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윤공(判尹公) 제향(祭享)의 실주(實主-祭主) 계대(系代)
2001년 발간 판윤공파보 53쪽에
[가선대부 행 한성부 판윤공 묘갈명(嘉善大夫行漢城府判尹公墓碣銘)]
- 후손 태원 지(後孫泰元識) - 후손 태원 지음에 보면
[不幸 曾孫累代單子 之十二世孫英發歿而無嗣 故以泰安公九代孫
司憲府掌令鎭宅之孫宜發 第三子徵人爲後爾]
- 불행히 맏손자가 누대로 외로이 내려오다가
12세손에 이르러 영발이 일찍 사망하여 후사가 없으므로
태안공 9대손 사헌부 장령 진택의 손자인 의발의 셋째 아들을 *징인으로 후계를 하였다.
- 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世系)를 훑어보니
* 12세손 영발(英發) 할아버지까지의 세계(世系)는 아래와 같았다.
23세 군수공 원림→ 24세 찰방공 광증→ 25세 병사공 승형→ 26세 참판공 몽기→
27세 부정공 홍간→ 28세 시훈→ 29세 계자 침(26세 참의공 몽성의 손자 28세 지훈의 차자)→
30세 계자 명석(28세 지훈의 3자 호군공 선의 차자)→ 31세 방의재공 운봉→ 32세 규택→
33세 복진→ 34세 영발로 이어진다.
23세 군수공(휘 元林) 할아버님부터 판윤공 할아버님 제향(祭享)을
종손(宗孫)으로 이어오던 것이
25세 병사공(휘 升亨) 할아버님의 장자 몽룡(夢龍)께서 후사가 없으므로 해서
차자인 26세 참판공(휘몽기諱夢麒) 계대(系代)로 종사(宗祀)가 이어진다.
27세 부정공(휘 弘幹)에 이어 28세 휘 시훈 할아버님 대에 와서 또 후사가 없어
3자인 26세 참의공(휘 夢星-휘 몽기의 제)의 손자 즉 28세 휘 지훈의 차자(次子)인
29세 휘 침(琛)을 계자(系子-양자)로 들인 것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로 계자(系子)를 들인 것이 29세 휘 침(琛)할아버지도
역시 후사가 없어 다시 양자를 들이니
28세 휘 지훈의 3자 호군공(휘 璿)의 차자인 30세 휘 명석(命錫) 할아버님이다.
이후 중조 34세 휘 영발 할아버지에 가서 세 번째로 계자를 들이시니
35세 휘 인영(仁榮) 할아버님이시다.
34세 휘 영발(英發) 할아버지는 생졸년(生卒年)이 계묘(癸卯)년 생(生)이고
정해(丁亥)년에 졸(卒)하니 향년 35세이었다.
할아버님은 4녀(四女)를 두고 아들이 없었다.
이에 판윤공(判尹公) 이하 계대의 제사(祭祀) 실주(實主)로
다시 계자(系子-양자)를 들이게 되었다.
이에 양자를 들이니 *태안공(泰安公- 군수공 휘 元林)의 9대손
32세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휘 진택(鎭宅- 호 德峯) 할아버님의 손자
34세 휘 의발(宜發) 할아버님의 셋째 아들 휘 인영(仁榮- 휘징인) 할아버님을 후계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22세부터 28세 휘 시훈 할아버님 대까지는 참판공(휘 몽기)집안에서
판윤공 할아버님 제향을 주관하다가
29세 침 할아버님 대부터는 참의공(휘 몽성) 할아버님 집안에서
계자(系子- 양자)로 들어와 제향을 주관해 온 셈이다.
참판공 몽기 할아버님 게대에도 후손들이 있는데
장손 집안의 후손이 끊김으로 해서
세 차례에 걸쳐 참의공 휘 몽성 계대에서 계자(系子)로 들여
후사를 잇고 제사를 모신 것이다.
위의 결과는 결국 판윤공 핏줄과는 관계없는 먼 일가쪽에서
계자를 들여 판윤공 제향을 모시게된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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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공(泰安公)- 23세 군수공(郡守公 휘 元林)
* 징인(徵人)- 참의공(휘 몽성)계대 34세 휘 의발의 차자
35세 인영(仁榮)으로 항렬에 따라 이름을 징인에서 인영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