입니까 ?
용기는 여러 동이어를 가집니다: 용감, 용맹, 두려움 없음, 영웅적 행위, 확신, 담력.
그것은 역시 여러 별명들을 가집니다: 배짱, 기개, 의연함.
용기에 대해 주시해야 할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안일한 생활을 하는 어떤 사람에게 결코 용기를 증거하지 못할 것입니다.
용기는 성을 대항하여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집니다.
이상한 일들이 그들을 대항할 때, 압박이 계속 될 때, 불꽃 화살이 가까이 올 때, 고통이 강렬할 때, 공격이 코앞에 올 때 용기가 필요합니다.
골리앗을 대항하여 자기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물매를 잡고 엘라 골짜기로 걸어 갈 때 우리는 다윗에게서 용기를 봅니다.
모세가 바로와 눈을 마주하여 섰을 때 우리는 용기를 봅니다.
우리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을 도전할 때 그 안에서 용기를 봅니다.
용기는 갈등과 투쟁하는 가운데서 오직 보여 질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담대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 하셨습니까 ?
여호수아는 무엇을 직면하고 있었습니까 ?
무엇이 그에게 그처럼 어려웠습니까 ?
그는 이스라엘 국가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완전한 승리를 위해 프로잭트를 주셨습니다.
그의 첫 과업은 그의 군대를 가나안으로 인도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누워서 떡 먹기 같은 소리, 그러나 기억하라, 40년 전 모세는 12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그 땅에 많은 거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비교해서 메뚜기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두려웠고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했습니다.가나안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더 강하였습니다.
모든 인간 표준들로는 여호수아가 힘든 싸움을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꼬리 내리고 도망가야 할 모든 이유를 가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처럼 많이 격려하신 이유입니다. 즉, 강하고 담대하라고.
당신은 당신이 힘든 싸움을 직면하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까 ?
당신은 이상한 것들이 당신을 대항한다는 것을 느낍니까 ?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삶 속에 우리의 눈에 불가능하게 보이는 많은 상황이 있습니다.
질병들, 무능, 깨어진 관계, 경제적 어려움, 직장 잃음, 등
게다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내적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여호수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만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감히 간과해서는 안 되는 그 밖에 어떤 것이 있습니다.
심지어 비록 여호수아와 그의 민족이 그 원수에 비해 작았지만 그들은 자기들 편에 어떤 사람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1장9절을 읽으세요.
꼭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원수에 비해 작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편에 우리를 도울 어떤 사람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공 법칙은 “강하고 담대하라” 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에 넣고 싶은 추가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것을 완전케 할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너희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강함이나 용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강함과 용기는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지식으로부터 옵니다.
그 점을 놓치지 마세요.
왜냐하면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여호수아 그는 강하고 담대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그들 조상이 전에 했던 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와 하나님을 대항하여 중얼거리며 불평했습니다.
그들의 실패이야기를 자세히 말하는 모세를 들으세요.(신1:26-32)
지금 이것을 보시오! 그들 두려움과 불신의 결과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세대의 복을 빼앗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그의 세대가 그 같은 실수를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 원리를 우리의 개인적 생활 뿐 만 아니라 이 세대의 삶 속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단지 우리 인간 눈과 인간이해로 보는 것은 아주 쉬울 것입니다.
여러 분은 내가 그와 같은 종류의 철학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성공법칙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 것은 강하고 담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너의 하나님이 당신이 가는 곳 어디든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원리1. 하나님의 명령을 향한 순종(7)
어떻게 주께서 이것을 여호수아에게 전달했는지 주목하시오.
모든 율법을 순종하는 것을 주의하라.
우리가 따를 수 있는 하나님의 율법들과 원리들을 취하며 선택한다면 그것은 아주 편리할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그 율법은 아주 세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그것을 배우기를 기대 했습니다.
우리는 오는 그 같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원리로 삽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명령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 너희 모든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바울은 사랑을 율법의 성취하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최고의 율법이라고 헸습니다.당신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하나님의 성공법칙은 그것이 없이는 완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월리3. 하나님의 말씀에의 집중(8)
작동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없이 컴퓨터를 사고서, 나는 필수 소프트웨어의 모든 것을 작동하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그 지침서를 세밀히 읽었다면 나는 나의 비참한 시간들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분 중 몇 사람은 역시 그와 같은 남편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죠 ?
