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염색체 이상이지만 위법이어서 낙태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의사로부터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고는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언니가 다운증후군 조카를 낳은 뒤 심신은 물론 경제적 고통까지 받는 것을 보고 A씨는 임신 후 특별히 기형아 검사를 받았습니다. 산전 기형아 검사법인 트리플 마커(triple marker) 검사결과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추가로 양수천자검사를 통해 확진되었습니다. 의사에게 낙태를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승낙해 주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돌아온 말은 위법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나 강간임신 등 예외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합니다. 법은 기형아든, 정상인 아이든 모든 생명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그 자체로 보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법원도 다운증후군은 각종 유전성 질환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해 부모에게 태아를 낙태할 결정권이 없다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부모와 형제 사이에서 사랑과 격려, 때로는 다툼을 겪으면서 전인격체로 성장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현실적으로 장애아는 정상아에 비해 비용과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사랑은 물론 수많은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게다가 본인은 물론 부모형제에게까지 편견이 미쳐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빈곤이 고착화됩니다. 이럴 때 가족의 무기력증, 가정의 무질서, 불화 등은 가족관계를 왜곡합니다. 가족구성원은 심리적 위축감을 물리치기도 어렵습니다. 집안에 드리워진 절대 빈곤으로 성격파탄과 학업중단이 생기고 가난이 대물림되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희귀유전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근력이 점점 약해지는 ‘근육병’이라는 희귀질환으로 한 가족이 50년간 고통 받고 있는 실례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간이나 뇌 등에 구리가 이상 축적되는 ‘윌슨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고 하반신도 마비된 김 모 씨(59)가 같은 병으로 고통 받던 아들(27)을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아들이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으니 어머니에게 죽여 달라고 부탁하자 김씨가 아들 목을 조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인가 강제적 약속으로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 받으며 각자 질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다가도 ‘생명에 대한 사랑’이 가장 첫째가는 미덕이라는 논제 앞에서 홀연 숙연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