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여고 신하원
사랑, 봉사, 나눔을 주제로 한 제4회 이태석 기념 청소년 아카데미. 고등학교에 들어와 미래를 상상해나가고 그려가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캠프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요 근래에,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준 이 힐링캠프에 매우 감사함을 느낍니다. 학교와 학원을 전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든 지금,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으니까요. 이 캠프가 저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며 이태석 신부님의 일생을 짤막하게나마 엿보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아직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의사로서의 편한 삶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봉사하다 가신 신부님의 모습을 다 닮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자 결심했습니다.
캠프 내 하는 활동들은 모두 즐거웠습니다. 젠탱글로 하얀 이름표를 꾸미며 오랜만에 잡은 (컴퓨터 싸인펜내이 아닌) 색색깔의 예쁜 싸인펜과 (채점용 빨간 색연필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연필들은 저를 매우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취미,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연예인을 무엇으로 쓸까 고민하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조원들과 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으며 1분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아직 조금 어색한 조원들과 첫 말문을 트게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예문여고에서 온 수민이는 강아지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고, 우리 조의 대부분 남자 아이들은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과, 인서라는 친구는 홈스쿨링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팀명을 “코알라”로 정하고, 전지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티격태격 싸우는 배성우 멘토쌤과 신정혜 멘토쌤을 구경하며, 우리는 남녀 섞어 앉아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큰 전지를 코알라 그림으로 채우고(코알라는 인서가 성우쌤 폰의 코알라 사진을 보고 주도적으로 그렸습니다. 우리 조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듯 했습니다.) 나무와 글자들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점차 어색함을 깨고, 이건 어떻게 그릴까 의논하며 점차 종이를 채워나갔습니다. (‘코알라’를 빠르게 발음하면 ‘꽐라’가 된다며 소주병을 그리자는 제 의견은 ‘너희 미성년자잖아! 안 돼!’ 하고 끝까지 주장한 성우쌤 덕분에 무산되었습니다.) 팀명을 ‘코알라’로 정해서 무엇을 구호로 할지는 꽤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폰으로 코알라의 사진과 습성 등을 찾아본 결과, 둘러 앉아 “으엉?” 하고 멍청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많이 발견되어 구호는 “으엉?”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제 의견이 꽤 잘 반영되었습니다. 성우쌤도 처음엔 반대를 하는 듯하다가 수긍하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꼭 멘토가 아니라 친구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본 조 구호 중에 가장 참신한 것 같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점심식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나름 경남여고 학생으로서 급식에 자부심이 있는 편인데, (경남여고 급식 맛있습니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손바닥 필름을 촬영하며 약간씩 남아있던 어색함은 완전히 날아가 버렸습니다. 저희 조는 인서를 중심으로 “포돌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주제로 촬영했습니다. 하는 내내 너무 웃기고 즐거웠습니다. 감독인 재훈이가 이 장면을 어떻게 찍을지, 어떻게 편집할지 조원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면서, 우리 조만의 필름이 시간 내로 완성되었습니다. 꽤 뿌듯함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손바닥 필름 촬영 때문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흥분 상태였지만, 곧 가만히 앉아 김한라 님의 강연을 듣고 있자니 곧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전날 캠프에 대한 기대로 밤늦게 겨우 잠들었던 탓도 있어서, 김한라 님이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와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집중했다가, 강연을 할 때는 조금씩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고, 그녀로부터 배울 점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저녁을 먹고 말그대로 ‘실컷’ 놀았습니다. healing camp가 아니라 killing camp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강사님 덕분에, 오랜만에 불안감, 조바심,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모두 잊고 오직 노는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인서의 끼는 크게 발휘되어 춤솜씨를 뽐냈습니다. 흥 많은 아이들의 비트박스, 춤 등을 구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여자 멘토쌤들과 남자 멘토쌤들이 무대에 끌려 올라가 춤추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놀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Before I die는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죽기 전 무엇을 꼭 하고 싶은가.. 