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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가 볼만한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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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로 가기
울주로 가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경상남도의 북동쪽 끝에 자리잡고있고 가지산을 비롯한 1,000m이상의 산들이 서쪽에 위치해있어 경주와 부산을 연결하는 도로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언양에서 들어갈 수 있고, 국도로는 고속도로와 나란히 지나가는 35번 국도나 형산강지구대를 지나가는 7번 국도를 통해 경주나 양산에서 들어가게 된다.
강원도 양구에서 출발하여 포항에서 동해안을 끼고 부산으로 향하는 31번 국도를 이용해서 해안을 따라 접근할 수도 있다. 울산에서 출발해서 전라남도 신안의 지도까지 가는 동서횡단의 24번 국도를 이용하면 가지산도립공원을 통해 밀양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
<경부고속도로>
| 하지만 가장 권하고 싶은 방법은 포항에서 출발하여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동해남부선 열차를 통해 울주군에 있는 서생ㆍ남창ㆍ덕하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기차를 타고 포항방향에서 들어오면 경주와 울산을 지나게 되고, 부산에서 출발하면 해운대와 기장 등 동해안을 따라 들어오게 되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32번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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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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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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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시외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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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간절곶
지난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할 때 지난 것의 여운이 남아있으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지난 것을 털어 버리고 새출발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전국각지의 해돋이 명소로 몰려든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비로서 지난 것을 지워버리고 새 출발하는 마음을 다짐하면서, 힘들게 찾아와 추위에 고생한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저마다 좋은 장소를 찾아가지만 역시 가장 의미 있는 곳은 제일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간절곶>
<간절곶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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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같아서는 국토의 가장 동쪽인 독도가 좋겠지만, 독도나 울릉도에 해돋이를 보러 일부러 찾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은 어디일까? 이론적으로는 가장 동쪽에 있는 곳에 해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인데, 남한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곳은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지적한 포항시의 대보에 있는 호미곶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주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확히 가장 동쪽은 호미곶에서 약7㎞정도 남쪽에 있는 구룡포읍 석병리앞 해안이다. 지금은 양어장으로 사용되는 석병리앞 해안이 남한에서 가장 동쪽의 지점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뜨는 것인가?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겨울에는 해가 약간 동남쪽에서 떠올라오므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은 더 남쪽에 위치한 '경상남도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간절곶'이다. 이곳은 가장 동쪽의 독도보다 5분 정도 늦게 해가 떠오르지만, 호미곶보다 1분 46초가 빠르고, 해운대보다 19초가 빨라, 육지에서 가장 빠른 곳이다.
‘간절곶(艮絶串)’의 간절(艮絶)은 ‘육지에서 어긋나 길게 나와서 바다에 접한 곳’이라는 어원적 뜻과, 먼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동북쪽이나 서남쪽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높은 곳에 있는 감을 따는 도구)처럼 생겼다고 해서 ‘간절끝’이라고 불렀던 것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이곳에는 1920년에 세워진 간절곶등대와 각종 기념물들이 약간은 무질서하게(?) 자리잡고 있다. 매년 12월 31일부터 새해 1월1일까지 이곳에서는 해맞이 축제가 열린다. |
<간절곶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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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곶의 일출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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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귀한 울주군
섬이 많은 전라남도 신안군은 827개의 섬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 74개가 유인도이다. 울주군은 해안선의 길이도 짧고 동해안에 위치하여 섬의 수가 거의 없어 무인도만 3개가 있다. 신안군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숫자지만, 양보다는 주민들이 느끼는 감정이 더욱 중요하다. 울주의 섬은 모두 무인도지만 신안의 무인도에 비해 주민들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으니 외롭지 않을 것이다.
- 아름다운 섬 명선도
<진하해수욕장과 명선도>
<명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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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 서생면 진하리에 있는 진하해수욕장은 전국에서 수질이 가장 좋은 해수욕장으로 이름나있다. 사실상 울주군의 유일한 해수욕장이기도 한 이곳은 1974년 개장한 이래 폭40m에 길이1㎞의 백사장과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해수욕장 주변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가 있는 아담한 해수욕장이었다.
