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3년, 후배들과 모임을 가지다가 지금의 영동 도산공원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시네하우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권총을 든 포스터를 보고는 아무 사전정보없이 관람했던 <블레이드 러너>는 충격과 감동 그 자체였다. 이후 그 영화를 몇 번 더 보기는 했지만 최근 그 영화를 대형화면으로 다시 제대로 감상하니 옛날의 감동과 느낌이 다시 전해져 온다.
흔히 SF영화 중에서 가까운 미래에 있을 법한 내용을 다룬 것을 하드 SF라 하고 비현실성과 상상력이 극대화된 것을 환타지 SF라 한다면 <블레이드 러너>는 상영 당시에는 환타지 SF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지금 보면 누가 봐도 하드 SF에 가깝다고 할지도 모른다. 또한 불길하고 암울한 미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 SF이다. 디스토피아 영화는 우리의 현실이 이대로 흘러간다면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는다는 점에서 개선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말하자면 <블레이드 러너>는 암울한 예언으로 미래에 돌려주는 역설의 잠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이 영화는 1982년 최초 개봉 당시 공교롭게도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개봉시기와 맞물린데다 제작사의 흥행을 고려한다는 명분으로 자의적으로 편집된 덕분에(?) 흥행으로나 작품으로나 제대로 설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감독판(director's cut)에 의해 SF영화의 전설로 남게 된다.
지금은 광고나 드라마,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겠지만 그 당시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대형빌딩의 광고판 이미지나 반젤리스의 미래적인 신디사이저 음악이 주는 오리지널리티는 신선함과 경이로움에 가깝다. 이는 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원작으로부터 시작된 필립 딕의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에이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를 거의 연이어 보여줌으로써 이미 리들리 스콧은 옛 명성으로도 먹고 살만한(!) SF 명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성영화의 계보에 빼놓을수 없는 <델마와 루이스>, <글라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극사실적 전투영화의 전범을 보여준 <블랙 호크 다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프로메테우스>, <마션>, <에이리언 커번넌트>까지 여전히 식지 않는 노익장으로 실로 존경스러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보다 더 매력적인 인조인간, 인간인지 인조인간인지 구분하기 힘든 인조인간의 모습은 어쩌면 멀지 않은 가까운 미래에 접할 현실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여러 논쟁을 낳기도 하고 가장 흥미를 잃지 않는 여러 해석을 보여주는 부분은 인조인간을 추적하는 해리슨 포드가 인간인가 인조인간인가 하는 부분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결론을 단정하지 않고 이 점을 열린 결말로 남겨두긴 했지만 <시카리오>와 <컨택트 Arrival>로 이미 젊은 명장 반열에 오른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이번에 개봉할 때 그 의문점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 2019>를 위해서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위해서든 이 의문은 그대로 남겨두었으면 좋겠다. 영원한 고전으로 남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