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앉는 가슴/묵고 살라카믄...
"여보! 어디가?"
김사장은 가계를 뛰쳐나왔다. 아내가 뒤에서 불렀지만 못들은체 빠르게 발걸음을 동네 뒷산 언덕배기로 옮겨갔다.
아침부터 어젯밤 물건을 사간 여자가 와서 물려달라고 떼거리를 써댔다. 언젠가 사갔던 물건이 대형 마트보다 비싸다고 트집을 잡던 골목안 그 이층집 여자였다. 이미 식품의 포장지를 뜯어버린 상태, 이런 경우 회사에 반품도 되지 않는다.
제길! 혀를 찼다. 가계 경영은 갈수록 힘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본격화된 온라인 구매가 점차 더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이다. 쿠팡, 네이버쇼핑, G마켓, 11번가...
싸고 편하다면 경쟁력이란 단어를 꺼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배송, 대형마트, 재래시장의 위력앞에 직접 고르고 선택하는 시간에 쫒긴 서민들의 확신적 취향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폐업을 하려해도 50중반 나이에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건 다음으로 두고, 폐업을 하면 대출금을 일시에 상환해야 한다. 살고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약정된 대출이니 자칫 집까지 날리면 갈곳도 없어진다.
통계층이 밝힌 2022년 개인사업자 평균대출금액이 1억 8천만원에 근접했단다.
이렇듯 사실 내세우고 싶은 곳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10대 강국이 되었다고 자랑질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그럴뿐 알고보면 한방 부르스라고도 했다.
자원도 없고, 축적된 부가 없으니 자칫 바람앞에 등불이란 소리가 나온다. 자신의 지인이나 주변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그래선지 어느 유튜브의 진행자인 소위 교수라는 작자는 1년내내 집값이 내린다고 얄밉게 썸네일을 달아댄다.
김사장은 그의 유튜브를 볼때마다 '미친넘'소리를 연발했다. 남은건 살고있는 아파트뿐인데 가격이 내리면 어쩌라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은 대학을 마쳤고, 아들은 군대를 갔으니 자식들에게 당장에 들어갈 돈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의 말대로 언젠가는 집값 내릴날도 오겠지! 그러나 그는 어느 해를 막론하고 내린다고 주장하니 그게 좀 거시기했다.
그는 또 수시로 은행이 문닫는다는 예측을 해댄다. 자신의 지론은 '예전엔 그랬어도 이제 은행들은 다른 분야가 다 망하고, 마지막으로 정부가 망할때 그때 은행이 같이 망할거다'라는 견해를 말해주고 싶었다.
금융기관들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짭짤한 이자 장사로 대출한도를 꽉채웠다가 개인 부채가 많아 사회문제가 되면 그때가서야 대출을 옥죄는 시늉을 하며 난리부루스를 치는척을 해댄다.
또한 어느 정부든 경제를 못살리고, 집값이 폭락하면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니 대출이 느는 것을 눈감아 주며, 새로이 주택 보급율을 늘리는 환심정책을 편다.
김사장은 그러다 또 자칫 공적자금 투입이니 뭐니 하면서 서민들의 유리지갑을 넘보고, 국민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연한 생각도 들었다.
김사장은 IMF 관리체제가 시작되기전 직장내 소재한 은행책임자가 괜찮은 금융상품이 있으니 가입을 해주면 자신의 실적도 높아진다며 부탁을 했었다.
아는 안면, 위험부담은 싫어하는 쫌생이 직장인이라 이자는 뒤로하고 당연히 원금보전은 되는 상품인줄로 믿었다. 그런데 매월 적립된 상당량의 돈, IMF관리체계가 되자 그게 흔적도 없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었다. 소위 깡통이 된 것이다.
이후 그지점장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몇년 후에 다시 왔다고 인사를 하더란다. 그래서 그와의 자리가 불편했고, 거리를 두었다.
아무도 없는 마을 뒤편 정자나무 아래,
나뭇잎 떨어져 내린 벤치에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눈만 껌뻑이며 피할 생각이 없나보다.
"이너머 시키가 너까지..."
김사장은 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하여 쫒아내고 그 자리에 걸터앉았다. 어젯밤 대기업에 다니는 처제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대화를 엿들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휴가? 그건 직장을 다닐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엇그제 걸어 다리를 건너며 난간의 철책을 높이는 공사장면을 보았다. 뭐? 생명의 전화?
부질없는 짓이란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버릴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 거기인들 못 기어 오른다냐? 그 돈은 또 국민의 혈세이다. 펜스 높아지면 시원한 강으로 번지점프(?) 기분은 더나겠구먼...
