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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주 수행법회에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다라니수행 249페이지 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21분을 다시 함께 독송하겠습니다.
이때에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죤이시여 이 다라니 이름을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아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셨다.
“ 이 신주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나니,
일명은 광대원만廣大圓滿이고.
일명은 무애대비無礙大悲며,
일명은 구고救苦 다라니며,
일명은 연수延壽 다라니며,
일명은 멸악취滅惡趣다라니고,
일명은 파업장破業藏 다라니이며,
일명은 만원滿願 다라니이고,
일명은 수심자재隨心自在 다라니이며,
일명은 속초상지자재 速超上地自在 다라니이니,
이와 같이 받들어 가질지니라.
지난 시간에 이 다라니의 이름,
아홉 가지 이름 가운데서
지난 시간에는 광대원만다라니,
또 무애대비다라니, 이 두 가지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구고救苦다라니’입니다, 구고다라니.
지난시간에 ‘사고팔고四苦八苦’를 설명하다가
사고까지 설명을 하고 나머지 사고를 오늘 살펴보기로 했죠.
지난 시간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고통이다.
네 가지 고통이 ‘생·노·병·사’ 다, 이렇게 살펴봤습니다.
생도 고통이요, 노병사가 고통이다.
그래서, ‘사고다‘ 이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들이 중생들이 고통을 없애주고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이 이타행입니다. 이 이타행이 교화의 목적이죠.
이것이 보살행이요, 하화중생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가운데서
상구보리에 해당되는 것은 바로 이고득락離苦得樂 이다.
또 하화중생에 해당되는 것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다.
그래서 이고득락이 수행의 목표요
발고여락이 교화의 목적이다, 이렇게 살펴봤습니다.
이 자리에 오셨는데요, 안동보살님으로 호칭을 하겠습니다.
안동보살님은 1남 2녀를 두신 분인데,
1970년대에 딸을 출산 할 때, 갑자기 산통이 왔답니다.
가족들이 외출하고 없었죠.
가족들과 연락할 틈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귀가하기 전에 출산을 해야 했는데
극심한 산통을 겪으면서 출산할 때에 새댁이 혼자서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요.
마침 그 때에 이웃에 사시던 한 보살님이 이 사실을 알고
출산을 돕고 아이를 받고 산모를 위해서 미역국을 끓여주시면서
산바라지를 해 주셨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은인이죠.
이 안동보살님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나도록
그 고마움을 마음 깊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십니다.
자성불수행 주제 중에 고마운 일 있었죠.
이 보살님은 생애 5대 고마운 일 가운데, 이것이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노병사가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야 할 고통입니다.
이런 고통을 겪을 때에 힘이 되어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이것이 자비행이죠.
누구나 겪어야 할 이 고통, 이 고통을 겪는 이들이
우리들이 찾아서라도 자비행을 실천하겠다,
발심한 대비주 수행자들에게는
이들이 바로 복전입니다. 복밭입니다.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이들을 돕는 것이 작복입니다.
우리들이 매일 매일 이렇게 작복을 하는 삶을 살겠다,
이렇게 발심을 한 분이라면,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복전으로 삼아서,
힘껏 돕는 것이 바로 자비행이요, 보살행입니다. 무량대복을 짓는 일이죠.
우리가 이 천수다라니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초기에 오행五行의 상생相生 공부를 했죠.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오행이 ‘목·화·토·금·수’입니다.
상생은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이렇게 돕는 작용을 상생이라고 하는데
자기 자신을 ‘목’이라고 기준을 세워서 설명을 한다면
내가 ‘화’를 도울 때, ‘화’가 ‘토’를 돕고, ‘토’가 ‘금’을 돕고, ‘금’이 ‘수’를 도와서
결국은 ‘수’가 ‘목’을 자기 자신을 다시 돕게 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상생의 원리인데
이 우주의 원리, 자연의 섭리가 이렇다는 거요.
