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일상에 행복이 있다
(중한문화교류협회회응모작품)
글:함란
"따르릉"아츠런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보니 어느새 새벽 한시다.
이 밤중에 누굴가?년로하신 부모님들땜에 항상 불안불안인데...혹시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가?
짧은 몇초사이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수화기를 들어보니 술에 폭 취한듯한 애아빠의 목소리다."여보 나 다 때려치고 집에 갈가?나 너무 지겹단말이야...."혹시 오늘 회사에서 먼일이 있었나?여직껏 한번도 들어본적없는 힘빠진 소리에 어지간히 차가운 내 마음도 갑자기 쓰르르해진다.
기약없는 타향살이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겠지....힘들면 집에와서 푹 쉬다가라고 마음에 전혀없는 소리를 하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그 많던 잠이 어딜 싹 도망갔는지 이 생각,저 생각에 궁싯거리면서 도저히 잠들수가 없다.옆에는 요즘 한창 "교장컵" 축구경기 훈련엔 피곤한 아들이 큰大자로 누워서 들어가도 모를지경으로 쌕쌕거리며 달게 자고있다.
막상 힘들면 집에 오라 해놓고보니 래일이라도 당금 집에 막 들이 닥칠것만 같아서 은근히 걱정된다.한달 또 한달 아직 벌지도 못한 돈인데도 적어도 두달은 앞당겨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애아빠가 진짜로 집에 오는날이면 우리 집의2차5개년 계획이 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격이 되고 또 어쩔수없이 선수교체까지 해야될판이다.
돈에 기갈이 들때로 든 내가 겨우 차례진 한국행을 포기하고 아들곁에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했고 또 얼마나 어려운 결단을 내렸는지? 내 사는꼴을 손금보듯 뻔히 알고있는 사람들 보기가 민망해서 몇날 며칠 밖에도 안나갔었다.
내가 변변치 못해 출세하지 못했는데도 내 부모님들은 딸자식들 다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당신들 탓이라면서 늘 미안해하셨다. 벼르고 별러 또 큰 결심을 내리고 겨우 얻은 우리 곰돌이,나는 부모님들의 그 마음을 내 자식한테 절때 되풀이하고싶지 않다.
어렵게 얻은 아들을 남부럽잖게 먹이고 입히고 가르칠려면 이 능력부족 아빠엄마는 밤낮을 자지도 쉬지도 말고 뛰여야할 판이다.같은 또래 친구네 애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도 다닌다는데 나는 이제 겨우 소학생 아들을 언제 키우노?애가 커가면서 공부시킬려면 들어갈 돈이 얼마이고 내 나이 어느새 래일 모레 50이니 노후대책도 생각지않을수 없고 크게 도움은 못드려도 년로하신 부모님들을 걱정도 안할수가 없다.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자리잡지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한국은 희망이였고 미래였다.고국이란 이 고마운 땅덩이가 내 아들이 웬만큼 자란 몇년후에도 다시 나한테 돈벌 기회를 줄수있을가하는 불안감도 없지않아 있지만 이제 겨우 비바람이나 피할수있는 코구멍만한 집구석이라도 내 집이라는 안도감으로 살아간다.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 해도 나 혼자만 그렇게 돈소리에는 귀를 막고 질긴 돈의 유혹을 냉정하게 자르며 해바라기처럼 늦둥이아들만 태양처럼 쳐다보며 “너만 잘 키우면 되지”라는 일념으로 욕심 비우고 수걱수걱 살고있다.이렇게 세운 계획이 잘 진행되는 조건이라면 적어도 십년은 우리 집의 주력선수인 남편이 탈없이 잘 버텨주어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너무 일찍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어쩌나.제발 지쳐 쉬더라도 울 보배둥이를 위한다면... 또 미울지라도 비울수 없는 구석을 지키는 이 마누라를 위한다면 제발 다시 뛰여주소서....
여태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한 직장두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돈버는 재간은 없는탓에 아들의 귀여운 모습도 아들의 재롱도 거의 못보면서 전에는 리비아의 사하라에서, 또 지금은 십년이나 한국에서 이렇게 오래동안 타향살이로 사는 애아빠가 때로는 너무 안스러운 생각도 든다.애가 어릴때 벌어야지하는 생각에 모질게 마음먹고 세살짜리 아들을 시어머니한테 맡기고 나도 몇년 한국 갔었던적이 있다.돈주머니 넘치게 둘러메지않고는 안온다고 큰소리치면서 떠났지만 "엄마아빠 나두 한국 데려가쇼. 아빠엄마 일하러가면 내 집에 혼자 있겠슴다..." "엄마 날 안 데려가면 내 유치원두 안가고 머저리 되겠슴다." 전화할때마다 목이 메여 꺽꺽 우는 아들이 너무 가슴아파서 돈은 자기가 벌테니 나는 집에 가서 아들이나 잘 키우란다.친척친구들 모임에는 거의 가지않아서 "짠돌이"로 불리우는, 큰 돈은 못벌어도 가족을 위해 뛰고 게으름없이 착실히 살아가는 이 남자가 내 아들의 아빠여서 내 남편이여서 너무 든든하고 고맙다.천하의 부모마음이랄가 끝내는 아들 위해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그렇게 고래힘줄처럼 질긴 돈 유혹을 버리고 돌아온 내가 날마다 하는 일상이라면 울 보배둥이 곰돌이와의 씨름이다.날 닮아 특별히 눈이 작아서 솔직히 아들이라면 끔뻑하는 나도 "에구 저 눈을 좀..."할 정도로 삐여난 얼굴이 아닌데도 먼 복을 가지고 태여났나 이뻐하는 이들이 많아서 다행이다."우리장손,우리장손" 친가에 가면 현룡이란 이름대신 우리 장손으로 통한다. 뭐가 욕심나면 아래집 이모귀에 대고 쏙닥쏙닥,내가 눈치챌새없이 새 장난감도 비싼 핸드폰도 척척 생긴다. 내가 한국가서 있는동안 학교에 갓 입학해서 다들 초면이였겠는데도 애 얼굴에 비쳐진 "이산가족"그림자를 용케도 보아내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신 고마운이들....그 인정빚은 언제 다 갚을수 있을런지? 그러고보니 울아들이 줄을 잘선 덕분이 아닐가싶다.비둘기처럼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는 혁이네,용휘네.....먼 사업을 하시는분들인지? 애들을 거느리고 여유있게 느긋하게 사는 모습이 내보기에도 부럽더라.