저에게 답을 여러 가지였습니다. 세상 모든 맛있는 고기와 케이크를 먹어보고 평가를 내리고 싶고, 지구를 돌며 세계 일주를 해보고 싶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을 해보고 싶고, 예닐곱 살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고, 나만의 집을 짓고 싶고...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글로 써보니 더욱 이루고 싶고, 더욱 가슴에 와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서를 작성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시절, 도덕 선생님은 늘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을 때는 아무 말도 남길 수 없다. 미리미리 유서를 작성해놓고 가슴에 품고 다녀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휴대폰에도 이미 두 장 분량의 유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날 밤 쓴 유서에는, “해야 할 말”이 아닌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촛불이 꼭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같다고 생각하며, 그 불빛에 의지해 글을 썼습니다. 유서를 발표하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때 이 유서를 떠올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활동이 끝난 밤, 우리 조원들은 모두 남자들 방에 모여 함께 과자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곧 성우쌤과 정혜쌤이 도착해 다같이 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빈이, 소희, 인서, 상혁이와 함께 팀을 이뤄 병뚜껑 멀리 날리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좀비 게임을 하며 목숨 걸고 게임에 임했습니다. 성우쌤이 너무 재밌게 놀아주셔서 마지막 마피아 게임이 끝나고 여자 방으로 돌아간 시각은 새벽 4시였습니다. 슈빌 조에서 저희 방으로 벌칙 수행을 오기도 하고, 길을 잃은 멘토쌤들도 저희 방에서 아주 아주 즐겁게 놀다 가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장렬하게 저희랑 놀아주시고 농락해주신(?) 성우쌤께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날 거의 떠지지 않는 눈을 뜨고 조원들을 다시 만나니 전날밤이 떠올라 괜히 킥킥거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을 글로 묘사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묘사한 글을 보고 상상해서 그리는 활동을 했는데, 너무 못 그려서 미안했고, 받은 그림이 닮은 듯 안 닮은 듯해 아리까리(?)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후 사랑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World Cafe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잠이 덜 깨서인지 멍한 정신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친밀감, 열정, 헌신의 레스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과 아가페, 에로스, 플라토닉으로 나뉘는 사랑의 종류를 배경지식으로 기초하여 저는 제 포스트잇을 작성했습니다. 다 작성한 후, 다른 조로 가서 활동을 계속했는데, 주제는 “봉사활동의 점수화는 옳은가?”였습니다. 저는 칸트의 동기 중심의 가치 판단(도덕적으로 옳은 동기가 필수적) 보다는 벤담의 결과 중심의 가치 판단(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더 추구하는 사람이라 찬성했는데,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점수화에 반대해서 거의 신경전 같은 토론을 벌이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먹게 될 점심이라며 맛있는 밥을 우걱우걱 먹은 후, 강당에 그대로 드러누워 Headline News를 작성했습니다. 올 상반기 나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들, 그리고 미래에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올 한 해를 되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 뉴스는 저의 목표 대학과 학과, 점수, 등수들이 거의 내용의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 이태석 기념 청소년 아카데미 캠프도 저의 잊지 못할 뉴스의 헤드라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다함께 찍은 손바닥 필름들을 감상했습니다. 다른 조들의 필름도 재밌는 것들이라 보면서 옆에 앉은 소희와 같이 웃었습니다. 저희 조 필름이 나올 때, 인서가 둘째 날 아침 일찍 가버려서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같이 봤으면 더 재밌고 좋았을 텐데 너무 아까웠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고 있는 불량학생 엑스트라를 연기했는데, 같이 피는 애들은 앉아있는데 저만 일어서서 펴고 있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진짜로 담배 피는 거 아니냐는 심술궂은 질문을 웃어넘기며 필름을 계속 감상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몇 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종차별을 다룬 필름에서 중동인을 연기한 만수르 닮은 친구가 돈을 던지며 핸드폰들을 사갈 때 빅뱅의 뱅뱅뱅 음악이 깔린 것이 너무 웃겼습니다. 또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물을 뿜으며 죽는 연기를 하는 친구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즐거웠던 손바닥 필름제였습니다.
결국 끝을 내고 싶지 않았던 이 캠프는 끝이 났고, 저는 아쉬움을 느끼며 조원들과 헤어져 엄마 아빠와 함께 차에 올랐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들과 이 프로그램에 감사를 느낍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 멘토로 참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