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8 인조 6년, 안주진관병마절제도위자 종6품>
敎旨
魏廷喆爲
安州鎮管
兵馬節制
都尉者
●내용 및 특징
1628년(인조 6) 6월 25일에 仁祖가 魏廷喆에게 安州鎮管兵馬節蹄尉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병마절제도위는 조선시대 각도 諸鎭의 지휘관인 종6품의 외관 무관직이다. 위정철이 속한 진은 안주진관으로, 안주는 지금의 평안남도 안주군에 속한 지역이다. 영유현령 임명 교지와 발급 연월일이 같아 영유현령 위정철이 겸직함이 추정된다.
※ 병조참판공께서 평안도 영유 현령과 안주진관병마절제도위에
1628년 6월 25일 임명 겸직 되었고, 재임기간은 알 수 없다. 이후 公의 22번째 교지는 1632년(인조 10) 7월 8일에 임명한 "절충장군행충무위사과겸오위장"이다.
여기서 현존 교지에 의거, 公께서 영유현령으로 재임해오다가 1631년(인조 9) 3월 종2품 병조참판(현 국방부 차관)을 제수 받아 당대 최대 현안인 淸나라와의 중요 외교문제 해결 임무를 띤 심양(審陽) 회답별사(回答別使) 사행(使行, 1631년 3월 19일~ 4월30일 간, 41일)을 하였을거라 추정해본다.
-원소장처 : 판서공파 종택
(위성렬, 호조판서공 13대 종손)
-현소장처 : 방촌유물전시관
병마절제도위
(兵馬節蹄尉)
http://naver.me/F5Z8qif3
절제도위
조선시대 각 도의 병마절도사 밑에 있던 종6품의 서반외관직. [내용] 제진(諸鎭)의 장(將)으로서 정식명칭은 병마절제도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반의 현령·현감 등 수령이 겸대(兼帶)하였으며, 거읍...
m.terms.naver.com
병조참판공께서는 무관으로서 조선의 무과요직을 두루 거치시고 문관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감당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강대국인 청나라와의 민감한 외교문제까지 청렴, 지혜, 배짱으로 성공적으로 수행하셨네요. 훌륭한 선조로 후세의 귀감입니다.
「인조 7년 기사(1629, 숭정2).
양서 수령의 현부에 대해 보고하는 도체찰사의 계」
영유 □□(永柔□□) 위정철(魏廷喆)은 제언(堤堰)을 축조하고 농사에 부지런히 힘써 전야(田野)가 날로 개간되었고,
하략~
http://sjw.history.go.kr/m/view.do
승정원일기 모바일
sjw.history.go.kr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의 옛 발자취와
조선시대의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碧泉 위윤기 위이환
제언(堤堰)이란 : 물을 막기 위해 돌, 모래또는 콘크리트로 쌓은 둑을 말하는 것으로, 요즘의 댐, 인공 호수, 저수지라고 사료됩니다.~~
栢江 위성록 (34세, 장흥 방촌)
승정원일기에는 □□자를 판독 못하였으나 교지를 통해서
縣令임이 비로소 밝혀졌습니다.
栢江 위성록 (34세, 장흥 방촌)
栢江 위성록 (34세, 장흥 방촌)위이환 선암 위옥량 (대종회재경청장년회장) 湖山 위신복 님
병조참판공께서는 국방분야뿐만아니라 농업 등 산업분야에도 조예가 깊으셨다고 보입니다. 농사에는 저수지가 있어야 물을 가두기때문에 필수 시설로 여겨집니다. 특히 함경도나 평안도는 산악지역이라 물이 부족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신 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