"혁이네랑 용휘네는 아빠엄마 동생이랑 다 같이 사는데 우리는 어째서 리혼해서 삼까?"리혼이라는 말은 어디서 주어들었는지? 어린 눈에도 네 식구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친구네가 몹시도 부러웠나 본다.
"내 아까 보니깐 엄마 지갑에 백원짜리 돈이 영 많습디다. 돈이 그리 많으면서 뭐 맨날 아빠는 한국에서 돈 벌어야 됨까?" 아들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하듯 혁이아빠가 가끔 썰매장도 강변놀이터도 또 먼데 야외에도 같이 데려가준다. 아들이 쉴틈이 있을세랴 시간맞춰 학원에 보내놓고는 주말에도 방학에도 챙겨주지못하고 일만하는 내 마음을 용휘엄마가 헤아려줘서 방학때마다 밥챙겨 먹이고 공부 배워주면서 살뜰히 보살펴주고 있다. "우리 아빠는 언제 차를 사서 나를 태우고 다님까?"했다는 말도 먼 자랑이라고 광민엄마와 했더니 광민아빠가 매일 아침 먼길을 에돌아가면서 학교까지 "모셔다"준다.
자기도 아빠와 팔씨름도 하고 아침 일찍 강변도 산책하고 사우나에도 같이 가고싶다면서 꼬깃꼬깃 모아놓은 세배돈을, 이담에 대학가면 등록금으로 쓰겠다고꽁꽁 모으던 돈을 봉투째로 엄마한테 주겠으니 빨리 아빠를 집에 오게 해달란다...
오늘은 연변 축구팀의 홈장 경기가 있는날,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열세살 먹도록 우리 아들 난생 처음 경기장에 가보았다.집에서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들을 혁이아빠가 와서 차에 담아싣고 갔단다.
"우리 응원을 잘 했길래 연변팀이 이겼담다.." 열띤 응원을 했다더니 걸치고갔던 점퍼는 허리에다 질끈 동이고 벼모내는 아줌마처럼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집에 들어서는데 땀범벅에 알락고양이가 되였지만 활짝 핀 아들의 얼굴..참말이지 아빠의 빈구석을 메워주는 이웃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들, 아들이 바라는걸 다 해줄수는 없지만 다른사람들의 돈따발과는 바꿀수없는 ,이 시간이 지나고나면 보배둥이의 귀여운 동년이 지워질가 잊혀질가 두려워 그 모습들을 고스란히 일기장에 남기고 내 머리속에 영원한 비디오로 남기면서 함께 장난치고 이야기하고 실랑이도 한다.일하고 집에 오면 힘들고 귀찮을때도 있지만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줄뛰기하라면 줄뛰기도 한다.아들의 말마따나 비만인 내가 풀쩍풀떡 줄뛰기하는 꼴이 얼마나 웃길가?
아들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얼마나 삭막할가하고 감수에 젖었다가도 가끔은 생각대로 되지않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때문에 ,내 기대에 못미치는 아들의 성적땜에 저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다 못해 때로는 "폭군"이 되여버리기도 하는 나다.그러면서도 돌이키는 아들과 함께 할수있는 평범한 지난일상이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기만 할뿐이다."만족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글귀를 어느 책에서 봤던지? 아빠랑 함께 못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긴 하지만 곁에서 은근히 아들을 챙겨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아빠엄마 내 이다음 커서 크고 좋은 집을 사드릴게요.사랑합니다!!!"라고 쓴 카드에 절로 만든 동그라미가 수십개나 되는 수표를 선물이라고 나한테 준다.한국에 간다고 그냥 얻어지는 돈이 아니지만 그래도 돈을 벌수있는데하는 아쉬움은 아들이 준 카드로 수표로 등가교환하면 될듯싶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우리 가족때문에 나는 행복하다.이런 생활에 빠지여 즐기는 내가 나절로 멋있어 보인다.
오늘 또 행복한 하루가 지나간다.듣자니 어느 복권방에서 천만원짜리가 나왔다던데 나도 한번 들려나볼가? 오백만원 빨락빨락한 현찰이 나에게 주어진다면....우리 세식구 같이 살수있지않을가?
아들아 오늘 밤엔 제발 돼지꿈만 꾸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