서생포 왜성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아담한 크기에 포근한 느낌이 드는 해수욕장이다. 특히 이곳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해수욕장 앞에 동해안에서는 귀한 명선도(名仙島)가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의 해수욕장을 방문할 때마다 확트인 바다가 장쾌한 멋은 주지만, 계속 머무르면 왠지 거칠고 단조로운 느낌을 갖게된다. 그러나 진하해수욕장은 명선도가 한가운데 위치하여 이런 단조로운 느낌이 적고 바닷물도 잔잔하다. 신선의 이름이 붙어있어 신비감을 줄 것 같지만 실제로 신선과는 큰 관계가 없는 이름을 가졌다.
본래는 ‘명선도(鳴蟬島)’ 즉 ‘매미가 우는 섬’이란 뜻으로 ‘매미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다고 하여 ‘맨섬’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명선도로 불려졌는데 그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다. |
명선도가 단순히 바라보기에 좋은 섬이었다면 가치가 반감했겠지만 이 섬은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너가 볼 수 있는 섬이다. 매일 물이 갈라져 땅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기록에는 10년정도의 주기를 가지고 길이 생긴다고 한다.
주민들에 의하면 작년에는 물이 완전히 빠져 섬까지 쉽게 걸어 드러났다고 한다. 평소에도 약간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물을 가로질러 건너가 볼 수가 있다고 한다. 이 섬은 나중에 결국은 육지로 연결되는 지리학에서 말하는 육계도(陸繫島)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조류에 의해서 운반된 모래가 섬의 뒤쪽에 쌓여 육지와 연결되는 육계도는 주로 동해안에서 잘 발달하지만 우리나라 전 해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지금은 밤에 조명을 켜서 아름다움을 더한다고 하는데, 낮에 본 명선도는 조명을 위해 세워놓은 등들이 약간은 눈에 거슬린다.
필자는 밤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인위적인 조명을 켜놓는 것은 섬이라는 고립감과 신비감을 반감할것같은 생각이 든다. 맑은 물에 넓은 해수욕장에 아름다운 섬까지 있는 이곳은 온산공단의 흐릿한 분위기만을 경험한 여행자에게는 신선함이 다가오는 곳이다. |
<진하해수욕장>
<명선도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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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해 속의 자존심 목도
커다란 정유공장에 가려 언뜻 지나가면 섬이 있는지 모르는 섬이 목도이다. 주변의 많은 공장들 사이에서 초록빛을 가지고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을 바라보면 아름답다기 보다는 애처로운 느낌이 든다. 육지에서 280m 떨어져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공장을 만들면서 방파제를 쌓아놓아 더욱 가까워보였다. 원래 이 섬은 동남해안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있던 유인도였지만, 현재는 무인도로 되어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다기보다는, 살 수 없는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변을 온통 큰 공장들이 둘러싸고 있어 찾기도 쉽지 않다. |
<목도>
| 이 섬은 물고기의 눈처럼 생겨 ‘목도(目島)’, 과거 이 섬에 살던 주민들이 화살대를 심어놓아 ‘죽도(竹島)’, 남해안의 동백을 옮겨 심어 놓아 ‘동백섬’혹은 동백나무중 3월에서 4월에 꽃을 피우는 춘백(春栢)이 많아 ‘춘도(椿島)’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동백나무 외에도 후박나무ㆍ사철나무ㆍ벚나무ㆍ팽나무ㆍ담쟁이덩굴 등 4,500평에 푸른 상록수림이 빽빽이 자라고 있는 섬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가 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지만,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1992년부터 출입이 통제되었다. 각종 중금속을 제련하는 온산공단의 한쪽 끝에 자리잡아 다행이지만, 2010년에는 통제가 해제되어 일반인들이 다시 들어갈 때까지 계속 푸름이 유지될지 걱정이다.
울산시의 배후지역
<두서면에 있는 훼미리 마트 물류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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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의 원 소속은 울산광역시이다. 거대도시의 배후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울주군에는 이에 따른 여러 가지 흔적이 남아있다. | - 울산시의 식수와 공업용수의 공급원
<사연댐>
<대곡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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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을 흘러가는 대표적인 하천은 태화강과 회야강이다. 이 강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 울산시와 울주군에서 필요로 하는 용수를 모두다 공급하기에 상당히 벅차다. 특히 공업단지가 들어선 울산에서는 공업용수의 확보는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 울주군에는 울산시에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댐을 건설해 놓았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하류에 건설된 사연호는 1965년에 만들어진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인공호로서 공업용수공급을 위해 건설되었다.
