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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구충곤군수)은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2015년 양식단지 조성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능주면 종방 양돈단지에 토산 물고기 양식단지를 조성하기로 하였다.
구충곤 군수가 정부 지원을 받아 능주면 남정리 종방 양돈단지 44,000㎡를 국비 35억원, 지방비 35억 총 70억원을 확보하였고 2017년까지 약 500억을 더 투입하여 토종 민물 양식장을 테마로 하는 신산업 활성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토종 양식장에는 꺽지나 송어 등 전남의 토산 물고기들을 양식하며 양식기반시설과 가공․ 판매시설, 공동시설, 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환경일보)
능주 토종 양식장이 조성되고 있는 곳에서 영벽강 즉 능주 대교만 건너면 능주면 천덕리에 위의 사진과 같은 중국의 학문을 집대성한 주자 묘와 주자의 사당이 지어져 있다. 그리고 불과 1km 정도의 거리에 주자학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다 귀향살이를 했던 조광조 유배지가 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주자는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보다 1000년 후에 태어나 유교의 사상을 재정립하여 신유교를 만들었던 사람으로 오늘날 중국의 철학과 학문의 사상을 만들었던 분이요 한국의 삼강오륜과 윤리도덕의 유교사상은 모두 주자의 사상이다. 고려시대 정몽주를 비롯해 조선시대 조광조가 주자의 성리학을 이어받아 그들의 사상 위에 오늘날 한국의 기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 주자의 사상은 크게 곡해되어 중앙집권정치 곧 왕권정치를 강화하는 사상이 되었고 그것이 중국에서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를 만들었으며 한국도 왕들이 통치하는 정치로 역시 독재국가를 만들어버렸지만 오늘날 다시 주자와 조광조의 성리학이 능주에서 재 부활한다면 중국이나 한국 뿐망 아니라 전세계의 정치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성(性)이 리(理)라는 주자의 성리학(性理學) 사상을 중국과 한국에서 크게 잘못 해석하여 왕은 하늘이요 백성은 땅이며 왕이 나라요 백성은 왕을 위한 충성만 있을 뿐이라는 중앙집권제를 주장하여 독재 국가를 만들어버렸지만 주자의 성리학이 부활하면 왕과 백성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지도자와 백성들도 둘이 아니라 하나요 왕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의 세상이 아니라 왕이 백성들을 섬기는 나라가 되며 이웃나라들과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요 이웃의 종교나 정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공동체 사상을 이루게 되면서 세상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세상이 될 수밖에 없는 사상인데 이러한 성리학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주자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능주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고 주자의 성리학을 펼치려다 죽임을 당한 조광조의 유배지가 있는 능주에서 성리학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하여 주자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에 주자 기념관을 세워 주자의 사상을 보여주면서 재해석되어야 하고 조광조의 기념관을 세워 주자학이라는 성리학의 이념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자(朱子: 1130년∼1200년)의 손자 주잠(朱潛,1194년∼1260) 덕분에 능성이 화려한 능주가 되었다. 그러나 주자와 조광조가 성리학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능주에 묻히게 되면서 주자나 조광조처럼 겉은 화려하나 능주도 빛을 보지 못하면서 초라하게 되었지만 다시 주자와 조광조의 성리학을 부활시키는 날 능주도 새로운 천년(문화)의 꽃을 피울 수가 있다.
오늘날의 능주를 태동시킨 사람은 주자의 손자 주잠이다. 주잠은 송나라가 멸망하자 고려로 망명하여(1224년) 능주에 정착하게 되면서 자기의 딸과 구본유를 결혼시켜 구본유로 하여금 고려 상장군이 될 수 있도록 도왔던 일등공신이었으며 구본유의 가문에서 고려시대 좌시중, 조선시대 영의정이 나오게 되었고 조선 16대왕 선조의 어머니 인헌왕후가 능성(능주) 구씨라는 이유로 능성이 능주라는 목사고을이 되었으니 그 뿌리는 주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주잠(朱潛)은 남송에서 문과 급제 이후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한림원태학사(翰林院太學士)와 비서각직학사(祕書閣直學士)에 올랐으나 국운이 점점 쇠퇴해가던 남송은 원나라 징기스칸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주잠은 1224년(고려 고종 11년) 가솔들과 그의 문하생들인 한림원(翰林院)의 도성하(陶成河), 두행수(杜行秀), 섭공제(葉公濟), 유응규(劉應奎), 조창(趙昶), 주세현(周世顯)과 진조순(陳祖舜)을 비롯한 7학사(七學士)를 거느리고 뱃길을 통하여 고려로 망명했으며 전라도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羅州))에 정착하여 살았다. 그 뒤 원나라 세조가 고려로 피신해온 송나라 신하들을 압송해 가려고 하자 그는 전라도 화순(和順: 옛 綾城) 능주면(綾州面) 고정리(考亭里: 지금의 남정리)에 은둔하였다.
