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서랍>
가드를 올리고, 위를 봐요!
고정순, 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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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순: 저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나는 그림책으로 무엇을 할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네요. 사회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불편한 것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본능에 해당된다면 무의식 저편에서는 어렸을 적 불합리한 환경과 차별이, 20대에 와서는 먹고사는 게 바빠서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보험 민영화 때였는데요, 저는 몸이 많이 불편해서 공공의료 시스템에 민감하거든요. 내가 어렸을 때 먹고사는 게 바빠서 이런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지금 나이 먹고 추운 날 벌로 여기 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의식 속에 제가 눈 감아온 세상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죄책감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큰 동력 같아요. 그걸로 뭘 주장하지는 않길 바라요. 『철사 코끼리』를 만들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에서는 혹시라도 내가 뭔가 주장했나 하는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특히 작가의 말도 빼고 싶었어요. 다시 주장하지 않아도 이미 내용으로 충분할 텐데 하는 생각에서요. 제가 너무 많이 주장하나 싶은데 정 작가님의 말이 많이 위로가 됩니다. 아직은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아 제 마음대로 위안을 삼습니다.
가끔 사석에서 작가님께 성경 이야기를 듣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십대의 대부분을 고민했던 분야가 종교거든요. 교회, 절, 성당을 두루 갔었는데 회의가 들기도 하더라구요. 교회에서 십일조 헌금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자진해서 내놓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아름다울ˇ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한국 교회의 헌금의 실체가 그렇지 않은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목사님이 헌금 액수와 헌금자 명단을 불러 주는 것을 보고 회의감이 들어 멀리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살면서 십일조에 대한 부분은 오래 남아 있어요. 종교는 없지만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하면 내 수입의 십일조는 환경단체를 위해서든 동물을 위해서든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것도 결국 종교더라구요. 정진호 작가님께 종교는 어떤 의미인지요?
정진호: 대부분의 독자분들은 제가 독실한 모태신앙일 거라 생각하시겠네요. 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게 스물일곱 살이었어요. 지금의 아내가 저를 전도했어요. 지금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중심에 있습니다. 성격 때문인지 성경도 분석적으로 읽고 있더라구요. 고 작가님께서 성경에서 소재를 직접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읽는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을 배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예언서라고 불리는 이유가 구약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신약에서 증거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단순한 방식으로 증거되지 않는 깊이감이 좋았어요. 십일조를 말씀하셨는데요. 구약에 십계명이라고 있어요. 이 열 개의 계명이 신약에서 하나로 정의됩니다. 사랑으로요. 율법으로 주신 이 세상을 사랑으로 해석해 내라는 의미인 건데 왜곡되어 십일조는 돈을 걷는 데에만 주로 이용되고 있지요. 사실 그런 상징, 구약에 나왔던 이미지가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되는가 그걸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마련되어 있는 장치들을 좋아합니다. 제 책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데 쉽지는 않아요. 소재보다는 성경의 문법, 중첩된 여러 의미의 효과 같은 걸 제 책에 적용시켜 보려고 합니다.
고정순: 맞아요. 하나의 거대한 예언이자 은유지요. 저도 그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하나하나 풀어 가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종교의 큰 미덕이 아닐까 해요. 몇몇 때문에 회의감을 갖기도 하지만 종교를 갖는 것과 종교적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은데 정 작가님에게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자발적으로 묻게 되더라구요. 성경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을 수 있어 좋아요.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정진호: 네. 자주 물어봐 주세요. 제가 아는 한에서는 언제나 기쁘게 답해 드리겠습니다.
고정순: 감사합니다. 종교 다음으로 궁금한 것은 인터넷 포털 기사 중 가장 눈여겨보는 뉴스가 있을까요?
정진호: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뉴스 웹진을 보거나, 스포츠를 직접 즐기지는 않는데 스포츠 결과 보기를 좋아해서 스포츠 기사를 자주 봅니다. 요즘 재미있는 건 연예 뉴스와 스포츠 뉴스에 댓글이 사라졌잖아요. 원래 그 댓글 창은 혐오 발언들의 축제 같은 곳이었어요. 그래서 원래 그 댓글 때문에 내가 스포츠 기사를 안ˇ봐야 하는데, 다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꾸 그 기사들을 보고 있는 제 자신이 굉장히 모순적으로 느껴졌어요. 요즘에는 댓글창이 사라져서 너무 좋습니다. 사회문제로는 주로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에 제가 선정단으로 참여한 ‘나다움 어린이책 프로젝트’로 한참 뉴스가 시끄러웠지요. 국가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친다며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읽고, 대립하는 반대쪽의 생각들을 보며 우리나라가 젠더의 문제에선 아직도 한참이나 뒤처져 있단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많이 절망하고 분노하기도 했죠. 저를 뉴스로 움직이는 동력을 생각해 보면 취미나 흥미 혹은 분노인 것 같습니다.
