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 3성(東北 三省)
중국 북동 3성 / 연변조선족자치주 / 옌지(延吉)의 용문교와 해란강
1. 백두산 가는 길과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1990년, 내가 43세 되던 해 난생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는데 홍콩-중국(백두산)-일본을 돌아보는 10박 11일짜리 여행이었다. 당시 청주에 있는 한국교원대학교에 6개월간 파견교육(음악교육 전문과정)을 갔었고, 그 과정 중에 해외여행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첫 해외 나들이라 느낀 바가 많았다.
당시는 중국이 공산국가라 홍콩을 거쳐 입국했고 정부에서 안기부(安企部) 직원을 동행시키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도 지금에 비하면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고 중국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중국 북동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은 중국에서도 변방 지역으로, 경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朝鮮族)들 생활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일본은 경제 사정이 좋아 도쿄(東京) 일원을 돌아보는 국한된 일본여행이었지만 매우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북경 관광을 마친 후 다음 목적지는 백두산인데 먼저 요녕성(遙寧省) 심양(瀋陽)에 들렀다가 길림성(吉林省)으로 들어가 장춘(長春), 연길(延吉)을 거쳐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지나 백두산에 이르는 대장정(大長程)이다.
당시 요녕성(遙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을 묶어 북동 3성이라고 했다.
북경(北京)에서 비행기로 심양(瀋陽)까지 이동하고 거기서부터는 황량하고 끝없이 넓은 만주 벌판을 버스로 이동한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는 고물 관광버스로 10시간 이상 타다 보면 엉덩이가 아픈 것은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맨 뒷좌석에 앉았던 가이드는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머리를 천정에 부딪쳐 이마에 밤톨 같은 혹이 생기기도 했다.
요녕성(遙寧省) 성도(省都)인 심양(瀋陽)은 인구 500만이 넘는 대도시인데 예전에는 봉천(奉天)이라고 불리던 도시이다. 중국 간자체(簡字体)로는 심양(沈阳)이라고 쓴다.
일제 점령기, 일본이 도시 이름을 고쳤다는데 일본 천황을 받드는 도시(奉天)라는 의미이다.
심양(瀋陽)에서 장춘(長春)을 거쳐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는 끝없는 만주 벌판을 달리는데, 가도 가도 인가는 별로 보이지 않고 옥수수밭의 연속이다.
결국, 달리던 중 버스 바퀴 펑크가 나서 길옆에 세워놓고 수리를 했다. 도로변은 막 모심기가 끝난 넓은 논이 있고 논두렁 옆으로 작은 돌무더기와 무너진 흙담 같은 것이 보이는데 초라한 돌비석에 붉은 한글로 ‘발해고성’이라고 씌어있다.
거기가 어디쯤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여기서 우리 민족이 세운 저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渤海)의 흔적을 만나다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 조선족(朝鮮族)인 대조영(大祚榮)이 세워 오래 지속(持續)되지는 못했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가 발해다.
이곳 만주 벌판은 옛 고구려와 발해의 터전이었으니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땅이었던 셈이다.
이 부근에 살던 중국인(여진, 말갈족 등)들은 벼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는데 우리 조선족(韓民族)이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지금은 조선족은 물론 중국인들도 논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어 집 구조나 마을의 모습이 우리나라 시골의 풍경을 보는듯하여 친근감이 느껴진다.
내가 이곳을 다녀온 후 1998년부터인가 중국정부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고 하여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도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억지 학설로 역사를 왜곡하려 하여 한-중간 외교 마찰로 비화(飛化)되기도 했다.
중국 북동 3성 중 길림성(吉林省)은 중국 최초의 소수민족 자치주인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원수도 급감하는 등 자치주로서 지위가 위태롭다고 한다.
길림성(吉林省)은 예전부터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땅이었으니 조선족이 많이 살았는데 일제침략기에는 일제의 억압을 피하여 많은 우리 민족이 이주해 살았던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지역으로 지린성 인구 중 약 38%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미인송 호텔(美人松宾馆) / 백두산의 관문 이도백하(二道白河) 골목길 / 백두산 미인송(美人松)
백두산 관광의 관문이라 일컬어지는 이도백하(二道白河)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인데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중국 쪽으로 흐르는 송화강(松花江)의 원류라는 의미의 강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한다.
이도백하에 있는 미인송호텔(美人松賓館)에서 일박을 했는데 이곳에는 미끈하고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많은데 미인송(美人松)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백두산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로 ‘장백미인송(長白美人松), 이도백하 미인송(二道白河美人松)’으로 분류도 한다는데 우리나라 남쪽에서는 보기 힘든 소나무로 키가 엄청나게 크고 잔가지가 없으며 곧게 자라서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나무껍질은 아랫부분은 회갈색, 위로 올라갈수록 붉은색이다. 미인송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침대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화장실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청결도 좋지 않다.
이곳 호텔 프런트를 보는 순진한 조선족 아가씨는 예쁘장한데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한국을 꼭 가고 싶은데 갈 방법이... 누가 초청해주면 갈 수 있다는데...’
초청해준다, 어쩐다... 적당히 둘러대면 뭐든지 다 할 표정이다. 당시 한국의 못된 사기꾼들이 조선족들을 속여 한국으로 데려와 팔아먹고... 그런 사기꾼들이 속여먹기에 딱 좋겠다 싶어 안타까웠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버스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34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