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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세계 원문보기 글쓴이: 김희자
자두 맛 사탕
한진수
어제 들어 온 노인의 사진에 눈길이 멈춘다. 서류상에는 여든여덟 살이라고 돼
있었는데 사진 속에 들어 앉아 있는 인물은 여든 여덟이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한
얼굴이다. 찍은 지 족히 5년은 돼 보이는 사진. 이 사진을 찍을 때만해도 이 노인
은 오늘 새벽 자신이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몰랐겠지. 상주들의 표정 속
에 저 여인이 이렇게 쉽게 갈 줄 누가 알았겠냐는 황당함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얼굴 뒤로 언뜻언뜻 보이는 해방감. 숙연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그 해방감은
문상객을 마주할 때마다 터져 나오곤 한다.
- 갑자기 가셔서 놀랐겠어.
- 갑자기는 아니고 노환이지 뭐.
- 어떻게 가셨어?
- 아 글쎄 어젯밤에 보니까 이 노인네가 밤을 못 넘길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밤새 불을 켜 놓고 이 노인네 방을 들락거렸어.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가신거야.
- 편안히 가셨네. 올 해 연세가 몇 이시라고?
- 응. 여든 여덟 살이셔.
- 아, 그럼 호상이네.
어느 빈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문상객과 상주의 전형적인 대화. 문상객에게 호상
이라는 단어는 이 죽음에 난 관심이 없다는 의미이고, 상주에게 호상이라는 단어
는 이 죽음에 나는 책임이 없다는 항변이다.
난 오늘도 제사 음식을 만들고, 나른다. 이 세상 존재하지 않는, 조금 전까지 사
람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이들을 위한 음식. 이 음식은 특별히 맛있
지 않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로 맛없지도 않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 너
무 맛있으면 산 자가 탐할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맛없으면 그도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만실이다. 특실 4개와 일반실 8개가 모두 죽은 자와 그들을 기리기 위해
모여든 산 자로 가득 찼다. 새벽 일찍 발인이 끝나고 비어있던 3호실에 다시 주
인이 생겼다. 아침 일찍 들어온 걸로 봐서 고인은 새벽이 끝나갈 쯤 유명을 달리
했으리라. 오자마다 초우제를 올린다는 것은 영정사진이 준비 돼 있었다는 것.
고인의 죽음은 언젠가부터 예견 됐고, 철저하게 준비 되어왔을 것이다. 고인은
영정 사진을 찍고, 근 시일 내에 닥쳐올 죽음을 기다리며. 하지만 그 순간이 정확
히 언제 일지까지는 알려 주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색 나물을 살짝 데워 제기 접시에 올린다. 이제 망자를 만나러 갈 시간. 조리
실의 문을 밀어 젖힌다. 아무도 모르게, 잠시 잠깐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에 시선
을 고정한다. 거울 볼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 삶. 하지만 큰 불만은 없다. 어차피
거울 볼 시간이 있다 해도 거울 속 나 자신과 눈을 맞출 용기는 없었을 테니까.
그저 이렇게 유리문에 어릿하게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입 꼬리에 힘을 줘 위로 올려보지만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스마일. 나만 아는 응원단은 그렇게 나만을 위해 조용한 응원가를 띄운
다.
마스크와 모자로 뒤덮인 얼굴. 어딘가 우스꽝스럽지만 전문가 같다. 제기 접시를
담은 수레를 밀고 3호실로 간다. 복도에는 화환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고인
이 살아있을 때 꽃 한 송이도 선물하지 않은 무심함은 이렇게 큰 화환이 되어 돌
아왔다. 장례식장에서 일한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우리 수지 교육비
라도 벌어볼 심산이었으나, 이제는 수지의 교육비 보다는 수지 아빠 용돈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3호실 앞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더듬어 본다. 우선,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족에게 제사상을 차리러 왔다고 얘기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영정사진
을 향해 묵념을 한다. 그리고 제단에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상주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퇴장하면 끝이다. 몸에 익은 일이지만 피곤 한 날에는 가끔 실
수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고객을 만나기 전에는 긴장이 된다.