정초에 토정비결을 옛날에 본적이 많죠.
이 토정비결 내용 가운데 재밌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가가 마신 술에 이가가 취한다’ 이런 표현입니다.
들어보셨습니까? 김가가 마셨는데 어떻게 이가가 취하는가?
김가와 이가가 둘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펼쳐서 볼 때는 돌고 돌아서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노병사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도울 때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울 때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먼 훗날 대를 걸러서
우리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가, 생노병사의 고통 가운데에 신음할 때에
이웃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주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과예요.
이렇게 생노병사를 비롯한 고통을 겪는 중생들을 위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런 자비행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
이런 원을 우리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대비주 수행자라면 다 그렇지요.
이렇게 생노병사를 지난시간에 살펴봤고요.
나머지 사고를 오늘 살펴보겠습니다.
‘애별리고愛別離苦’입니다.
애별리고,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 환경과 헤어지는 괴로움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무리 좋아하는 대상 환경일지라도 결국은 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고통이라는 거요.
고통을 겪게 되는 그 괴로움은
애착 집착 때문에 온다는 거예요.
여기서 ‘애’ 자는 ‘집착’ ‘애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애착과 집착이 고통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거예요.
누군가를 집착을 하면 괴로움이 결국은 온다는 거요.
무언가를 집착 할 때에 괴로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들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애착할 때에 어떤 표현을 합니까?
죽을 만큼 애착한다, 죽을 만큼 집착한다, 이런 표현을 하죠.
그 말은 곧 헤어지고 나서 죽을 만큼 괴로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애별리고’, 헤어지고 나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대상 환경과 헤어지고 나서도 후유증을 남깁니다.
이별은 후유증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대상 환경과 헤어지고 나서 남는 후유증은
세 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집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죽을 만큼 애착하면
그 누군가와 사이좋게 잘 지낼 때는 아주 죽을 만큼 좋겠죠.
좋아서 죽을 라고 할 정도로 좋습니다.
아주 행복의 극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말 좋다가 정말 애착하고 집착하다가
이 사람이 떠나거나 혹은 명이 다해서 죽게 되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러니까 좋을 때의 감정의 그 높이가 아주 전 전 것보다 더 높아집니다.
그러다가 헤어지고 상실했을 때의 그 괴로움은
끝을 모르는 높이보다도 끝을 모르는 깊이까지 툭 떨어지겠죠. 반대입니다.
이런 충격 이런 상실감이 후유증으로 남아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그 후유증을 겪는 분들은 좋을 때는
조금 좋으면 죽을 정도로 좋다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한번 틀어지죠.
그러면 죽이겠다고 또 난리를 칩니다.
좋아 죽고, 싫어 죽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겁니다.
이게 바로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상 환경과 헤어지고 나서 후유증입니다.
이 자체도 또 괴로움이죠.
또 후유증 하나는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그 때는 자기 없으면은 못산다고 그렇게 사랑을 고백했던 사람이
떠난 경험이 있었다면 그 때 그 사람처럼 또 떠날지도 모른다.
“너는 말로 그렇지, 정말 나중에 어떤 일이 있으면 너 떠나는 거 아냐?”
이렇게 의심하게 된다는 거요.
대상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여건도 천 년 만 년 누릴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냥 경기만 안 좋아져도
혹은 상황이 바뀌면서 그것이 그대로 사라져버리게 되었을 때
그럴 때에 또 그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졸지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것들도. 이게 후유증입니다.
세 번째는 사랑을 피하게 된다. 후유증입니다.
사랑을 왜 피하게 될까요? 또 떠날까봐.
저도 열여덟 살에 고향의 안평 옥련암, 거기서 입산을 해서 수행을 했는데
그 노 보살님이 정을 아주 많이 주셨어요.
저도 정성을 기울여서 돌봐드리고
젊으니까 힘든 일이 있으면 많이 도와드리고,
이렇게 해서, 정을 많이 주셨나봅니다.
