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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서일지*
(2024.07.04~07.25)
각자의 책(冊)
-책(livre)은 삶(vivre)이다. 인간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가 한 권의 책을 써 나가는 것과 같다. “얘야, 처음으로 내가 내 이름을 썼을 때, 나는 꼭 책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단다.” 이 인용문이 알려주듯이 자기 이름을 처음 쓰면서 자기 삶의 책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절대자의 커다란 책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책을 쓴다 : 「질문의 책」-에드몽 자베스>중에서)
<7월 4일 목요일>
브라보! 중앙도서관!
우리를 가장 빨리 꿈이나 딴 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책이 유일하다
1
내가 사는 천안시의 중앙도서관이 그동안 긴 건축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재개관을 했다. 사실 어제 타 도시로 갔다 올 일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작년 12월말에 작업이 끝나고 올해 새해가 시작되는 일자에 문을 열었어야 했는데, 내부 인테리어 작업이 지연된다며 올해 6월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랬던 도서관이 깔끔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깜짝 탈바꿈한 채 그곳을 지나던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해서 당장 오늘 아침 일찍부터 오랜만에 중앙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상전벽해처럼 변모한 내부 시설도 구경할 겸해서 부랴부랴 방문했다(개관 축하 떡은 사지 못했다).
전에 없던 40대 규모의 후문(?) 주차장이 생기고 주차장에서 바로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설치되어 접근의 편리성을 도모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실은 전에도 부족했던 주차장 문제를 이번엔 어떻게 해결하나 나도 궁금했던 차였다.
1층을 포함한 전 층의 내부 공간(도서열람실, 주로 공부만 하는 일반열람실, 정보이용실 등)이 투명하고 편리하며 아늑한 카페 같은 분위기로 개조되어 있었다. 1층의 사서에게 물어보니 3층에 있던 일반인의 공부전용 열람실은 요즘 추세에 뒤떨어져 아예 공간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대신 도서열람실 한켠이나 창 곁에 공부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해서 공부 틈틈이 관련 자료를 참고할 수 있도록 면학분위기를 꾸몄다고 한다.
요즘은 웬만한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조차 개인용 노트북과 타블렛 PC를 들고 오는 터라 정보이용실을 만들기는 했지만 전보다 축소했다고 한다. 창가에서 혹은 열람실 내 테이블에서 각자 노트북을 켠 채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과 일반일들의 모습은 아침 일찍 갔는데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근처 아산시나 인터넷을 통해 보게 되는 타 도시의 도서관들은 이미 뛰어난 조형미와 내부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채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지만, 내가 오랜 시간 이용하면서 애정을 가진 천안의 중앙도서관은 그 지위에 걸맞지 않게 모든 게 노후화되어 있었고, 더구나 열람실 내부는 흔히 낡고 오래된 책방이 풍기는 먼지 폴폴 날리며 칙칙한 분위기가 곳곳에 배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축하! 또, 축하할 일이다.
이번 재개관을 통해서 천안의 많은 시민들이 책을 더욱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
천안 중앙 도서관 재개관을 기념해서 ‘7월의 독서’도 오늘부터 시작해서 3주(24.07.04~24.07.25)동안 가지려 한다. 중앙도서관은 대출 권수가 10권, 2주(14일)로 한정되어 있어 근처에 있는, 그 동안 자주 애용한 ‘충남학생교육문화원 도서관’의 30권, 3주(21일)와는 차이가 난다. 해서 각각의 도서관에서 10권씩 모두 20권을 대출하고, 중앙도서관은 대출일이 끝나는 즈음에 1주일 대출 연장이 인터넷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7월 25일에 일괄 반납하기로 한다.
<중앙도서관 대출 목록>
1)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作, 이영의 譯, 《닥터지바고·1·2》
2) 소강석 詩集,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
3) 박희윤 作, 《도쿄를 바꾼 빌딩들》
4) 조르주 베르나노스 作, 정영란 譯,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5) 천안동성중학교 책쓰기 동아리 삼다(三多) 作, 《상상력이 빛나는 순간》
6) 양세형 詩集, 《별의 길》
7) 김혜순 詩集, 《날개 환상통》
8) 박월복 詩集, 《푸른빛 수채화》
9) 김멜라 외 6인 作,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충남학생교육문화원 대출 목록>
1) 박완규 作, 《도배 달인의 이야기》
2) 김유진 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
3) 김종원 作,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4) 고명섭 作, 《생각의 요새》
5) 권여선 외 6인 作,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6) 이숭원 作, 《백석 시, 백 편》
7) 향문천 作, 《한국어 비사(祕史)》
8) 윤장훈 作, 《그날, 우리가 몰랐던 중남미 세계사》
9) 전유성 作,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10) 진주현 作, 《발굴하는 직업》
책을 앞에다 빌려두고 늘 하는 이야기지만, 책에 대한 욕심이 있어 많이 빌리긴 하지만 다 읽어 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읽는 데까지 최대한 읽을 것이다. 하지만 다 못 읽어도 어쩔 수 없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읽으면 되니까. 내가 그 책을 안 찾아서 문제지, 책은 사람처럼 변덕이 나면 어디로 훌쩍 떠나지 않고 대신 늘 내 주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3
직장을 가지기 전까지 독서를 일삼아 꾸준히 독서후기이자 일지를 적으려 한다. 직장을 가져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은 계속될 것이다. 이 습관은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즈음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인터넷 ‘다음’에 들어가 보면 내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 : <대하촌>)
책을 읽는 이유를 새삼 여기서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잘 몰라서’이다. 나는 알고 싶다. 알고 싶고, 알기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글쓰기는 대단한 작업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오래 지속적으로 쓰다보면 ‘자신만의 문체’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읽어도 그 사람의 글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문체가 되는 것이다.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다.
꼭 그것 때문 만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다보면 뭔가 달라지는 자신을 느낄 수 있고, 주변도 변하는 특이한 경험도 하게 된다. 한 번 맛들이면 쉽게 떨치지 못하게 되고, 그 실력이 늘수록 경험하는 세계도 더욱 확장되고 깊어짐을 기대하게 된다. 처음 시작은 귀찮지만 나중은 창대한 지경에 도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는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좀체 물리지 않고 그 중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내게는.
<7월 5일 금요일>
문학작품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다
현대적 개념의 역사는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졌고 복음서가 바로 역사의 기반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제가 말했었지요. 지금 그 의미를 설명해드리죠. 당신은 무신론자로서 신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면서, 인간은 자연 속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적 개념의 역사는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졌고 복음서가 바로 역사의 기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과연 역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죽음의 극복을 위해 수 세기에 걸쳐 연구되어 온 결과물입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제1장, <다섯 시 급행열차> 중에서)
문학작품에서 진리를 바라보는 장면은 신기하고도 경이롭다. 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여러 학문의 한 분야인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물론 ‘역사’라는 학문은 그렇게 간단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모두는 잘 안다. 다만, 전문 영역의 필진이 아닌, 문학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통해서 작가의 식견(혹은 지성)이 드러나는 것이 흥미로운 것으로, 진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광경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융합이라고 하고, 콜라주라고도 하는 것이, 어떤 목표나 주제가 어느 한 곳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분야나 학문이 서로 교류하는 과정 중에 새롭게 발견되어 진리탐구에 대한 인류의 시각을 바꾸거나 새삼 깨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위해 수학의 무한성과 전자기파가 발견됐고, 그것을 위해 교향곡이 만들어졌습니다. 특별한 정신적 고양이 없다면, 그 방향으로의 발전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러한 발견을 위해서는 영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복음서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죠. 첫째,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가득 차면, 필요한 곳으로 저절로 흘러넘치게 되는 이 사랑은 살아 있는 에너지의 최고 형태입니다. 둘째, 이것이 없으면 현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 현대 인간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개인의 자유라는 사상과 희생적 삶이라는 사상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유사 이래로 가장 새로운 사상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대인들에겐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제1장, <다섯 시 급행열차> 중에서)
이 얼마나 독특한 시각인가. 역사를 바라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인간들 중의 한 사람의 시각(비록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에 불과하지만)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그 동안 역사라는 정통적인 학문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다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종교, 그 중 기독교와 과학(기독교에서 일부분 경계하기도 하는)이라는 학문과 연계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독특한 철학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참신함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이 책을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하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여러 장면에 대한 독서를 기대에 찬 설렘과 흥미로운 시각으로 기다리게 만든다.
-기껏해야 모든 압제자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증명하는 잔인한 곰보딱지 얼굴을 한 칼리굴라들의 무시무시한 야수성만이 존재했으니까요. 그곳에는 청동의 기념비와 대리석 원기둥의 거만하고 영원한 죽음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오직 예수의 출현 후에야,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세대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 이후에야, 인간은 대를 이어 살기 시작했고, 담장 아래 길거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사 안에서, 죽음을 불사하는 지고한 작업을 통해서, 이 주제에 자신을 희생하며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이런, 그야말로 진땀이 다 나네요.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제1장, <다섯 시 급행열차> 중에서)
우리의 삶의 현실 속에서 보는 한 장면인 듯 유쾌하고 현장감이 넘실거리고 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는 경우는 이것 말고도 많다. 무엇에 관해? 그것조차도 말하려 들면, 작품 속 대사처럼, 진땀이 다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나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이라고 어제 말했던 것 같다.
1958년 이미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작가는 수상을 거부함)으로 선정된,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영화로도 이미 제작되었을 만큼 유명한 문학작품으로, 영화와 작품 둘 다 ‘본다 본다’ 하면서도 아직 보지 못한 채(일전에는 빌려 놓고도 한 페이지도 보지 못 한 채 반납) 지금까지 지나온 것으로, 이런 부분에서도 사람에서만 ‘인연’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책(작품)과의 인연도 없으면 그 명성만 듣고 흘러 지나칠 뿐, 결코 만날 수가 없는 것이라는 한탄도 해보게 된다.
2
여기 또 다른 책에서 역사를 읽게 하는 또 다른 시각을 발견한다. 윤장훈의 《그날, 우리가 몰랐던 중남미 세계사》로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하루하루씩 쪼개, 그 날 중남미 대륙의 여러 많은 나라에 있었던 역사적으로 다양한 근현대사를 신문의 칼럼처럼 한 장에 걸쳐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의 다양함이 마치 재미있는 ‘해외토픽’을 보는 것처럼 부담 없이 읽어 내리게 하는 힘이 숨어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류의 다양한 방식을 추구하는 작가와 책이 많이 흘러나와야 한다. 그건 우리 사회의 정신적 밭인 비옥한 문화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집필한 작가도 중남미 대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우리와는 지리적으로도, 그 동안의 국가 간 상호교류라는 관점에서 봐도, 먼 거리에 있는 먼 나라여서 피부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주로 외국인이 출간한 서적으로 겨우 알아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외국인이 중남미를 바라보는 시각과 우리나라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은 또 다를 소지가 있다.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미묘한 정서에서 드러나는 차이점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에콰도르’ 주재 코트라 직원으로 오래 상주한 분이 그 나라의 문물과 역사, 정치 등 여러 다양한 분야를 소개한 책을 통해 따스한 관심을 가지게 된 적이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역사상으로 오래전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통해 동양 사회를 서구에 널리 알린 것처럼,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들이 우리들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 곳곳을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린다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식’의 좁고 자기밖에 모를 수 있는 근시안을 넓혀, 우리의 삶을 여러 방면에서 윤활지게 하고, 세계를 우리의 이웃처럼 다정하게 껴안을 수 있는 그런 따스한 국가와 민족으로 변모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7월 6일 토요일>
문학의 역설
당신의 생명은 타인 속에 존재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봄·4
-소강석
별이 피아노를 치고
달이 하모니카를 불고
꽃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봄밤
나의 이름을 별이 부르고
너의 그리움을 달이 노래할 때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쓴 시가
꽃으로 피어날 줄 몰랐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
색이 없는 그림을 그리며
순간이 영원이 되는
숨 막힐 듯한 꽃향기를 느낄 때
별과 달과 꽃이
내 곁을 지켜줄지는 몰랐다
*소강석 詩集, 《너라는 계절이 내게 왔다》에 수록된 시.
