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선배 K목사님은 신학교를 나온 후 모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워낙 열정적이신 목사님이신자라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사역하는 과정에서 혼신을 다하여 오로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헌신했다. 자신의 전 재산은 다 드려졌고 어려울 때마다 처갓집, 친인척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돈을 다 빌려다 사용했다. 결혼 패물 아이들 돌 반지 등도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처갓집 친지 등에서 빌려온 돈 등은 담임목사 이외에 아무도 모르는 부채였다. 신앙을 가진 분들은 오로지 하나님만 아신다는 믿음으로 구체적인 기록이나 영수증 등이 구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자신의 생명을 바쳐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에게 더욱 그럴 것이다.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건축인부들의 임금이 몰릴 때나 어려울 때는 돈 되는 것은 다 동원됐다. 사역 6년차 500명 교회로 성장했고 목사님의 아직 나이 젊기에 건강 검진할 염두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남은 사모와 자녀들에 대하여 성도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후임 목사를 초빙해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당 곁에 사택에 사모와 자녀들이 거추장스러워 지기 시작했고 결국 변변한 퇴직금이나 보상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택을 비워주고 떠나야 했다. 살길이 막막한 사모는 그 지역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사하여 포장마차를 하게 된다. 물론 그동안 드려진 전 재산은 하늘에 쌓여있고 상급으로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 유족의 현실은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또 있다. 신학교 동기 H목사님, 연세대를 나와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첫 목회지가 부산의 개척교회였다. 그 목사님도 K목사님과 같은 길을 걷는다. 사모와 함께 두 눈이라도 빼어 교회를 위하여 사용할 정도로 생명을 다해 헌신했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하여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목사님이 생존 할 때나 교회가 부흥 할 때는 모든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극진했으나 사정이 달라졌다. 후임목사가 올 때 결국 월세로 살고 있는 사택(교회 이름으로 있던 것)만 명의 이전받고 아무런 보장도 없었다. 누가 이 기막힌 사실을 바로 이해하고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어느 목사님 장남이 아버지에게 그동안 맺힌 말을 했다.『고3 때, 다른 친구들은 모두 부모가 함께 고3 이었지만 지신을 홀로 고3의 모든 고통을 겪었다』고, 대부분 고3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와 함께 ‘고3 병’이라는 그 고통을 함께 겪는데 교회를 개척하여 건축하던 그 목사님은 고3 아들을 돌 볼 정신적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2010년 9월 소천하신 고 옥한흠 목사님 아들 옥정호 집사는『모든 것이 너무도 늦어버렸습니다.』『자라면서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을 정도로 아버지는 바쁘고 엄한 분이었습니다.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의 아들이라는 부담을 안고 지독한 사춘기를 보냈고, 20대 후반에는 기독교에 회의를 느껴 종교에 대한 관심 자체를 끊기까지 했습니다.』했다. 이 대목에서 그의 상처가 얼마나 아팠을까 상상 할 수 있겠는가.『평생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을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해 세 번씩이나 보아야 했습니다. 그 눈물은 아버지가 살았던 삶에 대한 솔직한 생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지금껏 남들 앞에서 지도자로 살았기에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조차도 솔직할 수 없었던 스스로의 모습을 비로소 똑바로 보았기에 흘린 눈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눈물들은 홀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숱하게 쏟던 눈물과는 전혀 다른 눈물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던 가족들에게 조차도 생소한 눈물, 목사 옥한흠이 아닌 인간 옥한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나로 하여금 아버지 옥한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 준 그런 눈물이기도 했습니다.』라고『아버지 옥한흠』이란 책에 썼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로 교회에 최선을 다하며 다른 그 무엇에도 마음이 나뉘지 않았던 그런 목사의 장남이라는 부담감과 상처가 어떠했는지 누가 짐작 할 수 있겠는가.
많은 개척교회 목사의 가족이 이와 같은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열정적인 목사님 일수록 더욱 그렇다.
최근 목사들의 퇴직금 문제가 드러나면서 이를『담임목사직 매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여론화되는 것을 보면 마치 목회자들이 돈에 대한 욕심으로 온 기독교회가 부패한 것처럼 매도되고 폄하될 수 있다. 그 시각과 비판적 태도는 위와 같은 아픈 상처를 간과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 특히 불신자들에게 이와 같은 보도가 어떻게 여겨질 것인가.『교회의 목사들이 성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말세』라고 일방적으로 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와 교단이 체제를 갖추어 퇴임이나 또는 사임 목사에게 정당하고 충분한 예우와 보장이 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사후 대책이 전혀 없는 경우 일어나는 상황을 마치 복마전처럼 폭로하고 폄하 한다면 이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독교 안티들이 이러한 부분적인 내용을 침소봉대하여 흠집 내기에 열을 올려 영혼 구원과 전도의 문이 닫히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헌금한 돈은 어떠한 경우에도 돌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받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교회를 개척하면서 임대 보증금이나 건축을 하면서 은행 융자도 안 되고 돈 구할 방법이 없을 때 피치 못하고 전 재산을 사용하여 위기를 모면하거나 친지 등을 통하여 융통할 때 차용증서를 쓸 여유도 생각도 미처 못 했을 수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목사 홀로 속앓이를 할 뿐이다. 헌금이 아니라 급한 불을 끄느라 동원된 돈은 자신이 알고 양심이 안다.
목사가 소천하든지 퇴임을 할 때 누가 그것을 이해하고 보상하고 해결해 줄 것인가. 생명을 바쳐 섬겨온 그 교회 사역을 물러날 때 그렇게 쉽게 모두 포기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기에 거기에 애착이 있고 미련이 남아 퇴직금을 요구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니 정당히 보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고 장로님이나 성도들 중에 그만한 부담을 담당해 준다면 문제가 없다. 이와 같이 막막할 때 당회원들도 이해하고 성도들도 수긍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것을 매관매직이나 돈에 대한 욕심으로만 비판하고 폄하하는 것은 잘못이다.
퇴임하는 목사나 유족들, 그리고 후임자나 교회 구성원들도『현실과 양심』의 관점에서 기도하고 판단하여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하나님 앞에도 거리낄 것이 없는 결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생명을 바치면서 목회하신 목사님과 가족들의 아픔과 눈물을 어찌 우리가 다 알수있을까요 제도적으로 생활이 안정될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대책마련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글을 읽고 매우 마음이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