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 : 2024년 9월 5일
39번째 성지순례는 1.천진암 성지 입니다.
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 자비로운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 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희 가족(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을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나이다.
아멘.
" 한국 천주교 신앙의 싹이 튼 곳 "
천진암 성지
[수원교구]
성지 알아보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는 조그만 암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어느 때인가 없어져 주춧돌만 남았던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암자가 바로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천진암이다.
남한산성에서 광주 시내로 가는 국도 중간쯤에 ‘번내’가 있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한참 달려서야 닿을 수 있는 산골인 천진암에는 이제 끊임없는 순례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행렬에 참여한 순례자들 얼굴에는 스스로 신앙을 찾아 나선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선조들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온 1784년 봄으로 잡는다. 하지만 그보다 5년이 앞선 1779년 겨울 바로 이곳 천진암에서는 이미 자랑스러운 교회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천진암 주어사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鹿菴)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다. 권철신 · 일신 형제와 정약전 · 약종 · 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 명의 석학은 광암(曠菴) 이벽의 참여와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강학회가 끝날 무렵 이벽이 지은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와 정약종이 지은 “십계명가”(十誡命歌)는 이러한 강학회의 결실을 잘 드러내 준다.
이벽의 권유로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귀국한 후 가장 먼저 이벽은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마재의 정약종과 그 형제들, 양근의 권철신 · 일신 형제들에게 전교했다. 또 그해 가을에는 서울 명례방에 살던 중인 출신 통역관 김범우를 입교시키고 수도 한복판에 한국 천주교회의 터전을 마련했다.
천진암은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로서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잊혀 왔다. 지난 1960년에 와서야 이곳 지명들이 문헌에 근거해 밝혀졌고, 마을 노인들의 증언과 답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서 천진암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70년대 말부터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급진전하였다. 1980년 6월 천진암 일대 12만 평의 땅을 매입하고 그 초입에 가르멜 수녀원이 문을 열었다. 그해 6월 24일에는 노기남 대주교의 이름으로 제막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비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1981년 한 해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 일신 형제의 묘가 이벽의 묘 옆으로 나란히 모셔져 창립 선조 묘역을 이룬 것이다.
1982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연구원이 설립되었고,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어 2000년까지 토목공사를 마치고 2020년까지 기초공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대성당 터에 야외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돌제대가 마련되어 있다. 2040년까지 골조공사를, 2070년까지 조적공사를, 2079년까지 마감공사를 통해 3만석 규모의 대성당이 위용을 드러낼 예정이다.
그 외에도 1994년 성지 입구에 광암 이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광암 성당이 세워졌고, 1999년에는 성모 경당 봉헌식을 가졌다. 1992년 박물관 건립 인준 후 1995년 기공식을 갖고 시작한 천진암 박물관은 2011년 건물 공사를 마치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내부 전시장과 수장고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13년 6월 23일에는 성모 경당과 대성당터 중간에 좌대 포함 22m 높이의 ‘세계평화의 성모상’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다. 세계평화의 성모상은 모든 국가와 민족의 신앙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청동을 이용해 파티마 성모상 형태로 제작하였다. 그리고 2016년 10월 29일 기존의 성모 경당을 리모델링하여 새로 단장한 후 성모 성당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천진암 성지를 순례할 때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성지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수원교구에서 위탁 운영하는 경기도 청소년야영장이 있다. 입구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실내체육관 옆으로 정하상과 유진길 성인묘역과 창립 선조 가족묘역이 자리하고 있다.(차량으로 이동가능 합니다.)