<斷想> 바람과 별과 꽃, 자연을 새벽의 맑은 기운처럼 사랑한 윤동주 시인. 그 시인의 문학을 기리는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 시인이 고른 시어들과 심상들은 윤동주 시인과 흡사하다.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고/색이 없는 그림을 그리며/순간이 영원이 되는/숨 막힐 듯한 꽃향기를 느낄 때’와 같은 이상향을 지향하는 듯 하면서도 삶에 좀 더 가까운 현실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그래서 ‘별과 달과 꽃이/ 내 곁을 지켜줄지는 몰랐다’라며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일본의 차디찬 감옥 안에서 죽어가면서도 삶을 사랑했던 윤동주 시인의 사상과도 일면 닮아 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부조리한 삶 곳곳에서 빛처럼 밝게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문학의 역설이기도 하다.
2
천안의 동성중학교 재학생들의 글쓰기 동아리 모임인 ‘삼다(三多)’가 해마다 회원들의 문학작품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모양인데, 올해도 변함없이 교내 동아리에 모인 소설들만 모아 《상상력이 빛나는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집을 출간했다.
우선 그들의 글쓰기라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발표된 모든 작품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글쓰기의 목적은 회원들마다 다 다르다.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찾고자 하는 학생도 있었고, 글쓰기 자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가꾸고 내면을 키우는 즉, 성장하고자 하는 등 무척이나 다양하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나 지성적인 면에서 아직 시기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보니 문체나 작품의 흐름이 기성세대 작품들의 겉핥기식의 모방이 많고, 줄거리 면에서도 전개나 짜임새에 있어서 구성이 전반적으로 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고 있는 마법과 판타지(영화나, 게임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인 듯)형태의 장르 소설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시기라 연애에도 관심이 많아 그들만의 연애(상상이 그들 나이에 허락하는 정도에서)를 예쁘게 꾸며서 작품화한 것도 흥미롭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에 대한 불만과 중압감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시험이 모든 것이 되는 학교생활에 대해서 그들 나름의 비판의 날을 세워 창작하기도 했다. 이 모든 어리지만 활발한 열정에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이 시대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런 순수함을 만날 수 있을까.
게임 안으로 들어가 가상 세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어떤 학생의 작품은 기성세대 못지않은 구성이 돋보여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 또래의 학생들이 읽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았다. 지난 날 그들의 나이였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잠시 추억 속으로 돌아가 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작품을 출품한 모든 학생들의 건투를 빌고 그들의 건강한 열정에 다시 한 번 응원을 보낸다.
-아름다운 청춘들, 파이팅!
3
-당신이란 무엇일까요? (중략) 당신은 무엇을 통해 자신을 기억하십니까? 신체의 어느 부분을 의식해서요? 신장입니까, 간입니까, 아니면 혈관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당신이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해도, 당신의 존재는 항상 밖으로 드러난 당신의 활동상, 즉 당신이 했던 일에서, 당신의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죠. 인간의 영혼은 다른 사람들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며, (중략) 그리고 당신의 생명은 타인 속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고요? 당신은 타인 속에 존재했고 타인 속에 남게 됩니다. 이것을 훗날 기억이라고 부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당신의 미래 구성원들 속에 바로 이렇게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닥터 지바고·1》, 제3장 <스벤티츠키 집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 중)
닥터 지바고가 되기 전 의대생이었던 ‘유라’가 그를 양육시켜주는 부인 안나가 몹쓸 병에 걸려 심란해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삶과 죽음에 관한 그의 지식을 설파하고 있는 장면이다.
얼마 전 읽었던 오르한 파묵의 《검은책》이라는 작품에서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나’ 자신으로 온전히 살기라는 존재론적 철학문제에 천착했다면, 여기에서는 생명의 존재방식과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주인공 유라의 입장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작품 중에서 ‘유라’는 의학을 전공하는 과학자적인 입장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하고 사색한 결과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문학작품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주로 이런 부분이다. 물론 줄거리가 작품을 끌고 가야 하는 부분이 문학작품의 본령이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 되겠지만, 문학 안에서 다양한 작중 인물들을 통해 역사, 철학, 정치, 예술, 사회, 문화 등 우리가 몸담은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제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작가의 명민하고 날카로운 지성을 통해서 개성적인 의견을 들어본다는 점은 그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작품을 통해 다양한 세계에 대한 관심과 지식의 폭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래서 문학을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전 세계가 격찬하는 모든 문학작품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세상에 대한 제반 문제에 대해 이런 격조 있는 고급적 사색이나 사상을 내부에 품지 않고는 결코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반열에 들 수가 없는 법이다.
이제 4장 중반으로 들어간 《닥터 지바고》는 계속해서 이런 삶과 죽음의 문제 외에도 인간적 고뇌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줄 장면들을 계속 쏟아낼 것으로 기대한다.
하여서 나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 내뿜는 아름다운 향기에 취해서 꿈과 현실 사이를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갈 테지만, 삶에 가장 가까운 현실자리가 어딘지는 결코 놓치지 않도록 또한 부단히 감각을 곧추세울 것이다.
<7월 8일 월요일>
시간의 마법
그녀는 모든 면에서 아주 유연해.
오래전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이렇게 인생을 향해 전력질주 했고,
이제는 그것에 탄성이 붙어
모든 일이 스스로 알아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가스검침원을 기다리는 시간
창밖으로 장맛비는 내리고
《닥터 지바고》는 손 안에서 속삭인다
¹아무 댓가도 없이
어찌 이런 여름이 주어졌는가?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채
양쪽 세계의 여름을 오간다
이렇게 여름을 보낼 수 있다니
이렇게 여름을 보내도 되는 건지
곧 가스검침원이 방문할 텐데
열어둔 창문 틈으로 튄 물방울이
설핏 들려는 잠을 깨운다
¹<1854년 여름>이란 제목으로 러시아의 대표적 서정시인인 표도르 이바노비치 튜체프(1803~1873)가 지은 시.(《닥터 지바고》, 제9장 <바르이키노>에 수록됨)
2
괜히 책을 많이 빌렸을까. 제대로 읽으려면 온전히 작품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다른 책까지 읽어야 하는데 《닥터 지바고》를 읽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상상했던(어떻게 해서 《닥터 지바고》가 쉽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을까?), 줄거리보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들려주는 여러 가지 사유(思惟)가 신선하고 흥미로운 탓에 꼼꼼하게 이해가 되도록 읽다보니 그런 것이다.
백석의 시를 깊이 읽기란 부제로 나온 《백석시, 백 편》, 개그맨 전유성의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법의인류학자의 삶을 그린 《발굴하는 직업》 등의 여러 가지 책을 잠시 두서없이 읽어본다.
한 권의 책만 줄곧 파고드는 방법도 좋지만,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가는 독법도 독서의 한 방법으로, 다양한 주제의 책이 주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제각각의 책을 돌려가며 섭렵하다 보면 참신하고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독서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전 경험에서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주가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이 주는 부담감과 아침부터 줄기차게 내리는 장맛비의 영향으로 독서에 대한 소신(?)이 잠시 흔들리며 후회 비슷한 자책감이 몰려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뒤돌아보면 애초 계획했던 대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밭으로 치면 출발점으로부터 돌을 골라내고 제법 흙을 일군 탓에 조금만 더 일구면 이제 갖은 씨(감자, 고구마, 방울토마토, 마늘, 상추 등)를 뿌려도 될 듯하다. 이런 게 바로 시간(時間)의 마법(魔法)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3
-그는 그녀 쪽을 바라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려고, …(중략)… 한 손으로는 책을 앞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무릎에 올려놓은 다른 책을 잡고 집중해 책을 읽었다. (제9장 <바르이키노> 중에서, 《닥터 지바고》)
유리 안드레예비치가 피난 간 도시 유랴틴의 시립도서관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라라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의 독서습관인데, 굳이 작가가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의 독서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재미있지만, 1910년대 당시 러시아는 모두들 그렇게 독서를 했던 건지, 작가를 비롯한 주인공만 특이한 그런 자세로 책을 읽었는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것이다(왜 읽지 않는 책을 책상에 두지 않고 불편하게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읽었을까).
-혁명의 무법자들이 두려운 것은 그들이 악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철로에서 탈선한 열차처럼 조종할 수 없는 메커니즘 때문에 두려운 겁니다. (제9장 <바르이키노> 중에서, 《닥터 지바고》)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가 러시아를 혁명의 도가니로 몰고간 적군들을 향하여 라라에게 비난의 소리를 퍼붓는 장면이다. 즉, 그는 혁명을 장구한 인간역사라는 궤도에서의 ‘순간이탈’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랬을 때 역사가 늘 대응해 온 사회적 메카니즘이 이런 사례에서는 어떻게 작동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을 성토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현실을 돌아볼 때, 이 작품을 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60년 소련에서 사망해서 그 이후를 목격할 수 없었지만, 결국 소련은 혁명이후의 체제를 지키지 못한 채 사회적 붕괴가 일어나고 제정시대는 아니지만 기존의 러시아로 점차 회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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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삶, 새로운 도전
-《도배 달인의 이야기》, 박완규 지음, 좋은땅 2024년판
40대 후반에 다니던 회사(금융업)에서 나와 다소 늦기는 했지만 업종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된다. 낯설고 거친 건설 현장의 도배 기술을 익힘으로서,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과 노후의 안정된 삶으로 생(生)의 터닝포인트를 실현한 박완규 선생의 인생 이야기다.
도배 기술에 입문하게 된 경위, 도배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고 사업자등록증을 내는 과정, 견적을 내고 인원을 수배해서 하나하나 현장을 일궈가며 성장의 열매를 가꿔가는 인내의 시간, 후배와 제자를 키워가는 기쁨과 권유, 현장에서의 마음가짐과 비전 등을 읽기 편안한 문체, 상황에 맞는 유명한 격언과 사진들을 곁들여 처음 입문하고자 하는 초보자와 호기심을 가지는 일반인들 모두에게 흡족한 결과를 안겨주기에 안성맞춤이다.
<7월 9일 화요일>
신과 여성
신과 삶, 신과 인간 개인, 신과 여성은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대등한 관계인가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1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대학 교정을 무심히 걷던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
가난한 아버지가 맞춰준
감색 양복과 검정색 구두를 늘씬하게 차려입고
세상을 기쁘게 활보하던 환희에 찬 청춘
그 여름 새벽의 찬 이슬
끊임없이 눈 맞추던 여학생들, 여자들, 여자들
책은 언제나 눈부신 선물이었고
세계는 긴 모험과 탐험을 예정했다
결국 우리는 넓은 바다로 떠났고
숱한 현실의 격랑과 거친 파도를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허연 머리를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 장마에 집 안이 눅눅하고
아내와 나는 묵묵히
아침을 먹고 머리를 감는다
이제 시간은 어디로 흐를까
먹먹한 마음에 창이란 창
모두 열어놓는다
2
-유라는 깊이 사유했고, 글쓰기에도 매우 뛰어났다. 아직 김나지야 학생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숙고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들을, 보이지 않는 화약고처럼 장치해 둘 수 있는 산문이나 전기를 쓰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런 책을 쓰기에는 아직 어렸기에, 그 대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가장 위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가가 평생 스케치를 하듯.
