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이란 반개화(半開花)의 양반이다. 선비춤, 신선춤으로도 불리는 한량무는 한량, 색시, 주모, 먹중 등이 등장, 한량과 승려가 한 색시를 두고 유혹하는 시류풍자극 춤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독무로 변형, 남성춤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한을 흥으로 풀어내는 이 춤은 양반춤 및 다른 이름의 별칭도 있으며 역동적 남성 춤이다.
한량무는 한성준(1874~1941)이 작무한 춤이다. 강선영, 조흥동을 거쳐 그의 제자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유니크한 스타일로 발전된 ‘조흥동 류(流)’ 한량무는 선비의 고고한 애환이 담긴 춤으로 양반의 기개와 기품을 보여주며 비상하는 학을 연상시킨다. 비움과 회한을 표현하는 조흥동의 한량무는 춤사위 속에 선비의 정신이 잘 들어가 있으며 문화사적 가치 또한 크다.
2012년 춤 인생 60년 기념 ‘조흥동 춤의 세계’ 공연 후, 동명의 공연을 선사한 조흥동은 1941년 이천에서 4녀 1남 중 막내로 출생했다. 그는 만 여덟 살에 무용에 입문, 춤에 대한 치명적 격정으로 서라벌예대 체육무용과를 거쳐 1962년 국립무용단 공연을 시발로 본격적으로 춤 무대에 등장한다. 남성 무용수가 드문 시절에 그는 상종가를 치면서 승승장구해왔다.
격정만리, 그는 청춘을 불사르며 전통춤 대가를 찾아다녔다. 송 범, 주 리,김윤학,주만향에게서 기본기를 배운 뒤 강선영(태평무), 김천흥(처용무, 춘앵전), 김백초(무용기법), 김백봉(무용기법), 장홍심(장고무), 김진걸(산조춤,설장고), 전사섭(설장고), 한영숙(승무, 살풀이춤), 박송암 스님(바라춤, 나비춤, 범패), 정인방(학춤, 신선무), 은방초(살풀이춤, 무당춤), 김석출(동해 오귀굿), 이매방(오고무, 승무), 황재기(소고무), 임준동(불교의식무용), 안사인(제주굿), 우옥주(황해도 만구대탯굿) 등 이십 명의 대가들의 춤을 배우는 대장정을 거치며 수천 가지 춤사위를 익혔다.
가족 구성원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인 탓에 그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는 천성적 춤 리듬감을 갖고 태어났다. 가락만 들으면 춤이 나오고, 템포와 감정에 민감한 천부적 춤 소질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춤사위는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여성 춤과 남성 춤의 경계를 허물며 고수들이 취하는 중성적 이미지를 갖는다.
2015년 『조흥동 춤의세계』는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춤들을 위해 분위기 잡기에 열연한 라이브 연주자들은 원완철(대금), 이호진(피리), 김선구(해금), 윤서경(아쟁), 문경아(가야금), 이재하(거문고), 김경섭(장구), 김태영(구음)이었다. 악가무(樂歌舞)가 어울린 춤판은 잠자는 개구리를 깨우고, 보름달을 띄어 올리는 신명과 환한 마음을 선사하였다.
이번 춤판에서 조흥동은 한성준의 ‘원류 한량무’와 조흥동의 ‘한량무’ 독무를 선보였다. 그의 손과 발 움직임, 사위와 디딤은 하나하나는 바로 ‘움직임의 사전’이 되는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를 감싸는 예인(藝人)들의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감동을 연출한 작품들을 둘러보며 그에 대한 헌사(獻辭)를 마무리한다. 순차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본다.