유역면적 124.5㎢, 총저수량 2,500만㎥, 유효저수량 2,000만㎥로 하루에 생산되는 수량은 약10만 톤이다. 울주의 인공호 중에서 가장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어 일부는 상수원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 댐의 준공으로 울주군을 대표하는 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게 되었고, 일부에서는 암각화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담수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사연댐의 상류에는 식수전용댐으로 대곡댐이 건설되어 올해부터 물을 채우기 시작할 예정이다. 총저수량 2,850만 톤으로 1995년에 시작하여 약 9년 만에 완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으로 물을 아직 채우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댐에 물이가득채워지면 낙동강 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한다.
<대곡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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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댐 건설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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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대암호는 유역면적 77㎢, 총저수량 700만㎥, 유효저수량 500백만㎥로 태화강의 지류인 둔기천의 하류에 건설되었다. 용수공급능력은 하루 5만톤정도로 물이 부족하면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다. 1969년 완공당시 신라의 고찰 축선사가 댐아래 있었는데 많은 유물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냥 수장되었다고 한다.
인근에 문수산이 있어 풍광이 아름다우며, 특히 호수주변에 롯데 회장 신격호의 별장이 있으며,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회장 별장 옆 잔디밭에서 인근 유치원의 어린이 행사가 있었는데, 넓은 잔디와 호수의 물이 티 없이 맑게 뛰어 노는 어린이들과 잘 어울렸다. |
<대암댐>
| 공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대암호는 유역면적 77㎢, 총저수량 700만㎥, 유효저수량 500백만㎥로 태화강의 지류인 둔기천의 하류에 건설되었다. 용수공급능력은 하루 5만톤정도로 물이 부족하면 낙동강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다. 1969년 완공당시 신라의 고찰 축선사가 댐아래 있었는데 많은 유물을 수습하지 못하고 그냥 수장되었다고 한다.
인근에 문수산이 있어 풍광이 아름다우며, 특히 호수주변에 롯데 회장 신격호의 별장이 있으며, 그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회장 별장 옆 잔디밭에서 인근 유치원의 어린이 행사가 있었는데, 넓은 잔디와 호수의 물이 티 없이 맑게 뛰어 노는 어린이들과 잘 어울렸다.
<대암호>
<대암호 주변의 롯데회장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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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회장의 별장>
<별장내에서 유치원 행사>
| 경남양산에서 발원한 회야강은 울주군의 남쪽을 흘러간다. 이곳에 울산시민의 상수원인 회야호가 만들어져있다. 유역면적 127㎢, 총저수량 1,710만㎥, 유효저수량 1,330만㎥의 규모로 하루에 낙동강의 유입수를 합쳐 27만 톤이 생산된다. 최근 수질이 악화되어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 울산의 신도시 구영지구
서울은 도시의 범위가 약 30년 간 변하지 않고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각종 기능 때문에 계속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는데, 서울에 주거지를 조성할 만한 택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주변에 많은 주거지 즉 신도시나 위성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울산역시 급격하게 공업화된 도시로 많은 인구가 유입됨으로써 주택부족문제를 겪고 있다. |
<구영지구>
|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주변에 수도권의 신도시와 같은 대규모의 택지지구의 조성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하는 곳이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로 많은 아파트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토지공사에서는 이곳에 2007년까지 대규모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5,400가구에 약 1만6천명이 사는 신도시를 22만평의 땅에 건설할 예정이다. 이곳은 언양-울산간 고속도로가 바로 옆에 지나가며, 경부고속도로가 근접하며, 2008년에 완공예정인 울산-부산 간 고속도로의 출발지점에 가깝다. 또한 신화리에 세워지는 고속전철역도 자동차로 2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므로 주거지로서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구영지구 뿐만 이니라 울산의 발전여부에 따라 울주군에는 또 다른 크고 작은 신도시가 들어설 것으로 생각된다.