- 초우제 신청하셨죠? 지금 차려드릴게요.
- 네.
빈소 입구에 초로의 여자가 서 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여자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신발을 벗으려다 말고 두 발을 다시 신발 속에 구겨 넣는다.
황급히 수레를 밀고 뛰쳐나오려는데, 그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수레를 막아
선다.
- 뭐하시는 거예요?
- 아, 제가 호실을 잘 못 알고 왔어요. 금방 다시 보내드릴게요.
이른 나이에 혼자 돼 십 수 년 동안 외아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여자. 자신의 청
춘보다 아들을 사랑했던 여자. 자신의 살과 피보다 아들을 더 소중히 여기던 여
자. 그래서 그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원수로 보던 여자. 그 여자가 지금 3호실
에 앉아있다.
10년만인가.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어디선가 마주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그곳이 내가 일하는 장례식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인의 이름이 뜨는
전광판 앞에 섰다. 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끌어안고 전광판의 이름들을 확인한다.
- 11호실 이문기, 12호실 한동옥, 1호실 박승패, 2호실 강순례.
지인의 이름을 찾는 문상객들로 붐비는 전광판 앞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자명종처럼 그 고요를 깨워낸다.
- 3호실 양준식
양준식.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이름. 양준식. 절대로 마주치지 말아야 할 이
름.
그는 왜 여기 누워있는 걸까. 어째서... 10년 만에 죽어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인가.
마스크와 모자를 사물함 속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한여
름의 무더위와 장마철의 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몸을 삼켜버린다. 하지만 내
몸 깊숙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는 한기가 덮쳐온다.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저 멀리 달려오는 택시에 손을 내민다. 택시에 오르며
택시비 만원이면 수지와 수지아빠에게 백숙을 해먹일 수 있는데 라는 생각이 잠
시 스쳤지만, 이내 물리친다. 내게도 이런 날 택시 탈 권리쯤은 있어. 전화벨이
으르렁거리며 울린다. 실장일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자 곧 이어 문자메시지 수
신음이 신경질적으로 울려댄다. [근무지 무단이탈은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습
니다.]
해고? 할 테면 하라지. 누가 이따위 일에 미련 있을 줄 알고. 전원 버튼을 눌러
휴대전화기를 꺼버린다.
- 아저씨. 빨리요. 빨리. 조금 더 빨리 가주세요.
10년 전에도 택시에서 ‘빨리요, 빨리’를 외쳤던 날이 있었다. 그를 한 시라도 빨
리 보고 싶어 택시를 탔을 것이다. 거칠 것 없는 택시의 속도가 성에 차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빨리요, 빨리’를 외쳤다. 그 역시 나를 위해 과속을 서슴지 않았던
날이 있었을 것이다. 내게 달려오는 시간을 단축하고자 사원증을 그대로 목에 걸
고 온 날도 부지기수였다. 그 모습이 예뻐 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뭐라고 속삭였
던가. 우리는 그렇게 지상의 속도를 초월해 사랑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리던
그는 한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고 정차해버렸다.
그 여자는 나와 자신의 아들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다. 궁합을 봤는데 점쟁이가
세상에 이렇게 나쁜 궁합은 처음 본다고 했단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남편 잡아
먹을 사주라고.
그녀는 공포에 떨며 날 달랬고, 발작적으로 내게 욕을 했다. 처음에는 넘을 수 있
는 벽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도 의욕적이었다. 요즘
세상에 그런 미신 때문에 헤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홀어머니의 외아들은 효자일 수밖에 없었다.
- 그렇다고 어머니를 버릴 수는 없잖아.
그에게 관성의 법칙 따위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의 휘청거림도 없이
멈추어 섰고, 능숙하게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내게는 큰 굉음과 함께 선명한 바
퀴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우린 다시 만난 것이다. 십년 만에. 장례식장에서.