이러한 주잠의 역사를 영상(드라마)으로 만들어 주자의 기념관에서 상영되어야 한다.
능주에는 중국에도 없는 주자묘가 있고 주자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조광조가 사약을 받았던 곳이 되면서 오늘날까지 주자와 조광조의 성리학이 빛을 보지 못한 결과 능주는 쇠퇴기를 걸어야 했지만 오늘날 다시 그들을 살려내 부활시킨다면 능주는 큰 빛을 보게 되어 있고 화려한 전성시대를 회복할 수가 있다.
이를 위하여 주자묘가 있는 곳으로부터 영벽정까지 주자공원을 조성해야 하고 영벽정에서 화순천이 만나는 원지라까지 양쪽으로 수변공원을 조성하여 자전거 도로와 습지 생태공원을 만들어야 하며 서울뚝섬유원지와 같은 수영장과 조각공원들이 들어서야 하고 영벽정을 경주의 보문단지처럼 강변이 새롭게 조성되어야 한다.
주자묘가 있는 곳으로부터 배롱(백일홍) 나무나 대나무 숲으로 가로수 길을 만들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영벽강에 이를 수 있어야 하고 영벽강에는 아치형 빛의 다리를 만들어 민물 양식장 수문까지 이어져야 하며 화려한 조명으로 명품다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다리를 건너면 570억이 투입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토종약식장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이 능주 토산품의 도매시장이요 전국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농산물 출하장을 관광지로 만들어야 하며 민물고기 양식장에 마련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나면 다시 비단 길을 따라 500m를 가면 조광조 유배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조광조의 유배지를 둘러보고 조광조 기념관에서 성리학의 사상들을 만나 성리학이 재 탄생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 일에 모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될 수빆에 없고 조광조의 성리학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다시 300m를 걸어 능주 향교에 이르면 윤리도덕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여행지가 마련되어 있고 거기서 멀지 않은 능주초교로 이동하여 중국 3대 성악가였던 정율성을 만나 그의 노래를 풍금소리에 맞춰 부르다 보면 누구나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으며 정율성 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적인 콩쿠르대회를 볼 수가 있고 시간마다 열리고 있는 라이브 뮤직홀이 있으며 뮤직컬 영화도 볼 수가 있다. 그곳을 나오면 정율성의 탄생지였던 생가를 방문하게 되고 바로 가까이에는 조선시대 능주의 관아였던 죽수부리현에 들려 조선시대 목사들로부터 우리들이 알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이 1596년 9월 21일 날 능주에 왔을 때 관아가 불타 영벽정에 장군을 모시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능주 관아와 능주 향교에 대하여 보고하였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능주초교 뒷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따라 잘 만들어진 테크 길을 걷다보면 꽃과 잘 어울어진 울창한 숲을 만나 산림욕을 하면서 약 30분을 오르면 비봉산 정상에 도착하게 되어 있으며 전망대가 너무 아름다워 감탄하는 순간 화순천과 무등산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고 지석강과 드들강 그리고 도암 운주사가 보이며 도곡의 고인돌 공원과 춘양의 천태산, 한천의 금오산(용암산)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들이 모두 산성이 되어 능주를 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비봉산 전망대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봉황새들이 춤을 추는 비봉축제가 열리고 있는 영상들을 볼 수가 있고 조선시대까지 전쟁터였던 비봉산성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는 힐링의 장소라는 영상도 볼 수 있다. 봉황루 안으로 들어가면 태어나서 처음 보는 비봉산의 봉황새와 희귀한 새들을 볼 수가 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비봉산에서 살았던 토종 새들의 낙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 백 종류의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어 감동과 감격을 가져다 주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다시 비봉산성을 뒤로하고 고인돌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핑매바위'라 이름 붙은 고인돌이다. 폭이 7m, 높이가 4m에 이르며 무게는 자그마치 280톤이나 된다. 이렇게 큰 돌이 고인돌 무덤의 덮개 돌로 쓰였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이한 일이다. 그 바위의 밑을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이 떠받치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 틀림없는 고인돌이다. 당시 10톤의 바위를 옮기는데 100여 명이 동원되었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니 이 바위를 옮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을지 짐작하기도 버겁다.