온산공단
온산(溫山)은 ‘따뜻한 산’이라는 뜻으로 따뜻한 기후와 비교적 넓은 평야, 수심 깊은 바다가 있는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원래는 온양면(溫陽面)에 속하였다가, 떨어져 나와 온산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주변에서 온천이 솟아 나온 곳이어서 온(溫)이라는 지명을 붙인 것 같다.
- 온산국가산업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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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금속공업은 구리ㆍ알루미늄ㆍ아연ㆍ납(鉛)을 제련해내는 공업으로 많은 전기가 필요한 공업이다. 보통 학교에서는 이런 공업을 동력지향성공업이라고 한다.
즉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기가 풍부한 곳에 공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온산국가산업단지의 중심은 비철금속공업이다. 이곳에는 인근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어 풍부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고, 외국에서 원료를 수입하는데 유리한 좋은 항구가 있다.
| 또한 동해남부선에서 연결되는 온산선 철도가 놓여있어 육지로의 운송도 편리하여 공업단지로서는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온산국가산업단지에는 정유 및 석유화학 공업도 입지해있다.
이것은 인근에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가 있어 상호연계가 가능하며, 삼면이 산을 둘러싸여 공해로부터 격리가 가능해 비교적 공해가 많이 발생하는 공업의 입지로는 적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1975년부터 공장이 들어서 맨 먼저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시작으로 효성알루미늄, 온산 동제련소, 쌍용석유, 동해펄프, 풍산금속 등의 공장들이 들어왔다.
2001년 통계를 보면 가동중인 공장은 148개사(현재는 178개사)에 약 23,600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으며, 총생산은 약 12조4000억원, 수출은 43억1300만 달러였다고 한다.
<온산국가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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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국가산업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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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선과 동해남부선이 갈라지는 남창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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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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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산국가산업단지로 인한 주민들의 변화
<덕신지구>
<덕신지구에 있는 온읍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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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산업단지의 건설로 이주대상이 된 주민은 약 2,600가구에 11만 명이었다. 그러나 건설초기에 전체를 이주시키려던 계획은 비용문제로 문제가 생겨, 약370가구에 1천700명정도만 먼저 이주하였다.
따라서 주민들의 완전한 이주가 이루어지기 전에 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공장과 주민이 같이 생활하면서 공해피해가 발생하게 되었다. 일명 ‘온산병’이라고 불렸던 공해병은 주민들에게 집단적으로 신경통ㆍ피부병ㆍ구토ㆍ가려움증의 증상이 나타났으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카드뮴 축적의 원인으로 발병한 이타이이타이 병의 초기증상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주민들의 민원이 있자 정부는 이주대책을 발표하고 1987년부터 3단계로 이주가 이루어져, 공단계획 15년후인 1991년에 완전한 이주를 마치게 된다.
온산지역 주민의 집단이주지역으로 온산공단에서 서쪽으로 약2㎞떨어진 덕신지구의 99만평의 부지가 개발되어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된다. 현재 덕신지구를 방문해보면 울주군에서 가장 큰 언양 시가지보다도 규모면에서는 더욱 커 보인다. | 하지만 서울의 위성도시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원래의 지역과 잘 융화되지 못해 사람들만 집단으로 모여있는 마을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의 편견일까?
덕신지역에서 작은 언덕을 넘으면 온산공단이다. 현재 덕신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온산공단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해를 피해 들어온 마을이 공해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최근에 이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국립 울산대학설립지로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울주의 오지 보삼마을
울주군을 돌아보면 산세가 작고 교통이 발달해서 깊은 계곡이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산과 계곡이 깊은 곳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깊은 산골 마을이 삼동면 조일리의 정족산(일명 솔발산)아래 보삼마을이다.
보삼(保三)은 3가지를 보전한다는 의미인데, 조선시대 임진왜란『정유재란』병자호란의 3번의 난을 거치면서도 아무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일리에서 조일천을 따라 정족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자동차가 한 대정도 지날 갈 정도의 도로가 나온다. 대부분 비포장의 도로인데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참을 가도 마을은 나오지 않아 돌아 나올 길이 없을 것 같아 왠지 불안해진다.
