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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함수곤
한밤의 사진편지 제1954호 (13/7/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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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인왕산 문화예술 길과 喜壽宴 “멋진 하루”
글 : 知淵 韓相辰 (한사모 고문, logoshan@hanmail.net)
허준의 동의보감에 건강은 약보다는 음식, 그리고 음식보다는 걷기라고 하였다. 걷기운동은 혈액순환이 잘 되어 당뇨, 고혈압, 중풍, 대사증후군, 고지혈증을 예방하고, 심폐기능을 강화하여 심장 질환을 예방한다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골다공증과 관절 병, 허리디스크를 예방하고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고 체지방을 분해하여 스트레스 해소와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두 발로 걷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짐승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문화인류학자는 말한다.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침팬지나 고릴라도 기껏해야 하루에 3km 밖은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은 하루에 30km 이상을 걸을 수가 있다.
걷는다는 것은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요, 위대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지구위에 새기는 황홀한 도전이다.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걸으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우정의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바로 나의 삶이고 인생 그 자체다.
11세기 신 유학자 장재는 하늘은 나의 아버지요, 땅은 나의 어머니시다. 나 같은 미물조차도 천지간에 머물 치밀한 곳이 있다. 우주를 가득 채우는 것은 내 ‘몸’이요, 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나의 ‘본성(本性)’이다. 모든 사람은 나의 형제자매요, 모든 사물은 나의 벗이라고 하였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30분에 만나는 한밤의 사진편지와 주말걷기 회원 “한사모” 가족은 사실 모두가 친 형제자매나 다름없다.
오늘은 on-off 라인의 21세기 공동체 한사모의 로맨틱 주말 걷기 제 276회의 날이다. 숫자 2를 빼면 우연의 일치인지 내 나이 76세다. 내가 이 세상에 울음을 터뜨리고 나의 공간을 차지한 것이 1937년 2월 21일이니 희수 4일 전이다.
그래서 주말 걷기 후 희수연을 베풀어준다고 김영신 사무국장이 귀 뜸 해 주었다.
벌써 주말 걷기를 시작한지가 2000여일이나 되었다. 그리고 매번 평균 10km를 걸으니 지금까지 약 2760km 이며 6백 90리 길을 걸었다. 여기에는 한사모 대표 함수곤 교수와 박현자 시인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빚은 결실이라고 여겨진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영하 17도의 매서운 추위와 눈이 17cm나 쌓였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내일 우수를 앞둔 날, 발밑에서 봄기운이 벌써 들썩이고 있었다.
2월 17일 오후 2시 30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 한사모 회원(평균 나이 약 72세) 남녀 54명이 모였다.
한사모의 시간 엄수는 칼날 같다. 대부분 20-30분 전에 모인다. 시간엄수는 한사모의 전통이다.
오늘의 안내자는 이순애 운영위원이다. 광남고 행정실장이며, 여류 시인이고 시 낭송가다. 그리고 서울교원문학회 부회장이기도 하다.
필자도 서울교원문학회 자문위원이다. 또 필자가 속해 있는 삼수 스토리 모임의 회장이다(김태숙, 유왕준, 한상진, 이순애). 그래서 매우 친근한 사이다.
오늘은 전통과 현대가 서려 있는 서촌과 인왕산 흙길을 3시간 정도 9km를 걷는다. 코스는 통인동 제비다방- 헌책방 대오서점- 박노수 가옥-인왕산 수성동 계곡-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 기념관-경기상고 건너편 브루나이 대사관- 청와대 사랑채-신익희 선생 옛집- 중국대사관- 통인시장- 세종대왕 나신 터를 돌아보고 용금옥에서 희수연이 열린다.
오늘의 주말걷기 코스는 문학의 생활세계와 역사, 전통과 현대가 어울러져 있는 서촌과 인왕산 문화예술 길을 개발한 코스다. 그리고 속으로 못내 나의 희수를 축복해 주기위해서 특별히 개발한 코스라고 해석하였다.
북촌은 조선시대 사대부가 살던 곳이며 서촌은 중인이하 벼슬아치가 살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서촌은 서민적이고 오밀조밀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마치 옛 고향을 느끼게 하는 체취를 풍긴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즉 통인동, 효자동, 누상동, 옥인동, 사직동, 필운동, 체부동, 신교동, 통의동, 창성동을 통 틀어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영조의 어린 시절이 묻힌 곳, 오성과 한음 대감의 해학이 오가는 곳이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의 서예와 예술혼이 서린 곳이다. 이상과 윤동주의 빼어난 감성과 상상력을 꽃피운 문자 그대로 ‘문화예술의 마을’이다.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나와 왼쪽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를 뒤로하고 200m 지나면 우리은행이 있다. 여기서 골목으로 100m를 걸으면 오른쪽 통유리가 넓은 곳이 ‘이상의 집’이다.