택시기사는 집 앞에 날 내려두고 만원을 챙겨 멀어져갔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
다 말고 멈칫 한다. 집에는 수지 아빠가 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수지아빠와
다툴 것이다. 결혼 후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던 그는 이제 아예 집에서 놀고먹는
일을 선택했다. 그와 헤어지고 반 년 만에 지금의 수지 아빠를 만나 초고속 결혼
을 했다. 행복할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으나 이렇게까지 사는 게 고되질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 했다. 착한 남자였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나의 몹쓸 사주
를 핑계로 결혼을 반대할 어머니가 안 계셨다. 지금 나의 고단함에 그의 책임은
어느 정도 있는 걸까. 꼭 그만큼 그의 죽음에 내 책임도 있는 걸까. 그는 왜 죽은
걸까.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영정사진이 준비 돼 있었고, 빈소 분위기도 차분했
다. 나와 세 살 차이가 났으니 올 해 그는 서른여덟이 됐을 테지. 도대체 그에게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아야겠다. 나와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죽어
버린 이유를 나는 알아야겠다.
- 이번 한 번 뿐 입니다.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그 때는 끝입니다. 끝. 알아들
었죠?
실장은 사납게 소리쳤지만 날 내치지 않았다. 단 2시간의 무단이탈로 누군가를
해고하기에 조리실은 너무 바빴고, 죽은 자들을 위해 차릴 음식은 너무 많았다.
저녁상식을 올릴 시간이다. 다시, 3호실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수레에 나물과
전을 올린다. 그리고 크고 실한 수박 한 덩이를 골라 올린다. 내가 그의 죽음에
해줄 수 있는 일은 딱 이만큼이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용서 받을 수는 없으니까.
수레를 끌고 나오며 다시 한 번 유리문을 째려본다. 입 꼬리를 앙 다물고 오랜만
에 눈동자를 응시한다. 그가 사랑했던 눈동자. 하지만 그 여자가 꺼림칙해했던
눈동자. 빛나던 그 눈동자는 어디 가고, 피곤함과 억척스러움만이 남아있다. 자
신의 아들을 죽게 할 원인으로 날 지목했던 그 여자는 이 눈동자를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
- 상식 올려드리겠습니다.
3호실로 수레를 밀고 들어간다. 입구를 지키고 섰던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로 간 것일까. 목에 걸쳐뒀던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쓴다. 긴장감이 물러가자 얼굴
에 열이 올랐다 내린다. 신발을 벗고 빈소에 들어선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등을 돌린다. 옆에 있던 장례지도사가 수박을 받아 든다. 고개를 들면 그가 서있
겠지. 그는 날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당혹스러워할까. 반가워할까. 우리 둘 다
예상치 못했던 재회.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재회. 저기 있는 사진 속에 있는 사람
이 그가 아니라 단지 동명이인이라면. 내가 본 여자가 단지 그의 어머니와 닮은
여자였다면.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메와 국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정
면을 응시했다.
그다. 10년 전 나와 살면 죽게 될까봐 내게서 도망쳤던 남자. 내가 아닌 자신의
어머니를 선택했던 남자. 그 남자가 사진 속에서 날 바라보고 있다. 반사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그의 부인인 듯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여자
에게 목례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바람피우다 본처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수치심
이 몰려온다. 이제 막 서른을 넘겼을까 말까한 여자. 핏기 없는 얼굴이지만 그 안
에 화사함이 가득하다. 사랑을 많이 받고 산 얼굴이다. 하얀 상복 속에 숨기고 있
지만 고상함이랄까.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기품이 툭툭 삐져나온다. 그녀
는 어떻게 그의 어머니를 꺾고 그의 아내 자리를 차지했을까. 그리고 그의 어머
니를 겪어내고도 어떻게 부식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어떤 사주이기에 지금 그의
곁에 서있을 수 있을까. 그녀의 사주는 좋은 사주일까. 빌어먹을 사주일까.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그의 미망인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행운아일까. 불운아일까.
