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대주의
(가)
“관습대로 사촌 여동생과 결혼했는데 불법….”
사촌 여동생과 결혼한 파키스탄 귀화인이 아내의 입국을 허가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05년 한국으로 귀화한 파키스탄인 임란 알리(37) 씨는 3월 파키스탄에서 사촌 여동생과 결혼을 했다. ‘8촌 이내 근친혼’을 법으로 금지하는 한국과 달리 파키스탄은 ‘3촌 이내 근친혼’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촌 여동생과의 결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한국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온 임란 씨는 혼인신고를 한 뒤 아내의 비자 발급을 위해 4월 호적등본 등 관련 서류를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에 보냈다. 그러나 임란 씨 부부가 사촌 관계인 것을 알게 된 대사관은 아내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현재 임란 씨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파키스탄에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결국 고민 끝에 임란 씨는 23일 “한국에서는 8촌 이내의 근친혼을 금지하는 것을 몰랐다.”며 “파키스탄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진 혼인을 인정해 한국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일단 임란 씨의 진정 내용을 검토한 뒤 내부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 ○○일보
(나) 서로 다른 지구촌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 상대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이나 가치 체계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를 경계하게 되며, 자신의 기준에 비추어 그를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태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낯선 문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의 관점에서 문제를 본다. 현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우리의 생활 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해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의 편견을 발견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 보다 관용적일 수 있게 된다. 문화상대주의는 지구촌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매우 필요한 태도이기는 하나, 그것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관습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할 수 없이 똑같이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은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게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당신들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대지에게 가해지는 일이 곧 대지의 아이들에게 가해진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면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안다.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 속한 것이다.
-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논제1] 제시문 (가)와 (나)를 읽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올바른 시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400자 내외)
[논제2] 제시문 (나)에서 제기된 문화상대주의의 문제점을 구체적 예를 들어 논술하시오. (400자 내외)
[논제3] 제시문 (다)의 교훈을 바탕으로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문화 창조를 위한 기준을 제시하시오. (400자 내외)
문제 해설
<논제1>은 제시문 (가)의 사례에서 상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논제1>이 요구하는 진술은 (가)의 사례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리라는 것은 아니므로 파키스탄 귀화인의 아내의 입국을 허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지 않다. 상대 문화를 이해할 때 바람직한 태도를 (나)를 근거로 논의하여야 한다.
<논제2>는 다른 문화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자칫 상대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로 오인될 수 있다. 즉, 지나친 문화상대주의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는 문화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를 활용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여야 한다.
<논제3>은 (다)에 제시된 유럽의 문화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는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이해의 대상이지만,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바람직한 문화를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바람직한 문화 창조를 위해 <논제1>과 <논제2>의 논의를 바탕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관점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 분석
(가) 파키스탄 귀화인의 주장은 “파키스탄의 결혼 관습이 우리와 다르지만 오래 전부터 살아온 생활 방식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임란 씨의 경우 집안의 큰아들이 가족 전체를 돌봐야 하는 파키스탄 관습에 따라 사촌 여동생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 다양한 정보가 공개되는 현대 사회에서 다른 문화를 체험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상대 문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보신탕을 먹는 우리 문화를 비난하는 서구 언론에 대해서 ‘우리 문화에 대해 참견하지 마라’ 또는 ‘프랑스의 거위 간 요리는 얼마나 잔인한가’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른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태도가 요구된다는 점에서 (나)에서 제시된 ‘문화상대주의’는 다른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 매력적인 방법이다. 각각의 문화는 어떤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한 사회의 문화를 그 사회의 입장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상대주의를 다른 문화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또는 다른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배제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모든 문화를 가치 있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인정하는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 차별 뿐 아니라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남아공의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도 용인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게르만 민족은 유태인들과 종 자체가 다르다는 나치의 시각은 유태인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흑인과 황인에 비해 백인이 우월하다는 백인우월주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물론 미국에도 남아 있어 흑인 폭동 등 사회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문화의 상대적 특수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류보편의 가치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문화는 가치가 없다. 타 문화의 전통과 가치는 그 문화의 입장에서 존중해 주되,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 자유, 평등, 행복추구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는 문화상대주의보다 항상 우위에 두어야 한다.
(다) 이 글을 통해서 근대 유럽인들에게 자연은 지배와 정복, 개발의 대상이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연은 숭배, 보존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서로 다른 사고는 삶의 방식의 차이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간주하여 환경 파괴가 심화된 결과를 두고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자연은 인간의 지배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유럽인의 문화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는 모두 이해의 대상이지만, 문화상대주의가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일 뿐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규범은 아니므로 더 좋은 문화 창조를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는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지하고, 극단적 상대주의는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