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부인 제 12 회
호국 군사가 쳐들어오면서 숨어 있던 호제왕의 군사가 중간 지점에 있어 장안과 의주를 왕래하지 못하게 하니, 슬프도다. 이와 같은 변고를 만나 의주에 봉서를 내리시사 임경업을 부르셨으나 중도에서 쓰러지고 경업은 나라가 망한 줄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늦게 서야 그 소식을 듣고는 밤낮으로 길을 달려 서울로 올라오는데 앞 쪽에서 한 무리의 군마가 길을 막고 있거늘 경업이 바라보니 그 군사는 호병인지라, 분한 생각이 크게 일어 칼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달려가 일순간에 다 무찌르고 그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여 홀로 말 한 마리 채찍질 하여 의주를 떠나 곧장 장안을 향하여 달리었다.
이때, 울대가 의기양양하여 행군해 오거늘 경업이 크게 분노하여 앞에오는 선봉장의 머리를 단칼에 베어 들고 좌충우돌하여 무인천지처럼 말을 몰아 이리 치고 저리 치니 호국 군사의 머리는 마치 추풍낙엽 같았다.
호병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죽는 자가 속출하는지라 한유와 용율대는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면서 박부인의 비계에 빠진 것을 깨닫고는 몹시 후회하며 곧장 글월을 만들어 장안으로 올리니 상감이 보시고 곧장 경업에게 조서를 내리시사 호국 군사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경업이 단칼에 적진의 장졸들을 무수히 죽이고 곧장 용율대를 죽이려 하는데, 마침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자가 상감의 조서를 전교하거늘 경업이 임금 계시는 곳을 향해 네 번 절하고는 조서를 뜯어보니 그 조서에 이르시되,
“국운이 이토록 불행하여 모월 모일 호적이 북으로 돌아와 동대문을 부수고 장안을 쑥밭으로 만들거늘 짐이 남한산성으로 피하였더니 십만 적군이 산까지도 여러 날 동안 포위하고 치기를 급하게 하므로 경도 천리 밖에 있고 손 아래에 훌륭한 장수가 없어 능히 적을 당하지 못하므로 어쩔 수 없이 강화를 하였으니 어찌 통분치 않으리요? 이것은 도무지 하늘의 일이라 분하고 한이되나 어찌할 것인가? 경의 충성이 도리어 공은 있으되 이는 없도다. 호국 장졸이 행군하여 내려가거든 막지 말고 그대로 넘겨 보내도록 하라.”하였다.
임경업이 읽기를 다하고는 칼을 땅에 던지며 큰 소리로 통곡하여 가로되,
“슬프도다, 궐내에 만고 소인이 있어 이와같이 나라를 패망케 하였으니 맑은 하늘이 어찌 무심할 것이가?”
하며 못내 통곡하다가 다시 칼을 집어들고는 적진 속으로 뛰어들어가 적장을 잡아 쓰러뜨리고 꾸짖어 가로되,
“너의 나라가 지금까지 존탱(存撑)하여 온 것이 나의 힘인줄 모르고 무지한 오랑캐 놈들이 이와 같이 하늘을 거역하는 마음을 두어 우리나라에 들어와 해를 끼치니 너희 일행을 몰살할 것이로되 우리나라의 운수가 이처럼 불행한지라 왕명을 거역할 수 없으므로 너희 놈들을 살려 보내는 것이니 세자 대군을 평안히 모시고 조심하여 들어가도록 하라.”
하고 한 마당 통곡한 후에 그들을 보내었다.
한편, 상감이 박씨의 말을 처음 듣지 아니하신 것을 깊히 뉘우치사 못내 후회하시니 모든 신하에게 탄식하여 아뢰되,
“박씨의 말대로 하였사온들 어찌 이런 변고가 있었사오리까?”
상감이 거듭 탄식하여 가로되,
“박씨가 만일 장부로 태어났던들 어찌 호적 따위를 두려워 하였으리오? 하지만, 규방 여자로써 맨 몸으로 혼자서 수많은 호적의 사기를 꺾어 조선의 위엄을 빛냈으니 이는 고금에 다시는 없는 일이로다.”