정씨 가문에서 최초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종의 아들로 양근 지방 마재에서 태어난 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1795-1839년)는 양반 신분을 감추고 어떤 역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살다가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는 11회나 왕래하며 뜻을 같이한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劉進吉, 1791-1839년)와 함께 로마의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고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되고 동시에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9년 12월 9일)]
대감마을과 주어사 - 교회의 요람지
양평 읍내에서 한강을 넘어 광주 곤지암으로 가다 보면 세월 초등학교를 지나 대감마을(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좀더 남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골짜기에 주어말 동네가 있고 그 뒤로 주어사(走魚寺, 여주군 산북면 하품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높은 산자락이 바로 앵자봉이며, 그 너머에는 유명한 천진암(天眞菴)이 자리잡고 있다. 대감마을은 실학자로 유명한 이익(李瀷)의 제자 권철신(權哲身, 암브로시오)과 아우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 살던 곳으로, 초기 교회에서 유명한 이벽(요한), 이승훈(베드로), 정약용(요한)이 모두 권철신의 제자였다.
1779년 겨울, 권철신과 제자들이 주어사를 찾은 이유는 대감마을에서 가까운 이곳에 모여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때 이벽이 주어사 강학 모임을 찾아가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이벽은 이승훈을 북경으로 보내 세례를 받고 돌아오도록 했으며, 1784년 가을 무렵에는 이승훈이 전한 교회 서적들을 들고 대감마을로 스승 권철신을 방문하여 교리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런 다음 교회가 창설되자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과 류항검(아우구스티노)이 대감마을에서 권일신에게 세례를 받고 각각 충청도와 전라도로 내려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대감마을과 주어사는 곧 한국 천주교회의 요람지라고 할 수 있다.
앵자봉 너머의 천진암은 일찍이 이벽과 정약용이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였다. 이곳은 1970년대에 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1979년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이벽의 유해가 이장되었다. 이어 1981년에는 화성군 반월면에서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유해가, 인천 만수동에서 이승훈의 유해가, 대감마을 뒷편의 효자봉 자락에서 권철신, 권일신의 유해가 각각 천진암으로 이장되었으며, 1981년 12월에는 경기도 광주 배알미리(현 하남시)에서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성인의 유해가 간신히 수습되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 슬프구나 우리 나라 사람들, 비유하니 주머니 속에 사는 것과 같네.
성현(聖賢)은 만리 밖에 있으니, 누가 이 몽매함을 열어 줄 것인가?
머리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뜻을 깨달은 이들이 드므네.
모방하기에만 급급하니, 오묘한 것을 가려낼 겨를이 없구나. "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시문집 중에서) [출처 : 차기진, 사목, 1999년 5월호]
성지 둘러보기
이벽성당
지난주 늦은 시간(오후4시반경)에 도착하여 순례를 못하고 아쉽게도 돌아가야 했다.
이번엔 하루전체를 이 곳 성지를 둘러볼 계획,
11시반경 도착하여 여유있게 이벽기념성당에서 미사 먼저 드리고 천천히 자세히 둘러보기 하였다.
날씨는 햇빛 그리고 흐리더니 비(소나기까지)
† 순교자 성월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 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 당신들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으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교회를 이 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와 수도자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 교우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 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 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대형십자가 있는 곳까지 십자가의 길 기도 하며 오른다.
오르며 주차장쪽을 뒤돌아 본다.
14처 마치는 곳이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터'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 터
세계 평화의 성모상
묵주기도의 길
성모 성당
언제나 열려 있는게 아니였다.
성모 성당에서 묵주기도의 길 따라 천진암대성당 건립터쪽으로 내려 가고...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에 시작하여 300주년에 완공될 '천진암 대성당' 자리
화강석으로 된 제대의 크기가 어마무시 하다.
대성당 주춧돌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200주년 기념비. 천진암강학당터. 창립선조5위 묘,
오른쪽으로 가면 가르멜수녀원. 조선교구 설립자 성인묘역. 성인가족묘 가는 길이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비
천진암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에 있어 역사와 시설규모 중요하고 커서 돌아 보는 시간이 약 4시간(미사포함) 정도 걸렸다.
순례 오시는 분들은 참고 하시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오시길 권합니다. 성지 도착은 오후 3시까지는 도착하셔야 성인묘역까지 돌아 보실수 있습니다.
성지 둘러보기는 다음 글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