(《닥터 지바고》, 제3장 <스벤티츠키 집에서의 크리스마스 축제> 중에서)
삶에서 인간은 무엇이든 준비할 수 있을 때 준비해야 한다. 삶은 항상 가변성을 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한 계속된다. 그것은 우주의 한 섭리로서 인간 마음대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울 수 없는 것처럼 그 자체가 진리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조차 ‘제행무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학생시절의 유라의 생각 한 조각에서 우리는 자연의 보편적 현상이자 진리이기도 한 개화(開花), 즉, 세계가 열리는 시간을 유추할 수 있다. 인생에서의 봄이라고 해도 좋은, 그 봄은 인간 각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제각각일 수 있다. 결혼, 졸업, 출산, 사업, 승진, 출세 등등. 그런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기대하는 아름답고 축복스러운 날을 위해 뭔가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 중 하나에 주인공 유라는 시 쓰기를 선택한다. 자신의 내부에 쌓이는 젊은 날 폭발적인 열정을 자신의 아름다운 봄이 펼쳐지는 시간을 위해 시로서 쌓아놓았다가 한 번에 터뜨리겠다는 의미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의미로서 시간과 열정을 허수룩하게 낭비하지 않겠다는,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담아들을 지혜이기도 하다.
3
때때로 번갈아가며 이런 저런 책-김혜순, 소강석, 개그맨 양세형 등의 각 시인의 시집, 개그맨 전유성의 개그가 담긴 수필, 중남미 역사 등등-을 읽고 있지만, 그래도 영향력이 탁월한 책은 《닥터 지바고》다. 종교, 역사, 철학, 예술, 정치 등 여러 다양한 부분에 대한 작가의 오랜 통찰과 폭넓은 지성이 섬세하게 작품 곳곳에 드러나 읽는 흥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제9장 <다시 바르이키노>를 읽는 중인데, 작품의 대단원을 향해 한참 달리는 중이다.
잠시 정리해보자면, 유라(지바고)의 아내 토냐가 혁명이후로 불거진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문제로 그녀의 가족이 국외로 추방당하면서 행방이 묘연한 남편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우리는 두 명의 여주인공(토냐와 라라)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토록 가혹했고 비참했던 우랄을 떠나기 전에, 저는 아주 잠깐이지만, 라리사 표도로브나와 알고 지냈어요. 제가 괴로울 때, 항상 곁에 있어주고, 해산할 때도 도와주어서, 그분께 감사를 드려요. 사실 그분은 정말 훌륭한 분이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저와는 다른 분이었어요. 저는 인생을 단순하게 살며 올바른 길을 찾으려고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분은 인생을 복잡하게 살아가고, 바른 길에서 벗어나려고 태어난 것 같더군요.
(제13장 <조각상이 있는 건물 맞은편> 중에서)
그렇다고 해서 라라가 비천한 여성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라라는 오히려 사랑에 있어서는 토냐보다 더 섬세하고 깊은 애정을 가진 여성이다. 다만 작품 속 내용을 통해 추정해 볼 때 라라의 미모가 출중하여 꽤 높은 지성의 소유자인 유라(지바고)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자신의 아내에게 돌아가려던 발길을 자신에게 돌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라라는 토냐의 출산을 돕고 그녀의 편지를 유라에게 전달할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당당한 사랑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유라의 생명의 위기 때마다 그의 병상 곁을 지키며 헌신적인 간호를 펼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진정 라라가 유라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토냐는 남편 유라가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음을 어렴풋이 눈치를 챘음에도 그를 믿고 언제까지나 두 아이의 아빠로서 그의 빈자리를 믿음으로서 지키며 기다리겠다는, 헌신과 희생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이지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후, 살아가는 내내, 나는 그때 당신이 내 가슴속에 켜놓은 그 매혹적인 불빛을,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전 존재 속으로 퍼져 나가, 당신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인식하는 열쇠가 되어주고, 서서히 사라져 간 빛과 희미해져 간 소리를 규명하고 이름 지으려고 수없이 시도하곤 했었소.
(제14장 <다시 바르이키노에서> 중에서)
유라가 라라와 함께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인텔리라는 신분이 노출됨에 따라 위협을 느끼고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하려고 모색하는 숨 가쁜 과정에서, 지난 시절 자신 안에 새겨진 라라의 첫사랑(짝사랑)을 떠올리며 고백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라라는 이미 유라가 토냐와 결혼하기 전에 상당할 정도로 유라의 정신적 세계와 사상의 바다에 깊은 영향을 주었음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지금껏 전개된 이야기를 돌아보면 토냐와 라라는 유라에게 있어서 종교(도덕)와 예술(철학, 문학)로 양분되는 각각의 세계에서 그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셋의 삼각관계가 당대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의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운명처럼 펼쳐지는 까닭에 개인적 이기주의나 질투, 탐욕 등의 어떤 가치 판단도 유보되고, 작품의 대단원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탓에 더 이상의 평가는 여기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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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글쓰기
-진주현 교수의 《발굴하는 직업》
지은이는 전쟁 중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들에서 죽은 군인의 신원을 확인하여 가족에게 돌려주는 게 주된 업무인 ‘법의인류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이제는 하와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경험과 실력을 쌓은 여성이다.
이 책 《발굴하는 직업》의 서문은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펼쳐지는 글에는 그녀의 학업과 다소 다른 분야에서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직장생활의 어려움과 그 극복과정, 그리고 직업이 전사자의 발굴된 유해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일인 만큼, 전쟁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고 어느 순간 6·25와 같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일터는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성 산하의 전쟁에서 실종된 군인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한 뒤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일이다. 그녀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4년을 제외하고는 어린 시절과 유학시절 이후부터 줄곧 외국에서 자라고 살아온 터라 돌이켜 보면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제 미 국방성 산하 기관에서 전쟁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 작업에 참여하면서 6·25 당시 청진에서 흥남을 거쳐 피난 내려온 조부모부터 해서 그녀의 오랜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다.
그녀는 신원을 확인한 유해를 그들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지만, 아마도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영혼도 과거를 반추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려보내고, 돌아간다는 진지한 성격의 업(業)이라는 점에서 글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진정성이 돋보이며 책에 어느 순간 몰입되어 열심히 읽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7월 10일 수요일>
러시아적 미학(美學)
예술은 집요하게 죽음을 사유하고,
그것을 통해 집요하게 삶을 창조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이영의 옮김/새움출판사 2022년판
1
극중에서 직업이 의사이자 작가였던 지바고(유리 안드레예비치)가 20세기 격변기였던 시절, 러시아의 역사적 현장 곳곳을 전전하며 불꽃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운명처럼 두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말년에는 비극적이게도 모스크바의 어느 조그만 거리에서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하고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는 슬프고도 허망한 이야기다.
2
이 작품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작품 속 주인공처럼 격변기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맹의 급격한 정치와 사회체제 변화를 거치면서도, 젊어서 시작한 시와 소설 창작 작업을 꾸준히 하며 국내외 잡지에 발표하는 등으로 자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인근의 서유럽까지 그 영향력을 키워감으로서 1958년에는 이 작품으로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다. 하지만 국내 정치적 문제로 자의반 타의반 수상거부를 결정하고 만다.
3
이 작품이 나에게 재미있었던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로 주인공 유리 안드레예비치의 역사와 종교, 예술 그리고 격변기 시대 등 여러 방면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해박한 지식 때문이었다. 물론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는 지성의 총체일 것이지만, 모두가 잘 아는 러시아가 낳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위대한 문인들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고 토양이 된 이 작품을 읽다보면 다분히 러시아적인 혼과 정신이 깊숙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한다.
두 번째로 이 작품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숭고한 희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근본정신이 작품 밑바닥 곳곳에 깔려있음을 보게 되는데, 좀 더 세심한 시각으로 들추어본다면 서구 유럽의 기독교 정신과는 조금 다른 결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이고도 러시아적인, 러시아에서 역사를 처음 열며 대대로 살아 온 슬라브 민족 특유의 민속신앙에 근거한 정신과 감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에서는 서구 유럽의 기독교가 가톨릭과 개신교로 대별된다면, 러시아에서는 독자적인 종교체계인 러시아정교의 영향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세 번째로는 유리 안드레예비치가 만나 비련의 운명적 사랑을 나누게 되는 두 여인, 라라와 토냐와의 애틋하면서도 절박한 삼각관계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도 밝혔듯이 셋은 ‘성적 열망’이라는 본능에 입각한 사랑보다는 역사의 격변에 따른 우연이 자아낸 필연적 결과라는 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애통과 허망함을 불러일으키게 하며,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대개 나타나는 보편적이고도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유감스럽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을 얻어낸다. 그럼에도 우리는 라라가 사랑에 있어서 유리 안드레예비치에게 더욱 영감을 주고 관능적이며 예술적으로 이상적인 여인이었음을 주인공의 작품 말미에 털어놓는 독백을 통해서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제정 말기부터 공산주의 정부인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서기까지 러시아 역사상 최대 격변기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그리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발생 현장별로 작가의 섬세한 필치가 작용하여 아름답고도 낭만적인 러시아적 미학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4
시간이 지나도 보석같이 아름다운 빛을 내는 의미에서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시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와 가치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 언제, 어디서 누가 읽더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고, 독자가 동일하게 인식하는 미학적 공간의 어느 지정된 좌표에서 시대가 지나도록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7월 12일 금요일>
말(言語)의 광활한 세계(世界)
말(言語)은 살아있는 영혼이다.
그 어원을 밝혀내는 작업은
그 민족의 시원을 찾아가는 일이다.
1
-진위 여부에서 논란이 있으나, 번역가이기도 했던 후타바테이는 소설 속의 대사 “I love you”를 고심 끝에 “죽어도 상관없다死んでもいいわ”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같은 문장을 나쓰메가 “달이 아름답네요月が奇麗ですぬ”로 번역했다는 설화는 유명합니다.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 4장 격변하는 근대, 3-문학과 신조어 중에서)
현대 한국어가 있기 전의 한국어의 변천과정에서 외국 언어, 특히 한자문화권이 아닌 서구 유럽에서 들어온 각종 언어를 일본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다. 물론, 이렇게 일본어나 중국어로 번역된, 서구 유럽의 근대문화와 문물을 뜻하는 방대한 단어들(정치, 경제, 법률, 과학, 문학 등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한국, 당시 조선시대 말기 대한제국 초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유입되며 한국어에 영향을 주고 오늘날과 같은 국어가 정착되어 사용되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 땅에 사는 현대인이 고대 사회의 고구려인이나 백제 등 삼국시대 사람들을 만나면 지금 우리가 나누는 것처럼 서로 대화가 가능할까? 그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른 사료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신라와 고구려인들의 말도 서로 달랐다고 하는데…….
