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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용경협을,
겨울동안(11월 15일- 1월15일)은 영업을 하지 않은 관계로 굳게 문잠긴것만 확인하고 돌아나왔다.
오늘은 "명 13릉" ,
윗 사진 전철 노선도에 제일왼쪽 제일 위에 보면 핑크색으로 돼있는 끝에서 두번째에 "13릉 전철역"이 있다.
나는 거기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을 했다. 잘난척했다가 고생 많이 했다. 생각으로는 전철에서 내리면 바로 "명 13릉" 인줄 알았다.
하지만 왠걸?????
내려서 "명 13릉" 까지는 버스를 다시 타고 이동해야 했다.
명13릉 전철역에서 열명도 안되는 사람만 내린다. 그리고 완전 허허벌판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무엇인가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전철역을 빠져나오니 사진처럼 저런 한가한 풍경만.....
지나가는 젊은 친구한테 명 13릉을 어떻게 가나 했더니 지나가는 초로의 영감이 지만 따라오라고 한다...
졸래졸래 따라간다.
가는길에 과수원에는 때까오(표준말로는 거위)들이 낮선 나그네를 꽥꽥 거리며 위협을 한다,.
우리 어렸을때 시골마을에는 부잣집에서 저런 때까오를 키우면서 나름대로의 권위를 자랑하곤했다.
저애들이 방범 역활도 잘해준다,
낮선 손님이 오면 꽥꽥거리면서 달려들기도 하고.....
그런 소리가 나면 집주인 영감이 큰 곰방대를 들고나오면서 "누구이신가???"
라고 거드름을 피우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중국에 있을때 거위고기를 몇번 먹어본적이 있는데 그런대로 맛은 괜찮았다. 식당에 가면 鹅肉 라고 메뉴판에 있는데 기회가 되면 한접시 시켜서 먹어보시기를......
또 하북지방에 가면 馿肉 가 있다...
바로 당나귀 고기다. 이것도 먹어보았는데 맛은 별로....
아마도 요리법이 다른것인가?
중국에서 먹어본것은 그냥 삶아서(수육처럼) 냉장고에 넣었다가 내놓은 찬 음식이고 약간 식초를 쳤는지 약간 신맛이 나는 그런맛이었다.
얼마전 Channel A. "이만갑" 프로를 보는데 북한 김 3부자들이 제일 좋아하는것이 당나귀 고기라고 하네요.
우리 쇠고기 구어먹는것처럼 프라이팬이 굽던데 패널들이 쇠고기보다 더 맛있다고 하네요......
2번째는 쇠고기이고.... 3번째는 곰취라고 합니다.
자기네들만 좋은것 먹지말고 인민들한테도 좀 나누어주시지.....
에라이!!!!! 하는꼴이라니......
권불 십년(权不十年)!!!!!!
화무십일홍(花无十日红)
이세상 떠나갈때는 먼지티클 하나도 못가지고 가는것을...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 만년을 살것처럼....
우주의 나이로 보면 찰나인것을....
30분정도 물어물어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명 13릉으로....
전철을 이용하지 마시고 德胜门 에 가서 "872번" 버스를 타세요. 이버스 직통입니다. 12위엔,
명 13릉 입장료 100 위엔이면,
신도, 장릉, 정릉, 통합권입니다.
아무말도 안했더니 노인권을 주지 않는다.
중국 관광지에서 만 60세 이상되면 여권을 보여주고 노인표를 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아마도 안된다고 하는곳도 있을겁니다만..
밑져야 본전입니다.
명 13릉 안내판을 한번 읽어보시고.....
장릉(长陵) 입구에서 한컷....
神道는 2킬로 정도 길이 조성되어 있다... ... 저 신도를 지나서 장지까지 가는길이라고 보면 된다.
노제 지내는곳도 있고.
중국사람들 스케일이 크기는 크구만....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산책나온 2둘 아줌마만 만났을뿐이다.
내가 간날은 고즈녁해서 홀로 하는 산책길로는 그만이었다.
추녀뒤 파란 하늘에는 하얀 비행운을 남기면서 비행기가 어디로인지 날라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신도에는 1945년 모택동 이 다녀갔다는 기념사진도 보이고...
신도를 지나서 장릉 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걸어서 한번 가볼려고 했더니 상당한 거리라서 포기하고 다시 버스를 타기로 작정....
10 여분정도 버스를 타고 오니 장릉이 보인다.
일단 볼일부터 보기로 하고 화장실에 가니 깨끗하니 중국 화장실같지 않다.
10여년전에는 문이 없는 화장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십 몇여년전 시골 기차역에서 고생한 기억도 생각난다.
점심으로 컵라면으로.....10 위엔이면 한끼 해결.....
컵라면은 한국 라면이나 맛이 거의 비슷하다.
장릉 들어가는 입구.....
잠깐 여기까지 왔으니 중국 역사도 공부해보고.....