그렇게 수행을 거기서 하다가 큰 절로 떠날 때
노 보살님이 하시는 말씀이,
제가 거기서 나와서 떠날 때에 동구 밖까지 멀리,
무겁지는 않지만 보따리를 들어주시면서 인사를 하시는데,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정주지 말것을..”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이별을 아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중가요가 있죠. “정주지 않으리라... ”.
헤어지고 나서의 고통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사랑은 이제 않겠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십니다.
사랑을 했다가 사랑하는 나를 남겨두고
그렇게 먼저 죽을 수가 있어?
나는 앞으로 결코 사랑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다짐을 합니다.
그래서 나온 대중가요, 아시죠.
‘사랑만은 않겠어요’.
또 어떤 분들은 ‘사랑만은 않겠어요’, 이 가사를, ‘결코’를 집어 넣어가지고
“사랑만은 결코 않겠어요”,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 후의 이별 이별후의 후유증입니다.
이만큼 괴롭기 때문에 사랑을 안 하겠다고 하는 거죠.
여러분은 지금 사랑하는 이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대상 환경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사랑은 집착입니까, 사랑 참사랑입니까?
집착은 지금까지 말씀드린바와 같이 고통을 낳고
사랑, 참사랑은 행복을 낳습니다.
누구나 어떤 대상 환경이나 만났으면 필연적으로 헤어집니다.
사람과도 헤어져야 되고 여건과도 헤어져야 됩니다.
우리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자기의 몸도
또 가족도 환경과 세상과도 헤어져야 되는데
언제 헤어집니까?
인연이 다 하면 헤어집니다.
인연에 따라서 만났다가 인연이 다 하면 헤어지게 됩니다.
애별리고입니다.
애별리고에서 해탈할 수 있는가?
헤어짐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바로 구고다라니,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고다라니, 대비주 수행으로, 헤어짐의 고통,
고통의 원인인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헤어짐의 아픔도 놓아버릴 수 있다, 편안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본래 있었나?”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본래 있었나?”
누군가와 헤어져서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린다면 이런 질문을 해보십시오.
그와의 인연이 “본래 있었나?”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본래 있었나?”
이렇게 질문을 해보라는 거요.
또 무언가를 대상을 환경을 어떤 물건을 잃어버려서 괴롭다면
또 질문해보십시오. 한번 해 볼까요?
“본래 있었나?”
본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진실로 이런 질문을 해보시면
이 질문 가운데서 본래 ‘공’을 깨닫고
‘공空’을 깨달으면 어떻게 됩니까? ‘공’ 이후에는
따라서 도度 일체고액一切苦厄입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대비주수행으로 우리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그것은 인연법을 깨닫습니다.
인연에 의해서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깨닫는 순간에 미련이 없어져 버리죠.
본래 그렇습니다.
이별의 후유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대비주를 지성심으로 독송할 때에
내 마음속에 뭉쳐져 있던 이별의 그 응어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대비주 수행자는 지난 과거의 회한도,
지난 인연에 대한 미련도, 놓아버리고 오늘에 올인 합니다.
오늘 사랑합니다.
미루지 않고 미련 없이 오늘 할 일에 올인 하면서
오늘 인연에 올인 합니다.
지난 과거의 회한을 놓아버리면서
지난 과거의 회한이 바뀌게 됩니다.
무엇으로 바뀔까요?
원으로 바뀝니다. 원으로.
한이 원으로 승화됩니다.
지난 과거의 한을 놓아버릴 때
그 한이 원으로 승화되어서
그래서 그때부터는 원을 향해서
오늘 일에 집중하게 되는 삶을 살죠.
대원을 향해서 뚜벅뚜벅 나아갑니다.
오늘 감사하면서 오늘 일을 즐기면서 나아가게 되죠.
‘완전연소’라는 표현, 몇 번 했죠.
오늘 일에 완전연소 합니다.