이정표에는 정족산 무채치늪도 갈 수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지만 길이 너무 험하다. 한참을 올라가면 급경사의 길을 오르기 전에 왼쪽에 작은 마을이 하나있다.
초가집이 잘 보전된 전통마을이라고 하지만 언뜻 보기에 초가집은 보이지 않은 평범한 산골마을처럼 보인다. 마을 입구에 ‘영화의 고향 씨받이 촬영장소’라는 작은 안내판을 없다면 스쳐지나갔을 마을이다.
1990년까지만 해도 10여채의 초가가 잘 보전되어 60년대 산골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남아있는 2채의 억새지붕의 초가집도 폐허로 남아있다.
이 마을에서는 「씨받이」「감자」「앵두」 등 7편의 영화가 촬영되었고, 1974년에는 MBC에서 전국에 소개를 했고, 1980년에는 KBS에서 「횃불」을 촬영해 전국에 방영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
<보삼마을 전경>
<보삼마을의 옛가옥>
<보삼마을의 우물>
| 옛모습을 간직해서 전국에서 많은 화가가 모여드는 등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이농현상으로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집을 현대식으로 개조하여 이제는 더 이상 전통마을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 보인다. 지금 전국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관광상품화 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일찍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보삼마을은 이런 이점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변해버려 아쉽다. 어렵게 만난 마을 주민에 의하면 마을앞 빈터에서 옛날에는 농사도 많이 지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고 여섯 집만 주민이 살고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찾아 올라간 마을인데 왠지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보삼마을 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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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삼마을 영화촬영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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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 의해 사라져가야하는 마을들
개발과 보전은 놀이터의 시소와 같은 것이다. 두 개가 균형을 맞추어 놓여있는 것은 어렵고, 어느 한쪽에 무게가 더해져 한쪽으로 내려앉는 것이 일반적이다. 울산과 부산에 인접한 울주군은 개발과 보전 중에 지금까지 개발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있었다. 그에 따라 자신들의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하는 마을들이 많았다.
- 온산공단으로 사라진 당월리
온산공업단지의 건설로 마을이 송두리째 사라진 곳이 온산읍 당월리(唐月里)이다. 공업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온산읍의 읍사무소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옛날 마을이 있던 곳에는 온산하수처리장이 들어서 있다. 읍사무소는 신단지인 덕신리로 옮겼으며 주변에는 동해펄프와 석유개발공사 등의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가끔씩 찾아오는 낚시꾼들이 이곳이 고기가 풍부하고 정감 있었던 사람이 살았던 옛 당월리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월리가 있던 온산하수처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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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당월리 앞바다>
| -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로 사라질 비학마을
울주군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서생면 신암리 비학마을은 효암천 넘어 기장군의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신고리원전 1ㆍ2호기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마을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어둠 속에 묻혀있었지만, 바닷가에 드문드문 횟집이 있고 몇 채의 집들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평범한 어촌마을이었다.
지금까지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인근지역으로 알게 모르게 불편함과 불이익을 받아온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마을 자체가 사라지게 되어 주민들은 아쉬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듯했다. 비학(飛鶴)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마을 주민의 집단이주로 학은 아니지만 ‘날아간다(飛)’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옆에 있는 골메마을은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이주해왔는데 또다시 이주해야되는 운명에 처해져있다.
- 고속철도역이 들어설 신화리
고속철도역이 들어서는 곳인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항상 그렇듯이 개발이 결정되면 그사이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하루살이 같은 투기꾼들이 달려드는데, 어떻든 외향적으로는 조용하고 아무런 변화의 느낌도 없었다.
어느 곳에 들어설지 확실한 지점은 모르지만, 작은 하천주변에 평범한 마을과 소규모의 공장들, 마을 옆의 수령 200년의 넘은 느티나무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알고있는지 말없이 서있다. 양산시에 가까이 위치해서 아직 세우지도 않은 역의 명칭을 두고 울산시와 양산시가 대립하는 신화리의 변화를 지켜볼 따름이다. 다만 발전적인 변화라도 이곳에 수백 년 동안 살아온 주민들의 마음속에 상처를 주지 않는 개발이 되길를 바랄 뿐이다.