이상은 초현실주의 색채를 띤 소설 ‘12월 12일’, 시 ‘오감도’, ‘꽃나무’, 수필 ‘권태’ 등의 작품을 남겼다.
장기를 열 번 두어서 지는 사람보다 이기는 사람이 더 권태를 느낀다는 말이 지금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천재 예술가는 폐결핵에 걸려 총독부 기사 직을 물러났다. 이상의 집은 세 살 때 큰아버지 댁으로 입양되어 유년 청년기 20년간을 살던 집터에 지은 집을 개조해 2007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인수해 이상을 기념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문학의 현대성을 강조한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1910-37)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경성부 통동(현 서울 통의동) 154번지. 천재와 광인, 모순에 찬 짧은 삶을 불태운 이상이다. 2002년 김수근 문화재단이 매입해 보존해오다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과 문화유산 시민단체 아름지기가 “이상의 집”을 꾸며 그의 정신을 기리는 여러 프로젝트를 실시해 왔다.
요즘도 하루 660여명이 찾을 만큼 서촌 탐방의 사랑방 구실을 해오고 있는 “이상의 집”이다. 천재 시인 이상은 일제 강점기 경성에서 제비 다방을 경영했다.
그는 1933년 서울 종로에 다방을 차리고 애인이었던 기생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소설 ‘날개’로 태어났다.
2년 만에 재정 악화로 문을 닫긴 했으나 제비다방은 근대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대접받는다.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 쟁쟁했던 문인들의 사랑방었기 때문이다. “제비다방”은 박제된 천재 시인 이상과 그의 애인 금홍이 함께 종로에 열었다는 다방처럼 이상의 집 내부를 개조한 프로그램이다.
문화예술인들이 차 마시고 책 읽고 토론하고 독자와 만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그 의미는 한없이 크다고 느꼈다.
앞으로 건널목을 몇 발짝만 더 가면 환갑 맞은 책방 “대오서점” 간판이 까만 글씨로 나타났다. 육이오 전쟁 직후 남편과 함께 문을 열어 참고서에서 소설책, 전문서적까지 갖추고 전성기를 누린 적도 있지만 지금은 할머니 혼자서 문만 열고 있는 형편이다.
좁은 골목 앉은뱅이 건물엔 세월에 짓눌린 듯 누런 책 몇 권이 꽂혀있을 뿐 안채에도 사람 그림자 한명이 없다.
대형서점도 운영이 어렵다는데 이렇게 빛바랜 책 몇 권으로 문을 열어 놓은 것이 신기하다.
그냥 보존대상으로라도 옛 시절을 기억하게 한다.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 후보〉를 공개한 지난해부터 호기심에 유리문을 엿보는 사람만 간간히 눈에 띈다.
서촌이 옛스런 관광지로 변하면서 낡고 허름한 옛것에 매력을 느끼게 된 때문일까. 새로 카페나 소품을 파는 갖가지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서있다.
옥인제일교회 바로 직전 오른쪽에 동양화가 “박노수 가옥”이 있다. 1930년대 저택의 건축 구조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리 모델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마을버스 9번이 좁은 길을 가까스로 지나가는 길을 따라가니 종점에서 인왕산 아래 계곡이 한 눈에 시원하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산제색도”가 그대로 펼쳐지는 탄성을 자아낸다.
옥인동 “수성동 계곡”이다. 물 흐르는 소리가 좋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71년 세워져 계곡을 가리고 있던 옥인아파트를 헐고 복원하여 2012년 10월 준공했다고 한다.
옛 수성동 계곡처럼 암석지형을 회복해 옥류동의 원형을 되찾고 역사와 생태가 어우러진 역사문화 공간이다.
요즈음 서촌에 빠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설재우는 서촌에서 태어나 저서 〈서촌 방향〉으로 서촌의 매력을 알리며 서촌 지킴이로 나섰다고 한다.
미국 예일대 유학 후 서울 서촌에 건축사무소를 차린 건축가 황두진은 한옥의 현대화를 고민해 오던 그는 2007년 동아일보 아파트 연재물에서 ‘한옥 아파트’를 제안했는데 이후 한옥 아파트 짓기가 붐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제 부암동을 향해 걷는 인왕산 흙길이다. 흰 눈이 아직 쌓여있지만 날씨가 풀리니 오랜만에 좀 힘들지만 진흙 길을 걷는 정취를 맛본다. 청운 아파트가 철거된 곳에 청운공원이 보인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랐다. 어제가 바로 시인의 기일이라서 언덕 무대에서 시낭송회가 열렸다고 한다. 서시(序詩)를 새겨놓은 시비 앞에 빨간 카네이션이 하늘로 날아갈듯 한 마리 새처럼 파닥이고 있었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맞서서 그 현실을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지난 시절에는 비록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서울 시내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대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소설가 김송이 살던 누상동에서 하숙을 했다고 한다. 밤이면 인왕산 자락을 걸으며 ‘별 헤는 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를 썼다고 한다.