고인돌은 옛날 왕들의 무덤이다. 능주의 본래 이름은 능성(陵城)인데 묘능이요 왕릉의 릉(陵)을 사용하였던 것을 보면 왕족들과 족장들이 살았던 곳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 940년 고려 태조 때 왕릉을 비단 능으로 바꿔 능성(綾城)이 되면서 지금의 능주는 비단 능을 사용하고 있다. 비단 능으로 바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비봉산성에서 둘러보면 능주천(지석강)과 능주평야가 비단처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그 주위를 둘러보면 5대 산(국사봉, 연주산, 금오산, 남산, 비봉산)이 벽풍처럼 에워싸고 있어 산과 강과 평야가 마치 비단을 펼쳐놓은 듯 보이기 때문에 비단 능(릉)이 잘 어울린다.
주자학의 핵심은 성즉리(性卽理)이다. 마음(心)을 살리는(生) 것이(性) 진리(理)라는 것이다. 性이 곧 理라는 것은 性과 理가 하나라는 것이요 인심이 천심이라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진정한 왕이요 백성과 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왕과 백성이 하나라는 것, 이것이 성리학이며,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면 백성들도 왕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학문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면 왕의 마음이 지극히 기쁠 것이고, 백성들을 왕으로 대접하면 왕은 신처럼 대접을 받지만 백성들을 무시하고 거지로 만들면 왕도 역시 무시를 당하고 결국 거지가 되어 쫓겨난다는 사상이다.
백성과 왕의 벽이 있을 수 없고 빈부귀천의 장벽을 허물어버리는 삼강오륜을 업그레이드 한 사상이 성리학이요 서로 타인을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귀한 분으로 모시면 그 사람도 가장 귀하고 소중한 분으로 대접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사상이다. 그때는 정치도, 종교도, 사상들도, 국경도, 너와 나라는 관계도 다 무너져 하나가 되어버린다는 사상이 성리학의 근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 해석하여 중국이나 한국의 정치판이 되어 왕들이 통치하는 중앙집권제가 만들어지면서 왕들의 독재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성리학의 사상을 다시 부활시켜 새로운 천년의 사상으로 재 탄생시켜야 한다. 이러한 이상 정치를 펼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던 두 사람이 능주에 그 심오한 진리를 숨겨놓고 갔다. 그러므로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곳은 능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자와 조광조 선생은 지금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제 성리학의 뜻을 완성할 수 있도록 주자와 조광조의 기념관을 세우고 이상정치의 영상관을 만들어 관광객들을 유치한다면 10년 안에 세계인들의 성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능주에 가면 이 일을 위해 절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주자묘와 주자 영정을 모신 사당이 수 십억을 들여 조성되어 있고 조광조의 유배지도 잘 정돈되어 있으며 정율성의 생가와 능주초교를 음악인들의 연주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주변을 관광지로 만들지 못하면 수십억을 들여 만든 주자묘와 조광조 유배지도 빛을 볼 수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조금만 생명력을 불어넣어 영벽강을 수변공원으로 만들어 관광의 수요를 늘리면 크게 활성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완성되면 전국의 유치원생들의 견학장소가 되고 중고생들의 수학여행지가 되며 대학생들의 MT장소가 되고 세계인들의 영혼의 성지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인들의 성지가 된다.
능주초교 후문에 정율성 흉상을 세웠는데 능주초교 출신 정율성은 중국인민해방군가를 비롯해 360여곡을 작사 작곡하여 중국 3대 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13억 중국 사람들로부터 영웅으로 추대받고 있다.
능주가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 정율성은 그가 살았던 능주면 관영리 283번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자원이다. 정율성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능주는 그에게 음악적 재능과 삶의 토대를 마련해 준 유년의 고향이다. 옛 집은 지금 빈터로 남아 있지만 능주보통학교(현 능주초등학교)에 가면 정율성 흉상과 노래비가 학교 내에 세워져 있다. 그가 작곡한 '연안송', '중국 인민 해방군가' 등은 지금도 꾸준히 중국인들에게 애창되는 노래로 유명하다. 신(新) 중국창건 100대 영웅으로 선정된 정율성은 한ㆍ중 가교일 뿐만 아니라 능주ㆍ중국 간의 교류사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다.
