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2학기 10회 2015.11.16.mp3
장소: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1층 세미나실 일시: 2015년 11월 16일(월,오후 1시 30분~ ) 강사: 곽준(묘원 법사님)
교재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도서출판 행복한숲 刊)
상윳따니까야(Saṁyuttanikāya)의 인연품(因緣品)에서 말하기를, “연기의 길을 따라가는 자는 그릇된 삶을 사는 자로 불린다.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자는 올바른 삶을 사는 자(올바른 성향을 지닌 正行者)로 불린다”라고 하였다.
올바른 길에 의한 청정행을 하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이며, 이런 수행자는 업의 힘[業力] 혹은 오온이 다시 연결되는 것을 끊으려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연기를 중단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기에서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위빠사나 수행은 부분 3과 부분 4의 연결을 끊고 업의 힘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갈애를 없애는 작업이다.
또 위빠사나 수행은 ‘느낌이 갈애를 일으키는 것’을 ‘느낌이 지혜를 일으키는 것’으로 바꿔 가려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느낌 다음에 일어나는 갈애를 위빠사나 도(道)로 바꾸어가는 작업이다. 위빠사나 도는 바른 견해[正見]․바른 사유[正思惟]․바른 정진[正精進]․바른 알아차림[正念]․바른 집중[正定]을 의미한다.
위빠사나 도를 닦지 않는다면, 즉 위빠사나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갈애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이 경우에 어떤 것으로도 갈애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연기의 길을 가는 자는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苦]에 맞닥뜨리게 될 뿐이다. 그는 윤회 속의 나그네와 같고, 이 세상에 붓다가 출현한다고 해도 영원히 나그네로서 떠돌게 될 것이다.
이제 독자는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도과의 길인가? 아니면 윤회의 나그네로서 떠도는 길인가?
윤회의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도(道)의 길을 가야 한다. 즉,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만 하고, 다섯 가지 도지(道支)를 통해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찰력을 가지고 알아차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 지적해 둘 것은, 느낌은 여기저기로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느낌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느낌은 부딪힘[觸]이 있을 때마다 일어난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기분 좋거나 나쁘거나, 색다르거나 덤덤하거나 간에 어떠한 종류의 느낌이 항상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느낌은 우리의 여섯 가지 감각의 문[六門] 중 어딘가에 항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의도적으로 찾을 필요가 없다.
느낌은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행자는 느낌이 무상한 것이며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통찰을 가지게 된다. 수행자가 느낌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영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의 경계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느낌의 무상함을 위빠사나의 통찰로 이해하였을 때, 그는 이제 올바른 길에 접어든 것이다.
“느낌이 소멸되면 갈애도 소멸된다. 갈애의 소멸은 열반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72쪽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_()_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