오늘날의 한국어의 조상은 고려시대까지, 한국을 포함한 중국이나 일본의 고대 사료를 바탕으로 추적을 해서 밝혀내는 일이 가능하고, 즉,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조상들과는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고 하고,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장담을 할 수 없다 하며, 그 이유는 남아 있는 고문서나 책자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를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듯 고대 삼국시대나 북방의 고조선과 부여 등의 상고시대에 관한 역사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책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어의 어원과 변천을 다루며 중국, 일본, 거란, 여진, 말갈과 같은 고대 여러 민족과 국가 간의 연관성을 다루는 부분은 다소 난해하고 복잡해서 지루한 감을 주지만, 어쨌든 당시의 국가 간 상호교류나 문화, 생활 방면의 공유차원에 유사한 단어가 발견, 발전되는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 없는 이야기로 그 어원(語源)과 관련해 한 가지 떠오르는 이야기로 오래 전 읽은 소설가 최인훈 선생의 산문집에서 본 ‘길’에 대한 명상이 있다. ‘길’은 태곳적부터 있어온 순수한 우리 고유 말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길목’을 들었는데, 길목은 연못이나 샘과 같은 물이 고여 있는 곳과 같은 목적지로 가는 길 인근이나 초입에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는 짐승 사냥과 수렵으로 생활을 연명하던 시대로 물을 찾아 접근하는 초식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동물이 접근하는 길 초입에 사냥꾼들이 숨어 기다리다가 포획했다고 해서 그곳을 ‘길목’이라고 하고, ‘길목 사냥’이라는 말이 생겨났던 것이다. 오늘날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음식이나 술집 장사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 잡으면 ‘길목 좋은 곳에서 장사’한다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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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람지청(出藍之靑)
우리 집 거실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출람지청(出藍之靑)」이라는 액자는 아내가 대학교 졸업하던 그 해에 지도를 해주셨던, 학과교수님이 친필로 써서 졸업생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그때 받은 글귀라고 한다. 오래 전 작고하신 장인어른이 그 글귀를 소중히 여겨 바로 액자로 만들어 아내에게 주셨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 액자를 몇 번의 이사 중에도 소중하게 잘 보관해서 지금껏 집집마다 동행하고 있다.
좀 쉬려고 소파에 앉노라면 액자의 글귀가 항상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출람지청(出藍之靑)’의 출(出)은 그 뜻으로 치자면 ‘어디로 나가다’라는 것인데, 흔히 집을 나가거나 어떤 장소로부터 밖으로 이동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외출, 가출 등이 흔히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왜 ‘뫼 산(山)’ 자가 둘이나 사용되고 위아래로 겹쳐진 채 씌어있을까 라는 의문이 어느 날 슬며시 드는 것이었다(한자는 자연과 사물의 형상을 본 떠 만든 상형문자다). 몇 번 그런 생각을 하며 날이 흐르던 중 어느 날 어떤 생각이 떠오르며 무릎을 딱 하고 치고 말았다.
-일상에서 사람이 집을 들고나는 일에 있어서 육중하고 무거운 태산을 두 개나 이고 질정도의 신중을 기한 후에 출발하라는 의미다. 즉, 모든 일의 시작을 논함에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의미임에 틀림없다. 삼국지의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유비의 권고를 받고 군사(君師)로 나선 제갈공명도 후일 사마의와의 일전을 앞두고 심사숙고해서 출사표라는 명문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건 그렇다 치고, 이 글자를 좋아하는 건 액자 안에 조그만 흰 한지에 펼쳐진 아내의 대학 은사님의 단아한 필체 때문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늘 생기가 느껴진다. 한 획이라도 무신경하게 그어진 글자가 없는 것이 모든 글자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물결처럼 부드럽게 그어진 붓놀림이란! 람(藍)의 맨 아랫단 획은 그 부드러움이 마치 남빛 바닷가에 띄어진 배의 넘실거림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넘실거림은 마침내 청(靑)에 이르러서는 발을 한 쪽으로 살짝 들어 올린 듯 젊은 청년의 흥에 겨운 활기찬 몸짓 같지 않은가. 그러면서 출(出).람(藍).지(之).청(靑)의 네 글자는 각자 제자리에서 단아한 형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아내의 은사분이 평소 즐겨 쓰시는 별호인 듯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액자 한쪽의 빨간 낙관과 함께 조그맣게 씌어 진 두헌(杜軒)은 당배나무 추녀를 의미하고 있었다.)
봐도 봐도 물리기는커녕 보면 볼수록 정감이 어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과연 제자를 가르치신 은사님이 주실 만한 선물 같아 늘 감사할 따름이다.
3
-억지로 고안해낸 언어는 대가의 말을 바보처럼 반복하거나 멍청하게 모방하는 광신적 신봉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예술에서 소위 ‘예술을 위한 예술’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철학에서도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의 시기, 따라서 철학을 위한 철학‘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가 바로 ’텍스트 종교‘가 나타나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글쓰기는 기도가 되고 사고는 주문이 되며 방법은 비이성이 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바보와 앵무새들의 철학에 관하여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미셀 옹푸레>중에서)
1)이 여름에 사색과 철학 세계의 지평을 단 한 방에 넓혀줄 만큼 흥미로운 책
2)시대를 초월해 통찰력 있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다양하고도 놀랍고도 깊은 사색들의 모음집이다.
3)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앞에 복잡하게 펼쳐진 세계에 대해 기분 좋게 사색할 수 있는 통로 100편!
4)이 책은 세계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요약한 한 편 한 편의 칼럼이 모여 이룬, 100편의 시를 모은 시집(詩集)같다.
5)이 책을 쓴 저자의 놀라운 기술(記述)로 어렵다고만 느끼는 철학을 전혀 어렵지 않게 소개한, 철학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는 책
<7월 13일 토요일>
동네, 자연(自然), 그리고 그린(Green)
도(道)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지평을 떠나지 않는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다
-이승종,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
1
매혹
더운 여름날 강에 나가면
볼 수 있다
한순간 긴장을 박차고
강 표면을 솟구쳐 오르는 물고기
죽기 살기로 뛸 때만 보이는
인식 저 밖의 세계
곧바로 이어지는
긴 침묵, 이 안의 세계
2
《도쿄를 바꾼 빌딩들 : 디벨로퍼와 함께 하는 도쿄여행》
-박희윤 作
바이오필릭(Biophilic),
자연과 함께 하는 개발
-지적 사색자Intelligent Thinker가 모이는 도시를 목표로 새롭게 진화시키려 합니다. 글로벌한 지적 사색자들이 서로 만나고 공감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새로운 시대의 비즈니스와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 발신해가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합니다. 도쿄 내에서 독자적인 글로벌 커뮤니티를 만들어 도쿄와 일본의 미래, 그리고 세계의 미래에 공헌하는 지역이 되고자 합니다.
(모리빌딩, <아크 힐즈와 아자부다이 힐즈 에리어의 미래비전> p37)
일본에서 ‘도시 및 지역재생’을 공부한 저자가 디벨로퍼로 이름난 일본의 ‘모리빌딩’에 입사해, 이 회사가 1970년대 도쿄 원거리부터 개발을 시작해 점차 그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시켜, 도쿄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 걸쳐 유명세를 탄 힐즈 시리즈(아크 힐즈, 도라노몬 힐즈, 롯폰기 힐즈, 아자부다이 힐즈)를 소개함으로서, 요즘 한국에서도 불고 있는 도심지 재생 사업과 그 사업의 진행과정 중간에서 이 모든 일을 컨설팅하는 ‘디벨로퍼’라는 신종 전문가에 대한 소개도 이 책에서 아울러 하고 있다.
(*디벨로퍼 : 스스로 시대 변화를 읽어내며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을 찾아내고, 그 산업의 유망기업을 찾아 유치하는 일과 아울러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이 거주할 주거공간과 오피스뿐만 아니라 여유시간을 즐길 상업기능 등을 골고루 갖춘 공간까지 부동산 복합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를 일컫는다.)
‘모리빌딩’의 ‘힐즈 시리즈’ 개발 부분을 읽어가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네’와 ‘자연’과 ‘그린(Green)’이다. 도심(都心)에 자연(自然)을 되돌리고 녹지(綠地)를 넓혀나가는 컨셉(Concept)인데, 그 첫 번째 단계인 아크 힐즈에서는 <옥상정원>이, 두 번째 단계의 롯폰기 힐즈에서는 <옥상에 논>이, 마지막 단계인 아자부다이 힐즈에서는 <과수원과 텃밭>이 등장함으로서 ‘사람과 깊이 관계 맺는 그린(Green)’,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동네’로서의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 컨셉을 구체화하기 위해 모리빌딩은 ‘하라 켄야’라는 지역개발을 위한 컨셉 수립의 세계적 대가와 함께 시대변화와 도시의 역할, 도쿄의 역할에 대해 먼저 정의했다고 한다. 이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정의하고, 그들이 모여서 만드는 아크 힐즈와 아자부다이 힐즈 에리어의 미래비전과 모습을 제안했다고 한다.(이 글 앞부분 참조)
이런 그들의 자세는 오픈 후 37년간 계속 주시해 옴으로서, 높은 비전(Vision)속에 세워진 사업 컨셉(Concept)을 운영단계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대(時代)와 함께 도시(都市)의 이상형(理想型)은 바뀐다!
기존의 용도분리형 도시 구조에서 지식정보사회로 라이프 스타일과 워크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음으로 해서, 일본식 용어인 직주락(職住樂) 일체형 복합건물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저씨들의 동네가 글로벌 신도심이 되기까지 : 도라노몬 힐즈편>이라는 소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저자가 아름다운 도시 ‘도쿄’를 사랑하는 마음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그런 사업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간다.
3
오늘 발견한 세계의 꽉 막힌
우물을 뚫는 통로 3곳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고 지젝은 단언한다. 체 게바라가 “진정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 이끌린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하여 지젝은 칸트의 명제를 비틀어 이렇게 말한다. “잔혹함이 없는 사랑은 무력하며 사랑이 없는 잔혹함은 맹목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신적 폭력과 신화적 폭력 : 「폭력이란 무엇인가」 - 슬라보예 지젝>중에서)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를 대비해 서양 형이상학의 2000년 역사가 음성언어 중심의 역사였음을 밝히고 그런 규명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의 토대를 해체하는 작업을 목표로 삼는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로고스중심주의와 해체의 철학 : 「그라마톨로지」 - 자크 데리다>중에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때 ‘말해질 수 있는 것’이 뜻하는 것은 이 세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계의 표면이다. 세계의 표면은 논리적, 과학적 언어로 기술될 수 있지만, 그 세계 너머의 ‘의미’는 논리적, 과학적 언어로는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포격 속에 써 내려간 철학 일기 : 「전쟁 일기」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중에서)
<7월 15일 월요일>
무더운 여름과 책,
우리 앞에 드러나는 두 가지 다른 세계
독서(讀書)는 일상(日常)이어야 한다.
일상이란 아주 오래된 관습과 같이,
습관처럼 매일 규칙적으로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여러 행위들로 채워진 하루를 말한다.
1
통영
-백석
옛날엔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 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줏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斷想> ‘미역 오리같이 마르고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여성이 일제 강점기에는 있었을 것 같다. 아니, 많았을 것 같다.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원망하며 현해탄에서 같이 바다로 뛰어내려 정사(情死)했다는, 당시 신문에 보도되며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남녀도 있었고……. 시대를 뛰어넘어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하는데, 어째 요즘은 문학작품을 보나 영화를 보나 그런 사랑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요즘 세태에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 것 같다
2
소설을 읽는 묘미
-자네 부친은 튼튼한 분이셨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피로를 호소하지 않으며, 결코 앓아눕지 않고, 죽을 때 큰 돈 안 드는 살림꾼을 뜻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중에서)
소설 속 어느 시골의 본당 신부(神父)가 그냥 매일 쓰는 일기다. 도입부를 조금 지나고 있다. 부임한 마을이 가난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란 신부입장에서 그렇다고 가톨릭 중앙 총무처에서 주는 경제적 지원이 충분치 않아 자신의 직책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고뇌와 마을 신자들과의 갈등이 일기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신부 스스로도 일기를 쓰는 목적이 일기를 매일 작성함으로서 자신의 고민들로부터 고통을 덜기 위함이라고 쓰고 있다.