그의 어머니를 다시 마주한 것은 다음 날, 7호실 복도 앞에서다. 나는 7호실을
지나 12호실에 초우제 음식을 차리러 가는 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입관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 곁에는 그의 부인이 서있었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저 여자는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어 내 온 몸을 물어뜯어놓았겠지. 너 때문에
금쪽같은 내 아들이 죽었다고. 남편 잡아먹은 못된 년. 너도 같이 죽어라고 발악
했겠지. 확인하고 싶다. 저 여자가 그의 부인에게 소리 지르는 모습. 미치도록 확
인하고 싶다. 그의 마지막 모습. 확인해야겠다.
장례지도사 김 선생에게 다짜고짜 이번에 진행되는 입관식에 들여보내달라고
사정했다. 김 선생은 입관식 도중 깨어난 시신을 바라보듯 내 얼굴을 빤히 바라
봤다. 결국, 사실대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냉장실, 세 번째 칸에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누워있다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와 헤어지고 한 번도 흘
린 적 없는 눈물이다. 그동안 살면서 눈물 흘릴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와의 이
별보다 슬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선생도 내 눈물에 놀랐는지 입관실 안 쪽
상주들이 보이지 않는 아주 협소한 공간을 내주었다. 죽어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
지만 더 죽도록 그가 보고 싶었다.
그가 누워있다. 커튼을 젖히자 남겨진 자들의 슬픈 얼굴들이 나타났다. 김 선생
님은 그의 몸을 덮고 있는 흰 천을 들춰냈다. 눈을 꼭 감은 그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고, 유리창 밖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얼굴이 내가 사랑했던
남자의 얼굴이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아 하마터면 그의 곁으로 달려갈 뻔 했다.
그는 오랜 투병생활을 한 사람처럼 야위어 있었다. 그의 몸 어디에도 나와의 시
간을 간직할 공간은 없어보였다. 유리창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중에 그 여자
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김 선생의 이마에 줄곧 땀이 흘러내렸다. 그의 육신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시체였지만 성인 남자였고, 성인 남자의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수의를
입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노란기가 도는 삼베옷이 참 잘 어울렸다. 딱 봐도
값비싼 수의 같았다. 그의 어머니가 마련해 준 것이리라. 자식새끼 저승 갈 때 입
을 옷까지 마련해주시다니, 자식 사랑 한 번 극진하시네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더니 당신 덕분에 과부신세는 면했네요. 당신의 사주팔자는 어떻기에 남편을 잡
아먹고, 이렇게 자식까지 앞세우시는 건가요.
김 선생의 손길은 바빴지만 정성이 가득했다. 얼굴에 연하게 화장을 하니 혈색이
조금 돌아와 보였다. 저대로 일어나 내게 뚜벅뚜벅 걸어와, 여기서 뭐하냐고. 내
손을 잡고 이곳을 빠져나갈 것 같다. 김선생은 곧이어 머리를 빗겼다. 머리에 물
을 묻혀 빗질을 하니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흉한 몰골이 정리가 됐다. 잠시 잠깐.
김 선생이 내 쪽을 바라본다. 이제 가족들이 들어 와 작별 인사를 할 차례라는 뜻
이다. 김 선생이 문을 열자 그의 가족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맨 앞에는 역시나 그
의 어머니가 서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의 부인이 서있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린다.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다.
- 수의에 눈물 묻히는 거 아닙니다. 그만 우시고 작별 인사 나누세요.
김 선생의 말에 그의 어머니는 결심이 섰다는 듯 그의 얼굴을 끌어안는다. 세상
가장 소중한 물건을 손에 넣은 것처럼 조심스럽다. 무어라 말을 하는데 울음소리
에 뒤섞여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 여자 뒤로 그의 부인이 다가선다. 어깨를 감싸
고 순한 아기를 달래듯 다독이기 시작한다. 그의 어머니가 몸을 돌려 그 여자 손
을 잡는다. 맞잡은 두 손이 그의 손을 잡는다. 그의 여자 둘이 그렇게 함께 울고
있다.