이렇게 수행하고
이렇게 천수다라니경 말씀을 공부하고
지성심 자비심 신심으로
대비주를 지송하는 그 나는,
대비주는, 자성불은,
영원한 참생명입니다.
우주의 중심에,
모든 인연의 중심에,
우뚝한 채로,
겁 전에도,
겁 후에도,
우뚝하게 있습니다.
마치 흰구름이 왔다 갔다 해도
청산은 본래 그 자리에 있듯이.
그 다음은 ‘원증회고怨憎會苦’ 입니다.
원증회고는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과 만나는 괴로움입니다.
아까는 헤어져서 괴로운 괴로움을 설명했죠. 애별리고.
그런데 이번에는 만나고 있는 상황,
함께 지속되고 있는 여건 환경 대상이
이번에는 사라지지 않아서 괴롭습니다.
만나서 괴롭고 헤어져서 괴롭고,
내 입맛에 안 맞으면 괴롭게 되는 거예요.
자기 기준 입맛 취향 자기 잣대가 있습니다.
이게 아상에서 나옵니다.
맞지 않는 사람 맞지 않는 대상 환경과 만나야 됩니다.
생노병사도 우리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나게 되죠, 이게 괴로움입니다.
원하지 않는 현실 원하지 않는 환경과도 만나야만 하는 괴로움이 원증회고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진심입니다.
성낼 ‘진瞋’자, 탐진치 삼독심의 진심입니다.
미움과 화 싫어함 지루함 저항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대비주수행을 우리가 해오면서 유심소현唯心所現 이다,
심위법본心爲法本이다, 일체가 유심조다, 이런 용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오늘 원증회고를 통해서 그 마음의 원리 현실의 원리를 잘 복습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미운사람과 싫은 대상 환경을 만날 때 밉고 화가 납니다.
표현만 안 했지,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누구나 다 앵그리가 됩니다.
미운 사람을 만날 때, 싫은 대상 환경을 만날 때, 밉고 화가 납니다,
싫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지루합니다, 저항이 일어납니다.
미움과 싫음이 클수록 괴롭죠.
미움과 싫음이 클수록 고통스럽습니다, 삶이.
미운 사람이 여러분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보기 싫은 사람 보기 싫은 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 환경이 많을수록 삶이 괴롭습니다.
모든 사람이 밉고 모든 환경 대상이 싫은
그 마음이 심하게 일어날 때는
바로 그 자리가 지옥처럼 괴롭습니다.
지금부터 잘 살펴보겠습니다.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 때문에
나에게 미운사람이 다가왔고 싫은 대상 환경이 다가왔기 때문에
내 마음이 밉고 화나고 싫고 지루하고 저항이 생긴 것처럼, 지금 보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이미 오래전부터 뭉쳐져 있던 진심이, 진심이 독이죠,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이 다가왔을 때, 건드려져서 일어난 일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뭉쳐져 있던 진심이 없으면, 그 사람이 다가오고,
그 여건 대상 환경이 다가오더라도,
일어날 진심이 나한테 없다면, 일어날 진심이 없습니다.
미워하고 화내고 싫어하고 지루해하고 저항 할수록, (이 마음의 에너지입니다)
진심의 에너지는 내 마음에 더욱더 단단하게 뭉쳐지게 됩니다.
단단하게 뭉쳐진 내 마음의 진심이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을 더 자주 불러들이고
나중에는 창조해내기까지 합니다.
이런 마음이 이런 환경 이런 대상을 창조해 내는 소식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현실로 척척 나와서
마음의 진심이 커질수록 현실에서 겪을 일도 점점 커져갑니다.
또 질문합니다.
“원증회고에서 벗어날 길이 있는가?”
당연히 “있다”.
대비주수행으로 진심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바로 대비주 구고다라니가 있습니다.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이 다가왔을 때 진심이 일어나면
아직도 내 마음에 진심의 독이 남아 있음을 나타냅니다.
