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속의 화원
-신사임당의 초충도병草蟲圖屛
향일화
지상에 없는 당신을 읽기로 합니다.
당신이 옮긴 세상은
어쩜 저리도 음전한지요
가녀린 붓의 흘림체로 일구던 텃밭엔
온통 봄 화색이 돌았지요
눈시울이 항시 붉었던 맨드라미, 양귀비꽃들이
주인처럼 터를 잡았구요
땅 쪽으로 마음 기울던 풀잎 곁으로
주름진 몸을 더 구기며 숨어들던
방아깨비, 사마귀, 개구리들을 품으며
정붙일 자리를 내주었지요
아이들의 손에 잡히지 않던 나비가
앉고 싶은 곳으로 스스로 날아가듯
거부할 수 없는 인연이 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받아주는 일이지요
서로의 향기를 묻혀주는 일이지요
자식들 바람막이로, 수없이 마음 접히며 살았던
어머니 뼈대 같은 병풍 속을 보세요
붓으로 싹 틔운 자연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시간의 인질에 박제된 풀, 꽃, 벌레들이
얼마나 반듯하게 살아남았는지를
한국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추앙받아 드디어 5만원권의 모델로 발탁되신 사임당 신씨. 그가 그린 그림에 숙종, 송시열, 이형규 등 내노라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발문을 썼다하니 그 솜씨가 탁월했다는 증거이다. 전해지는 ‘초충도草蟲圖’ 로 만든 병풍을 들여다보며 시인은 섬세한 붓길에 마음을 잡혔나보다. 수박이 붉은 속을 들어내고 나비 쌍쌍이 넘나드는 뜰에서 아직도 반듯하게 살아남은 작은 풀과 생명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시가 되어 전해지니 간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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