‘이등병의 편지’와 ‘가을 우체국 앞에서’ 를 작곡한 가수 김현성은 윤동주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자화상’ ‘눈오는 지도’ 등 윤동주의 대표 작품이 11곡 노래로 재탄생했다.
장르도 발라드, 록, 성악, 민요 등 다양하다. 내용이 긴 ‘별헤는 밤’은 1,2,3부로 총 3곡을 만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면 부암동을 넘는 산자락에 용도 폐기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가 있던 자리다.
종로구는 2012년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윤동주는 1917년 용정 명동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숭실학교로 옮겼다. 연희전문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때 나이 28세였다.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 긴 의자에 자리를 잡고 한사모 회원의 ‘전체 사진’을 찍었다. 전체 사진은 참석자의 출석부나 마찬가지다.
매주 주말걷기 때마다 박화서(전 고등학교 교장)회원은 60여명의 회원에게 인절미를 나눠주고 있다. 그리고 김창석 회원(사장)은 즉석에서 Whiskey-tea cocktail 20잔 정도를 만들어내는 야외 “김창석 칵테일 카페”를 설치한다.
1시간 30분 정도 걸은 후 갖는 잠시 휴식시간에 먹는 인절미 한 개의 구수한 맛과 따끈하고 향기가 그윽한 “칵테일” 한 잔의 맛은 문자 그대로 환상적(more than fantastic)이다.
이제 “인절미”와 “칵테일”은 주말 걷기의 명품이 되었다. 그리고 “3분의 명상시간”이 끝난 후 일공 심상석 회원(전 고등학교 교장)이 ‘웃으며 삽시다’ 라는 유머를 들려주어 모두가 배꼽을 움켜쥐었다.
최규식 경무관 동상을 바라보며 아래로 내려오면 경기상고 건너편에 브루나이 대사관이 있다. 브루나이 왕국은 동남아시아의 작은 이스람 국가이지만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부자 나라다.
이제 청와대 사랑채갈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한 눈에 쉽게 볼 수 있는 녹색 공간이다.
청와대관, 대한민국관, 서울홍보관에서 사랑방처럼 정겹게 대통령의 일상을 엿보며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해 보았다.
골목을 돌아드니 조그만 한옥 해공 신익희 선생 옛집이 숨어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한다는 이상의 ‘오감도’ 한 대목처럼 막다른 골목 길이다. 큰 길로 나오니 전경이 지키고 있어 금방 눈에 띄는 중국대사관이다. 전통 재래시장으로 들어가려다 그냥 발길을 돌렸다. 일요일이라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경복궁역을 향하여 내려오면 “세종대왕 나신 터”표지석이 있다. 서촌을 세종마을이라 부르는 이유도 세종이 나신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종 임급님은 궁궐이 아닌 서촌에서 태어났다. 세종은 준수 방(俊秀坊) 잠저(潛邸)(임금이 즉위 전 살던 집)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경복궁역에서 자하문 로를 따라 북쪽으로 250m쯤 가면 나오는 우리은행 효자동지점과 그 뒤로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비스듬히 큰 길과 만나는 지점 일대가 준수 방이었다.
드디어 오후 6시경 한사모 고문인 知淵의 희수연이 유서 깊은 옥인동에 있는 남도추어탕집 용금옥에서 열렸다.
1932년 문을 연 다동 추어탕 전문점에서 며느리 한주연씨가 분가해서 용금옥(湧金屋)을 차렸다고 한다. 한옥에 옛 분위기를 간직한데다가 정갈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용금옥은 금이 솟아오르라고 수주 변영로 시인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피난시절 젊은 새댁이었던 시어님을 안쓰러워했던 시인의 마음을 전하는 며느리의 설명이었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겸손해 한다.
옥호는 오랜 당 골 신영복 교수의 작품이다. 함대표는 장소가 다소 비좁아서 문짝을 임시로 떼고 회원 모두가 바라볼 수 있도록 정리 했다.
명품 사회자 김태종 운영위원 솜씨로 먼저 한사모 함수곤 대표의 축사가 있었다. 학구열이 높은 한 고문은 물론, 부인 최경식, 아들 한동희, 사위 김성천 4명의 가족이 박사인 집안이라고 소개하였다.