실수는 우리가 설명서를 읽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 집니다.
그 같은 원리는 그것이 성도의 걸음에 올 때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집중했었다면 우리의 실수들 중 많이 피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일어났었던 한 가지는 무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데 변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컴퓨터와 함께 만든 그 실수들은 무지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나의 무지는 신중한, 의도적인 무지였습니다.
내가 필요했던 정보가 유용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컨설팅하지 않고 살고자 애쓸 때, 그것이 신중한, 의도적인 무지입니다.
그러나 그 무지는 우리를 어리석음의 고통으로부터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지혜는 유용합니다.
그것은 그저 그것을 읽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을 묵상하는 것에 관한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법칙은 역사합니다, 그러나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도록 부릅니다.
그것이 우리를 그의 명령에 수종하도록 부릅니다.
그것이 그 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집중하도록 우리를 부릅니다.
4. That We May Flourish
Scripture: Isaiah 35:1-35:10
1 The wilderness and the wasteland shall be glad for them, And the desert shall rejoice and blossom as the rose; 2 It shall blossom abundantly and rejoice, Even with joy and singing. The glory of Lebanon shall be given to it, The excellence of Carmel and Sharon. They shall see the glory of the LORD, The excellency of our God. 3 Strengthen the weak hands, And make firm the feeble knees. 4 Say to those who are fearful-hearted, “ Be strong, do not fear! Behold, your God will come with vengeance, With the recompense of God; He will come and save you.” 5 Then the eyes of the blind shall be opened, And the ears of the deaf shall be unstopped. 6 Then the lame shall leap like a deer, And the tongue of the dumb sing. For waters shall burst forth in the wilderness, And streams in the desert. 7 The parched ground shall become a pool, And the thirsty land springs of water; In the habitation of jackals, where each lay, There shall be grass with reeds and rushes. 8 A highway shall be there, and a road, And it shall be called the Highway of Holiness. The unclean shall not pass over it, But it shall be for others. Whoever walks the road, although a fool, Shall not go astray. 9 No lion shall be there, Nor shall any ravenous beast go up on it; It shall not be found there. But the redeemed shall walk there, 10 And the ransomed of the LORD shall return, And come to Zion with singing, With everlasting joy on their heads. They shall obtain joy and gladness, And sorrow and sighing shall flee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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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창조주에 의해 번영하도록 작정되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꽃피고 자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화려하고, 기쁘고,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로 비참한 어린 쥐처럼 살도록 작정하시지 않음을 확신합니다.
그 분은 우리가 번영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를 번성하도록 작정하시지 않았다면, 그 분은 우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것은 안 좋아, 아주 안 좋아” 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자유롭고 기쁨 충만하기를 원하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그들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시한 푼돈 같은 종류의 삶이 아니라, 거대한 스케일 위의 삶이요, 충만하고 성취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번성하도록 의도하십니다.
그 분의 말씀은 그 분이 자기 아들을 세상을 정죄하도록 세상에 보내지 않고 세상이 그를 통해 생명을 얻도록 보내셨다고 말씀합니다.
풍성함과 기쁨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작정하신 것입니다.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가지지 못 합니까 ?
왜 우리는 감정적으로 탈진 합니까 ?
왜 우리 영혼들은 지칩니까 ?
왜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 기쁨을 가지지 못 합니까 ?
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러한 속박된 공간에서 삽니까 ?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나는 나의 정원에서 피어난 장미꽃에서 힌트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때가 되어 피어난 꽃 속에서 교훈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가올 어려운 때를 위해 유다백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앗스르 사람들이 자기민족을 대항하여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백성의 마음들이 매마를 것이며 그리고 그들의 희망이 없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희망과 약속의 말을 제공했고, 번성하는 생활로 가는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쁘게 될 것이고,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이 필 것이다,
식물처럼 그것은 풍부하게 꽃피울 것이며, 그리고 기쁨과 노래함으로 즐거워 하며.... 약한 손을 강하게 하라, 약한 무릎을 견고케 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 “ 강하고 두려워 말라! 너의 하나님이 여기 있도다... 그는 올 것이며 너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하라.
기뻐하라 그리고 꽃을 피우라, 풍부하게 피우라.
다시, 나는 우리가 번영할 것이다 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합니다.