현존(現存)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자신이 믿고 섬기는 절대자의 현존이 일기를 쓰는 중에 느껴지는 대신 다른 현존(자신의 절대자와는 엄연하게 다르다고 느끼는)이 나타나 자신의 고뇌와 고민, 어려움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작품 속에서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앞으로 차츰 이런 부분에서 치열한 작가 정신이 드러나리라 기대하며, 그래서 골랐던 책이고, 충분히 부응하리라 여겨진다.
지나온 내용 중에는 작가의 실수를 각주를 써서 옮긴이가 밝힌 부분도 있다. 나중에 자세히 알게 되리라 생각해서 각주만 확인하듯 읽어보고는 넘어간다. ‘어린 두 남자애’라는 부분에서 별표(*) 표시가 있었던 것인데, 아마도 결과적으로 둘이 여자애거나, 하나는 남자애고 하나는 여자애 등의 애초 구성을 쉬이 망각한 채 작문 당시의 분위기에 몰입한 채 글을 써나가다 보니 이런 실수가 벌어졌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정도는 실수축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직 어떤 식이든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줄거리에 방금 전의 실수라고 지적된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일기라는 형식이라 하루하루가 작중 신부가 생각하는(조그만 마을의 본당 신부로서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서서히 나타나는 고뇌와 갈등) 같은 방향이되 조금씩 다른 내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다도 서두에 소개한 글귀처럼 소설을 읽는 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작품의 향방을 가르는 줄거리에 서두에 소개한 글귀가 관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겠는데(그건 더 읽어봐야 확실하게 알 듯), 생전에 튼튼한 부친을 둔 자식은, 그것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각해 볼 여지가 되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이런 말이 비록 소설 속에서 등장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로 통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 된다는 사실이다.
3
하루를 뚫어주는 세 가지 통로
-대표제는 다수의 의지로부터 떨어져서 대표자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허용한다. 나아가 스스로 의지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을 대표해서 행동하는 것도 대표제에서는 가능하다. 그런 차원의 대표제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로 이 책은 환경·생태 문제와 미래 세대 문제를 든다. 지구를 대표해 온난화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것,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대표해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대표제의 길, 민주주의의 길 : 「대표」 -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데이비드 런시먼>중에서)
-슈미트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수동성’을 찾아낸다. 낭만주의는 스스로 일관성 있는 이념을 제시해 세상을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는 내적인 힘이 없어, 그때그때 위세를 떨치는 정치 세력에 들러붙는다. 낭만주의자는 상상 속에서는 세계를 창조하는 절대자가 되지만, 현실에서는 더 큰 힘에 무릎 꿇고 그 힘에 봉사하는 무력한 자로 드러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낭만주의와 정치의 잘못된 만남 : 「정치적 낭만주의」 - 카를 슈미트>중에서)
-‘좋은 정신은 건조하다’가 낮의 모토라면, ‘잘 숨어서 산 인생이 잘산 인생이다’가 밤의 모토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건조한 정신으로 이론을 생산하는 작업에 모든 것을 바친 것이 자기의 삶이라는 얘기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건조한 정신과 시적 상상력 : 「아르키메데스와 우리」 - 니클라스 루만>중에서)
4
롯폰기 힐즈의 의미
-하나의 복합 개발이 동네와 도시와 국가까지 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뉴욕의 록펠러 센터가 20세기 도시개발의 상징이라면, 도쿄의 롯폰기 힐즈는 21세기 도시개발의 상징이다.
-사업성과 지역 활성화라는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
-도쿄라는 ‘도시의 진화’에 가장 크게 기여
(박희윤, 《도쿄를 바꾼 빌딩들》, <20년간 8억 명이 찾은 일본 도시개발의 상징 : 롯폰기 힐즈>중에서)
그 성공 이유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1)’세계 수준의 문화 도심’이라는 명확한 목표(Vision)와 컨셉(Concept)을 세우고 1980년대부터 추진해왔다.
2)‘모리 미술관’을 문화 도심에 건설함으로서 문화시설과 함께 하는 풍요로운 삶을 보여준다.
3)다양성과 의외성을 지닌 동네 본연의 모습을 살린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4)글로벌 기업을 유치함으로서 가능성을 실제 성공으로 연결한다.
위와 같이 ‘가능성’을 ‘실제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처음부터 치밀한 기획과 실행을 이어갔는데, 그 중에는 전용률을 높이기 위한 설계 단계에서 디벨로퍼와 설계자 사이에 벌어진 치밀한 노력의 하나로 ‘슈퍼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개발과 일부 고객을 위한 ‘전용 로비공간 확보’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롯폰기 힐즈는 외부에서 연간 4000만(일간 10만)이 다녀가는 일본의 핫한 플레이스로 등극하며, 자연스럽고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며 일에서도 삶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는 명소로 부상했다.
어떤 동네, 어떤 사람이 살면서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라이프(Life) 스타일(Style)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하는 것이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 디벨로퍼(Developer) 본연의 자세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5
호기심(好奇心)
일요일은 하루 종일 무더운데다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는 등의 변덕으로 집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는 반짝 생기 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일어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뭘 하기가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져 가는 것이 요즘의 일상사다.
일상이 이렇다면 우리의 긴 생(生) 또한 그런 걸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 모든 것이 회색빛으로 물들여져 가는 것처럼 물러터지고 아래로 아래로만 자꾸 처지는 것이다.
책은 펼칠 때마다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개성적이고도 특별한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자기가 몸담은 세계를 알 수 없다고들 한다. 저마다 개인은 모든 걸 잘 안다는 듯이 뽐내고 교만을 부리지만 말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호기심이다. 인간 사회와 자연, 그리고 우주와 같은 주변 세계에 대해 부단히 관심을 가지게 하고, 일상시간 속에 조그만 틈이라도 생기면 책으로 허겁지겁 시선을 돌리게 하는 힘은. 그런 호기심은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지금껏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인 것 같다.
<7월 16일 화요일>
책(冊)을 읽는 독자(讀者)의 몫
이야기들은 물음을 통해 독자에게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 뿐,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1
천년의 바람
-박재삼
천 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것을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斷想>
틈만 나면 가만히 마음속으로나 소리를 내어서나 읊조리는 시다. 마음을 다스리기에 아주 그만이다. 쉬이 지치지 않는 마음과 자세, 요즈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중꺽마’이기도 하다. 한평생 살아가는 일은 저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무 것에나 현혹되거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해서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더위에 쉬이 지칠 여름인데.
2
인식의 막힌 지붕을 뚫는 통로,
3가지 이야기
-《생각의 요새》 : ‘사상의 기원’편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진 그 역사적인 날 아침에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최고집정관의 친조카 세 사람을 목졸라 죽여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쳤다. 그리스인의 ‘야만성’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리스 모든 도시에서 가장인 아버지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버릴 권리가 있었다. 그렇게 잔인한 그리스 야만인들이 만들어낸 문명의 정체는 무엇일까?
…(중략)… 알렉산드로스가 인도에서 만난 금욕수행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상시켰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무엇인가?”라고 젊은 왕이 묻자 수행자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권능 있는 자가 된 후에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라고 답한다. …(중략)… 왕은 이 고행자들에게 애착을 느꼈다. 보나르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이 알렉산드로스가 우정의 이름으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바르바로스)을 통합하려 했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의 생각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여주인공이 한 말에 집약되어 있다. “바르바로스는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났으며, 그리스인은 자유를 위해 태어났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인이건 비그리스인이건 형제들이다.‘라는 생각에 도달했으며 실제로 그 관념을 실천하려고 애썼다.
알렉산드로스가 요절하고 20년 뒤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제논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들은 이 세계의 시민이다.” 제논의 생각을 한 세대 먼저 실행에 옮긴 사람이 알렉산드로스였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세계시민주의 이념은 이후 기독교의 창시자 파울루스(바울)에게 이어지고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폭발했다고 보나르는 말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휴머니즘 : 「그리스인 이야기 1·2·3」 - 앙드레 보나르>중에서)
-“너희는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 새벽부터 독한 술을 찾아 나서고 밤늦게까지 술독에 빠져있는 자들아! ……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뇌물에 눈이 어두워 죄인을 옳다 하고 옳은 사람을 죄 있다 하는 자들아!” 이사야는 지배자들의 범죄와 불의를 끝없이 질타했다. 이렇게 인간의 도덕적 타락이라는 문제를 신앙의 본질과 연결한 것이야말로 《구약 성서》가 인류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라고 이 책은 말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구약은 왜 인류의 고전이 되었나 : 「구약 읽기」 - 크리스틴 헤이스>중에서)
-다신교 전통에서 신들의 세계에는 선신과 악신이 뒤섞여 있었고, 희생 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무조건 복을 주는 신들을 따르는 숭배자들이 많았다. 인드라가 대표적이다. 이 신은 숭배자가 죄를 지었는지 올바르게 살았는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권려과 부를 베풀었다.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비윤리적인 신이었던 셈이다. …(중략)…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육체적·도덕적 상태를 보살펴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릴 의무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다른 인간들을 돕고 아낄 의무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가능한 한 동물을 덜 괴롭히고, 식물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북돋우고, 땅을 갈아 기름지게 하며, 물과 불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도 조로아스터교도의 의무에 속했다. 조로아스터의 가르침과 함께 ‘윤리적 종교’가 탄생했고 이 종교와 함께 인류가 ‘윤리적 삶’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했음을 이 책은 일러준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조로아스터와 윤리적 인간의 탄생 :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 메리 보이스>중에서)
3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글쓰기의 쓸모》
-김종원 지음/서사원 2023년판
글쓰기의 매력과 마력
-글쓰기는 책을 읽어 세상을 향한 지식을 얻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을 넓혀나가며 그런 연후에 찾아오는 마지막 단계다.
누구나 글을 쓸 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일기라든지, 메모, 단상(斷想) 같은 이러저러한 글을 조금씩 혹은 매일 일상에서 쓰고 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준비나 자세는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글쓰기를 지금에서 조금 깊게 들어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를 저자는 자신과 관련된 사례들을 들며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당신의 인생이 지금부터 놀랄 정도로 멋진 방향으로 변해요!
라고 하는데 동요되지 않을 독자는 없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글쓰기’다 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 책은 글쓰기의 자세와 방법, 그럼으로써 변화해가는 일상 등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흠모해서 그 대가가 갔던 길의 궤적을 적극 따라갔다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한편으로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서 자신감을 갖게 하는 훌륭한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다. 의지가 강하고 뜻이 동하는 독자는 단숨에 읽어 스펀지처럼 배움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들이 알차게 편집되어 있음을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튀르키예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검은책》을 읽을 때 봤던 어떤 문구가 떠오른다.
-글쓰기의 경이로움……
<7월 17일 수요일>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나는 내 조국을 내 영혼보다 더 사랑한다.
