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봄철이던가?
시골집에 있었을 때다. 아내 혼자서 구장터에 있는 자동차정비센터에 들렀다.
차체를 들어올려서 차의 하부를 얼핏 확인했다고 한다.
'엔진오일이 새는 것 같습니다'는 말을 들었다는데도 바쁜 일이 있어서 수리하지 못한 채 귀가했다고 말했다.
차는 낡았고, 운전미숙으로 접촉사고를 자주 내어 차체균형이 틀어졌는지도 모르겠고, 바퀴도 닳아서 늘 불안해 했다. 여기에다가 이런 말을 들은 뒤부터는 운전하는 것이 더욱 찝찝했다. 더군다나 방어운전 개념이 적은 아내가 운전할 때면?
며칠 전 시골집에 있었다.
텃밭 일이 잔뜩 밀렸는데도 '장맛비가 올라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는 내가 서둘러서 서울로 올라왔다.
비 내리기 전에 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
서울에 올라온 뒤에 아내한테 '자동차 정비업소에 가 보라'고 여러 차례 재촉했는데도 자꾸만 머물거렸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제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출발하기 전에 고개 숙여서 차 앞쪽 밑바닥을 바라보니 물이 떨어져서 제법 고였다. 여전했다. 내가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맛을 보았다. 맹물이지 결코 엔진오일은 아니었다.
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낡았다.
둘째는 운전이 서툰 아내와 애들이 하도 많이 접촉사고를 일으켰기에 차의 상태가 늘 불안했다. 차의 바깥 천장만 빼고는 나머지 다른 부위는 몇 차례나 바꿨다고 말할 지경이다. 과장된 말이지만 차 외모는 맞는 말이다. 최근에도 접촉했다는 증거로 흠집이 여러 군데나 있다. 특히 운전석의 반대쪽인 오른쪽 후미는 더욱 심했다.
셋째는 운전 개념이 미숙한 아내가 자동차 키를 내놓지 않고 운전하려고 했다.
시력이 나쁜 내가 운전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부리는 듯싶다.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현대자동차 수리센터에 갔다.
아내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게끔 엇비슷하게 주차했다. 주차 실력이 부족했기에.
'차 앞, 엔진부위 밑에서 물이 샙니다.'
내가 말했다. 나이듬직한 정비사가 차의 앞 부분을 힐끗 쳐다보았다.
'냉각수가 떨어지는 현상이어요. 집에 에이컨이 있으면 물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한눈에 진단했다.
멀쓱해진 나. 그런데도 정비사는 자동차 키를 받고는 차를 몰고 정비실로 갔다.
나는 아내와 함께 사무실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정비사가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와서는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내 걱정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수리비는 얼마쯤 되나요?' 하고 물었더니만 '수리비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수고했어도 시간으로 계산하면 그게 다 비용이다, 수리비를 청구하는 게 맞은데...'
내 생각과는 달리 무료 서비스한 '현대자동차 수리센터'에 고마워 했다.
아내는 아파트로 돌아가고, 나는 잠실역에 있는 교보문고 잠실지점에 들렀다.
국어학 코너에서 한국어, 한글학 이론서적을 잠깐 들쳐보고는 옆에 있는 문학 코너에도 눈길을 돌렸다.
아름다운 우리말 사전, 올바른 글쓰기, 수필 쓰기 책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었다.
나는 띄어쓰기, 맞춤법에 관한 책을 뽑아서 살폈다.
혹시나 최근에 나온 책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 옆 코너에는 우리나라 지리학, 인문지리에 관한 책이 잔뜩 있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꺼냈다. 얼마 전, 고향 후배한테 선물받은 책에는 보령지방의 지리, 문화, 생활사 등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택리지'의 내용 가운데 몇 줄이 인용되었다.
택리지 전체를 잠깐 흝어보고 싶었다. 번역본이 두 권.
저자인 이중환은 1750년대 이전인 우리나라 전역을 30여 년간 둘러보고는1751년에 책을 냈다.