그는 우리를 꽃피우고 자라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가지지 못 합니까 ?
그러나 그것은 믿음만이 볼 수 있는 작은, 숨겨진 방법 속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할 것을 의도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만 볼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불모지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 죽을지경 이라고 불평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삶을 위해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계획은 살아남는 것이며, 입에 풀칠하는 것이며, 그럭저럭 버텨가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성도 중 한사람에게 어떻게 잘 되고 있는냐 고 물어 볼 때는 언제나 그는 목사님, “힘쓰고 있어요, 힘쓰고 있어요 라고 매 번 똑 같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주께서 당신을 위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보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번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방향감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성경이 하나님의 높은 소명의 상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목적 없이 그저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광야가 그의 마음속에 있었고, 메마른 땅이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와 마른 땅이 기뻐하게 될 것이며 풍부하게 꽃을 피울 것이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할 것을 의도하셨고, 그리고 우리에게 작은 실마리를 주십니다.만약 당신의 삶이 황패하고 마르고 목적 없다고 생각한다면 주의를 둘러보라, 당신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 어떤 곳을 둘러보시오.
그것으로부터 당신은 번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작은 표적, 단돈 한 잎 같은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기쁨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선생님, 내가 황폐하며 메마름을 느끼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사막이 기뻐하게 될 것이며, 소경의 눈이 열리며, 그리고 귀머거리의 귀는 열릴 것이며,
그 때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뛰며, 벙어리의 혀는 기뻐하여 노래할 것이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로부터 그가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의 약함으로부터, 그는 강함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우리의 수줍음(겁많음)과 두려움으로부터 그는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번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의향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의도하십니다.
그는 눈을 열고 그리고 귀를 분명하게 하고 그리고 우리를 사슴같이 뛰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분발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작은 표적들을 주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와 같은 어떤 것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표적 위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는 죄이며 그리고 그것과 함께 무엇을 하는가 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먼 거리, 우리가 운반해 오는 이 죄책, 우리가 낳는 이 수치, 이것이 정말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열매 없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실로 삶의 부를 파괴시키며 그리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대강절에, 선지자 이사야가 약속하는 그 약속들을 새로운 눈으로 읽으시오.
그 고속도로가 그 곳에 있을 것이며, 그리고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 불려 질 것이며, 구속받은 자들이 그 곳을 걸을 것이며, 주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며 노래하며 시온에 올 것이다.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마음 위에 있을 것이며, 그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획득할 것이며, 그리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 날 것이다.
여러 분 하나님이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길, 그는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구속받은 자들이 걸어가는 길이며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밟을 길입니다.
오늘아침 내가 무엇을 주장 했습니까 ?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할 수 있고 그리고 우리에게 표적을 줄 것이다 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의 미를 제공하는 작은 붉은 장미처럼.
형제 자매들이여, 그것을 놓치지 마시오.
하나님은 이 작은 패케지에 당신 자신을 쏟아 부었으며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많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생명에 복종시켰습니다.
그는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죽도록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목적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안심하고 번영하라.
당신은 사랑 받았습니다.
하나님 당신 자신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번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시 작은 표적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로 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지친 영혼을 그 분 안에서 쉽니다.
5. He Is The Root and Morning Star
Revelation 22:16-17
16 “I, Jesus, have sent My angel to testify to you these things in the churches. I am the Root and the Offspring of David, the Bright and Morning Star.” 17 And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who hears say, “Come!” And let him who thirsts come. Whoever desires, let him take the water of life fre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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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후 주일입니다, 그리고 몇 주 동안 우리는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삶의 그 마지막 몇 날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일 우리는 그의 부활을 증거 했고, 그리고 슬픔과 절망으로부터 그의 재림의 참여를 즐거워하는 것으로 우리의 감정을 올리면서 축하 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찬 세계 전체가 이 절기를 축하하며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부활 후 주일입니다.
휴일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세상은 아직 평화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적 문제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여전히 실패하고 있고, 거리에는 아직도 폭력이 있습니다.
부활 전 그곳에 있었던 모든 것이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우리가 바라는 만큼이나 기이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여러 분 아주 고통스러운 구두를 신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두에 관하여 이와 같이 불평했습니다, “정말이지 이 구두가 내 발을 아프게 한다, 너무 심하다,”
그의 동료가 그것을 듣는 것을 피곤해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한 사람이 그가 막 새 구두를 샀구나 하고 추측했습니다.