-마키아벨리
1
매미가 돌아왔다
다시, 매미가 돌아왔다
환난 같던 지난밤의 세찬 비바람
물기를 머금어 푸른 생기로 가득 찬 아침나무들
그 풍경 한 켠에서 박수치며 웃는 애기 엄마들
더 이상 궂은 날은 없을 것 같은 예감들과 같이
아니, 아닌 것이
열어놓은 거실 창으로 흘러들어온 시원한 바람과
매미 우는 소리의 아스라함과
울창한 숲의 꿈처럼
매미가 돌아왔다
매미는 해마다 다시 돌아오는
지난날의 새로운 기억이다
2
이성을 밝혀줄
다섯 가지 철학사 이야기
-인도에서는 고(苦)로부터 해방되어 해탈에 이르려 하는 과정에서 ‘내면 지향’의 철학이 발달했고, 중국에서는 난세를 치세로 바꾸려는 노력 속에서 ‘사회 지향’의 철학이 발달했다. 반면에 그리스에서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존재의 흔들리지 않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자연 지향’의 철학이 태어난 것이다. 이때 사유의 결정적인 힘이 된 것이 바로 로고스, 곧 “개념화하고 논증하고 논쟁하는 능력으로서의 이성”이었다. 로고스라는 사유 능력으로 피시스라는 사유 대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곧 철학이었던 것이다. 철학은 오늘날의 과학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다시 쓰는 세계철학사 : 「세계철학사 1」 - 이정우>중에서)
-프로타고라스는 “모든 사물의 척도는 인간이다”라는 명제를 제출한 사람으로 철학사에 길이 남았다. 이때 척도라는 것은 ‘판단 기준“을 뜻한다. 인간이 만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렇게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결국 진리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뜻이 될 터다. 그리하여 프로타고라스는 ’주관적 상대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민주주의자 소피스트의 재발견 : 「소피스트 단편 선집 1·2」 - 강철웅 엮어옮김>중에서)
-플라톤은 인간 영혼이 이성과 기개와 욕망으로 구성돼 있다고 본다. 이 세 부분이 제구실을 하되 욕망이 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이 ‘자기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반대로 욕망이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쾌락으로 질주할 때 인간은 ‘자기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 영혼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정의다. 영혼의 정의는 국가의 정의로 이어진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그리스 고전이 들려주는 정의 : 「아테네 팬데믹」 - 안재원>중에서)
-철학이란 우리를 자유로 이끄는 이 이성을 돌보는 일이다.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외적인 것을 바꾸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올바른 이성의 지도를 따라 마음을 다스려 나갈 때 열리는 경지가 ‘아파테이아’(apatheia,부동심)고 ‘아타락시아’(ataraxia,평정심)다. 이 경지에 이르면 우리는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에픽테토스 철학은 의지에서 출발해 이성을 통과하여 자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윤리학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 「에픽테토스 강의 1·2」 - 에픽테토스>중에서)
-《군주론》은 군주가 될 야심을 품은 자에게 악덕을 속삭이는 책처럼 보이고, 《로마사 논고》는 공화국 시민이 자유와 독립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미덕을 돋을새김한다. 이렇게 상반된 책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이 수많은 논쟁을 낳은 ‘마키아벨리의 문제’ 혹은 ‘마키아벨리 수수께끼’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마키아벨리의 진심 : 「마키아벨리의 꿈」 - 곽차섭>중에서)
3
《도쿄를 바꾼 빌딩들 : 디벨로퍼와 함께 하는 도쿄여행》
-박희윤
도심회귀(都心回歸) 현상을 불러온
디벨로퍼의 최고의 작품
: 도쿄 미드타운
도심에서 일하고 즐긴다는 직주근접형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도심의 매력을 회복시켰다는, 이른바 도심회귀 현상이 일어난 지역이 있다. 그곳은 바로 도쿄의 롯폰기 지역으로 ‘모리빌딩’의 <롯폰기 힐즈>와 ‘미쓰이 부동산’이 재개발에 성공한 <도쿄 미드타운> 프로젝트 덕분이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기에 교외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벌어졌다. 도쿄도 그런 도시의 공동화 현상이 심하게 벌어진 곳이었다. 집이 사라지면서 학교와 병원, 시장 등 생활 인프라가 줄어들고, 그러면 사람들이 더 떠나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여전히 교외의 단독주택에 사는 것을 더 높이 평가했지만, 롯폰기 힐즈와 도쿄 미드타운은 ‘도심에 산다’는 의미를 인식시키는 한편, ‘복합개발에 산다’는 것을 좀 더 종합적이고 진화된 형태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있는데 그건 ‘도시경쟁력’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서울도 그 도시경쟁력을 키우려면 전략적 장소에 롯폰기 힐즈, 도쿄 미드타운 같은 민간주도의 복합개발을 유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도시경쟁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20여 년 전 일본의 상황과 지금의 서울을 비교하면 유사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본 도쿄의 롯폰기 힐즈와 도쿄 미드타운과 같은 프로젝트 성공이 가져다 준 새로운 국가전략의 동력이 된 점과 이들을 주도했던 디벨로퍼들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심의 매력을 회복해 ‘도심회귀’현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7월 18일 목요일>
이보다 더 로맨틱할 수 없는 날에
과감히 알려고 하라!
-이마누엘 칸트
1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
아내가 들려주는 히스테릭 앤 로맨틱한 웃음소리
-밝고 경쾌한 아이돌 음악의 사이사이에 나오는 랩 어조에 맞춰
생각지도 못한 돈이 생겨
(생겨)
얼른 아내에게 말해
(말해)
비가 억수같이 내.리.지.만
(지만)
아내는 곧 기분이 좋아졌네
(졌네)
우하하하 라라라
우랄랄라 히히히
먹고 싶은 것 없니 묻네
(묻네)
없다고 자랑스럽게 답해
(답해)
저녁에 뭐 먹을까 묻네
(묻네)
단호박이 나는 좋아 말해
(말해)
우헤헤헤 랄랄라
하하하하 하하하
아! 아내는 이마트에서 산
단호박 8개들이
세일해서 9980원이
좋았던 거야
(거야)
2
일상과 다른 세계로의 통로 2개
-공(空)이란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자기의 이해관심에서 해방된 상태가 공이며, 그때 공은 무아(無我)와 같다. 무아는 내가 본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에 집착하는 나로부터 떠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무아상태가 되면, 우리는 탐욕이나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한형조는 말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환상에서 깨어나라, 무아의 불교론 : 「붓다의 치명적 농담」·「허접한 꽃들의 축제」 - 한형조>중에서)
카를 융이 주역 점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동시성 원리’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인과적인 연결’을 가리키는 것이 동시성 원리다. 신의 뜻을 물으면 신이 점을 통해 뜻을 알려주며, 인간은 점으로 나타난 그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인과법칙 너머, 주역의 원리 : 「주역, 인간의 법칙」 - 이창일>중에서)
<7월 19일 금요일>
소설이 가진 힘
소와 경쟁하는 개구리와 같아서
이제 자네, 배가 터질 것이네
-나쓰메 소세키, <그 후>
1
우리 곁의 소녀들
썸머는 이제 아홉 살의 어린 소녀다.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가는 나는 썸머의 언니로 열여섯 살이다. 나는 동생을 아주 사랑한다. 오래 전 아이 적의 작은 손을 잡으며 ‘이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고 결심을 했을 정도로 동생 썸머를 사랑한다.
이 집의 문제는 아빠와 엄마가 조금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사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주변의 가상화폐 사기에 넘어가 곧 아파트를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이고, 엄마는 시쓰기에 푹 빠진 채 감상에서 좀체 헤어 나오질 못한다.
동생 썸머는 잘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위기에 봉착했음을 학교나 뉴스 등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동생이 애처롭다. 썸머는 학교에서 가르쳐줬다며 ‘탄소 발자국’이라든가 ‘음식물 폐기처리’ 등에 대해서 기민하게 반응하며 실천하는 모습이 집안 일로 걱정이 많아져 소극적인 나보다 낫다. 그런 나를 동생은 불안한 듯 관찰하기도 한다. 나는 부모님을 비롯해 모든 어른들이 믿음직스럽지 않다. 미래는 정상적으로 다가올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도 그렇지만 이 작품 속에서도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들의 소녀는 살아가는 일에 벌써 어른 못지않게 관심이 많다. 어쩌면 그건 소녀다운 호기심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건 현실에서건 마음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어른들은 이런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의 징후들에 봉착해서 제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
불안하고 두렵기는 어른인 나도 매한가지다. 무슨 영화의 한 장면 같이 내가 지구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마 전 지구적으로 인식은 같이 한다는 데서 불안을 덜기는 하겠지만, 썸머와 같은 주변의 어린 소녀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표정을 바라볼 때마다 안쓰러운 표정이 아니기를 빌 뿐이다.
이건 소설이 가진 힘이다!
<썸머의 마술과학>, 최진영,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2
음미할만한 지식
-기독교는 ‘신 자신이 이 땅으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씻었다는 가르침’을 통해 차별 없는 구원의 길을 열었다. 종래의 철학이 ‘정신의 귀족주의’였다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복음의 평민주의’였다고 난바라는 말한다. 이 기독교에서 모든 기존의 가치가 전복됐다. ‘이제까지 스스로 현명하다고 했던 자가 현명하지 못한 자가 되고, 가치 없는 자가 가치 있는 자가 되는 세계’를 열어 보인 것이다. 기독교는 무력하고 소외된 자들이 모인 ‘사랑의 공동체’였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국가와 종교의 불행한 만남 : 「국가와 종교」 - 난바라 시게루>중에서)
-한반도 근현대사상사의 흥미로운 점은 동학이 보여준 대로 종교가 변혁 사상 형성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근대 사상이 기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세속화 운동 속에서 성장한 것과 달리, 한반도에선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여 민족종교가 발흥한 것이 이런 차이를 빚었을 것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척사파와 개화파 사이 개벽사상가들 : 「개벽의 사상사」 - 백영서 외>중에서)
-마루야마는 후쿠자와가 남긴 가장 큰 족적을 “모든 형태의 ‘혹닉’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짧은 문장으로 설명하는데, 후쿠자와의 전용어라 할 ‘혹닉’이라는 말 속에 일본 정신의 미성숙과 전근대성이 요약돼 있다고 본다. 이 혹닉 상태에서 거들먹거리는 일본의 미래를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는 《그 후》에서 “소와 경쟁하는 개구리와 같아서 이제 자네, 배가 터질 것이네”라는 말로 예고했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마루야마 사상의 건축 현장 :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 - 마루야마 마사오>중에서)
<7월 20일 토요일>
도서관 가는 새길
존재(being)란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결합이
완성되는 삶의 상태인데, 진리란 이런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즉, 음양의 조화와 합일에서 진리가 발생한다.
-D.H. 로렌스
1
문학 표현의 신비
어떻게 네 추모 모임에도 안 오니?
어떻게든 내 추모 모임에도 안 와.
부영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부영이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든.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중략)
아……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사슴벌레식 문답>, 권여선,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2
도서관 가는 새길
딴 뜻은 없고요, 대출기간을 삼 주로 늘려주셨으면 하는 것과, 대출 연장을 하게 되면 혹시 다른 이용객이 대출예약을 하는 수가 있으니, 대출 다음 날 바로 연장을 신청해야 한다고 사전에 안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이야깁니다. 네, 책을 바로 갖다 드릴 게요.
내가 읽는 책 중에 누가 대출예약을 한 권 걸어두어 반납하라는 메시지가 왔던 것이다. 그럴 줄 알고 반납 하루 전에 인터넷 상에서 한 주 연장을 모두 신청해서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니까 다른 이용객이 내가 빌려간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책에 대해 대출예약을 했던 모양이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반납 하루 전에야 연장 신청을 인터넷으로 한 것이다.
얼른 편안한 외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아내에게는 도서관에 급하게 반납할 책이 생겼다고 말하고 나온다.