- 고인께 하고 싶은 말씀이 그렇게 없으세요? 지금 울기만 하면 나중에 후회하
십니다.
그의 부인이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무어라 속
삭인다.
난 저 순간 그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떠나는 그 사람 앞에서 저 여자의 손을 잡
아줄 수 있었을까.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눈 가족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유리문이 다시 닫혔다. 이 공
간에는 다시 김 선생과 보조인 장 선생. 그리고 나와 그만이 남겨져 있다. 김 선
생과 장 선생은 그의 몸을 어르고 달래며 삼베로 무장시켰다. 그는 전쟁터에 나
가는 장수처럼 위풍당당해졌다. 하지만 이내 김 선생과 장 선생의 손에 번쩍 들
려 관 속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김 선생이 관 뚜껑을 닫았다. 그 순간, 그의 생애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고 더 짧았던 우리 사랑이 내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 3호실 입관식 후 상식은 이 여사님이 처리했어요. 내일 발인제 음식도 이 여사
님이 처리하기로 했으니 신경 쓰지 말아요.
다행이 실장은 그렇게 몰인정한 놈은 아니었다. 입관식이 끝나고 한 숨 돌리고
조리실로 들어서는 내게 실장은 불호령이 아닌 어색한 미소를 건넸다. 그러면서
실장은 한 마디 덧붙였다. 장례식장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이런 일은 처
음이라고.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분이 운명은 운명인가 보다
고. 인정은 있을지 몰라도 눈치는 없는 실장의 말에 애꿎은 대추를 손톱으로 뭉
개버렸다. 그는 잘 가고 있을까.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내가 지켜보고 있던
것을 알고 갔을까. 그 순간 작은 섬광이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 내가 이렇게 그
만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양준식하면 항상 그의 어머니가 연쇄적으로 떠올
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수습 되지 못 하고 묻혀 버린 분노가 들끓다 가라앉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를 향해 있다. 있었던가. 이
렇게 그에게 집중해본 적이. 난생 처음으로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수지 아빠. 나 오늘 장례식장에서 밤새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응. 회사에
좀 안 좋은 일이 생겼어. 미안해. 내일 아침에 수지 챙겨서 학교 잘 보내고. 미안
해. 수지 등교 시간 맞춰 전화할게. 미안해.
새벽 2시. 캄캄한 조리실에 불을 밝히고 섰다. 아침 7시 발인 시간에 맞추려면 서
둘러야 한다.
그의 발인제에 올릴 제사상은 내가 그에게 손수 만들어 주는 첫 식사이고, 우리
재회의 만찬이다. 사랑이랑 거창한 것이 아닌 상대방을 위해 방 한 끼를 지어주
고 싶은 것. 그리고 그 밥이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길 바라는 것. 그
걸 알기에 10년 전 나는 젊었고, 사랑이라는 환상에 갇혀있었다. 무엇을 먼저 해
야 할지 몰라 정신이 아득해진다. 정신을 차리고 고기를 집어 든다. 장례식장에
서 쓰는 고기는 호주산이어서 밖에 나가 한우를 사왔다. 최고급 한우는 아니지만
산적거리를 만들면 가장 맛있다는 채끝살 부위를 골랐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한우를 먹으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서. 간장에 파와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마늘을
다진다. 콩콩콩. 마늘 찧는 소리가 조리실을 가득 채우고, 나를 깨우고 있다. 마
늘을 곱게 다져 간장 속에 넣고 냉장고에서 배를 하나 꺼낸다. 양념에 넣을 거지
만 잘 생기고 빛깔 고운 배로 선택한다. 흐르는 물에 배를 씻고, 행주로 물기를
닦아 낸다. 배가 이제 막 세수를 마친 딸애 얼굴만큼이나 말갛다. 스물다섯 살.