버스기사 파업이 어떻고, 의정갈등이 일어나고, 항상 싸움뒤엔 한편에 보상이 이루어지며, 결국엔 물가나 비용인상으로 뒤치닥거리는 일반 국민들 몫이었다.
어린시절의 추억, 젊었을때의 낭만...그러나 이젠 삶은 전쟁이란 마음이 들었다.
김사장은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다. 화가 아직도 다 안풀린듯 꽁초가 될때까지 연거푸 빨아댔다. 노을지는 서편하늘엔 가는 검은 구름이 산허리를 감았다.
그렇게 한동안을 앉았으니 갑자기 자신이 외톨이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의 그 많은 동료들, 그들은 어느 영역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살아갈까? 김사장은 언덕을 내려와 가계를 향해 어슬렁거리며 걸었다.
사실 알고보면 아내도 불쌍한 여자이다. 결혼생활 아이둘 키우며 박봉의 자신에게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녀는 2년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자신이 직장에서 빚보증을 서주지 않았으면 풍족하진 못해도 지금쯤은 직장인의 아내로 보다 맘편히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 건물쪽으로 붙어서 가고 있는데 도로변 가계 앞에 뿌려진 명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거철도 아닌데 웬일일까? 유심히 살펴보니 모두가 대부업체에서 뿌려놓은 것 들이다.
가게 문턱마다 골고루 뿌려 눈에 뛰게 한 것이다. 특히 영세업종의 가계 앞엔 유독 더 많아 보인다. 화가 치밀었지만 궁금하기도 하여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주워 보았다.
어둠이 짙어가는 길가에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는 자신을 향해 사람들은 이상한 X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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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걸으면서 이처럼 제공되는 것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대부업법상 최고 이율은 연 2할, 즉 1년에 20%의 이자를 갚으라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낮아졌다.
물론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과하는 징벌적인 이자라고 생각해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그래도 개인이 시중은행에다 애써 번 소득의 일부를 꼬박꼬박 가져다 맡기면 그 얼마만큼의 이자를 주었던가? 어쩌면 가진자 그들만의 PF(Project Financing)대출의 리스크 마져도 애꿋은 서민이 대신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김사장의 생각은 자신보다도 오히려 자식, 손주에 대한 가난의 대물림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채쓰는 사람을 바보라고 비난 하더라만, 누군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자 비싼 사채를 쓰고 싶어서 쓰겠는가? 그들이 사채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신이 가진 재산이 없어 담보설정을 못 하거나, 보증이라도 서줄 든든한 후원자가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위와 같은 대부업체들이 지역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정말 어려운 시기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팍팍하게 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김사장 자신도 아는 사람이 소액 사채를 쓰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금융권에다 보증을 서주어 채무를 전환케 한 적도 있었다.
물론(아내에겐 비밀이지만) 자기 자신이 그러한 친절을 베풀다 피해를 본 적도 더러는 있긴 하지만 그게 세상살이려니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난 코로나 유행시기에 미국은 천문학적인 지원금을 뿌렸다. 그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위축되니 급격하게 금리를 올려댔다.
그때마다 국내 은행들도 걷으론 경제를 걱정하는척 하였고, 이자를 따라 올리며 서민 대출자들의 가슴을 옥죈다. 속으론 수십조 이자장사에 쾌재를 불렀음직하다.
그러나 미국이란 그들도 고용이 둔화되고, (근원)물가가 다소 내려가니 경제 회복을 위해 연준에서도 다시금 기준금리를 내리려는 분위기다.
이러한 쩐의 아동과정에서 죽어 나는건 서민들이다. 정치인 그들은 어차피 가진자의 편이니 집값이 올라도 좋고, 이자율이 높아도 손해볼 일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표관리를 해야하니 때론 미친척 입에 개거품을 물고 고함도 지르고, 그러고서는 차안에서 웃을 것 같다.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율이 9.5%라고 했다. 대형마트도 매출이 줄어들고, 마진율이 낮아져 희망퇴직을 받는다하니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 다리 펜스를 뛰어넘을 각오로 살아보자. 이런저런 생각끝에 마음을 다지며 어느새 가계앞에 다가섰다. 가계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내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맞아준다.
"성질 난다고 고함만 치면 해결이 되나? 손님을 이해 시켜야지. 고마 잊어뿌라. 묵고 살라카믄 어쩔끼고, 속이 썩어야지..."
"야이 등신아! 니는 배알도 없냐? 그렇다고 장삿꾼이 어디 죄인이가?"
아내의 시선을 피한 김사장의 검게 탄 얼굴의 커다란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어제 누군가의 삶의 하소연을 듣고, 우리들의 이웃을 생각한 픽션(fiction)의 글입니다.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