그 사람은 대답했습니다, “ 글세요, 나를 믿으라, 나는 그것에 관하여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새 것을 싸지 않기로 결심 했다라고.”"
여러 분 나는 내 직업을 몹시 싫어합니다. 나는 매일 일하러 갑니다.
타임카드에 시간을 찍고 고역의 8 시간을 보냅니다.
나는 모든 순간을 싫어합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갑니다. 집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는 밤 낮 나에게 바가지를 긁습니다. 모든 시간 그저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딸과 그녀의 남편이 우리 집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분들이 결코 보지 못한 개구쟁이 두 아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구들을 부수며, 집을 찢으면서 그 집 도처에 사납게 달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장모도 역시 우리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그녀는 TV 리모콘을 잡고, 나의 애용하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보기를 원하는 프로그램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는 “ 나는 나의 삶 속에 이러한 모든 문제들과 함께 말하노니, 내가 가지는 나의 유일한 진정한 기쁨은 이러한 구두를 벗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분은 실로 그러한 삶의 길을 느꼈습니까 ?
나는 최근 자기 속옷에서 난간에서 미끄러지는 녀석을 보여주는 생일카드에 관해 들었습니다.
그 카드는 이렇게 섰습니다, “ 당신이 인생의 난간에서 미끄러질 때, 쪼개진 모든 파편들이 당신의 길을 돕기를.”
진리는 쪼개진 파편들이 항상 당신의 길을 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주 고통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직면할 때, 내가 부활 후 주일에 무엇에 관해 전할 수 있을까요 ?
글세, 나는 이것과 함께 씨름을 했고 그리고 성경 마지막 페이지 요한계시록 22장 16-17절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도요한을 향한 우리 주님의 말씀들입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대 박해 동안 로마에 의해 그곳에 두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교회를 위한 메시지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즉, 승리의 메시지, 미래의 계시였습니다.
요한에게 계시되었던 것이 우리가 지금 “계시의 책”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 계시가 마지막으로 이끌 때, 예수님은 우리가 계시록 결론짓는 구절에서 발견하는 이러한 말씀들을 말씀하셨습니다.
16절을 들어 보세요.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그리고 그는 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계속하십니다.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서 그저 한마디로 기술되어집니다.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며, 혹은 저 사람은 우울한 사람이다.
혹은 열심 있는, 화를 내는, 시끄러운, 바쁜, 게으른 사람.
나폴레옹은 전사지였고, 콜롬버스는 발견자였고, 마르틴 루터는 신학자였고, 에디슨은 발명자였습니다.Now the
지금 문제는 한쪽의 개성이 어떤 사람을 이끌지만 다른 사람을 내어 쫓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선지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신학자를 좋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전사자를 따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따르고 어떤 사람은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난 우리가 예수님께 올 때 우리는 그 안에서 내어 쫓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엄격하나 신사적이며, 그는 선한 목자이나 그는 역시 어린양이며, 그는 대 제사장이나 그는 역시 희생제물이며, 그는 왕 중의 왕이나 그는 또한 종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보고 연구하고 모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의도하신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 본문에 예수님은 뿌리요 새벽별로 불려 집니다.
더 멀리 떨어진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까 ?
우리는 그것들이 하늘과 땅을 포함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1. 그는 지역적이시나 그는 우주적이시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이것이 예수님은 지역적이며 우주적이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뿌리는 지역적입니다. 그것은 한 지점에 아주 많이 머뭅니다.
그것은 그것의 축수가 흑 속 깊이 내려갑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발이 걷고 아이들이 노는 대지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역할이 아주 많습니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 아기로서 우리 세상에 오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기저기로 그를 쌌습니다. 그리고 여물통에 그를 두었습니다.
그는 우리 가운데 살았고, 우리 위해 죽었습니다. 오늘 그는 우리의 구주요 주님이십니다.
그는 우리가 경배하기 위해 모일 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는 진정 우리 중 모두에게 지역적이십니다.
그러나 심지어 별들이 우주적인 것처럼, 예수님도 그러합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그 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라 안에 있든지, 혹은 도시에, 해변에 서 있든지 별들은 우리가 보는 하늘들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주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같습니다. 그는 역시 우주적입니다.
