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4월 29일 토요일 맑음
충희를 깨워 학교로 보내고는 또 잠이 든다.
내가 자니까 안사람도 충정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휴일 날 아침 우리집의 모습은 고요함 그대로다.
모두가 지난 한 주를 힘들게 보낸 탓이리라.
나도 정산에서 일할 때는 힘들어도 이겨내는데 집에만 오면 그대로 늘어진다. 긴장이 풀려서이리라. 손 끝 하나 까딱하기가 싫어진다.
정산에선 아침에는 늦게까지 누워있기도 눈치 보이고, 오후 일을 일찍 끝내고, 들어가 쉬려해도 웬지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서기가 머쓱거려진다.
‘에이 차라리 무슨 일을 하나라도 더 하고 들어가자’ 할 일은 쌓였으니까 시간 보내기에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정산에서의 하루는 꽉차고 알차게 돌아간다.
그러니, 집에 올 때에는 파김치가 되기 마련이다.
그런 나에게 언제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내 집은 행복의 보금자리다.
집에 오면 좋은 일이 마음껏 쉴 수 있다는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안사람에게서 대접받는 기분이다.
올 때마다 극진한 대접을 해서 보내려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오는 날 저녁이면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이나 치맥을 차려놓고 기다려 준다.
술은 좋아하지만 혼술은 별로였던 내 취향도 바뀌어 간다.
지쳐서 피곤한 몸을 끌고 나가 누구와 어울려 한 잔 할 생각도 별로고....
점심때는 호떡을 구워주거나, 떡볶이를 해주더니 오늘은 해물부침개를 해주네.
안사람의 손끝에는 맛의 요정이 숨겨져 있는지 음식마다 맛이 있다.
해물부침개로 배를 채우니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한 잠을 더 때렸다.
이제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여보, 바람 쐬러 나갈까 ? 운전 연습을 할까 ?” 안사람이 망설이다 운전을 택한다, 아직 지난 번 사고의 트라우마가 진하게 남아있다.
“주차 연습부터 하세” 아무래도 도로주행 보다는 덜 떨릴 거다.
“여보, 나 운전 못할 것 같애” 몇 번을 하소연 하더라.
“그럼 애들한테 무얼 가르칠 거야 ?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 딛고 일어서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줘야 애들도 따라 하겠지. 천천히 조금씩 연습해서 자신감을 찾아 가자” 다음부턴 말없이 따라 오더라. 비래초등학교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 연습부터 시작했다.
넓은 공간, 정지된 차들을 상대로 연습을 하니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다.
이제는 주행 연습이다. 가양공원 넘어 폐 고속도로로 갔다.
안사람 안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차가 많이 다니잖아. 이따는 놀러갔다 들어오는 차들이 몰려들테고....”
“이 정도면 차가 없는 셈이야. 다른 차는 생각하지 말고.... 10km로 달린다고 뭐라고 할 사람 없어. 내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져”
운전대를 넘겨 주었다. 안사람이 굳게 결심한 듯 자리를 바꾼다.
“왼쪽 깜빡이 넣고,,,” 깜빡이는 넣었는데 몸이 굳어지나 보다.
“괜찮아. 뒤에 차가오나 백미러로 살피고, 천천히 나가 봐” 천천히 움직인다.
“그래, 잘 했어. 그대로 천천히 나가 봐” 시속 20km로 한 20m쯤 갔을까.
“여보 나 떨려서 못하겠어.” 가슴이 쿵한다. ‘이러다간 운전을 끝까지 못 할텐데....’ “그래, 그럼 무리하지 말자.” 다시 자리를 바꿨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 억지로 시키기엔....’
그럼 드라이브나 하고 들어가자. 세천 나들목까지 가니 차가 거의 없이 한적하다. “여긴 어때 ?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데.... 10km던 20km던 당신 마음대로 가 보면 어때 ?” 안사람이 좌우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자 가 봐. 마음 놓고.” “너무 천천히 간다고 욕하지 않을까 ?”
“조금도 신경쓰지 마” 차가 움직인다. “그래, 잘 하잖아. 천천히 가도 돼”
쌩하고 옆을 지나는 차가 있을 때마다 움찔하기는 하지만, “천천히 천천히” 하니까 계속 달린다. “좋아요. 저기 안아감 들어가는 곳에서 유턴해서 되돌아 가자” “유턴 ?” “지난번에 해 봤잖아. 차가 안 올 때 천천히 돌리면 돼”
성공했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서는 속도가 30km 까지는 올라간다.
‘여길 계속해서 왕복하자. 30km로 갈 길은 여기밖에 없다’
“저기 도로표지 보이지. 세천 나가는 길로 나가서 다시 돌려 올라 오자”
“내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럴 거야. 나도 처음 운전할 때 그랬어”
세천나들목 비탈길을 내려왔다. “이젠 양쪽을 다 잘 보고, 차가 없을 때 좌회전하고 굴다리 끝에서 다시 죄회전으로 올라가는 거야. 양쪽 길을 잘 봐”
“이젠 됐어, 좌회전 해도 돼” 그런데 좌회전을 했는데, 너무 틀어서 교각 왼쪽의 좌측 차선으로 들어 가네. 중앙선 침범이다. 다행히 차는 오지 않는다. “아냐 저쪽 우측 차선으로 가야 돼” 안사람이 많이 당황한다. 목소리를 낮췄다.
우측 차선에서는 달려오던 차들이 들이 닥친다. 지금 당황해선 안 된다.
“괜찮아. 천천히 차가 지날 때를 기다려. 침착해야 돼”
차들을 다 보내고 교각 우측으로 천천히 차를 몰아 제 길로 들어섰다.
교각 끝에서 멈춰 안정을 찾고 다시 죄회전으로 폐 고속도로에 올랐다.
아무 차도 보이지 않는 넓은 길에서는 안정을 찾더라.
30km까지 오른다. “그래 잘 했어. 앞을 잘 보고, 길가 쪽으로 붙지 말고...”
5바퀴 채 돌 때에는 40km까지....
“이젠 그만 해. 나 다리 아파 못 하겠어” “너무 긴장하니까 몸에 힘이 들어가서 그래. 그래. 그만 하자. 나도 처음에 운전 배울 때는 당신보다 더했어. 앞으로 욕심은 부리지 말고 천천히 나가자”
내 자신이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픽 나온다.
‘여보, 마누라 수고했어. 오늘 서비스는 틀림없을 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