하시고 충렬부인에게 정렬을 더 하수하시고 일품록에 만금상을 주시며, 아울러 궁녀를 시켜 조서를 하교하시니, 충렬 부인이 임금 계신 곳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뜯어본즉 그 조서에 이르시되,
“짐의 안목이 밝지 못하여 충렬부인의 앞날을 예측하는 그 신명과 나라를 위하는 충언을 듣지 아니한 까닭으로 나라가 망극하여 이 모양 이꼴이 되었으니 정렬부인에게 조서를 내림이 무색하도다. 정렬부인의 덕행과 충효는 이미 알고 있는 바라, 규중에 있으면서도 날의 위엄을 빛내고 왕비의 위태로움을 구하였으니 그위에 다시 정렬의 충성을 논할 바가 없으려니와 오직 나라와 함께 영화고락을 같이 하기로 진실로 바라노라.”하였다.
박정렬이 일기를 다하고 나서 하늘의 은혜가 끝없음을 못내 사례하였다.
처음 박씨가 시집올 때에 그 모습을 추하게 함은 여색만을 탐내는 사람이 혹시 침입할까 두려워 한 것이며, 숨긴 모습을 변하여 원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부 사이에 화합하고자 함이요, 파화당을 지어 팔문진을 구축한 것은 나중에 돌아다니는 호적을 막아내려 함이요. 왕비를 모시고 가지 못하게 함은 오랑캐의 불규칙한 변을 입을까 두려워함이요, 세자 대군을 그냥 모셔가게 함은 하늘의 뜻을 따름이요, 호국장수로 하여금 의주로 가게 함은 임경업 장군을 만나 영웅의 분한 마음을 풀게 함이었다.
그 후로부터 박씨부인은 나라의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충성으로 극진히 다하고 노복들을 의리로 다스리고 친척 간에 화목하여 그 덕행이 한 나라에 자자하고 이름이 또한 후세에 길이 전하여졌다.
이승상 부부는 이후로 자손이 번창하고 위로는 임금을 극진히 섬기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편안히 다스리는 태평재상이 되어 팔십여 세를 향수하여 부귀영화가 끝이 없으니 조정의 모든 신하와 한 나라가 더불어 우러러 보았다. 기쁜일이 다하고 슬픈일이 오는 것은 옛부터 흔히 있는 일이라 박씨와 승상이 함께 우연히 병을 얻어 백양이 무효하므로, 부부가 자손을 모아놓고 뒷일을 당부하여 이르되,
“옛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은 붙어 있는 것이요, 죽는 것은 다시 돌아감이라’ 하였으니 우리부부의 화락지복은 무궁하다 할 것이로다. 인생이 죽고 삶이 자연 이러하니 우리가 돌아간 후에 너희 자손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하시고는, 그로부터 때를 같이하여 목숨이 끊어져 돌아가시니 일가의 상하가 발상하여 예를 극진하게 하고 선산에 편히 모시니, 상감이 들으시고 슬퍼하사 목포금은을 하사하셔 장사에 보태 쓰게 하시었다. 이 후에도 자손이 대대로 그치지 아니하고 또한 관록이 연연하여 가문이 계속 번성하였다.
무릇 사람이 세상에 테어남에 남녀를 막론하고 재덕을 갖추기가 어렵거늘 바씨는 한낱 여자로서, 비단 재덕으로 뿐만 아니라 그 신기묘산이 한 시대의 제갈동명을 본 따서 천거에 드문 일이므로, 가히 아까울손 여자로서 이런 재주를 가짐은 희귀한 일이요, 이는 조선 국운에 하늘의 뜻이 이러하기로 특별히 드러내어 밝히지 못하고 대강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따라 기록할 뿐이니 가히 한이 될 뿐이다. 이후 계화도 승상부부의 삼년상을 극진히 모시고 우연히 병을 얻어 죽으므로, 나라에서 그 사연을 들으시고 장하게 여기시사 충비를 봉하여 내리시었다.
박씨부인의 충절덕행과 재모기계는 참으로 신기하여 세상에서 그 행적이 없어지기 아까운지라 대강 기록하여 남기는 바이다.
끝
첫댓글 박씨부인은 제12화로 끝을 맽습니다..
즐겁게 구독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기다리던 글~
이 었습니다
기다림에 설러었드랬는데
허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글이 올라올까
기다려 집니다
프란치스코님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