필자의 답사가 있었다. 주말 걷기의 철학은 4SF라고 소개하였다. Share Walking, Sing together, Set yourself free, Speak from your heart. Find beauty in all things. 함께 걷고, 정신과 영혼을 풀고 자유롭게, 가슴으로 말하고,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바로 주말 걷기의 정신이요, 철학이라고 정리하였다.
이순애 시인이 헌주를 따르고 윤종영 고문이 축하와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모아 ‘ 만세’로 건배를 제의하자 회원 모두가 ‘만만세’로 화답 하였다.
대형 축하 케익을 이순애 시인과 필자가 함께 자르고 난 후, 이정수 부단장이 지휘하는 ‘할미꽃 하모니카 앙상불과 임병춘 회원의 기타 반주로 희수연 축하곡 '생일 축하 합니다' 'Happy birthday to you'를 함께 부른 다음 즐거운 나의 집 연주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영균 운영위원장의 헌주, 김태종 사회자의 헌주, 윤정자 하모니카 대표가 나에게 헌주를 하였다. 그리고 이순애 시인이 축시 "눌러쓴 세월“을 낭송하였다.
한상진 고문님 喜壽宴 축시
눌러쓴 세월 글, 낭송 이순애 시인(서울교원문학회 부회장)
발밑 흙 가슴 사이 들썩이던 봄빛이 풀꽃이랑 어깨동무하는 언덕에 쌍무지개 뜨는 날 꼭꼭 눌러쓴 세월을 증명하는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어떻게 살면 생활이 예술이 되는 걸까요? 교육자 영문학자 시인 수필가 스포츠맨 바둑 명인... 남들 넘보지 못할 경지가 바로 이 자리, 놀랍습니다
순수한 열정 따뜻한 유머 부드러운 파격으로 팍팍한 삶에 물기 촉촉이 지루한 일상에 윤기 자르르 소용돌이 세상에 고요히 솟아오른 중심, 본보기십니다
지난 시간 그리움 접어 배웅하면 따뜻한 정 넘쳤지요 겹친 일곱 꿈으로 설레 마중하면 숨 돌릴 여유 찾겠지요 이제 한사모 회원 희수연 마다 꼭! 찾아오마 약속하세요
정든 신발에 가죽 대고 굽을 간 새 신발 신으셨으니 며칠 밤새워도 거뜬한 체력 다져 백 년은 또 걸으실거죠? 정말, 세월에 약해지면 안돼요
2013. 2. 21
한밤의 사진편지 회원 드림
시 낭송 후에 배우이며 성악가인 심상석 회원이 ’타타타‘를 부르자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함대표가 옷 한 벌을 건졌으니 수지맞는 인생이 어떤 인생이냐고 다시 확인하자 ’좋은 인생‘이라고 합창하였다.
미꾸라지를 갈아 우거지 된장을 넣고 끓인 추어탕은 담백했고 모듬전은 구수하고 쫄깃했다.
어떤 산해진미보다 입맛 당기고 몸에 좋은 음식과 인연이 어우러진 멋진 순간순간이었다.
문득 William Wordsworth의 시 ‘내 가슴 설레이고’ 'My Heart Leaps Up' 이 떠오른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 설레이고, 어릴 때도, 어른 된 지금도, 늙어서도 그러하려니, 아니면 목숨은 죽은 것!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여생, 자연의 敬虔 속에 어울려 살고파.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10년 전을 돌아보며 한탄하지 말고, 10년 후를 내다보라! 지금이 바로 가장 좋은 나이다. 왜냐 하면 내가 남은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까운 하루를 최고의 하루,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일이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 그렇다. 그 선물인 오늘을 최고의 멋있는 날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다.
Life is life. Fight for it. 인생은 인생이다. 멋지게 살아가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William Blake의 시 ‘Auguries of Innocence 순수를 꿈꾸며’ 다. 한사모 가족들의 자연 속에서의 낭만적인 삶과 멋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시다.
한사모는 21세기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on-off 라인의 로맨틱 걷기 운동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Soil Friendship'이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만 골라 먹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하는 것이 건강에 더 좋다.
일상을 즐기는 것이 힐링(healing)의 핵심이라고 한 디팩 초프라 박사 (심신 의학 mind-body medicine 창시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서촌-인왕산 문화예술의 ‘인생길’을 걷고 용금옥에서 한사모 회원들의 뜨거운 축복 속에서 희수연을 맞은 오늘은 내 인생에서 삶의 멋과 맛, 향기를 온몸으로 향유한 최고의 ‘멋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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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함수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