팔도의 풍속, 산세, 인심, 산물 등을 조금씩 예로써 사람살기 좋은 곳을 선정했다.
의외롭다.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내가 사는 서해안 갯바다 근처의 작은 마을도 나왔다.
1750년대 이전의 자연환경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2017년 지금 내가 보기에는 우리 마을은 별로였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냥 평범한 농촌마을이다. 뒷산 꼭대기라고 해야 해발 120미터에 불과하다.
뒷산에 올라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안 바닷가 바로 펼쳐진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마을이다. 옛이름은 곶뿌래이다. 옛이름은 언제적부터 있었는지는 몰라도 위 택리지에는 남포현 화계리(花溪里)로 나온다. 지금은 구룡1리 화망(花望)마을이다. 한문풀이라면 꽃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화락산(花落山) 서편 자락이 눈앞에 있고.
1990년대 초에는 마을 동쪽에 농공단지가 들어서서 마을이 줄어들다. 또 2016년 작년에는 일반산업단지로 조성되어 남쪽 앞산이 깡그리 사라지고 있었다. 흙을 긁어내려 앞뜰을 메꾸고 있었다. 지금껏의 자연환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으로 변질되고 있다.
거듭 읽어도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이렇다할 아무런 특징도 없는 산골이다.
나는 한자 실력이 없기에 원문은 읽지 못한다., 한글 번역 책을 고르고 싶다. 다른 번역본이 있는지를 더 확인한 뒤에 책 사려고 마음먹었다.
국어학 코너, 글쓰기 코너에서 책을 눈여겨보았다.
나는 글쓰기에 관한 공부를 쓰지 않았기에 일흔 살인 지금도 글쓰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내 딴에는 맞춤법에 틀리지 않으려고 해도 늘 틀렸다.
나는 1956년부터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6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도 글 읽는다.
글이야 어느 정도껏은 이해가 된다. 또 글 쓰는 데도 그다지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쓰려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도 안다.
특히 입말이 어렵다. 표준어가 아닌 지방말이다.
옛말(소리)인 시골말투로 글 쓰면 자주 틀린다.
나는 어문규정의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정말로 어렵다.
나는 서해안 중부 시골의 옛말이 입에 배었다. 여기에 1956년 내륙지방인 대전으로 전학가서 11년간 살았기에 대전, 옥천, 전라도 쪽의 말투에도 귀에 익었다. 또 서울에서도 사십 년 가까이 살았기에 내 말은 여러 곳의 말이 함께 뒤섞여 있다.
나는 직장 다니면서 컴퓨터로 공문서를 읽었고, 컴퓨터로 글 쓴 지도 30여 년이 훌쩍 넘는다.
퇴직한 뒤에는 시골에서 서울 올라올 때마다 사이버 세계인 카페에서 글 읽고, 나도 잡글 쓴다.
그런데 이따금 아쉽다. 남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배우는데도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어색하고 잘못된 경우도 있기에.
2.
지난 6월 말, 시골집에 있을 때 책을 낸 후배가 한 권을 나한테 건네주었다.
충남 보령지방 구룡리의 지리, 역사, 농촌문화, 일제시대, 1950년의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도 수록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성씨(姓氏)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이 책을 발간하기 전에 큰당숙이 가져온 초안 반쪽을 다듬었다. 내 조상에 대한 내력이었다.
그런데도 책에 오른 이름 가운데 漢字 하나가 족보와는 달랐다.
한글 이름 뒤에 괄호( ) 안에 넣은 한자 하나가 달랐다.
초안일 때 내가 잘못 다듬어서 건네주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아니면 누군가가 수정된 원고를 타자로 칠 때 실수했나?
저자(著者)도 실수할 수도 있다고 본다.
책으로 발간된 이상 고칠 재간이 없다. 별 수 없다. 나중에 책을 재발간할 때나 보완해야 할 터.
이처럼 활자로 인쇄된 뒤에는 오류를 발견해도 빼도박도 못한다.
