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는 토요일 오후.
하늘 정원에 어르신 몇 분이 나와 계신다.
“요새 오는 비는 아무 소용이 없어”
“아이구 이 토란 좀 보소, 잎이 솥 뚜껑만하네, 참 농사 잘 지었구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텃밭을 한참 살피던 문근영 어르신께서 나를 부른다.
“아여. 저게 뭐라? 정구지가? 뭐꼬?”
며칠 전에 고추 모종을 뽑았었다.
그 자리에 당파를 심었더니 어느 세 한 뼘이나 자라 있었다.
“얼마 전에 당파를 심었어요.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키만 자랐어요.”
“우리 집에는 아즉 심도 안 했는데... 너무 일찍 심은 거 아닌가 몰라”
어르신은 너무 일찍 심은 것을 걱정하며, 당파를 심는 방법과 시기를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일요일을 지나고 월요일 아침.
침상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이 나를 보자 힘차게 엉덩이를 밀며 나오신다.
“아여. 내가 아침에 한참을 찾았구만”
손에 들려 있는 까만 비닐봉지를 내 앞에 내밀며 풀어 보인다.
안에 작은 비닐봉지가 여러 개 들어있다.
“이거는 시금치 씨고, 이거는 대파 씨, 신하나빠 씨, 도래 씨, 상추 씨.....”
봉지를 하나씩 들어 보이며 그 안에 있는 씨앗의 이름을 모두 알려준다.
얼른 견출지를 찾아 어르신이 알려 주는데로 이름 적어 붙혔다.
“어제 우리 집에 심고 남은 당파 모종도 가 왔어. 여꺼는 이제 뽑아서 해 묵고 이거 심어 봐. 아여”
당파 모종을 내 손에 쥐어준다.
하나 하나 어르신이 직접 장만한 씨앗들이다.
거동이 불편해 집 주위와 마당에 화분을 두고 농사를 짓는 어르신이다
여러 종류의 씨앗을 이렇게 많이 어떻게 모았을까?
평생 농사를 지으며 해마다 이렇게 씨앗을 준비하셨을 것이다.
다음 해를 기약하며 작을 씨앗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이틀 뒤 세벽에 비가 촉촉이 내린 아침 당파를 심기로 했다.
어르신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떻게 심을지 여쭈었다.
당파 모종은 싹이 난 윗부분을 잘라내고 심어야 통통하게 자란다고 하시며 심는 내내 지켜보신다.
“땅이 추지서 파도 금방 나오겠어”
당파 심은 곳을 바라보며 어르신은 흡족한 미소를 보이신다.
당파가 쭉쭉 뻗어서 클 때까지 어르신의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이다.
2021년 9월 29일 수요일. 신정오
첫댓글 농사를 잘 지으시는 문근영어르신께 늘 배웁니다. 정성드려 준비한 씨앗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년에도 텃밭이 풍성할 것 같습니다. 늘 여쭙고 물어보는 팀장님 대단합니다. 당파가 쑤욱 자라서 파전으로 맛보고 싶습니다^^
당파 모종은 싹이 난 윗부분을 잘라내고 심어야 통통하게 자란다.
어르신만의 농사 비법을 터득했으니 내년엔 저도 도전해 봐야 겠어요~~
파전 구울때 막걸리는 추가 안되나요?
씨앗 가져다가 나눠주실 생각에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올해 토란도 들인 정성이 있어 정말 맛있었습니다. 내년 텃밭이 기대됩니다.
어르신께 여쭙고 실행하는 모습이 상상이 갑니다.
심는 방법을 알려주시면서 얼마나 뿌듯하셨을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