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젤리아 꽃잎
최옥자/글무늬문학사랑회
봄이 지나고 있었다.
갖가지 색상으로 싱그럽던 아젤리아 꽃잎이 서서히 퇴색해지는 무렵,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심신마저 퇴색해지려는 어느 날 오후,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근심이 서려있다.
약속된 카페에 우리는 마주 앉았다.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내 온 이민동기로 평소 누구보다 살갑게 대해주던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가 요즘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어 서운함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고 서두를 뗀다.
그 동안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이 지닌 다양한 모습 중 일부분만 알고 지낼 수가 있음을 실감한다고도 했다. 주변에서 하소연하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대방이 어떤 불편과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지. 자기 편의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이 세련되게 잘 어울리는 그녀의 이야기는
빨간 장미꽃이 아름답게 무늬 진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계속되었다.
세상에는 나의 주관 대로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요구대로 안 되면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사람,
자기의 느낌과 생각 대로 말을 내뱉고 솔직하고 바르다고
여기거나 목적을 위해 권모술수나 거짓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자기 입장만 옳다고 주장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 잘된 것은 모두 자기 공으로 돌리고 잘못한 것은 상대방 책임이라고 우기고, 자기
공을 내 세우다 보니 역 비례로 상대방을 깎아 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그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 등등의 유형을 의분이 북받쳐 손가락으로 꼽았다.
나 역시 세상 살이 비평에 같이 끼어들며 상태나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며 바람을 몰고 와 질서를 무너트리려는 사람, 인신공격, 인격모독을
서슴치 않는 사람은 정말 대하기 힘들다고 맞대꾸해 주었다.
그렇다고 내 쪽 말도 들어보라고 곁을 스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일일이 해명을 한다거나, 외면하면 그만이라고 아예 그 대열에서 이탈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귀찮다고 각자 위치에서 주어진 책임을 포기해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누구나 타인에게 바르게 인식되고 싶은 욕망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것은 공동체의 순항을 위해 회원들이 바름을 직시할 것과 올바른 판단이다.
그녀 앞에 나는 일전에 인터넷을 통해 본 법륜스님의
말씀이 상기되어 들려주었다. 같은 상황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려면 “상대의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고 내 잘남과 옳다는
인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생은 고락이다. 그 고락에서 벗어나려면 내 뜻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럼으로써 경직되어 있는 내가 유연해지고 흥분(화)이 가라앉아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똑 같은 상황이라도 어느 편,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바다를 보고도 동해다 서해다 하지
않는가.
자기 문제가 아니고 상대 문제라고 생각해서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마련, 그런 인식을 버리지 않고는 마음에 평안과 평화가
올 수 없다.
상대방이 내 수준을 넘어서는 사람이라면 한동안 그를 대하는 것을 유보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우리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할 때는 좋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지나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좋은 일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침이 되어주는 말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니, 건강한
사람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으면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요즘 당신 어려운 일 없어? 처신
잘 하라구.”
뜬금없이 한국에 나가있는 그가 걱정을 보내온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내 마음에 구김살이 가지 않겠지만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대하려 해도 진심을 왜곡하거나 무리한 간섭을 해 올 때 어디까지 참고 수용해야 할까.
그녀를 만나고 돌아서는 마음에 떠 올려본 화두다.
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댄다.
퇴색한 아젤리아 꽃잎이 흔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