1402년, 주디 황제(연호는 영락제(永樂帝))는 조카 주윤웬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따라서 주디는 명나라의 세 번째 황제가 되었으며 수도를 난징에서 자신이 다스리던 도시 베이징으로 옮겼다.
1407년 아내인 서 황후가 죽자, 주디는 점쟁이를 시켜 황실에 걸맞은 무덤을 지을 만한 장소를 알아보도록 했다.
선택된 장소는 3면이 옌산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풍수적으로도 좋고, 군사적으로 방어하기에도 좋았다.
1409년에 건축이 시작되었고, 결국 16명의 명나라 황제 중 13명이 이 자리에 묻히게 되는데 마지막 무덤은 1644년의 것이다.
황릉 터의 넓이는 40㎢이다. 무덤에 따라 규모와 웅장함의 정도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똑같이 기본적인 설계를 따르고 있다.
각각의 능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뛰어난 은혜의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 문은 서거한 황제의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는 '뛰어난 은혜의 전당'으로 통한다.
건물들은 대부분 명조 때 귀하게 여겼던 남목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 뒤에 황제와 황후들이 잠들어 있는 벽에 둘러싸인 능들이 있으며, 능 앞에는 '영혼의 탑'이 있다.
이 작은 건물에는 황제가 생전에 쌓은 공덕을 새겨 놓은 석비가 있다.
단지 주변에는 제사를 맡아 보는 관리들이 거주하는 구역이 있었다.
건축에 사용된 벽돌은 무게가 약 25㎏이나 나갔으며, 장수를 뜻하는 '수'(壽)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무덤의 규모는 부분적으로는 황제 자신이 지었는지 그 후손들이 지었는지 여부에 따라 서로 다양하다.
황릉에 가려면 동물과 관리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석상이 늘어선 기나긴 신성한 길(신도)을 거쳐야 한다.
오늘날 황릉들 중 세 개만 공개되어 있다. 이 중 주디의 무덤이 가장 웅장하며, 정릉(定陵)은 그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중국 역대 왕조 및 연대순
BC(Before Christ,기원전), AD(Anno Domini, 서기, 라틴어).
주디 황제상,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넷째 아들이다. 명 3대 황제다. 많은 업적을 남긴 황제다.
보물선.
보물선의 모형도..... 안내판을 잘보시면 됩니다. 가장큰 보물선이라고 돼 있네요.
영락대전.
많이 들어보았으나 실제로는 무엇인지 몰랐었다.
하지만 여기 해설을 보면 이해가 갈것이다.
본문 2만 2877권, 목록 60권.
1403년 영락제는 해진(解縉) 등에 유서의 편찬을 명하여 다음해 완성되자 이를 《문헌대성(文獻大成)》이라 하였으나,
다시 이보다 대규모의 것을 편찬시켜 1407년에 완성되자 《영락대전》으로 고쳤다.
이 사업에 종사한 인원은 2,000명 이상에 이른다. 이 유서는 오늘날의 ABC, 가나다순과 같이 운(韻)에 따라 항목을 배열한 일종의 대백과사전으로, 경서(經書) ·사서(史書) ·시문집(詩文集) ·불교 ·도교(道敎) ·의학 ·천문 ·복서(卜筮) 등 모든 사항에 관련된 도서들을 총망라해서 여기에서 관련사항을 발췌하여 이를 내용별로 분류하여 홍무정운(洪武正韻)》의 문자순에 따라 배열하였다.
명나라시대 황후들이 사용하던 비녀.
그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여 완성 당시 사본(寫本)으로 정본(正本)을 1부 만들고, 1562년 부본(副本)을 1부 만들었는데,
정본은 명조(明朝)가 멸망할 때 소실(燒失)되었다.
부본 1부는 청나라에 전해져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할 때 이용되기도 하였으나,
1860년 영국 ·프랑스군의 베이징[北京] 침공 이후 많이 산실(散失)되었고,
특히 의화단사건(義和團事件) 때 연합군의 약탈로 거의 소실되거나 산실되어 지금은 중국 외에 당시 유출된 것이 영국 ·프랑스 등에 산재되어 있으나 모두 합쳐도 겨우 797권에 불과하다.
《영락대전》 중에는 이미 없어진 일서(佚書:책이름만 남아 있고 그 내용은 전하지 않는 책)가 전하여져 청나라 학자에 의해 이것들이 집록(集錄)되어 귀중한 사료(史料)가 되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버선인지 신발인지....
서황후 초상화
요것이야 말로 버선이구만.
황후가 입던 저고리..
황제가 입던 저고리...
장릉에는 박물관 같은 전시관이 있었다. 그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에 많은 관심도 생기고...
황관. 금으로 만든것일까? 세속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요것도 황제가 쓰던 황관... 때 와 장소에 따라서 모자도 다른가 보다.
나는 그런쪽으로는 지식이 많지 않아서 그냥 넘어갈뿐이다. 역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던것들....
장릉. 여기까지 올려면사진과 같은 몇개의 건축물을 통과 하여야만 된다.
