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7코스
해는 서서히 지고 안내판은 9시 방향은 80미터, 12시 방향의 위쪽은 250미터에 외부 도로가 있다 쓰여 있다. 위로 가는 나를 내려와 직진방향으로 가잔다. 내 길이 맞지만 일행들이 그리 우기니 유턴해 내려온다. 이 봐 분명히 80미터야!
한사람이 더 거든다.
육안으로 봐도 바닥의 나무 널이 수백 미터가 보이는데 무슨 80이란 말인가!
장사꾼들이 장사를 할 욕심으로 아마 앞의9자를 지웠을 것이라, 나는 생각을 하면서 작은 전방을 둬 개 지난다. 80미터면 어프로치 거리도 안 되는데 벌써 드라이브 세네. 번 거리는 족히 왔다.
야, 그놈은 80미터 길기도 하다 일행들이 웃기만 할뿐...
분명히 80m라 쓰여 있는데,
순진하시기는,
장사꾼들이 앞 글자 하나를 지운거야,
모두 웃기만 할뿐이다.
어제 우리는 5 키로 나 더 온, 덕에 오늘 갈 길은 짧다. 법환 포구의 미장원 2층 집 아주머니는 46년생인데도, 우리나이로 보이고 돈도 싫고 밥은 못해준단다. 외부 식당은 아침에 수색정찰을 다녀온 친구가 문 연 곳이 없단다.
물을 데워서 커피와 더운 물을 마시자,
마고가 미니마트에서 컵라면과 해반 김치 계란을 사와 모처럼 컵라면을 즐기고,
국물에 밥을 말라 마시고,
삶은 계란은 봉지에 넣어 배낭에 매달고 나선다.
이번 7코스 길은 바다가의 산책이다 . 남대평양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방향을 따라서 강정마을을 지나 월평포구를 거쳐 월평에 가면 점심 때 일 것이다.
길 건너 지척거리에 최 영 장군과 몽고잔존 세력과의 전쟁터 이야기가 나오고 그들이 은거한 작은 섬 절벽 요새가 범 섬이다 . 그 곳까지 뗏목 부교를 만들어 공격하여 승리한 애기가 안내판에 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몽돌해변을 걷고 나오고 돌고 하기를, 수차례 한다. 간만의 조류는 이제 물이 빠지고, 먼 곳 갯바위에 독야 청청하는 소나무가 기이하다. 아마 최 영 장군 닮은 나무이련가!
이곳은 낚시의 포인트가 있는지 유독 차량들이 여러 대 서 있고, 낚싯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만의 즐거움이 있을 터이고 나와 다른 취미를 내가 부러워하거나 “왜 살생을 재미로 하느냐“ 말해 봐도 내 말은 허공에 퍼지는 넋두리일 뿐 아니겠나.
섬에도 실개천은 많다 그리고 물도 많은 곳은 많이 여러 곳에서 내려온다. 개천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은 바위가 잘 발달돼서 연못도 있고, 절벽도 있고 내 건너서는 바위산에 수목이 우거진 경치가 좋은 곳도 있게 마련이다 .이곳에 부교를 만들어 난간과 널판을 걸친 멋진 훌렁 다리가 있다.
그곳을 지나서 올라가니 7코스의 안내소에 정자가 있고 무인우체국이 있다. 이곳에서 엽서를 적어 보내고 싶은 사람에 넣으라는 낭만적인 글귀가 쓰여 있고, 필기구도 있었으나 엽서 함 에는 빈 통이다. 그냥 바람과 파도소리와 벗하며 땀을 식이고 간식도 먹다 다음 사람들이 오면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다.
숲길은 좌우 수목의 수종이 판이하다. 좌측은 아열대식물인 야자수고 우측은 송림이다. 좌우가 잘 공생하는 숲길을 나오니 예쁜 여경들이 정자에서 환담중이다.
웬 여경인가 보니 이곳부터가 강정마을이고 큰 주차장에 전투경찰의 버스와 경계를 서는 초병들이 보인다. 식물도 좌우가 잘 조화롭게 살 것만은 인간은 늘 충돌이고 싸움이고 지랄이 아닌가.
올레 길은 이곳에서 우회를 해야 한다. 이중으로 쳐진 철조망 넘어 높은 6미터짜리 가설 펜스가 쳐져 있고, 붉은색 구호가 널려있고. 박에는 투쟁구호가 촘촘히 걸려있는 현수막 길을 따라 간다.
약 오리는 왔나 이번에는 반대편의 투쟁본부가 나오고 예쁜 여자들이 앉아서 점심 준비를 하다 인사말을 건넨다. 답례를 하고 나의 길을 가다 시간을 보니 스님께 연락을 한다. 기도중이신지 받지 않으신다. 메시지를 30분 후면 월평포구를 지날 듯하다, 보내고 간다.