난 그 앞에 새치름하게 앉아 과일을 깎으며 사는 인생을 얼마나 꿈꿔왔었나. 둥
그렇게 잘 깎은 배를 강판에 대고 문지른다. 달콤한 배향이 코끝을 찌른다. 검지
로 찍어 먹어 본다. 시원하고, 달콤하다. 준식 씨... 참 좋아하겠네.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과 배 즙을 차례로 다듬어 놓은 고기에 붓는다. 양념이
드는 동안 밤을 깎기로 한다. 밤 가위가 없어 과도로 딱딱한 껍질을 벗겨낸다. 알
맹이에 꼭 붙어있으려는 밤 껍질을 안간힘을 다해 떼어놓는다. 마치 그에게서 나
를 떼어 놓은 그 당시 그의 어머니처럼. 엄지와 검지 사이가 욱신욱신 쑤신다. 수
돗물을 틀어 손을 닦는다. 장례식장에서 일한지 5년. 그를 위해 제사 음식을 마
련하며 처음 알았다. 제사음식을 마련하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산자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벽 6시 40분. 수레에 제기접시를 하나씩 올려놓는다. 밤새 음식 냄새를 맡은
탓인지 멀미가 난다. 가만히 지켜보던 동료들이 제기 접시를 옮기며 한 마디씩
보탠다.
- 그래. 그렇게 해서라도 한이 풀어진다면 해야지 어떡하겠냐. 실장은 오늘 늦는
다고 했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 어머나. 언니 그런데 이건 뭐야? 이것도 상에 놓으려고?
자두 맛 사탕. 그가 제일 좋아하던 사탕이다. 담배를 안 펴서 그런지 그는 군것질
을 나만큼이나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했던 것은 자두 맛 사탕. 한 번은
둘이 누가 자두 맛 사탕을 더 많이 먹는지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입이 달다 면
서도 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우유를 사서 녹여 먹기까지 했는데 그
때 누가 이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자두 맛 사탕은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사주셨던 간식이라고 했
다.
투명한 얼굴에 뺨을 살짝 붉힌 자두 맛 사탕을 처음으로 손에 쥐고 그는 차마 입
에 넣지 못 했다고 했다. 먹어 없애 버리기에는 지나치게 예쁜 사탕. 그 맛이 궁
금했지만 차마 먹지 못 하고 다시 포장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며칠을 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그 바지를 빨아버려 사탕도 먹지 못 하고, 어머니께 혼이
났다고 했다. 다음 날, 그의 아버지는 자두 맛 사탕 세 봉지를 사오셨다고 했다.
저녁상을 물리기도 전에 그의 입에 하나, 그의 어머니 입에 하나씩 물려주시며
웃었던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가 그의 아버지를 얘기할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얼굴이 나도 그리워졌다. 그는 아버지가 사다 준 자두 맛 사
탕을 입에 넣고, 어떤 세계를 만났을까.
그렇게 좋아하는 자두 맛 사탕이지만 그는 그의 어머니 앞에서는 절대 먹지 않았
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자두 맛 사탕으로 인해 아버지를 떠올리고, 슬퍼할까봐.
어쩌면 우리 사랑은 그에게 자두 맛 사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는 사탕도 우
리 사랑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지만, 결국 어머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
고 어머니 앞에서는 더 이상 사탕도 우리 사랑도 철저하게 금지시켜야 했다. 제
기접시에 한 가득 올려 진 자두 맛 사탕 하나를 집어 든다. 포장지를 야무지게 찢
어 입 안으로 쏙 집어넣는다. 향긋하고, 달큰한 자두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10
년 만에 맛보는 자두 맛 사탕이 너무 달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사탕. 녹아버
리면 그만인 것. 어쩌면 녹기 전에 깨져버릴 수도 있는 것. 내게도 사랑은 이 자
두 맛 사탕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어머니와 그의 부인이 나란히 서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그를 한 번 쳐
다본다.
