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는 KTX열차가 정차하는 울산(통도사)역이 있습니다.
타지방에서 울주군으로 기행오시는 분들을 위해 이 울산역앞을 출발점으로 하여 도보하이킹으로 언양역사탐방을 할수 있는 언양역사탐방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기행코스)
울산역앞 ~(3.7km)~ 언양향교 ~(1.8km)~ 영화루(언양읍성 남문) ~(1.6km:읍성둘레길)
~ 영화루 ~(200m)~ 언양읍성마을 ~(2.7km)~ 울산역
1.언양향교(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서향교1길55)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1997.10.9 지정)로서 반월산아래에 창건되었으며 그후 지금 위치로 옮겼다가 다시
화장산아래로 옮겼고 마지막으로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 전하고 있는데. 조선 숙종22년(1696) 문묘영역만 조성
하였고 숙종26년(1700)명륜당과 동.서재를 세웠으며 1900년까지는 문묘영역에 동.서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학당뒤에 문묘를 둔 전학후묘형으로 영남지역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지만 대성전과
명륜당의 축이 어긋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성정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으로 기둥위에 익공을 2개 올린 이익공이며 겹처마의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3칸으로 이익공이며 홑처마의 팔작지붕입니다.
1)유림(儒林)회관 : 언양향교입구로 가기전에 있음
2)언양향교 표지석과 그뒤에 있는 기념비들
3)향교입구로 들어서기 전 풍경(홍살문과 기념비들)
4)향교들어가는 입구(입덕문) : 당시 향교내외 개보수공사가 진행중이더군요.
5)대성전(大成殿)
6)전사청(典祀廳)
7)명륜당(明倫堂)
8)유도회(儒道會) : 울산광역시 언양지부
2.언양읍성(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성안2길 55-8)
#정식명칭은 "울주 언양읍성(蔚州 彦陽邑城)"입니다(2011.7.28 고시).
#옛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고을의 읍성
(읍성: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함께 하는 성)으로, 최초 고려 공양왕2년(1390) 흙으로 쌓았던 것을 연산군6년(1500) 현감 이담룡이 확장하여 돌로 다시 쌓았고, 임진왜란때 무너진 것을 광해군4년
(1612) 재정비하였으나 잦은 재해로 피해를 입었고 특히 근현대기 남천의 제방축조를 비롯한 여러 공사에 성에 있는 돌을 가져다 써서 훼손이 더 심해졌습니다.
#성벽의 사면에는 각각 문을 내었으며 북문을 제외한 3개의 성문위에는 누각을 두었는데,
동문(망월루:望月樓), 서문(애일루:愛日樓), 남문(영화루:暎花樓), 북문(계건문:啓乾門)이라 하였습니다.
성벽모서리에는 보초병이 망을 보던 각루를 세웠고 성문주위에는 문을 보호하기 위한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으며
성문과 각루사이에는 총 12개의 치성을 두었는데 치성은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병을 쏘기위해 성벽에서 바깥쪽
으로 돌출시켜 만든 시설이며, 성벽에서 7m정도 바깥쪽으로는 너비 3~5m정도의 방어용 도랑인 해자가 있었고
해자바닥에는 목익(뾰족한 꼬챙이)이 촘촘히 박혀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성안에는 각종 관아가 있었으며
동쪽에 동헌, 서쪽에 객사(구 언양초등학교 자리)가 있었고 동서남북을 관통하는 도로와, 동문과 서문을 가로지
르는 수로 및 4개의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평지에 네모꼴로 만들어진 보기드문 평지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약 1,500m, 높이가 6.3m나 되었으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성을 쌓았던 큰돌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성벽은 조선전기 읍성축조의 일반적인 형식이 반영되었는데, 큰돌을 대충 갈아 쌓은 후 빈 공간에 잔돌을 채워
성벽을 튼튼하게 한 것으로, 전국의 주요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며 고려말
부터 조선초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1)남문 : 영화루(映花樓)
사적 제153호로서 언양읍성의 정문에 해당하며 1800년대초반 진남루에서 영화루로 이름이 바뀐 것을 알수있고,
1900년전후 최종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차례의 남문지 발굴조사결과 영화루는 앞면3칸,옆면2칸의 2층
구조이며 성벽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 있는 개거식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초석은 자연석위에 둥글게 다듬은 높은 주초를 세웠고 기둥머리부분에는 날개모양의 익공 2개를 포개놓은 이익공을 두었으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 영화루앞에는 효과적으로 방어하려고 성문을 둥글게 감싸안은
반원형의 옹성을 두었는데 성벽의 안팎을 세워 쌓은 협축식이고 옹성 안쪽의 너비는 약 15m이고 동쪽으로 난
옹성 개구부의 폭은 8.3m로 다른 읍성보다 넓은 편입니다.