옛날에는 화나고 싫고 지루하고 밉고 저항하던
그 일이 다가오더라도
내 마음의 진심의 에너지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진심이 사라져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운사람 싫은 대상 환경이 다가왔을 때 진심이 일어나면
아직도 내 마음에 닦여져야 할
사라져야 할 놓아버려야 할 진심의 독이 남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비주 수행자에게는 이런 일이 마장이 아닙니다.
마장은 없습니다. 마장이 아니고, 뭘까요? 가피다.
역경이 아니고 원수가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는 웬수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럼 뭘까요. 가피요, 가피.
진심의 독이 남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으로 다가오신 대상 환경입니다.
악역을 도맡아서 나를 위해서 다가온 관세음보살님의 화현입니다.
지성심 자비심 신심으로 대비주를 지송하면
고통의 원인인 미움 화 싫어함 저항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이미 다 체험하신 일입니다.
진심이 사라질수록 대비주 수행으로 진심이 점점 사라져서
진심이 엷어지고 진심이 없어질수록
미운사람 싫은 사람 환경을 만나도
옛날처럼 그렇게 미운마음 싫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도망갈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이 많으면, 진심 많은 분들이 특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어떤지 한번 제 말씀 들어보십시오.
요즘 많이 무더우시죠.
무더위가 몰려올 때 열대야라고 하죠.
이런 때에 진심이 많이 남아 있는 분들은
짜증을 많이 냅니다.
무더위와 함께 짜증이 같이 몰려옵니다.
또 배고플 때 있죠, 배고플 때.
진심이 많이 남아 있는 분들은 짜증이 많이 나고 신경질이 납니다.
진심이 닦여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무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등이 다 젖도록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해도
진심이 없으면 그냥 더울 뿐입니다.
그냥 땀이 줄줄 흐를 뿐입니다.
이때 바람이 불어오죠.
얼마나 시원합니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슬쩍 불어주는 바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고
기쁜 마음이 일어납니다. 즐거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냥 바람이 불 뿐인데 그 바람을 맞으면서
내 마음이 기쁨이 가득하고 감사한 마음 즐거운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바람을 쏘이면서 기쁜 마음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는 거요.
이럴 때 이 무더위 속에서 불어오는 선풍기 바람
이 바람에 기쁨과 감사로 충만할 줄 안다면
내 마음속에 즐거움 기쁨 감사가 가득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바람이 불어 주나 봅니다.
이럴 때 내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 감사함이 가득할 때에
내 마음에 있는 것이 내 삶으로 나옵니다.
감사한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즐거운 일 기쁜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감사한 일 즐거운 일을 창조해내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에, 성낼 ‘진’, 진심이 뿌리 뽑히면
(내 삶에도) 내 마음에 진심의 뿌리가 쑥 뽑혀버리면
내 삶에도 미운 사람 싫은 대상 환경이 없어져버립니다.
진심이 사라져버리면 드러나는 것이 자비심입니다.
본래의 마음이 자비심이죠.
자비심으로 바로 보니 모든 사람들이 은혜로운 감사한 본래불이더라
모든 대상 환경이 감사한 일이더라.
이렇게 감사 자비 신심이 내 마음속에 가득한 상태로 살아갈 때에
그 마음이 현실의 물질형태로 나타나서
건강과 풍요와 행복이 내 삶에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미운사람이 없고 싫은 대상 환경이 없으니까
원증회고에서 벗어나죠, 구고다라니.
대비주를 지송하는 가운데 이렇게 원증회고에서 벗어납니다.
다음 ‘사고’ 가운데에 하나는 ‘구부득고求不得苦’입니다.
‘구부득고’는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좌절 하죠, 절망스럽습니다.
나는 구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은 얻었다.
그럴 때는 시기심 질투심이 일어납니다.
또 스스로에 대해서 열등감이 일어납니다.