당신이 오늘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구주로써 경배 받으시는 그를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프리카의 어두운 부분들 속에서 그를 발견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를 인도에서 발견할 것입니다.
여러 분은 크리스찬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공적으로 선포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전파의 문들은 중국에서 심지어 열려졌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교회가 심한 박해 가운데도 극적으로 성장하였음을 발견합니다.
당신이 이 모든 세상에 갈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예수의 메시지가 먼저 갔습니다.
때로는 지배자들의 잔인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주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 만 아니라, 그는 인간 사이의 차별을 없앴습니다.
홍인종이나 황인종, 흑인종이나 백인종.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눈에는 존귀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시며, 세상의 어른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는 간격을 없앱니다.
만약 우리가 종족적 고집과 분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어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의 인격 속에서 있어야 만합니다.
그는 우리를 함께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요, 그 안에서 형제, 자매 하나가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께 올 때 더 이상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우리는 모두 같습니다. 그는 지역적이시며, 우주적이십니다.
2. 그는 감추어졌으나 그는 계시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숨겨졌으나 그러나 그는 계시되었습니다.
뿌리들은 숨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하는 것을 볼 수 없는 흑 속에서 그들의 일을 합니다.
우리는 가뭄동안 뿌리는 자동으로 수증기와 자양분을 찾아 땅 속으로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감을 압니다.
심지어 우리가 밤에 잠자는 동안에도 세상의 풀, 식물, 꽃들의 뿌리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과 같습니다. 신비한 그 분의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에 관해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을 결코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었으며 혹은 어떻게 그가 그 군중들을 먹이셨는지 설명하도록 요구하지 마시오.
어떻게 예수님이 나환자를, 앉은뱅이를 치료하셨는지 나에게 설명하도록 요청하지 마시오.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는 것으로, 그를 무덤에 장사지내는 것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부활시키므로 좌와 죽음을 정복하실 수 있었는지 나로 여러 분들께 설명하도록 요청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 자비, 용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나의 인간 이해를 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된 그 분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세상에 오셨을 때 요한은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보았고 그를 만졌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테이블을 건너 아래 앉았고, 그를 들었고, 그의 가르침을 몰두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영원을 위해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 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바로 그 본성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역할이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우리 안에 있는 예수를 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이 될 때,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주로 고백할 때, 우리가 우리 죄를 회개할 때, 그리고 우리가 세례 속에서 그와 함께 장사지내어 질 때, 성경은 우리의 죄들이 용서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새로움 속에서 걸어가도록 부활 되었고,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땅 아래 뿌리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일 때, 우리가 기도할 때 아무도 우리 안에 발달시키는 그를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영향이 우리 삶 속에서 자랄 때, 그는 숨겨지지 않을 것이며, 그는 보여 질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사람에 관한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다른 사람과 말하는 방법, 어떻게 상황을 다루며, 심지어 당신 얼굴표현에 영향을 줍니다.
당신의 삶이 친절과 부드러움으로 채워질 때 나는 당신의 얼굴의 주름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진정 우리의 삶 속에서 차이를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그는 일시적이었으나 그는 영원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시적이었으나 그는 영원합니다.
뿌리들은 일시적입니다. 그렇죠?
그들은 잠시 자랍니다, 그들의 주기를 경험합니다, 그리고는 죽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한 부분은 역시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형태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거절했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뿌리들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그러나 별들은 영원히 나타납니다.
인간의 시간이 관련되어 있는 한, 그것들은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다니엘 12장에 놀라운 성경구절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에 관한 것이지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늘의 밝음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한 자들은 영원히 별과 같이 비취리라.”
우리는 우리의 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아주 밀착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일시적입니다. 그리고 단지 간단한 기간의 시간 동안 지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은 그것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정한 당신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여러 분이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낼 것입니까 ?
예수님과 함께 보낼 것입니까 혹은 그 분 없이 보낼 것입니까 ?
당신이 당신을 위해 결정할 자입니다. 결정은 당신의 것입니다.
좋은 소식은 예수님이 당신의 구주요 당신의 주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죄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 자신을 당신에게 제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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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그를 영접한다면, 만약 당신이 그를 당신의 마음에 오시도록 허락 한다면, 그 때 큰 나팔 소리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당신은 영원히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아침 그를 영접할 기회를 여러 분께 드립니다.
그의 위대한 초대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