이외에도 춘양 천태산과 화순 적벽과 더불어 능주는 작은 중국의 중심지요 제 2의 중국이었다. 지금의 영벽강은 화순천과 만나면서 드들강 쪽에 매년 홍수를 가져다 주면서(조선시대) 바다로 통하는 길이 매꾸어져버렸지만 고려시대 말까지 나주의 영산강과 능주의 영벽강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중국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들이 숨겨놓은 보물이 되었던 것이다(적벽, 천태산, 주자묘).
그러므로 주자와 정율성 선생 그리고 조광조 유배지와 능주 향교, 능주초교의 교육정신을 살리면 얼마든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과 지성인들의 영혼을 붙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 사려되며 하늘이 내린 기회를 능주가 가지고 있다고 본다.
능주를 중심으로 주자묘, 영벽정, 비봉산성, 조광조선생 유배지, 능주 향교, 삼충각, 죽수서원, 금전저수지, 용암산,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공원, 운주사, 도곡온천, 화순 적벽, 춘양 천태산, 이양 송석정, 쌍봉사, 남평의 드들강 등, 이 모든 광관지의 중심이요 그 관광객들을 다 흡수할 수 있는 허브의 중심지가 능주이다.
21세기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게 새로운 이상 정치를 보여줄 수 있는 능주로 만들자.
능주 대학, 주자 대학을 세워야 한다.
21세기는 서양처럼 신들이 다스리는 시대도 아니요 동양처럼 왕들이 통치하던 시대도 아니다. 바로 제 3의 정치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주자학의 이상정치요 조광조의 정치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모델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능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주자와 조광조의 기념관을 세우고 그들이 주장한 이상정치를 영화로 만들어 능주를 찾는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감동하고 감격하게 되어 있으며 이제야 사람들이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정치가 여기에 있다며 기뻐하고 돌아가서 다시 능주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을 능주가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에 운명적으로 주자묘와 조광조의 유배지가 있는 것이다.
주자의 주자학과 조광조의 성리학을 보면 삼강오륜을 넘어 왕과 백성이 하나라는 사상이다. 신분의 장벽이 무너지고 나라의 국경들이 사라지며 정치의 정파들이 사라지고 종교의 장벽이 무너지며 사람들의 생각과 이념들이 산산히 부서져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모든 종교들의 진리와 상통하게 이어진다. 이러한 사상이 지금까지 곡해되어 왕들의 독재정치가 대세였지만 이제는 모든 나라들이 이러한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올바른 정치 이념을 가지고 능주가 일어나서 이상정치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 마당이 열리려면 주자대학이라는 능주대학을 세워 인재들을 배출하여 세계를 리더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자대학이라 한 것은 주자의 이상정치를 꽃피우자는 것이요 조광조의 성리학을 완성시키기 위해 중국과 세계의 유학생들을 능주대학에 유치하기 위한 배려이다.
삼강(三綱)은 임금과 신하(君爲臣綱), 어버이와 자식(父爲子綱), 남편과 아내(夫爲婦綱)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오륜(五倫)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며(父子有親), 임금과 신하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君臣有義), 남편과 아내는 분별 있게 각자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長幼有序), 친구 사이에는 신의를 지켜야 한다(朋友有信)”는 내용이다.
삼강오륜을 업그레이드 한 주자의 정치철학을 조선의 이황, 율곡, 조광조 등이 업그레이드시켰다.
부모를 존경하면 자신이 존경을 받고 부모, 형제, 친구들을 무시하면 자기가 그렇게 무시를 당하며 왕이 백성을 존경하면 왕이 존경을 받고 왕이 백성을 무시하면 왕이 욕을 먹는 것이며 부모, 형제, 친구의 인연들은 기적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행복해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무시하고 욕하며 업신여기고 깔보면 이것이 지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을 역설하고 있다.
사람들을 존경하는 사람은 이미 존경받는 사람이며 사람들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고 있는 사람이며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요 사람들을 성인(聖人)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성인이며 사람을 진인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진인이요 사람을 하나님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다.