그러니까 지난 달 중순쯤이었다. 그 날 난 기차역으로 가서 전철을 이용해 타 도시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갔다 오는 길에 혹시나 해서 도서관 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도서관 공사가 길어지고 있었던 탓이다. 내부 리모델링이라고 했는데 제 날짜를 지키지 못하고 올 유월까지 반년이나 연장해서 공사를 진행하여 도서관 이용을 못하게 하고 있었다.
좁고 오래 된 길을 벗어나 도서관 앞의 대로에 막 접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전면이 완전히 바뀐 모습에 새롭게 조성된 주차장이 원형으로 차를 받아들이고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7월 초에 책을 빌릴 겸 도서관 구경도 할 겸 가면서 새롭게 발굴한 길이 있었는데 마침 그 사이 아파트 재개발 공사가 끝나면서 깨끗하고 조용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갖다 줘야 하는구나. 다음에 다시 빌려보지 뭐.
그러나 책이 그렇게 손을 떠나가면 대개 다시 집어 드는 일은 드물었다. 강렬한 인상을 준 책이라면 벌써 읽었을 테고, 빌려온 많은 책 중에서 지금껏 남아서 여전히 읽어야 할 것 같으면 안 읽어도 그만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시대적 추세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정도로 대규모 도심개발을 하여 주변에 많은 이용객을 불러 모으고, 자연 친화적인 그린환경으로 변모시키며, 인근 주민과 함께 번영하고 변화하는 친근한 도시 등 미래형 도시 개발조성의 모델이라고 소개하는 책이었다. 그런데 난 빌려 온 책 중에서 지구의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다룬 이야기를 이미 읽은 터라, 모든 일에는 급하고 중요한대로 선후가 있듯 이 시대 이 시기에는 급해도 아주 급한 불인, 지구의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대응방안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구체적 실행에 관한 책자들이 더욱 이슈가 되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개발이 급한 게 아닌 것이 앞서 언급한 책에서 이야기하듯, 이런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어른들은 하나같이 돈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무지막지한 전 지구적 개발이 지금의 기후변화를 초래하며 위기를 불러들인 주된 원인 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사람들은 돈에만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도서관으로 가는 별로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에서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짝 들은 이야기도 하필이면 돈 얘기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나와 주택가를 오 분 정도 걸어서 지나면 이어서 나타나는 큰 차로를 건너야 하고 그때부터 도서관에 이르는, 최근에 발굴한 길은 모두 새 도로로 지나다니는 통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하고 조용한 길이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 주변에 나는 길은 파란 잔디와 나무를 잘 조성해서 깔끔하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놓은 게 지나다가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조용하다. 마침 어느 아주머니는 집에서 같이 사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있고, 주변에 나무가 성글한 파고라 밑에서는 어느 노인이 조용히 혼자 주변을 돌아보며 쉬고 있다.
지금까지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이라곤 서넛 정도가 될까 싶다. 책 대출관련이기는 하지만 이제 오전 열 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책을 넣은 하얗고 조그만 베로 만든 장바구니를 들고 한적한 시골 길을 걷듯 걸어왔으니 마음이 푸근하다 못해 날아갈 듯하다. 도심지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기란 얼마만인가.
농고 뒷마당에 지어진 아무도 없는, 온갖 채소와 푸른 식물이 사는 투명한 자재로 지어진 사각형 온실과 그 옆 초록색 아스팔트 공터에 만들어진 농기계 훈련장과 대기 중인 깨끗한 중장비들을 구경하는 재미란. 나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방해할 그 아무 것도, 그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제는 종일 소나기까지 내려 도로에 일부러 물을 뿌려놓은 듯 시원한 청량감까지 느껴지니.
로비에 새롭게 설치 된 대출과 반납전용 기기가 보인다. 전날 방문했던 때처럼 도서관 꼭대기 층인 사 층부터 중정에 꾸며진 아름다운 나무들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빛으로 로비는 벌써 환한 동화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화려하다.
책 가져왔어요? 반납했어요?
네, 이제 반납해야죠.
오픈형으로 꾸며진 열람실 내부는 여기저기 책 읽는 이용객들로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좋다. 오늘 난 책을 읽으러 온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기기가 반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옆에 역시 책을 반납하러온 얘기 엄마가 서 있어서 얼른 한 번 더 기기를 작동시키지만 역시 선선히 반납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도서관 사서와 마주치기가 싫어서 혼자 처리하고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이것마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두 명의 사서가 머리만 빼꼼 내다보이는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가서 처리한다.
미안해요. 다른 뜻은 없었고 대출 기한을 한 번에 삼 주 정도로 늘리는 방안에 대해 한 번쯤 검토해달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정말 없었어요. 열 권을 대출하는데 이 주는 시간적으로 좀 그렇잖아요. 정 안 되면 대출 때 연장하고 싶으면 바로 다음 날 인터넷 상으로 연기하라고 안내라도 좀 해주시든가. 그 정도……. 그 말이었어요. 아까 전화로 길게 실례했다면 정말 미안합니다.
도서관을 나오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런.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오래 전에 부러져 수술한 발목이 잘 견뎌주기를 바라며 이를 악문다.
3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작가,
D.H. 로런스의 사상 두 가지
-로런스가 더 주목하는 것은 이 고대 이교도의 서사에 담긴 우주적 인간 이해다. (중략) “우리와 우주는 하나다. 우주는 거대한 생명체이고 우리는 그 일부다. 태양은 거대한 심장이며 그 진동은 우리의 가장 작은 혈관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고대인들에게 우주는 이렇게 인간을 포함한 살아있는 전체였디. 그런데 현대인들은 과학이라는 합리적 지식으로 우주를 죽은 천체들의 집합으로만 이해한다. (중략) 우주와 인간의 원초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 이것이 로런스가 말하는 아포칼립스(Apocalypse), 곧 현대 문명을 넘어선 새로운 인류 문명을 향한 비전이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계시록에서 찾은 새로운 문명 비전 : 「아포칼립스」 - D.H. 로런스>중에서)
-이 ‘존재’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결합이 완성되는 삶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켜 로런스는 ‘진리’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음양의 조화와 합일에서 진리가 발생한다는 로런스의 진리관은 니체나 마르크스에게서 볼 수 없는, 서양 사유의 한계를 돌파하는 지점이며, 바로 이 지점이 로런스의 사유가 불교 사상, 노장 사상, 후천개벽 사상 같은 동아시아 사유와 만나는 접점이 된다고 백낙청은 말한다.
나아가 로런스는 바로 이 존재론과 진리관에 입각해 자신의 고유한 민주주의론을 제시하는데, 그 민주주의는 단순한 평등이나 자유를 넘어 “열린 길을 가고 있는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민주주의”이다. 이 만남은 “영혼들 간의 기쁜 알아봄이요, 위대한 영혼과 한층 더 위대한 영혼들에 대한 더욱 기꺼운 숭배다.”
백낙청은 이런 영혼들이 “말하자면 불보살들이며 ‘길이 열리는 대로 열린 길을 걸어 미지의 세계로’ 가는 ‘도인’(道人)들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도인들의 민주주의가 바로 문명의 대전환을 통해 열리는 후천개벽 세상의 새로운 인간질서가 될 것이라고 백낙청은 전망한다.
(고명섭, 《생각의 요새》, <로런스에게서 찾은 개벽사상 :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 백낙청>중에서)
<7월 21일 일요일>
사색의 정원을 거닐다
*《생각의 요새》-고명섭 지음/교양인 2023년판*
1
-자기 자신에 대해 탈합치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관성대로 살지 않고 진정으로 실존하는 삶을 사는 길이다. -《탈합치》, 프랑수아 줄리앙
*탈합치(De-coincidence) : 실존을 가로막는 기존의 자기적응에서 벗어나기
2
전 세계의 철학과 사상, 종교, 문학, 정치, 예술, 사회 등을 대표하는 각 분야별 100권의 책과 저자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책의 주요 내용을 짚어보며 독자로 하여금 사색의 정원으로 초대하여 잠시 생각을 다듬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3
제1장 사유의 길 : <마비된 자아에서 빠져나오기>, 《탈합치》-프랑수아 줄리앙 외 14편/제2장 생각의 요새 : <체계이론과 주체 없는 사회학>, 《사회적 체계들》-니콜라스 루만 외 16편/제3장 사상의 기원 : <조로아스터와 윤리적 인간의 탄생>,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메리 보이스 외 19편/제4장 회통에서 개벽으로 : <한국사상사의 저류, 영성의 힘>, 《조선사상사》- 오구라 기조 외 18편/제5장 마음과 우주 : <계시록에서 찾은 새로운 문명 비전>, 《아포칼립스》-D.H. 로런스 외 16편/제6장 지혜의 시대 : <지혜가 다스리는 세상을 향해>,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백낙청, 창비담론 아카데미 외 11편, 해서 모두 100권의 책에 대한 100편의 리뷰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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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당 평균 다섯 페이지의 분량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 《생각의 요새》를 엮은 저자 ‘고명섭’의 핵심을 찌르는 책 소개와 자세한 부연설명으로, 소개하는 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쁨과 처음 접하는 새로운 사상이나 사유에서 오는 신선함, 한 번에 많은 다양한 고급 서적을 대하는, 마치 다양한 음식으로 채워진 고급스러운 뷔페를 찾은 것 같이 기분 좋은 포만감을 듬뿍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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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훌륭한 시 100편이 수록된 시집(詩集)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한 편 한 편이 개성이 강하고 내용도 다른, 그러면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신선하고 깊은 성찰이나 통찰이 주는 은은하고 담백한 기쁨의 감정을 느끼는 시집 말이다. 시가 그렇지 않은가. 한 편의 좋은 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도달해 있는 감정적 희열. 시인의 깊은 사색을 들여다보는 잔잔하고도 은밀한 기쁨. 동일한 인식과 공감대 형성을 통한 존재의 합일 등을 우리는 시라는 작품에서 보통 요구하는 덕목인데 이 책 《생각의 요새》를 통해서 그런 유사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6
책을 사서 손을 드리우면 항상 집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두고 하루에 세 편 정도 편안한 시간에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읽으면 좋겠다.
<7월 22일 월요일>
문학에서의 연민
그 어느 사회도 ‘가난한 자’를 눌러 이기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어리석음, 허영, 악덕에 기대어 산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애덕*으로 살아간다. 이 얼마나 숭고한 말인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주 베르나노스
*애덕 : 타인의 애덕의 발현, 자비 덕분에 살아간다는 뜻. 바꾸어 말하면 상대방은 가난한 자의 존재
덕분에 애덕을 행하게 된다는 뜻.
1
월요일 아침의 단상(斷想)
미지(未知).
미지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세계에도 있다. 현재의 세계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우주가 처음 생성되었다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아는가. 인류의 기원보다 한참 앞서는 우주의 기원이라는 과거에 대해서 아직 인간은 잘 모르고 있다. 인류의 기원도 과학의 원리로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은 그마저 지금 가능하지 않다. 확실히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진리는 현재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아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
왜소한 의식.
오천 년 전의 세계, 우리가 원시 문명(야만이라는 뉘앙스가 어느 정도 포함된)이라고 폄훼하는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건강하고 생기가 넘치는 우주를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채 우주와 합일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우주는 이제 발달된 과학이 가르쳐 주는 캄캄한 어둠 속의 죽은 세계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삶은 우주(생명체가 살 수 있다고 해도)까지는 아직 요원하고, 그렇지 않아도 작아서 좁고(그전에는 그 영역의 끝없음에 두려움을 느끼기까지 했던), 인류 역사가 진행되어 오며 그만큼 좁아진 지구 안에서 사람들은 이제 부와 권력만 탐하는 왜소한 의식의 세계로 전락했다고 한다. 19세기 초 영국 어느 학자의 말처럼 ‘과학에는 사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라는 말이 가만히 떠오른다.