월평포구는 집들이 많이 있을 터이려니 기대를 하고 갔으나, 이곳은 작은 보트정도가 정박하는 꼬마 포구로 아무것도 없다.
종점의 큰 도로에서 있는 마트에서 물을 얻어 마시고 통화하여 스님을 기다린다.
솔밭에는 공동화장실이 잘 돼 있고, 들어가면 음악이 나오는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 있는 화장실이 있다. 수족관의 가오리가 배 가죽을 보이며 얼굴 입과 잇 발이 기이하여 촬영을 하는데 스님이 오셨다. 이곳의 먹을 만한 음식은 비빔 회국수와, 자리 돔 물 회, 밥뿐이다. 점심 후 스님의차로 법화사로 간다. 제주불교신분의 사찰순례기사에서 본 절인데 정말로 제주의 최고의 사찰답게 넓은 가람과 대형연못과 큰 법당과 요사체가 있었다. 예사롭지 않는 고찰인 모양이다.
오던 길에 본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인 약천사와는 대조적인 조용한 사찰이다. 건축 장이인 나의 눈에 걸리는 것은 거의 통계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차창으로 바라본 약천사의 거대한 건물이 좌측보다 우측이 그리고, 후면이 “수평이 맞지 않아 보이니 큰일 아닌가. 고개를 들고 다시 보아도 그렇다. 아직은 괜찮을 런지 몰라도 큰일이다. 아마 법당의 마루에 공을 놓으면 우측후면으로 굴러 갈 것이다. 그것은 건축용어로 지반이 건물하중을 못 받아 일어나는 침하현상중의 하나다. 나의 눈이 잘못 봤음을 기대하는 것이 좋겠다.
나무관세음보살.
대웅전에 땡 초 신자인, 내가 참배를 하고 가부좌를 틀고 잠시 앉아서, 무념무상에 빠져본다. 그리고 대숲에 묻힌 주지 실에서 차를 한잔한다. 요새근황을 듣고 우리의 이십 여 년 전의 처음 만났던 공주 비암사 얘기부터 주고받는다.
천주를 믿는 일행이 두 명이 있는데도 그들은 마음이 여유 있는지, 빈틈이 있는지 스님 뵙는 정성이 크다 . 우리는 너무 한곳에 집착하지 말아야한다 남의 의견이나 주장도 그의 입장에서 들어봐야 하고, 반대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틀을 깨고 나올 수도 있다. 종교도 이제는 틀을 깨야 한다. 불교가 가장 적극적이고 천주교는 개방적이다.
주의나 니즘으로 흐르다, 의견충돌로 싸움이나 전쟁은 없어야 할 뗀데! 안 그렇고 계속 자기 주장만하다, 열을 받아 “일이 터지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누가 좋아 질까 주변국이 아닌가!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요 손실 아닌가. 지금은 국가 변성기인데 훌륭한 정치 사회 종교 지도자가 많이 나와 우리 민족을 잘 영도 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잘 살길 바랄뿐이다.
인근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신 스님의 덕에 우리는 버스로 다시 쇠소각에서, 5코스를 향해 걷는다. 이곳의 정당한 지점인 위미포구 근처에 민박집을 정하고 일찍 쉬기로 한다.
가격은 어제와 같은 삼만 원에 아침은 이곳에서 제공해 주신다면서 오천 원을 선불하고, 샤워 후 우리는 어촌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동네 고샅을 더듬으면서 돌아다닌다.
동네에 저녁을 먹을 곳은 세군데, 자리 돔 물 회와, 한식과자장면을 파는 집, 막걸리와 파전 보말국수를 파는 간이식당이다.
현지에서 현지 식을 주장하는 일행과,
밖에 앉아서 안주를 물어보니 오늘 잡은 문어가 있단다. 그놈을 삶아서 초장에 찍으면서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갯바람은 시원하고 갓 잡은 문어는 맛이 별미다.
“어데서 이런 호강을 하나“ 저녁은 보말, 즉 소라나 조개류를 보말이라 이곳에서 부른다. 소라와 조개를 넣은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끊인 음식으로 귀하고도 맛이 좋아서 제주애선 꼭 맛을 보고 가는 음식이다.
물때는 들어온다. 아이들이 모래에서 놀다 뒤 걸 음치는 속도가 빠르다. 벌써 많이 들어 왔다 파도 소리는 일정간격으로 들리고 나는 그런 자연의 소리에는 무감각하여 아무 탈 없이 자장가 삼아 잠이 든다.
20120608
첫댓글 잘 읽고 가네 건강하시게 또 봄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