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기분
이성자
할머니 집에 갔는데
낯선 친구가 다가온다.
- 안녕하세요?
저는 간병 로봇 로사에요.
친절한 인사에
당황해서
멍하니 서 있는데
- 할머니 약 드실 시간이에요.
물 갖다 드릴까요?
나보다 먼저 할머니를 챙긴다
할머니 도와드리려 왔는데
밀려난 기분이다.
시간 여행자처럼 미래의 어느 날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시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간병 로봇이 등장해서 아픈 사람을 간호해 줄 수 있을 거예요.
오늘날 과학 문명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할머니를 직접 간병해 드리고 싶은데 로사에게 밀려난 기분이 드는 것, 이해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간병 로봇 로사는 사람이 하는 일을 보조해 주는 거예요.
간병하는 것도, 로봇 로사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지요.
간병 로봇이 내가 할 일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간병 로봇의 도움을 받으면 할머니의 병간호를 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경우이든지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니까요.
(전병호/시인ㆍ아동문학가)
*이성자 시인은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2022년에 동시집 ‘바빠 바이러스’를 펴냈어요.
※ 출처 : 소년한국일보(https://www.kidshankoo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