인심은 가난하던 그 시절이 오히려 좋았어요. 요즘은 각박해요.
인류의 황금시대는 다가올 미래가 아닌 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황금시대는 먹고 사느라 바쁘게 모르고 지나친 그 시절 그 어느 곳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최대 문명을 구가한다는 요즘 인류는 본능에만 충실한, 생존과 종족보존에만 모든 의식이 몰려있는 궁극적으로 아직 미명이지 않을까. 이성이라는 인간 최고 권능이 실은 인간 스스로를 자승자박하는 올가미이자 스스로 판 함정이지 않을까.
고층 아파트에 살아보니 하늘을 볼 시간이 많아서 좋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본 하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매일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문득 아파트 저 밑에서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 소리가 들린다. 얘들은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 천진난만함은 얘들의 세계에게서만 볼 수 있다. 그것은 매일 쳐다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하늘과 같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과 무구함의 세계. 자주 볼 수 없는. 그리고 그것은 그나마 우리 주변에서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조차 자연에서 동물이 소리 없이 멸종해가듯 멸절되어 가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에서, 삶터에서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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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정영란 옮김
지금 이 소설을 읽는 묘미
-그는 특히 자신이 몸담고 사는 거친 환경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비슷한 청년들이 흔히 그렇듯 그도 도시로 나가 자리 잡을 꿈을 꾼다. 그의 글씨체는 반듯하다. 그러나 말이다! 종류는 다르다지만 대도시의 거친 환경도 내가 보기에는 여전히 위험하다. 그것은 아마 보다 은밀하게 작용하면서도 보다 전염력이 강할 것이다. 마음 여린 사람은 그런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법이다. (p126)
‘1936년 발표’로 되어있는 작품연도로 보건대 1930년대 전후의 당시 프랑스 사회는 지금 한국 사회처럼 시골에서 도시로 젊은 청년들의 이동이 빈발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시골이 지닌 열악한 작업환경(거친 환경)과 도시가 지닌 덫과 같은 욕망(은밀하면서도 전염력이 강한, 마음이 여린 사람은 좀체 빠져나오기 힘든) 탓일 게다. 글씨체가 반듯한 젊은이처럼 순진하고 순수한 시골 청년들은 특히나 영혼이 상처받기가 쉽고 고향의 시골 살이 같이 예전의 순수함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신부는 자기가 맡고 있는 시골 본당의 젊은이들이 지역에 남아 삶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별로 먹는 것도 없는 나의 식사 습관과 내가 내놓는 빨랫감도 많지 않아서 그녀로서는 시간이 남아돈 게 사실이다.) 그녀는 신통찮은 일에 자기 자신을 투자하기 싫다는 소리를 덧붙였다. (p127)
1930년대 당시 프랑스 사회는 시골이라도 아무 허드렛일이라고 닥치는 대로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층 계급의 노동자들조차 자의식이 형성되어 자신의 삶과 성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자기애(自己愛)’적인 삶을 추구했던 모양이다.
-좋은 성적에 대한 상을 나눠주는데 그 아이가 상본을 받으러 제의실로 들어왔다. 그 아이의 고요하고 침착한 눈 속에서 나는 내가 고대했던 연민을 발견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내 두 팔이 저절로 그를 잠시 둘렀고 나는 그 아이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p129)
앞으로 계속 읽어나갈 이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라는 작품에 나오는 신부는 마음이 아주 여리고 감수성이 짙은 성품의 사제가 틀림없다. 자신이 사역을 맡은 시골 본당 교구 내의 가난하고 억압을 받는 지역주민에 대한 연민이 그의 일기장에 계속 언급되고 있다. 특히, ‘가난’을 대하는 당시 여러 계층·계급의 다양한 양상이 드러나고, 아울러 경험 많은 선배 신부들의 신앙과 교리 속에서 생각하는 ‘가난’에 대한 여러 의견도 함께 나타난다.
-“비록 그대가 하느님과의 열락에 취했을 때라도 만일 어떤 병든 이가 국 한 그릇 달라고 청하면 제7천국¹에서 내려와 그가 청하는 것을 주라.”라고 하지 않으셨나. (p133)
*¹ : 최고의 천국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작가가 기독교 가톨릭 사제의 삶에 정통해서 많은 자료조사와 탐구를 집필 전에 선행했을 것이고, 서구에서는 이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하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현재진행형인 가톨릭 신앙생활의 다양한 모습과 그 깊이에 대해 작품 속에서 보다 긴밀하게(소설은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알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에서 자주 언급하는 ‘천국’이라고 하면 하나뿐인 ‘천국’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본문 언급에서 나오듯이 ‘제7천국’이 있다하면 ‘천국’에도 각기 다른 여러 등급의 ‘천국’이 존재하며, 보다 구체적인 개념을 떠올릴 수 있는 ‘천국’이 가톨릭 교리에 있다는 의미로 소설 작품을 읽기 이전과 다른, 기독교세계의 ‘천국’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과 이미지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7월 23일 화요일>
책과 꿈 이야기
소설을 읽다보면 신기한 일들이 주변에 생겨요.
-소설가 김영하의 천안시 교양강좌 제목
1
책과 꿈 이야기
간밤에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반갑게 오셔서 나를 보고 웃는다. 운동장에는 새롭게 깐 아스팔트가 평탄하지 않다. 대신 작은 파도치듯 굴곡이 심하게 펼쳐져 있다.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알고 보니 사무실은 별도로 위치해 있었다. 사무실 구석의 내가 앉을 책상 옆에는 체육수업에 쓰이는 바닥 매트가 젖은 채 깔려있다. 사무실은 컨테이너 모양으로 좌우로 길다. 누군가 찾아왔다. 자신을 건축주라 해서 내가 ‘건설’을 맡고 있고, 공무를 맡은 직원을 소개한다. (꿈은 이보다 좀 더 내용을 가진 채 길지만 꿈의 중간 중간이 생각나지 않아 앞뒤가 다소 맞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는 인근 도시에 건물을 새로 짓는데 감리를 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문의였다. 협회에 올린 자료를 보니 내가 사는 집이 가까워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실은 난 올 2월에 어느 도시의 사옥을 짓는 감리감독 업무를 종료하고 5개월째 집에 있는 중이었다. 물론 아내의 등쌀이 따갑기는 했지만 무료하지는 않았다. 매월 기한을 정해두고 일정량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매일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일상을 규칙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취직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취향에 맞는 독서습관과 글쓰기를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이뤄나감과 취직이 모종의 관계가 있는듯한 예감이 들어 기분이 묘하다. 만약 취직이 된다면 독서일지는 당분간(약 20개월) 못 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한 달 전인가 집 앞 큰 도로에 있는 육교를 건너려고 길을 걷다 육교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인기 소설가 K씨를 시청 강당에 강사로 초빙해 듣는 교양강좌 소개였다. 제목은 이러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생기는 신기한 일들
제목이 정확한 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에 프린터기가 없어서 어찌 어찌 찾아간 PC방 주인여자(전에 자주 이용했던 PC방은 자취가 없고 헬스장이 대신 들어서는 바람에)의 남편도 전북 김제에서 감리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사에 인연이란…….
2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정영란 옮김
작품 속 사제의 고뇌
-색정은 생명의 원천 바로 그곳이다. 창조력이 없는 색정은 인류에게 부여된 가냘픈 약속을 배아 때부터 더럽힐 뿐이다. 색정은 아마도 우리 인류가 가진 온갖 흠집의 근원이자 원리일 것이다.
-위선이 벗겨져 나간 쾌락의 면모는 바로 고뇌의 면모다.
-아무리 어렸지만 나는 술에 취한 것과 다른 것에 취한 것을 정말 잘 구별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다른 것에 취한 것만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고집스럽게 저항하는 것은 교만이 많은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여성의 얼굴을 들여다 본 것은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중략)… 오늘은 호기심이 더 우세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호기심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건 마침내 엄폐물 없이 다가오는 적을 대면하러 참호 밖으로 나오는 모험을 감수하는 병사의 호기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깊은 진정성을 결코 삶에 걸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략)…그것을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본다면 앞뒤가 분명하고 명백해진다. 그러면……? 그러면 사회가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인공 손과 발을 죽음으로 앗기고 나면,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기네들도 모르는 새 그렇게 되어버렸던 모습, 발육부전의 흉측한 괴물, 왜소증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이상은 작품 내용 중에서 발췌)
사람은 저마다 고뇌가 있는 법이다. 이 작품 속 사제는 자신이 맡고 있는 본당 신자들로 인한 고뇌로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사제직을 내려놓을 것도 고민하고 있다. ‘나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고집스럽게……’부분은 고뇌로 인한 위궤양으로 고생하면서도 치료받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소증에 갇힌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 보인다. 인간은 신이든 사상이든 철학이든 강력한 믿음이나 신념으로 거인같이 우뚝 솟은 영혼으로 세계를 굽어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동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그 의식부터 왜소해지며 눈앞의 자잘한 현실에만 매달려 광활한 우주부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내면까지 아무 것도 보려들지 않고 오로지 고개를 자신이 걸어가는 땅으로만 처박은 채 양어깨가 축 처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
<7월 24일 수요일>
한여름에 꾸는 꿈
책은 작가와 삶의 비밀을 나누는 은밀한 장소다.
무더운 한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이 다가오면 지나간 여름의 시간들은 언제나 마치 꿈같이 여겨진다. 인간의 모든 지난 시간은 이렇듯 꿈같이 지나갔다.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남아 있는 것이 무엇 있는가. 기록과 남은 유물의 일부를 통해서 까마득한 당시를 유추해 볼 뿐이다. 우리가 사는 현재 세계도 지금 꿈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중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분이다.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생명은 여전히 땅에 사는 인간들에게 남아 있다. 땅에는 오직 삶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은 꿈이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는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꿈이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생각해본다. 우리가 있는 현실은 이데아의 현존이다. 그러니까 현재는 이데아의 꿈인 셈이다. 그리고 이데아는 우리의 현실 밖에 따로 존재한다. 그 이데아가 바로 진짜 실존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현실은 꿈의 세계, 곧 꿈 그 자체인 것이다.
7월의 무더운 여름도 막바지다. 6월의 초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지루하고 길었던 장마가 곧 끝날 모양이다. 비가 그치는 간간히 언제 찾아왔는지도 모를 매미의 울음소리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의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에서 청량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긴 열대야의 8월이 오고 곧 가을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덕분에 이 여름 시간이 잘 지나갔다. 손이 가는대로 시선이 가는대로 빌린 책들이지만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사는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책 읽기,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겨보기였다.
나이가 들수록 완고해진다고 한다. 책에는 급진적이고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생각이나 사상들이 많았다. 하지만 읽는 그 당시뿐이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현실은 그런 고귀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는 이제 역부족인 듯싶었다. 누군가는 삶 자체가 모순이라고도 한다.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고도 한다.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삶. 그런 삶을 그런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살아왔다. 이번 여름에 깨달았지만 금명간 또 잊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더 많이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중요하거나 더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해서 안 잊고 살기 위해 계속 기록이나 메모를 남겨둔다. 읽기를 통해 머문 생각을 글쓰기로 연결하는 것이다. 아무튼 7월도 잘 보냈다. 8월도 계속 잘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잘 보내기를 바란다.
나의 7월 독서일지를 꾸준히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서도 건강하게 여름을 나시기를 기원한다.
(202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