나중에 재발간할 때나 수정이 가능할 뿐이다.
실수,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초안일 때에는 여러 차례나 다듬는다.
그런데도 나중에 보면 틀린 곳이 더러 눈에 띄인다.
글 잘 쓰는 비법은 있을까? 나한테는 없다.
지금껏 썻던 글을 다시 한 번이라도 더 다듬는 습관을 들이는 것밖에는.
나는 반성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잡글을 길게 썼다.
3.
이 글 쓰는데, 아내는 '김치를 담그려고 해요. 푸성거리를 사러 시장 다녀올 터이니, 그 동안 파 다듬어 주세요'라고 나한테 부탁했다.
'서울 올라온 내가 잘못이지' 궁실거리면서 컴퓨터를 껐다.
베란다에는 쪽파 한 단, 대파 한 단이 있다.
텃밭 세 자리에 농사 짓는 나로서는 한두 줌의 채소를 다듬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숫돌에 과도를 날카롭게 간 뒤에 쪽파와 대파의 밑둥을 잘랐다.
나는 일하는 게 재미 있다. 더군다나 내가 잘 아는 채소이기에.
파를 다듬은 뒤 수돗가에서 씻었다.
파 뿌리도 씼었다. 말린 뒤 물 끓여 마실 수도 있기에.
식재료를 다음고 난뒤에 나오는 껍질, 찌꺼기들은 쓰레기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정갈하게 다듬으면 훌률한 식재료가 된다.
시골에 주소지를 둔 나로서는 식재료가 다 소중하다. 쓰레기통에 쏟아버려야 할 식재료도 아끼려고 한다.
식재료 속에는 농사꾼의 정성이 가득 들어 있다.
농작물을 수집하고 운반한 중간 유통업자, 최종으로 판 장사꾼들의 수고도 잔뜩 들어 있다.
어제 일이다.
아내는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들깻잎을 잔뜩 사왔다.
'이거 너무 싸요. 깻잎을 따서, 갯수를 헤아려서, 끈으로 묶는 품값도 안 나오겠네요. 농사꾼은 뭘 먹고 산대요?'
아내는 서울 아파트에서 사는 소비자이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다 걱정해 주다니...
나는 안다.
농작물(어물, 임산물, 축산물 등 모두 포함)이 너무나 싸다는 것을.
생산자는 헐값에 허덕거리는데 견주어 대량유통하는 식품업자들은 돈을 쥐는 세상이다.
농산물(식재료) 유통과정에 문제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는 서울로 올라오면 완벽한 소비자이다.
물건 값이 싸기를 바라는데도 때로는 아니다.
어제는 잠실 지하마트를 잠깐 둘러보았다.
특별시민이 사는 곳, 고급 소비자가 이용하는 곳이기에 비싼 것인가?
또 외국 농산물, 가공 식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외국에 간 듯 싶다.
4.
점심 뒤에 잠실새내역 근처에 있는 알라딘 종고서점에 들러서 위 이중환의 '택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겠다.
하도 유명한 실학책이라서 번역본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 가운데 몇 줄이 내 시골 마을의 옛이름이 하나 들었다고 해서 이 책에 관심 가지나?
2017. 7. 8. 토요일.
서점에서 오랫 동안 서서 책 골랐더니만 무척이나 피곤했다.
굽은 허리가 더욱 굽혀지고, 통증이 오는데도 책벌레는...
첫댓글 글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군요
저 역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감성으로 글을 쓰는데요
한가지 생각만 하고 살기에
다른 것은 잊지요
그렇지 않지요.
그냥 글 읽고, 잡글 쓴다는 것 이외에는.
글 정말로 사랑했다면 다른 길로 나갔겠지요.
책도 여러 권 냈을 게고.
그냥 그냥이지요. 요즘 글도 아닌 책들도 수두룩하대요.
어제 오늘 서점에서 책 뽑아보니 정말로 훌륭한 책도 있고, 불소시개나 했으면 싶은 것도 많고...
글은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뜻도 있는데도...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