구하지 못한 것을 얻지 못한 이유를 내 책임이 아니고
다른 사람 책임이다 이렇게 볼 때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죠, 남 탓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하는 것을 얻을 때는 고통이 없는가?
구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도 구해진 얻어진 그 좋은 것이 사라지면 어떻하나,
괴로워 합니다, 전전 긍긍합니다, 초조해하죠, 불안해하죠.
구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도 얻을 때까지는, “못 얻으면 어떻하지?”, 두렵죠 초조합니다.
얻고 나서도 잃을 까봐 두려워. 이것이 구부득고입니다.
구부득고에서 해탈할 길이 있는가?
당연히 있다.
이 천수다라니에서는 구고다라니.
이 대비주를 지송하는 수행을 통해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구고다라니라고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대비주수행으로 온갖 번뇌의 괴로움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인과법을 깨닫고 원을 세워서 수행해 나갑니다.
대비주수행자는 그래서 늘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할 일을 통해서 능력을 향상해 나가고
복을 쌓아나가기 때문에 성취에 필요한
행복에 필요한 건강과 풍요에 필요한 인연조건을
늘 갖추어 나가고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조해하지 않아도, 재촉하지 않아도, 구하지 않아도,
인연조건이 갖추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결과를 얻으리라.
제 18분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죠.
“만약 능히 법다이 받아 지니면 자연히 결과를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구부득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고팔고 가운데 마지막이 ‘오음성고五陰盛苦’입니다.
오음성고는 오음이 너무 치성한 분들,
‘오음’ 다른 말로 ‘오온’ 라고도 합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죠.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죠.
색온은 물질 무더기죠.
이 물질은 색은 스스로 변화합니다.
또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도 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색온이.
우리가 몸에 원하지 않는 병증이 있을 때는요,
이 병증이 얼른 사라지지 않아서 이것이 괴로움이예요.
이 색온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날에 맛있는 음식은 빨리 빨리 변해서 또 괴로움 입니다.
어떤 것은 안 변해서 괴롭고 어떤 것은 빨리 변해서 괴롭습니다.
내 입맛에만 안 맞으면 무조건 괴롭습니다.
쓰레기 더미 같은 것은 이런 공간에 차지하고 있으면 문제가 많죠.
벌레가 생기니까.
‘수온’은 고락, 불고 불락, 이것을 느끼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은 계절이 너무 더워서 괴롭습니다.
또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괴롭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 꾸벅 꾸벅 조는 분 계십니까?
어떨 때는 너무 졸려서 괴롭고 어떤 때는 너무 잠이 안와서 괴롭습니다.
이래서 늘 고통을 우리가 겪으면서 산다는 겁니다.
수온에 해당됩니다.
상온은, 외계의 사물을 바라봅니다.
마음속에 받아드리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을 상상해서 보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외부의 사물을 우리가 바라보죠.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사물, 실상을 바로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색안경을 끼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색안경대로 봅니다.
빨강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흰 색깔도 빨갛게 보입니다.
어느 사십대 거사님 이야기입니다.
이 사십대 거사님은 옛날에 일등 신랑감이었습니다.
일등 신랑감은 어떤 신랑감입니까.
우선은 잘 생겨야 되죠.
돈도 많고 수명도 길고 두루두루 갖춘 일등 신랑감인데
당연히 일등 신부감과 결혼을 했습니다.
참 자상합니다.
이 거사님이.
출근을 해서는 부인에게 전화를 해줍니다.
출근 잘 했다.
그리고 오전 회의를 하죠.
오전회의를 마치고도 오전회의를 잘 마쳤다.
점심시간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맛있는 거 해 드세요,
맛있는 거 점심 잘 드세요, 이렇게 또 챙겨줍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일이 관심을 기울여 줍니다.
처음에 부인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참 행복합니다.
퇴근한다고 전화하고 전방 오백 미터 라고 전화하고 그럽니다.