<신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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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리 노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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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의 출발점
<동해 가스 시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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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 학남리 육상기지에서 타오르는 동해 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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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에서는 석유가격 상승에 대한 보도가 눈길을 끈다. 70년대 석유파동이 있기 전에 1배럴에 1$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이제 60$, 심지어 70$까지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가슴이 철렁한 말들이다. 비교적 다른 것은 풍부한 한반도에 유독 지금 최고의 자원인 석유가 나지 않아 많은 돈을 들여 수입해 들어오고 있다. |
<동해 가스전 위치>
| 그동한 포항의 석유발견 사건과 국내 대륙붕의 개발 등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지만 결국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울산앞바다 『제6-1광구 고래Ⅴ구조 동해-1가스전』에서 우리의 기술로 1983년 천연가스의 매장을 확인했고, 1998년 7월에 경제성 있는 가스전을 발견했다. 그 후 1년의 평가과정을 통해 경제성이 입증되어, 액화천연가스(LNG)를 기준으로 약 500만 톤(우리나라 연간소비량의 2.8%)의 규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울산앞바다 남동쪽 58㎞에 위치한 가스전에서 해저파이프라인(직경 14인치)을 통해 64㎞를 달려와, 온산읍 학남리에 있는 육상기지에서 처리과정을 거쳐 하루 LNG 1000톤(하루 국내 소요량의 5%)과 경질유 110톤을 생산하게 된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15년 간 생산할 예정인데, 이것은 경제적인 이익도 크지만 우리의 기술에 의해 생산해서 처리하여 산유국의 대열에 들어갔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한 포항의 석유발견 사건과 국내 대륙붕의 개발 등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지만 결국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울산앞바다 『제6-1광구 고래Ⅴ구조 동해-1가스전』에서 우리의 기술로 1983년 천연가스의 매장을 확인했고, 1998년 7월에 경제성 있는 가스전을 발견했다. 그 후 1년의 평가과정을 통해 경제성이 입증되어, 액화천연가스(LNG)를 기준으로 약 500만 톤(우리나라 연간소비량의 2.8%)의 규모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울산앞바다 남동쪽 58㎞에 위치한 가스전에서 해저파이프라인(직경 14인치)을 통해 64㎞를 달려와, 온산읍 학남리에 있는 육상기지에서 처리과정을 거쳐 하루 LNG 1000톤(하루 국내 소요량의 5%)과 경질유 110톤을 생산하게 된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15년 간 생산할 예정인데, 이것은 경제적인 이익도 크지만 우리의 기술에 의해 생산해서 처리하여 산유국의 대열에 들어갔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적을 방어하라 - 울주의 성(城)
전국을 다녀보면 우리나라는 성(城)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이 많다. 주로 산성이 많고 행정관청이 있는 큰 도회지는 예외 없이 성을 쌓아놓았다. 그만큼 외세의 침입이 많았다는 뜻이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성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를 알 수도 있다. 왜구들이 자주 침입하던 길목에 위치했던 울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곳곳에 성과 봉수가 세워져있다. 대부분의 산성은 높은 산의 정상부에 있어 이번 답사 때는 들려보지는 못했다.
울주에는 신라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을 생각되는 온양읍 운화리의 대운산성(大雲山城), 경주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만든 약17㎞길이의 관문성, 울산에 살던 주민이 피했던 문수산 정상의 문수산성, 임진왜란때 언양읍민이 피난한 성으로 남자들은 왜군과 싸우다 죽고 이산성에 남은 여자들이 과부가 되었다고 해서 과부성(寡婦城), 울산시와 언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범서읍 구영리 뒤의 범서산성(凡西山城) 등 여러 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 성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성은 언양읍성과 서생포왜성이다.