현재 남문안쪽 관아추정지 정비사업부지내 유적발굴조사가 진행중입니다(2022.8.22~2023.2.16)
*영화루 모습
*남문일대 성벽모습들
*남문지 해자(南門址 垓字)
해자는 성바깥쪽으로 일정거리를 띄워 성벽과 나란하게 판 도랑의 일종으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시설이며,
2012년 언양읍성 남문지 발굴조사결과, 해자는 성벽의 바깥면으로부터 9~9.6m정도 떨어진 곳에 조성되어 있고
그 규모는 폭 3.5~5m, 깊이 90cm정도로 확인되었으며 해자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흙이 무너지지 않게 굵은 강돌을 한줄로 쌓았는데, 일반적으로 해자의 내부에는 끝을 뾰족하게 깎은 창모양의 말뚝인 목익을 세워 두는데 언양
읍성 남문지일원의 해자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고 발굴조사후 해자부분은 다시 흙으로 덮고 그위에 해자의 너비
만큼 돌을 깔아 해자의 위치와 규모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남문지내에 있는 옥샘터
그 당시에는 읍성민들의 소중한 식수로 쓰였지만 지금은 식수가 아닌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동문 : 망월루(望月樓)
현재는 터만 남아 있으나 향후에 남문 영화루처럼 복원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동문지입구 도로와 억새풍경
*동문지에 남아있는 성벽모습들
3)북문 : 계건문(啓乾門)
"언양읍지"에 북문은 계건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옹성과 해자를 갗추고 있어서 백성보호와 군사적 방어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볼수 있고 "언양군지도"에는 북문안쪽에 여러채의 가옥이 그려져 있는데 성안에 백성들이 모여 살고있는 모습으로 추정되며, 울주군에서는 성벽의 잔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북문주변의 성곽정비사업을
위해 2009년12월14일부터 2010년4월30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이 조사에서 북문지와 옹성의 하부구조가 명확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언양읍성안내소 전경
언양읍성을 둘러볼때 통상적으로 북문의 관리사무소에서 출발합니다만 필자의 경우는 언양역사탐방길 코스를
연결해야해서 언양읍성둘레길 탐방코스를 남문(영화루)~동문~북문~서문~남문(영화루)으로 하였습니다^*^
*언양읍성안내소 왼편 성벽모습들
*언양읍성안내소 오른편 성벽모습들
4)서문 : 애일루(愛日樓)
서문지도 성문터만 남아있는데 성벽은 대체로 나지막하게 죽 이어져 있었습니다.
*서문지입구 도로모습
*서문지 성벽모습들
3.언양읍성마을(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언양읍성 남문지와 바로 붙어 있는 읍성마을은 일명 벽화마을로 불리며 마을주변에 고대 선사시대흔적부터
현재에 이르는 많은 볼거리, 언양불고기를 바롯한 먹을거리, 언양시장 등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옛정취가 살아있는 골목길이 인근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비롯한 숲길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읍성마을 역사
(고려시대) 고려말 (1390) 언양읍성을 토성으로 축조
(조선시대) 언양현시대 : 연산군6년(1500) 석성으로 개축
(일제강점기) 언양군시대(1895~1914) : 1914년 언양군을 울산군으로 병합
(1960~70년대) 울주군시대(1962~1990) : 언양읍성을 사적153호로 지정(1966)
(현재) 울산군시대(1991~1994)
통합울산시 울주구시대(1995~1997)
울산광역시 울주군시대(1997~)
1)언양읍성마을 주변안내지도
2)언양읍성마을의 아기자기한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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