고정순: 제가 그림책 수업할 때 포털에서 관심사를 찾아 소재를 찾으시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여쭤본 질문이었는데 작가님께서 젠더에 관심이 많은 줄은 이미 잘 알고 있었어요.
정진호: 작가님의 책 중 비슷하게 연결책으로 『엄마 왜 안 와』와 『아빠는 내가 지켜 줄게』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재미있는 부분이 『엄마 왜 안 와』의 엄마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아빠는 내가 지켜 줄게』의 아빠는 육아하는 모습이 배경으로 주로 등장해요. 수많은 엄마, 아빠 시리즈 그림책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한국 사회가 많이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잖아요. 이 역할들을 자연스럽게 뒤집은 점이 의도한 부분인지, 한 권만 읽었을 때 잘 느껴지지 않는 젠더 이슈를 두 권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고정순: 저는 작가님처럼 완벽한 설계도를 가지고 길을 내지 못해요. 가면서 길을 내요. 저기까지 가겠다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어떻게 가겠다가 머릿속에 없어요. 그 안에서 보니까 엄마 아빠가 나오고 나서 보이는 것도 있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저변에 깔고 있는 이들의 배경은 ‘한 부모 가정’이지요. 그 위로는 엄마 아빠의 역할이겠고요. 맨 위에 있는 것은 시스템이었어요. 단순히 워킹 맘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없어요. 집에서 가사 노동하는 여성도 워킹 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들은 전업주부로 분류하잖아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니까요.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여성끼리의 연대를 막아요. 사회구조 안에서 그들은 이미 일하는 여자와 일하지 않는 여자로 분류되어 있더라구요. 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집에서 공동육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남자들에게 주어진 과한 노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모든 부분에서 누가 누굴 피해를 주고 가해한 게 아니라 모두 다 여기에 속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책이 나온 후에 느꼈어요. 시스템 안에 여자도 남자도 모두 똑같다는 것을요. 또 한 가지는 역할에 대해서요. 사회문제라는 게 한 부분만 말할 수 없어요. 환경만 해도 자본, 노동이 들어가야 하듯이 젠더의 불균형 문제도 결국 모든 게 들어 있어요. 가족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족을 이루는가가 제 관심사입니다.
정진호: 정말 많은 엄마 아빠를 다룬 시리즈 책들에서 다루지 않는 방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의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고 작가님이라면 아마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하하.
고정순: 조금 고민되었던 부분도 있었어요. 아이들 독자에게 어른들도 힘들다고 어른들의 사정을 성토하는 건 아닌가 해서요.
정진호: 저도 아이들과 수업할 때 재미있게 활용하는 책으로 조원희 작가의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웅진주니어, 2017)가 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어요. 주부인 주인공이 집안일에 너무 지친 나머지 고양이 손을 빌리게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고양이가 그냥 안 도와줘요. 가격표가 있어요. 일마다 꽁치 반 토막이며 몇 마리인지 표시가 되어 있어요. 집안일의 가치를 정형화해서 보여 주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집안일도 가치가 있고 지불을 해야 하는 일이란 걸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아이들에게 너희라면 얼마에 하겠냐고 물어보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경에 이런 것들이 등장하는 책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 작가님의 『아빠는 내가 지켜 줄게』도 그런 책 중의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고정순: 옛날 방식의 대사를 생각했다가 후반부에 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 주고 싶은 거죠. 엄마 아빠의 경우는 다른 측면으로 애정이 있었어요. 한편으로 성인에게도 하고픈 말이 있었나 봐요. 더 크게는 주는 위로와 위안이었으면 했는데 보는 분들이 『엄마 왜 안 와』 같은 경우엔 직장 워킹 맘도 울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정진:호 정말 먹먹해지는 것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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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서랍> 중에서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