돼지와 같은 사람은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돼지로 보일 것이고 부처님이 되어버린 사람은 앞에 있는 사람들이 부처님으로 보일 것이며 선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선한 사람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 사람들을 하늘님으로 존경하고 자기도 하늘님으로 대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사람들의 性이 理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하늘(하나님)처럼 되어 다른 사람들을 하늘처럼 섬기며 존경하기 시작하게 되어 있고 서로 존경하고 대접하는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가 되어버리는 제 3의 사람들이 일어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되는 출발점이 성리학에 있으며 이 일을 위해 주자와 조광조의 이상정치를 능주에서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지만 그들의 뿌리가 능주에 있는 것은 능주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외침이라고 본다.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준비한다면 머지 않아 전 세계인들이 앞다투어 능주로 몰려들 것이다. 정신적인 어머니의 고향이 될 것이며 사람들이 서로 존경하는 문화, 서로 대접하는 문화,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능주에서 꽃피면 너나 나나 할 것없이 서로 먼저 능주를 찾겠다고 아우성일 것이다.
성리학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자묘와 조광조 유배지를 찾게 될 것이고 향교와 종교시설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신(神)으로 섬길 줄 아는 교육을 받게 되면 누구나 자기가 이미 신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능주를 찾을 것이며 이곳이 새로운 힐링의 장소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라 확신한다.
민박과 템플스테이들이 늘어나고 광광지들은 모두 활성화되는 것은 기본이요 지금 짓고 있는 토종 물고기 양식장 앞에 식당들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그곳에는 농산물의 직판장이 있어 쌀, 배, 복숭아, 파프리카, 딸기, 포도, 토마토 등 능주에서 재배되는 모든 농산물 유통의 일번지가 되어 세계로 향하는 택배산업이 활발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때는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 능주요 우리의 몸을 힐링할 수 있는 곳이 능주라고 하면서 능주는 세계인들이 성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탁상공론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화순군수와 능주면장이 청사진을 만들어 공론화 시키면 된다. 여론이 일어나면 몇 년 안에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해마다 예산으로 편성되는 영산강 개발 지원사업비로 수백억이 책정되고 있다. 이것을 영산강 상류개발사업에 반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지원을 받아 주자의 기념관부터 짓고 영상을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주자묘가 있는 곳으로부터 메타쉐콰이어 길이나 대나무 숲길과 같은 아름다운 길을 만들어 제대로 된 산책로를 따라 영벽강에 이를 수 있어야 하고 능주 영벽정 강을 수변공원으로 조성하여 테마공원과 허브공원으로 만들어야 하며 영벽정에 가면 대나무 숲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곳을 죽수부리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그 주변을 대나무 숲으로 만들거나 다른 테마 공원으로 조성하여야 하고 영벽정 양쪽의 강변을 경주 보문단지 처럼 관광지 답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영벽정 옆에 식당을 매입해 공원화시켜라).
관광객들이 주자묘 하나 보기 위해 찾고 조광조 유배지를 보기 위해 찾으며 능주 초교에서 정율성의 흉상을 찾아 눈도장이나 찍고 간다면 엄청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요 사시 당한 기분이 들 것이다. 주자와 조광조, 정율성을 통해 그들의 살아있는 이상정치를 볼 수 없다면 다시 찾는 일은 없을 것이며 실망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도 없다고 본다. 이것이 현실이다. 저는 2015년 12월 24일 영벽정을 가보았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왔다. 여행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며 감동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강가 주변은 무너져내리고 영벽정을 보수되었지만 기둥의 밑바닥은 시멘트로 흰 살을 그대로 드러나 흉하기 짝이 없고 기둥의 시멘트를 나무색으로 덮어 옛 기둥을 복원하려는 흔적을 보지 못했으며 그 옆의 식당은 너무 허접하여 그 주위를 산책할 기분이 전혀 나지 않았으니 관광지로서의 완전 포기 그 자체를 보고 왔다.
다음으로 개발해야 할 곳은 조광조 유배지가 있는 바로 뒷산 비봉산을 개발하는 것이다. 해발 200 여미터의 낮은 산이기에 한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이어서 힐링의 장소로 최적지이다.
그 정상에 전망대를 세우고 925m의 비봉산성이 있는데 이것을 복원하여 성 안에는 새들의 낙원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주 특이한 전망대를 세워 산과 산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해야 하며 능주 평야와 지석강으로부터 살아있는 생명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비봉산은 본래가 봉황새가 살았던 새들의 천국이었으며 30여 가지의 새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새들의 공원으로 만들어야 하고 봉황새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 되어야 한다.