(대중들 웃음)
(왜 웃으세요? 좋은 이야기인데)
그런데 아이가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이웃에 다녀오느라고 , 슈퍼마켙에 다녀오느라고 전화를 못 받죠.
통화가 되지 않을 때는 남편이 안절부절 못합니다.
학부모 모임에도 못나가게 됩니다.
그 증상이 심해져서 이 거사님은 갖은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뒷조사까지 한 적 있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려고 해도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고 판단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어내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게 합니다.
이 증상, 무슨 증상입니까 이것이? 의심병, 두려움의 고통입니다.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있다는 것을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거사님이 이런 괴로움을 겪을 때도 괴로움의 원인이 있죠.
이런 증상의 원인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고통이 있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는데,
대비주수행으로 원인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이 거사님이 초등학생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엄마가 반갑게 맞아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만사가 오케이죠. 엄마가 집에 계시니까.
그러나 어느 날부터 엄마의 외출이 잦아지기 시작하더니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도 엄마가 없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서 집으로 들어가는데
그 이웃 주민들이 이 아이를 보면서 수군대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아이 엄마가 어떤 아저씨랑 바람이 났다
이런 소리를 아이가 들었습니다.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면서 이 아이는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가 없는 비밀이 되었죠.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중에 장성을 해서 일등 신랑감이 되고
일등 신부감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그 때의 자기 또래가 된 거요.
그 시절의 자기 나이가 되면서 이 아들이,
그때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죠.
속에서 이런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당시 엄마의 나이가 된 내 아내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는 두려움과 의심이 증상의 원인이 된 것이죠.
이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가 다 이런 증상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거사님은 그것이 원인이었어요.
대비주수행으로, 이 거사님이 대비주 수행을 하면 됩니다.
대비주 수행으로 그 시절에 맺힌 마음의 응어리가 풀립니다.
그 시절에 겪었던 깊은 상처가 되었던 사건을 대비주를 지송하는 가운데에
다시 보고 듣고 느끼기..재경험이라고 했죠.
이과 정을 거치면서 마음의 짐이 내려집니다.
대비주수행을 통해서 여성 특히 초등학생 아이를 둔
그 어머니 또래의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증상이 낫습니다. 색안경을 벗고 바로 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인 것은 인 것으로 보게 되죠.
오온 가운데 행온이 있습니다.
행온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것이죠.
입맛에 따라가지고요.
어떤 것은 변해서 괴롭고 어떤 것은 안 변해서 괴롭습니다.
식온은 의식하고 분별합니다. 의식하고 분별함.
이 오온이 너무 치성해서 괴롭다는 거예요.
이게 오음성고,
다른 말로 오온성고라고 합니다.
대비주 광명으로 이러한 어둠이 사라집니다.
대비주 광명 비추일 때 모든 괴로움들이 본래 공임을 깨닫습니다.
대비주 광명 비추이니
일체가 ‘개공’ 이더라,
본래 공이니까, 이걸 깨닫습니다.
머리로만 깨닫는 것이 아니고,
정말 그렇구나. 자기것이 됩니다. 체득이 되죠.
일체개공一切皆空이 될 때에 도 일체고액입니다.
모든 고통에서 건너가게 된다, 벗어나게 된다.
'일체개공 도 일체고액' 입니다.
그래서 구고다라니입니다.
지난시간에는 광대원만다라니, 무애대비 다라니에 대해 살펴봤고
오늘은 구고다라니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벌써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대비주는 언제나 최상의 길을 여십니다.
지성심 자비심 신심으로 행복한 대비주수행을 함께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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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어서어서 수심자재가 되어 모든 것에서 대자유인이 되게 하여지이다. _()_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생생한 수행사례에서 나 또한 본래 없는 것을 스스로 지어내고 만들어서 고통스러워 했던
일들이 스쳐갑니다.
지금 또한 그러한 것들이 있으나 공으로 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_()_
정리해 주신 금장보살님, 감사합니다..._()_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