- 언양읍성
읍성은 군ㆍ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쌓은 성으로, 평지와 산지에 쌓는데 언양읍성은 평지에 쌓은 성이다. 순천의 낙안읍성이나 해미의 해미읍성 만큼 잘 보전이 된 것은 아니지만, 경남지역에서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이 남아있는 성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연산군때 석성(石城)으로 개축한 것으로 둘레 3,064척에 높이가 13척, 성내에는 4개의 우물과 관아, 객사, 향교와 같은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언양초등학교자리가 객사였던 곳으로 알려져있고, 다른 시설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큰돌을 대충 쌓아 놓고 빈 공간에 작은 돌을 채워넣은 조선시대 읍성의 축조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성곽은 북쪽과 동ㆍ서쪽 일부로 ㄷ자 형태이며 남쪽은 남아있지 않다. 성안의 대부분은 논으로 되어있고 동쪽일부는 미나리를 재배하고 있다.
<언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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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높이가 실제보다는 낮은데, 성안에 있는 가옥들이 집수리나 논둑을 쌓을 때 성돌을 이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옛모습대로 남아있었다면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과 같은 관광자원은 물론이고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여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쉬움이 크다. 1996년부터 일부 복원을 하고 있지만 내부에 있는 가옥을 완전히 이주시켜야 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언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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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언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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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받침으로 사용된 성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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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읍성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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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읍성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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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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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초등학교내 오영수 문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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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읍성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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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포왜성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성(城)을 본적이 있다. 돌을 비스듬히 쌓아올린 높은 벽에 옆에는 물이 흐르고 성안에는 일본풍의 건물이 높이 서있어 위압감을 주는 성이었다.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의 벽은 웅장함보다는 청결함이 느껴졌다.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는 일본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건축물이 남아있지만 성은 남해안의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남아있다. 그런 일본의 왜성중의 하나가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성내마을 뒷산에 있다. 당초 국가 사적 제54호로 지정되었으나 일본인이 세운 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1997년에 국가사적에서 해제되어 현재는 문화재 자료로 지정해놓았다.
임진왜란때 이곳에는 수군만호진을 두고 왜군을 방어했으나 지키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해 왜장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일본식 건축방법으로 돌을 사용하여 계단식으로 쌓았다. 산꼭대기에 내성을 쌓고 그 안에 최고지휘관이 있는 천수각(天守閣)이란 누각을 두었다.
아래로 산의 경사를 이용하여 외성을 쌓았는데, 성안에서는 밖이 한눈에 보이지만 아래에서는 나무에 가려 성이 잘 확인되지 않는다. 성은 일본의 방식대로 안쪽으로 약15°정도 기울어지게 쌓았다고 한다.
이 성은 임진왜란때 왜군이 가장 오랫동안 진지를 구축하고있던 왜성으로, 사명대사와 가토기요마사가 휴전을 위한 회담을 4회 열었다고 한다. 31번 도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면 동문이 되는데 왼쪽에 편장군 기념비가 있다.
이 성을 일본으로부터 빼앗을 때 큰공을 세운 명나라 장수 편갈송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워놓은 것이다. 필자가 이성을 방문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의 모습이나, 성위에서 내려다본 진하해수욕장일대의 모습보다도 이곳을 관리하는 작은 초소의 유리창에 붙어있던 왜성의 조감도이다.
펜으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상당히 정밀한 그림인데 가만히 살펴보니 일본에서 그린 것 같았다. 자기 조상들이 세운 서생포왜성을 찾아오는 일본인이 많다고 하는데 그들 중 누군가가 그림을 놓고 간 것으로 생각된다. 먼 곳에 있는 자신들의 문화유산에 세밀한 관심과 애정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에 질투를 넘어 두려움이 느껴졌다. |
<동문>
<편장군 기념비>
<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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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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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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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그린 왜성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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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성에서 본 진하해수욕장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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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의 상징 암각화
암각화(巖刻畵)란 바위나 큰 암벽 혹은 동굴내의 벽면에 여러 가지 형상과 기호들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것으로 바위그림이라고도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만들었지만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왜 바위에 이런 그림들을 그렸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와 생활 속에서 취미활동의 하나로 기록을 하거나 예술적인 활동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암각화가 처음 확인 보도된 것이 바로 이곳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암각화이다.