1. 『비나리』
뀅가리로 선도하며 사물놀이의 창시자이자 ‘비나리’의 명인 이광수가 나라의 발전과 국민들의 평안, 시절이 아름답기를 노래하며 우리민족 고유의 소원 곡인 축하 비나리로 이번 공연을 축원하였다. 천개(天開)하듯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리듬은 빨라진다. 신명을 부르니 하늘 문이 열렸다. 사물놀이가 늘 흥분을 자아내듯 이 플로로그의 『비나리』는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특별출연: 이광수, 사물놀이:서정훈, 유인성, 임수빈, 임인출)
2. 『원류 한량무』
‘원류한량무’는 한성준 작무(作舞)로 제자 강선영에 이어지고 그 원형이 조흥동에 이수된 작품이다. 한량, 색시, 주모, 먹중의 네 명의 춤은 무대 세트와 소품까지 동원하고 고무신을 던지는 등 극적 구성을 갖춘 춤과 연기가 코믹하게 시류를 풍자한다. 색시, 먹중, 한량 사이의 삼각관계는 풍류와 도덕의 사실감을 보여준다. 원류 한량무는 등장인물의 첨가로 놀이판을 크게 벌릴 수도 있고, 그 성격에 따라 다양한 춤사위와 의상이 구성될 수 있음이 밝혀진다.
(출연: 조흥동, 고선아, 원정숙, 김미란)
3. 『진쇠춤』
진쇠는 가장 소리가 잘나는 쇠, ‘참쇠’를 뜻한다. 꽹과리를 치며 잡귀를 물리치는 진쇠(꽹과리)춤은 쇠를 들고 가락과 소리를 내어 여러 신(神)을 불러 그 신들로 하여금 잡귀를 물러나게 한다. 세상의 모든 평안을 노래하고 팔도원님들이 왕 앞에서 국운을 빌며 제사 지낼 때 진쇠춤을 추었다. 근세에는 경기도당굿 제석거리에서 추어졌으며 故조한춘, 안지산, 박용우, 이동안, 김숙자 등이 추었던 것을 많은 고증, 유래 및 춤사위를 정립하여 진쇠춤 원형에 가깝게 완성했으며, 다섯 명의 후학들이 재연한 작품이다. 수직과 수평의 진법(陣法), 때론 원을 그리며 하나 되는 꽹과리 5인조는 시각적 색감과 운동감이 타악과 더불어 흥분을 자아낸다.
(출연: 김남용, 윤성철, 김태훈, 이영진, 주승호)
4. 『신노심불로』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뜻의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는 1949년 세계 현대무용의 대모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후원 아래 미국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1956년 일본 공연 실황이 담긴 조택원 선생의 『신노심불로』 영상자료가 발견된 이후 최현을 거쳐 조흥동에 전수되었다. 이 작품은 조택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조흥동에 의해 복원, 재연, 창조되어 제자 김정학에게 전수한 작품이다. 2007년 12월 9일 국립극장에서 공연 이래 지속적으로 공연된 작품이며 김정학은 능청맞게 노역을 섬세하게 잘 연기해 내고 있다.
(출연: 김정학)
5. 『판소리』
조흥동의 ‘한량무’ 춤 공연의 품격에 걸 맞는 명창 안숙선, 성창순의 판소리는 고전의 깊은 향기를 맛보게 하였다. 안숙선 명창의 ‘춘향가’ 중 ‘이몽룡 어사출두 후, 어사또 춘향 상봉’ 대목, 성창순 명창의 ‘심청가’ 중 ‘부녀상봉’ 대목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뿌리 깊은 소리와 깊은 춤과의 만남은 민족예술의 근원이 하나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별출연: 27일 안숙선, 28일 성창순)
6. 『한량무』
한량무는 천하를 품을 듯 한 기상으로 디딤새나 춤사위가 기품과 기개가 넘치는 호방한 남성무로써 보폭이 넓고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동작이 크다. 한량의 마음을 그려내는 것, 세상을 다 품을 것 같았던 포부와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그르려니 하고 사는 한량의 모습은 초월자를 닮아있다. 백색 도포, 검은 갓, 술띠, 갓신 차림의 선비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다. 느린 진양조에서 중모리로 가락이 바뀌면, 고고한 학의 자태로 음악을 끌고 다니듯 엇박자 동작이 이어진다. 정갈하며 세련미 넘치는 옛 선비의 고고한 품격으로 빚은 이 춤은 남성춤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며 선비의 회한이 짙게 투영되는 조흥동의 대표작이다. 조흥동은 이번 공연에서 명백하게 정의될 한량춤의 뚜렷한 춤사위와 정형을 제시하였다.