계단이 돼 있어서 올라갈수 있다. 저 건축물 바로뒤에 장릉이 있다.
장릉이다. 주디의 묘.
중국은 묘지관리를 저런식으로 한다. 시안에서 진시황릉은 근처까지도 못하고 멀리 2킬로정도 떨어져서 보아야 되고,,,
백거이 묘. 관우묘.등도 저런식으로 돼 있다. 릉 위에는 큰 나무들이 그냥 자라고 있고....주로 향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사연이 있는 소나무인지 이리 비틀리고 저리 비틀리고,,,세월을 말해준다.
장릉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정릉(定陵) 으로 간다.
버스를 타면 정릉까지 10분이내다. 버스가 장릉에서 출발을 해서 정릉을 거치고 북경 덕생문 으로 돌아간다.
저 뒤로 보이는것이 정릉이다.
龙爪槐(용발톱나무 , 회화나무)...
한국에서는 못본것 같은데... 한국에도 있나요? 이리비틀리고 저리 비틀리고....
우야튼 희안하게 생겼습니다
사모관대의 관대 인가요? 허리에 차는것은 각대라고 하네요.
사모관대는 원래 벼슬아치의 복장이었으나,
지금은 전통혼례에서 착용하는 복장을 뜻해요. 신랑은 '사모'를 머리에 쓰고, '단령'을 입어요. 그리고 허리에 '각대'를 찬 다음, '목화'라는 신발을 신었지요. 이 차림을 사모관대라고 해요.
조선 초기에는 벼슬이 있는 사람만 사모와 품대를 하였지만, 조선 후기에 와서 혼례는 인륜의 대사라 하여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사모관대를 착용하는 것이 허용되었어요.
전통 혼례 시 신부가 입는 화려한 옷은 '활옷'이라고 해요. 이 옷은 원래 궁중에서만 입던 옷인데, 역시 혼례를 할 때에만 특별히 입을 수 있도록 하였답니다.
명나라 시대의 도자기.... 보는 눈은 없어도 괜찮아 보입니다.
명나라의 화폐들...
황제가 전장에 나갈때 쓰는 투구인지??????
아무래도 지식이 짧아서 설명이 안됩니다. 역사학이나 고고학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할듯....
정릉
정릉..... 여기도 묘지 관리가 허술합니다. 무너져 내린 묘지끝에는 세멘트인지 약한바위들인지 릉 둘레로 조성되어 있다..
정릉 지하에 있는 전시관에 있는 관. 엄청 큽니다.
제일 중앙에 있는 관은 높이가 2미터이상 될것같고 길이는 5.6미터는 될것 같습니다. 제일 큰것이 황제의 관이고 그옆 작은 것들은 황후들 관 혹은 각종 부속물을 넣는관이라고 합니다.
한국 유학생들. 20여명 정도가 단체로 왔네요.
명 13릉중에 장릉, 정릉. 그리고 하나더.... 3개릉만 개방이 되었습니다. 다른릉들은 발굴이 안돼서 개방을 안하고 있습니다.
벼개 옆에 붙어 있는것...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우리 어릴적만 해도 벼개들이 양쪽 끝은 사각으로 돼있었다. 사각으로 돼 있는곳 끝부분에 저런 것을 부착했다.
황실이라서 금속으로서(혹은 금재질?)...
우리부모님세대는 벼개 끝 부분에 수를 놓아서 장식을 했다.
나도 어릴때는 그러한 벼개를 사용했다.
이 황관은 매우 화려하다..... 황관 종류가 도대체 몇가지인가요????
명 13릉 다 둘러보고 버스를 타고 북경 서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배도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우루무치 신장 라미엔 집으로 가서 저녁 한끼를........
양고기 한접시하고 밥 한그릇... 그리고 건강주(中国劲酒) 조그만한것 1병...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휴!!!!! 피곤하구나....
그렇다해도 마음은 즐겁다.
즐거운 인생이라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오늘도 헛되지 않고 제대로 된 일당을 했다. 나름대로 뿌듯하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찰나" "찰나" 의 작은 점들의 연속이라고 한다.
"찰나" "찰나" 를 최고로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있게...
이런"찰나" "찰나" 의 점들이 이어져 이어져 즐거운 인생 , 행복한 인생, 보람찬 인생이 될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에게 주는것이다.
인생에 있어 의미 같은건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인생에 의미를 줄수 있다.
내인생에 의미를 줄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여행 Tip
1. 도착방법; 1.인천-북경 수도공항-북경서역 혹은 시내 어디라도...
전철역 적수담(JISHUITAN)역 2번출구-덕생문 터미널-872번버스(직통)
***전철은이용하지마세요. 고생 많이 합니다 ***
2. 입장료; 신도. 장릉, 정를. 100 위엔.
3. 소요시간;4-6시간정도(오고가는 시간 제외)
4. 기후; 서울보다 추움(위도가 훨씬 위)
5, 특징; 산책, 역사기행,
6. 자유여행 추천
***** 다음은 북경 "천안문, 고궁 " 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