수레에 싣고 온 제사음식을 하나둘 옮겨 놓는다. 내 행동이 굼뜬 게 답답했던지
장례지도사가 거들기 시작했다. 자두 맛 사탕이 가득 올려 진 제기 접시 위에 장
례지도사의 손길이 멈칫한다.
- 이건 뭐예요?
- 이건 제가 올릴게요.
장례지도사가 말릴 틈도 없이 자두 맛 사탕이 올려 진 제기접시를 그의 영정사진
바로 앞에 놓아둔다. 멍하니 서있던 그의 부인이 혼잣말 인 듯, 나지막하게 속삭
이는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 자두 맛 사탕?
비난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다. 그녀는 모르고 있다. 나만이 알고 있는 그
의 취향. 자두 맛 사탕의 포장지를 뜯다가 손이 벤 것처럼 아릿하다. 어서 빨리
목례를 하고 나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뒷걸음질 치지도, 그렇다고
몸을 돌려 걸어 나오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아주 또렷한 목소리가 들
려왔다.
- 우리 애가 좋아하던 거예요. 제가 부탁한 건데 잊지 않고 준비해줘서 고마워
요.
그의 어머니였다. 마스크로 덮은 콧잔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목례를 하는 둥 마
는 둥하고 3호실을 빠져나왔다. 조리실에 수레를 밀어 넣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
여자가 날 알아본 건가.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심호흡
을 크게 세 번 하고 발밑을 내려다 봤다.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감각이 없는
발에 신발이 짝짝이로 신겨져 있었다.
그의 영정사진이 복도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조촐한 장례 행렬이 뒤따
르고 있다.
이제 내 차례이다. 그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저 앞에 그를 닮은 뒤통수가 보이는 것 같다. 운구해줄 사람들이 정해
지지 않았는지 이 사람 저 사람이 운구 차량 뒤에 섰다, 들어갔다, 다시 섰다를
반복했다. 문득, 인간은 참 가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에도,
죽는 순간에도 남의 손에 육신을 맡겨야 하는 운명.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
해 아등바등 살지만 결국에는 민폐를 끼치고 마는 족속들.
어렵사리 운구해 줄 여섯 명이 정해졌다. 그의 육신을 실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했
는지 삐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여자의 곡소리
가 귀를 때렸다.
- 아가. 아가.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 이 엄마가 미안하
다.
그의 부인은 그의 어머니를 부축했고, 조 선생의 지휘에 맞춰 여섯 사람이 그의
관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부인도 흐느끼는지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여자가
다시 손을 잡고 관을 쓸어 내렸다. 입관식 때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던 것처럼 그
렇게. 이제 그는 운구차에 몸을 실었다. 조 선생이 그의 관을 다시 한 번 고정시
키고 차 문을 닫았다. 그의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차 옆에 오도카니 서 있다.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발을 떼지 못 한다. 그 앞으로 조 선생이 유족들
을 버스로 안내하는 게 보였다. 운구차 옆에 남아 있던 남자가 나를 한 번 흘깃
쳐다본다. 혹시라도 알아볼까 싶어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마지막으로 그가 버스
에 오르자 버스 문이 닫힌다. 조 선생이 운구차량에 묵념을 하고 차를 출발시킨
다. 그리고 그 뒤로 그의 가족들이 탄 버스가 출발한다. 그가 또 다시 내게서 떠
나고 있다. 10년 전에도, 10년 후에도 그는 그렇게 나를 혼자 두고 떠났다. 나는
눈으로 그를 좇으며 손에 든 모자와 마스크를 땅에 내려놓는다. 옷매무새를 다듬
고 두 손을 모은다. 오른 손을 왼 손 위에 포개어 놓고 어깨 높이로 들어올린다.
그의 운구차량이 장례식장 정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여 손등
에 이마를 댄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허리를 깊이 숙인다. 오래도록
그렇게 바닥에 앉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해 본 가장 큰 절
이었다.
<동서커피 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