(출연: 조흥동)
7. 『중부살풀이』춤 (조흥동류)
살풀이춤은 무속에 나오는 무무(巫舞)로써 ‘살’은 인간의 삶의 액운으로써 흉살과 재앙 등의 악귀의 짓이며, 삶의 해로운 원혼과 기운을 모두 풀어버리는 것이 ‘살풀이’이다. 팔도 굿중에 ‘경기살풀이춤’은 무속무(巫俗舞) 중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권의 춤사위를 집대성하여, 1990년 국립무용단에서 초연된 조흥동류 경기살풀이춤으로 정립된 작품이다. ‘살풀이’의 예술적 부분을 추출한 춤이 『중부살풀이』춤이다. 무속이 예술로 승화된 이 작품은 조흥동류로써 빛깔과 선이 고운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군무로 공연된 이 작품은 슬픔이 정제된 희망의 춤이었다. (출연: 윤혜정, 백진희, 김은영, 황규선)
8.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승무는,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한국춤의 모든 기법이 집약되어 있으며 품위와 격조 높은 예술형식의 舞作(무작)이다. 힘 있고 호화로운 장삼의 곡선미는 속세의 번뇌와 수도승의 고행을 표현하듯 공간미적 형태의 아름다움과 내공의 호흡을 담아 표현되며, 法鼓(법고)는 풍요로운 민속장단의 2분박과 3분박, 또는 혼합 형태의 다양한 리듬으로 타주한다. 전통춤의 고수이자 명무 그 자체인 채상묵의 승무는 ‘너무나 인간적인’ 승무를 선보임으로써 조흥동의 춤 잔치의 진객(珍客)의 소임을 다하였으며 무미(舞美)에 진력하였다.
(특별출연: 채상묵)
9. 『한량 젊은그들』
월륜춤보존회 제자들 열세명이 꾸민 ‘한량 젊은그들’이라는 제목의 군무는 월륜의 한량무를 재해석한 창작무이다. 월륜의 후학들인 한량무 전수생들의 젊고 활기찬 춤사위는 무용계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옛 춤사위와 디딤새의 절묘한 가락들로 구성된 이 춤은 한량무가 버전에 따라 구성과 성격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조흥동 군단의 위용을 보여주는 이 춤이 이미지의 순환적 형식을 제자들이 취함으로써 한량무를 계승,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각인시켜주었다.
(출연: 김상렬, 전수석, 이상윤, 윤천섭, 안영환, 박철순, 강대현, 기무간, 조한진, 조완희,정찬민, 최지환, 허종근)
2015년 『조흥동 춤의세계』는 마무리와 새로움의 조화를 모색한 유쾌한 춤판이었다. 서로가 격려하고, 계(界)를 떠난 모습으로 하나 되며, 애매성을 불식시키는 소통의 무대였다. 그의 한량무는 여러 갈래 춤의 미진(未盡)을 터는 대범한 행위이다. 기억의 창에 남는 춤은 영원하며, 한량무는 조흥동이라는 이름과 함께 불멸의 춤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 월륜 조흥동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보유자(2014~)
한국무용협회 고문 (2005~)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3~)
국민대학교 초빙교수(2003~)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2001~2014)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 역임 (1997)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존회 회장(1995~)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겸 단장 역임 (1993)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역임(1991~2005)
※ 주요안무작품
제신의 고향(1974), 이차돈(1976),푸른 흙의 연가(1979), 춤과 혼(1981),맥(1983), 부운(1984),젊은 날의 초상(1985), 대(代)(1986), 흙의 울음(1990),강강술래(1992),환(1993),무천의 아침(1994),비나리98(1998),우리춤 그맥2000(2000), 연인(2000),황진이(2001),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2001), 화합의 빛(2002), 마의태자(2002), 삼별초의 혼(2003), 고성의 무맥(2004), 조신의 꿈(2004), 꿈꿈이었으니(2005),봉수당진찬례와 우리춤의 맥(2006), 황진이(2007), 춤향기 그 색깔(2007), 달하_The Moon(2008),천년의 유산(2009),화조풍월(2010),도미부인(2011)
※ 주요수상경력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무용대상(2005)
이천시 예술부문 문화상 수상 (2003)
대한민국 문화훈장 옥관장 수상 (2000)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95)
93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92)
제3회 대한민국무용제 입상(1981)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입상(1979)
대학무용콩쿨 안무지도자상(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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