- 지난 시간의 기록 천전리 암각화
두동읍과 언양읍을 가로질러 태화강에 합류하는 대곡천에는 사연댐과 새롭게 대곡댐이 건설되어있다. 두 댐사이에 위치한 천진리와 대곡리에 암각화가 남아있는데 35번 국도에서 천전리 암각화를 찾아가면 울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계곡이 수려하고 넓다. 크게 S자를 그리는 계곡의 주변에는 넓은 암반이 드러나 있는데, 바위의 곳곳에는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1995년 처음 확인된 이래로 약200개의 대형ㆍ중형의 초식공룡(울트라사우르스, 고성고사우르스)의 발자국이 불규칙하게 남아있다. 이것은 공룡들이 이곳 주변을 평화롭게 배회했다는 것으로, 이렇게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발자국이 섞여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공룡들이 지나가고 선사시대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물 건너 서쪽의 넓은 바위 위에 다양한 그림들을 남겨놓았다. 높이 2.7m, 폭9.5m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큰 바위에는 여러 가지 무늬의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천전리 공룡발자국화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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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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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각석>
<천전리 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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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에는 바위가 학생들을 지도하데 사용하는 칠판처럼 보였다. 이곳에 마름모나 동그라미 같은 기하학적 무늬와 왼쪽에는 사슴ㆍ용ㆍ물고기와 이상한 형상의 사람그림 등을 그려놓았다.
이곳을 방문할 때는 사전에 암각화를 탁본해놓은 그림을 가지고 가면서 그림과 암각화를 맞추어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지나간 후에는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에 나타난다. 그들은 자연의 칠판인 이곳에 귀족의 행렬과 말을 탄 행렬, 배, 사람과 용 등을 그렸다. 또 글씨를 새겨놓았는데 이곳에 새겨놓은 가장 문명인의 흔적이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들이 어느 곳에 가서 자기나 여자친구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약 800자가 넘는 글자에는 신라 법흥왕때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은 것을 기념하여 기록했다는 내용이 써있다니, 결국 ‘○○ 이곳에 왔다가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 여러 화랑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누군가의 설명과 그림이 없으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1970년에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보 제147호이다. 돌아오면서 외진 곳에 방치된 것처럼 보여 훼손의 걱정이 들었다. |
- 물 속에 사라져버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에서 다시 35번 도로로 나와 약 500m내려가면 반구대 암각화를 알리는 표지가 보인다. 경부고속도를 건너 언덕을 넘으면 진입로를 단장하는 공사가 한창인 대곡리 가는 길이 나타난다.
<반구대 암각화 들어가는 길>
<간절곶의 반구대 암각화 상징비> |
길을 걸으면서 암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담긴 안내판을 세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커다란 호수가 나타난다. 바로 사연댐의 물인 사연호이다. 이 물 속에 반구대 암각화가 잠겨있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많은 비가 내린 뒤라 근처로 가는 길도 물에 잠겨 한참을 돌아가야 하고, 암각화는 물론 잠겨서 볼 수가 없었다. 정몽주가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경치에 반해 정자를 짓고 이언적과 정구가 다녀갔다는 이곳은 상당히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숙종38년(1712)에 정몽주와 이언적, 정구의 인연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반계서원(盤溪書院)에서 바라보는 반구대(盤龜臺)와 암각화 방향은 너무나 조용했다. 사연댐의 건설로 암각화는 1년중 약 8~9개월 물 속에 잠겨있고 갈수기에만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있는가는 울주군을 여행하면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간절곶의 상징비에서 동네의 벽에서 고래모습과 사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가로10m 세로 3m의 규모의 암벽에 고래ㆍ거북이ㆍ물고기 등의 수상동물과 사슴ㆍ호랑이ㆍ멧돼지ㆍ곰ㆍ토끼ㆍ여우 등 육상동물이 그려져있다.
당시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주로 사냥했던 동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답사 때는 볼 수 없어 책자의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겨울에 물이 빠지면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돌렸다. |
<반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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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과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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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호와 암각화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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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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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희야님..수고하셔네요..우리아이들 공부하기 딱좋네요 어릴적 소풍같던곳도 보이고 우리아들 유치원도 보이네요...우리아들 유치원 나와다고 자랑함^^..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수고하셨네요...
감사합니다~~
구경함 잘 했습니다...
많이 준비하셨네요... 감사요..
이렇게 보니 갈곳 볼곳도 많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봣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