비봉산성이 마름모 꼴로 925m의 평지와 같은 곳이 있다 그 안에 새들이 살 수 있는 테마공원을 만들어 모든 새들을 다 볼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면 싶다.
영벽강의 수변공원 조성이 능주의 기적이다.
지금 짓고자 하는 민물 양식장은 영벽강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제 곧 수문을 만들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 것이다. 그곳에 아치형 다리를 만들어 강 건너편에 있는 주자묘와 사당이 있는 그곳까지 생태공원을 따라 연결되어야 수십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주자묘와 사당이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주자묘에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영벽강을 개발하여 조각공원이나 자전거길 등 테마공원들을 만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주자묘만 보려고 누가 간다는 말인가? 주자 기념관을 세워 주자묘가 왜 여기에 세워져 있는지? 주잠이라는 주자의 손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주잠이 능주에 살면서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자는 것이다.
영벽강 수변공원에는 사시사철 물놀이 할 수 있는 시설들과 수영장들이 만들어져야 하며 서울 한강변의 공원처럼 만들고 영벽정과 연결하여 경주의 보문단지처럼 만들면 전라도의 허브가 될 수밖에 없다.
비봉산성과 고인돌공원을 연결하는 역사문화 거리도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너무 빈약하여 찾아가면 볼 거리가 없어 민망하지만 좀더 업그레이드 되면 누구나 가봐야할 곳으로 활성화 될 수 있다.
능주초교, 능주 향교는 화순에서 가장 먼저 생겨 지식정보의 대들보였고 능주 중학교와 능주 고등학교도 생각밖에 화순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학교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능주 대학을 만들어 중국 유학생들을 유치하게 되면 오늘의 중국과 세계 정치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리더들을 얼마든지 육성할 수 있고 주자의 성리학을 재해석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인제들을 능주대학에서 배출할 수가 있다.
능주 대학이 생긴다면 정율성 선생이 중국에서 작사 작곡한 360여 곡을 재조명하여 세계적인 음악콩크르 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 세계의 음악인들과 중국 유학생들을 유치하여 오늘날의 세계적인 인제는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을 감동케하는 정신적인 지도자들로 배출하는 것이다.
주자와 조광조의 사상을 살려내는 학문과 유학을 비롯한 유불선의 종교들이 말하는 이상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인재들을 육성하는 대학이 되면 새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는 초인류 명문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다.
영산강권역 관광콘텐츠의 하이라이트는 능주가 되어야 한다.
옛부터 나주는 능주를 오기 위한 관문이었다. 영산강권에 있는 나주 일원에 대한 개발이 지금은 거의 끝났고 이제는 영산강 상류지역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역사ㆍ문화 자원을 활용한 관광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는 정부는 해마다 수백억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이 돈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마한시대 고분과 고인돌 공원 연구가 활성화 되면 고대부터 삼한시대를 이어 고려시대 말까지 능주는 바다와 연결되어 배가 다닐 수 있는 곳이었고 비봉산성에서 출입하는 배들을 통제하는 곳이었다는 알게 되면 능주가 얼마다 중요한 관광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산강 상류인 드들강부터 개발하기 시작하면 지석강을 통하여 영벽강까지 옛날 뱃길을 복원할 수도 있다. 여기를 살릴 수 있다면 한강의 기적처럼 역벽강의 기적은 확실하다. 영벽강을 살려 능주의 문화와 역사를 되살리고 토종 민물고기 양식장을 중심으로 음식문화거리가 생기면 새로운 관광 수요가 창출될 수밖에 없다.
이 일들을 이루기 위하여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을 끌어들여 추진한다면 영벽강 수변 개발이 허망한 꿈이 아니요 그때는 성리학의 기념관을 세우고 21세기 세계를 리더하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능주 대학이 태동될 수 있는 것이다.
100년 앞을 보고 장기 계획을 세워 이 일들을 추진하여야 한다. 그 밖에도 옛 능주의 관아와 향교를 복원하였는데 이곳도 활성화 되려면 능주의 중심지 죽수길(도로명)을 따라 야산에 수백 헥타(ha)의 대나무 밭은 만들어 죽수고을의 옛 명성을 회복해야 하고 도곡 고인돌 공원 축제와 함께 비봉산성에서는 마한문화축제, 비봉문화축제가 열리는 것을 하루 속히 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