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세례식과 천국의 계단
형님의 상태가 안 좋고 시각을 다투는 것 같아 연락을 드린다고 동생 박집사에게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그분을 위해 교회적으로 중보기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연락을 받고 첫배를 타고 나가는 날 나는 목포에서 사역중인 동기 목사님께 연락을 했다. 아침에 그곳에 이동하는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 급히 심방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부지런히 달려가 병원에 들어갔을 때 환자분은 요 며칠 대하였듯이 안정된 상태에서 기도해주고 나니까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구원의 확신과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물었는데 역시 아멘으로 답하여 주었다. 한시간 전에 친구 목사님 내외분이 다녀가실 때도 곧잘 대답을 하셨다는 것이다.
손목을 잡아보니 맥박이 희미하게 뛰고 숨을 몰아 쉬시는 모습이 편치않아 보였다. 요며칠간 임종세례예식에 대하여 생각해 왔기에 1층 마트에 내려가서 카스테라 빵과 포도즙을 사들고 올라와 간단한 성찬을 준비하고 임종세례식을 베풀었다. 예식을 위한 질문에 나지막한 소리로 답하던 성도님은 세례를 베풀고 나서 포도즙을 면봉에 묻혀 “이것은 주님의 피입니다.” 입술에 묻혀 주는데 그만 숨을 거두신 것이다. 예식 도중에 동생되신 박집사님도 도착하셨다.
성도님은 새벽에 목사님을 긴박하게 찾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급하게 달려간 것인데 저를 보시고 난 후에 긴장의 끈을 놓으셨던 것 같았다. 자녀들도 미처 와서 임종을지켜보지 못한 상태에서 천국을 사모하시다가 임종을 목전에 두고 세례를 받으시고 고통의 하소연없이 그렇게 평화스럽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이다.
고인의 유해는 삼목장례식장으로 옮겨졌고 기독교 장례식으로 준비가 되어졌다. 유족들 중심으로 위로예배를 드렸고 이튿날 오전 11시 입관예배 시간을 정했는데 정작 섬에서는 해무안개로 첫 배가 출항하지를 못하여 유족중심의 예배를 드렸다. 오후에 도착한 식도교회 중진들과 조문예배를 드렸고 이날 밤 다시 유족 위로예배를 드렸다. 두 아들의 회사 사람들이 수백명 찾아온 장례식장이라 그럴듯한 장례식이었는데 “천국환송”이라는 리본이 빛나는 식도교회 근조화환 꽃바구니가 마치 기독교 예배 현장임을 선포하는 듯 했다.
전통 장례로 진행될 뻔한 분위기에서 고인께서 기도를 받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고 기쁘다 그런 의지를 보이셔서 작은 아버지가 되시는 박집사님이 설득하고 주도하여 아버님이 사모하시는 천국으로 가시게 해드리자는데 동의하여 예배와 무관했던 그들이 모든 장례 예배에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일이 이쯤되니까 나는 주일임에도 예배 인도를 못하고 장례식 발인식을 집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주일 전날 다녀가신 장로님께 주일 낮예배 인도를 맡기고 발인에서 화장과 납골안치예식까지 모두 집전을 하고 주일 오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목포시 화장장에 자리가 다 차서 수소문 끝에 순천화장장으로 가기로 하여 새벽 6시 발인예배를 드리고 일찌감치 안개를 뚫고 순천으로 향했다. 최근에 지은 깨끗한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납골은 목포에 있는 천국의 계단 추모관으로 모시게 되어 최종 안치예배를 천국의 계단 메인홀 예배 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며 천국의 계단을 밟고 올라 서시는 고인의 모습을 보는 듯 너무 감사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이름은 무엇으로 불려지게 되나요” 궁금해서 물으셨던 고인은 그렇게 성도 박민완 이름으로 천국의 계단 아름다운 납골함에 안치되셔서 부활의 주님을 맞이하시는 주인공이 되셨다. 모든 예전과 예배를 마치고 유족들에게 “모두 승리하셨습니다. 이해와 참여에 감사드립니다. 자신이 불리우게 될 이름이 궁금하셨던 고인께서는 이렇게 성도의 이름으로 천국의 계단에 오르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그렇게 승리의 예식 인도를 마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