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건강원이 있다는 곳을 찾아 오르다 보니 내가 잘 다니던 골짜기다. 아내와 숲속 여울물에 발 담그고 쉬었던 곳이다. 그곳에 한글날만 되면 감을 따러 갔다. 좀 일찍 와 덜 익었어도 휴일이어서 그날을 택했다. 깊은 산 중턱쯤으로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곳에 고종 감나무 여러 그루가 있다. 길에서도 가파른 돌무더기 산 중턱을 힘들게 올라야 한다. 드문드문 서 있는 누군가 접을 붙인 것들이다.
나무에 올라 대나무 집게로 따서 아래로 던지면 아내가 잘 받았다. 작은 감으로 씨가 적다. 홍시가 되면 달콤한 게 먹기 좋다. 가득한 배낭을 지고 좌우 손에 한 자루씩 들고서 울퉁불퉁 서들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짧은 가을 해가 뉘엿뉘엿 긴 그늘을 지우고 넘어간다. 개울 바위에 앉아 쉬면서 익은 감을 넘기면 사르르 감치게 미끄러져 들어간다.
돌담으로 쳐진 도랑 가도 논밭이었는가 펀펀한 게 여러 뜨락으로 되었다. 농사짓던 사람이 살던 집터였는가 보다. 하기야 바로 아래에 마을이 있고 저 위 정상 가까이에도 평지가 있어 농사를 짓는다. 물이 좋으니 논밭이 되었다. 전쟁 때 떠나므로 숲이 되어 감나무와 매실이 홀로 열리고 떨어진다.
그곳에서 가파르게 오르면 마을 바로 아래 펀펀한 곳에 이른다. 여러 채 집을 짓고 아픈 사람들이 찾아와 몸을 추스르는 곳이다. 김용태 시인과 점심을 했다. 잡곡밥에 산채 나물 반찬이 가득하다. 날 것을 숨죽여 내었다. 오돌토돌한 게 있었다. 여린 산초를 향긋이 절여서 맛났다. 산이 높아 정상 부근이어도 산머리만 보이고 막혀 멀리는 볼 수 없다. 방학이고 여가 때마다 올라와 쉰단다. 별천지다 어디 이런 곳이 있나.
양산 배내 숲이 치렁치렁하고 맑은 공기와 물, 시원한 하늘이 좋다. 기슭엔 온갖 나무가 자라 울창한데 높은 데는 고만고만한 참나무가 많다. 전에는 안 보였는데 언제 지었냐 하니 이태 전에 세웠단다. 만날 때 싱글벙글한 김 시인의 여유만만한 모습이 건강해 보였는데 어디 아프냐니까 간장이 나쁘단다.
늘 피로하고 쳐지고 기력이 약해 힘들었다. 부리부리하면서도 그윽한 눈매와 미소, 편안한 낮은 목소리가 조금도 상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가까이하고 싶은 편안한 사람이다. 열심히 연구해 학위까지 따 대학 강단에 서려 했는데 그게 무리였는가. 여기서도 건강 책을 여러 권이나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 타고난 약한 몸인가 보기보다 허약하다.
봄 시조백일장과 가을 시조문학상 시상 날에는 꼭 참석해서 끝날 때까지 도왔다. 요 몇 해 사이 월례회나 봄가을 나들이 때는 보이지 않았다. 불편한 몸인 줄 몰랐다. 늘 밝은 모습이어서 괜찮은 줄로만 여겼다. 회의 때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다수에 동참하면서 잘했다. 참 좋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사람은 앉으면 남 얘길 즐겨 한다. 칭찬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에게서 멋지다 근사하단 말만 듣고 남 탓하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누굴 비난하면 애써 웃고 외면하려 한다.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 바짝 달려들어 해결할 생각이 그에겐 없다. 좀 일찍 떠나니 봐주려 했던가. 김 교장이 가고 없으니 참 허전하고 쓸쓸하다.
모임 때 싱긋이 웃는 그의 얼굴이 뵐 듯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회의 때 혹시 왔을까 두리번거리게 된다. 양장지로 원색을 넣어 잘 만든 건강 책을 찾았으나 어디에 뒀는지 없다. 손때묻어 숨결이 들리는 그의 책이 보고 싶다. 살아온 평생 경험과 들은 얘기를 빼곡히 적어놓은 것이 발이 있었나. 어디로 걸어갔을까.
똑같은 이름이 두 분이다. 헛갈려 누구시더라 했는데 다 돌아가시고 이젠 세상에 없다. 그러고 보니 시조 문인 중에 떠나신 분이 꽤 여러분이다. 지난날 해마다 영취산 기슭에서 진달래꽃을 따 부침개를 지져 먹던 게 아련하다. 그랬던 화창한 봄날 하루가 너무너무 좋았다. 여류시조 시인도 동참해서 함께 목놓아 자기 시조를 창으로 불렀다. 흥청망청 즐거웠다. 그때가 그리워라.
빛깔이란 빛깔은 다 물살에 비껴 타고
한 꺼풀 추스른 생각 살품에 스밀 때면
능금 알 깨문 이빨에 시려 드는 바람결
은근한 정을 우려내는 김용태 시인의 볍씨 창간호 ‘바람’을 불러본다. 정말 우리 곁을 바람처럼 휘- 떠나서 오늘따라 밟히고 생각난다. 자꾸 자꾸만
첫댓글 추억 아련한 아름다운 글에
흠뻑 빠져봅니다
감사합니다
마치, 저도 산길 따라 걸으며 설 익은 감을 올려다보는 듯한 그림이 그려 집니다.지나간날들은 모두가 아련하고,그립습니다.
주어진 오늘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 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 일 것 같습니다.더위가 한껏 기세를 부리더니, 좀 꺾인 것 같습니다.
해지면, 풀숲에선 풀벌레가 시끄럽게 울어 대고, 귀 따갑게 들리던 매미 울음도 잦아들고...너무 지난날을 그리워하지 마시고, 건강하시고, 즐겁길....바랍니다 쌤!!
박회장님 좀 서늘해졌습니다.
밭을 뒤집어놨습니다.
다음 주 무 배추를 심으려 합니다.
참나물 잘 뜯어먹습니다.
성도님 더웠지요. 이제 좋은 계절이 옵니다.
무덥고 장마가 길어선가 많던 모기가 없습니다.
어젠 대신 난데없는 풀쐐기에 쏘여 병원에 갔습니다.
이 더위에 밭일을 하시다니!!!
시골갔을때 저도 무슨벌레인지 쏘여서 오랫동안 통증때문에 고생했었습니다. 물린자리는 표시도 없는데 통증통증.ㅠ 벌써 김장채소 심으시는군요!
예 거름 넣고 뒤져 놨습니다.
해마다 심어도 크지 않아 그냥 뜯어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