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23.9.26
박경선
스쳐 가는 사람이라도 사람의 얼굴을 선뜻 볼 때 보게 되는 것이 눈이 아닐까?
‘저 사람 성격이 까탈스럽겠는데? 서글서글하고 순한 성격 같은데? 괴팍해 보이는데?’
단숨에 그 사람의 성품을 가늠하게 되는 것이 눈이라서 그럴 것이다. 늘 생글생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눈을 보면 그저 친근감이 가고 따라 웃게 마련이고. 웃지 않는 눈, 경계하는 눈초리, 휘 번득이는 눈을 보면 몸을 도사리기 마련이고 거리를 두고 싶기 마련.
나도 늘 생글생글 웃는 사람, 특히 눈웃음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가며 오만 번을 연습해도 웃음 머금은 눈은 되지 않았다. 마음 바탕이 고약해서일까? 태어난 눈 모양부터 두 눈이 짝눈인 데다 오른쪽 눈은 단춧구멍만큼만 열려 있으니, 자신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짝눈이 된 것은 우리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들을 낳고 싶은 마음에 생달걀을 하루에도 몇 개씩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서 보니 원하는 아들이 아니라서 씻기지도 않고 윗목에 밀쳐두었는데, 큰언니가 학교 갔다 와서 보니 아기가 두 눈이 붙어 감고 있더라네. 침을 발라 왼쪽 눈을 뜨게 해주었단다. 오른쪽 눈도 침 발라 마저 뜨게 하려는데 엄마가 언니를 보고 쫓아내었다네.
“죽으라고 밀쳐 두었는데 눈은 왜 뜨게 하냐 앙?”
그래서 짝눈이 되었다는 말을,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옛날 이야기하듯 무심하게 했다. 나도 무심하게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엄마의 마음은 이해할 것 같았다.
‘딸, 딸, 딸, 넷째도 또 딸이라니!’
시어머니 눈치에다 남편의 눈치에다 주위의 눈치까지, 엄마인들 온전한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내가 딱 한 마디 했다.
“엄마, 걱정 마! 난 시집 안 가고 아들처럼 평생 엄마, 아빠 내가 모시고 살 테야. 두고 봐!”하면서 큰소리 뻥뻥 쳤다. 조금도 기죽지 않고 살면서 엄마, 아빠를 모시기보다. 내 자식을 둘이나 낳아 키워달라고 되 맡기며 살았으니, 엄마 역시 나를 이해하며 사셨을 게다. 하하!
이제 엄마도 돌아가시고 내 나이도 칠십! 돌아보면 이 눈으로, 43년간 머물던 교직에서 ‘우리 선생님’이라고 나를 따르고 함께 해준 제자들이 고맙고, 내 둘레에서 나랑 놀아준 지인들이 고맙고, 특히 못난 여편네를 평생 보며 데리고 살아온 남편이 그저 고맙다. 그럭저럭 살았는데, 문제는 눈꺼풀! 자꾸 처져 내려 글씨가 잘 안 보이게 되었다. 글 쓰는 작가가 눈이 안 보이다니….
자주 가는 안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의논했더니 대학병원에서 눈꺼풀 처짐 수술을 잘하는 ‘안검하수’ 수술 전문 선생님께 추천서를 써주셨다. 그 길로 병원을 찾아갔는데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한다고 해서, 병원 벤치에서 예약만 하고 돌아왔고. 예약하고 다시 가는 날, 가는 길에 비가 쏟아져 비 홀딱 맞고 마트에 들러 수건 두 장을 샀다. 버스를 타거나, 진료받는 중에 방석처럼 깔고 앉아야 물 젖은 옷으로, 앉은 자리를 적시는 일은 하지 않겠기에. 그렇게 차례를 기다리며 시력 검사. 채혈 검사, 안압 검사 등을 하며 검사비만 79,000원 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볼일이 있어 진료하지 않고 나가셨다네. 황당! 내가 의사가 아니다 보니 별수 없이, 또, 다음 날을 잡아 예약하고 가서 상담했다. 여의사가 어차피 두 쪽 다 똑같게는 못할 테니 한쪽 눈만 수술해 주겠다 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와서 신 교장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펄펄 뛰었다.
“야. 안과에 가지 말고 성형외과에 가야 눈을 예쁘게 수술하지. 나랑 성형외과 찾아가보자.”
난 귀찮았다. 여기저기 모임에서 맡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데다, 원고 보낼 마감 날짜도 임박하고. 이 나이에 예쁘면 뭣하냐면서 무시했다. 그러다가 몽골 여행 다녀와서, 권 교장 사모님·신여사랑 카톡방에서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대학병원에 눈 수술 날짜 잡아뒀다고 했더니 전화를 해왔다.
“아이고, 샘요! 안과에 가지 말고, 눈을 예쁘게 하는 시내 성형외과에 가세요. 내가 알아볼게요.”
하더니 카톡에 곧장 문자를 보내왔다.
<여자들만 34명 있는 테니스 클럽 방에 눈꺼풀 처짐 수술 잘하는 곳 올렸더니 ‘요셉성형와과’ 추천해 주네요. 053- 431- 7777. 한쪽 눈만 할 거라 단정 짖지 말고. 상황 설명하고 두 쪽 다 예쁘게 하고 싶다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회 경험 적은 내게, 딱 부러지게 조언해 주는 신교장이랑 신 여사가 고마웠다. 그 길로 전화로 예약하고 남편이랑 대구시청 근처에 있는 요셉성형외과를 곧장 찾아갔다. 권혁준 젊은 선생님이셨다. 상황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저 간호사에게 제출한 카드를 살펴보셨다. 중학생일 때 오른쪽 눈 한쪽만 수술한 기록을 보고 내 눈을 보더니, 수술 방법을 단번에 잡으신듯했다. 내 눈과 비슷한 사람들의 사진을 여러 장 찾아내어, 어떻게 수술할지 설명하셨다. 점집에 와서 신통한 무당을 만난 기분이었다. 내가 수술받았을 때는 50년 전이라서 죽은 신경을 억지로 강하게 끌어 올리느라 눈이 예쁘게 되지 않았단다. 그 중간에 수술법이 여러 번 바뀌어 왔고, 요즘에는 이마 쪽을 끌어내리며 하는 수술법이라 더 자연스럽고 예쁘게 할 수 있다면서 이쪽 저쪽을 감았다 떴다가 해보라고 했다.
“더 물을 게 있습니까?”
내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수업(강의) 끝내고 평생 물었던 화법이라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든지 만족할 때까지 가르쳐 주겠다는 자신감과 책임감! 수술 결과야 어떻든 그런 자상한 설명에 믿음이 백 프로 갔다.
“아이고 선생님, 워낙에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빨리 수술받고 싶습니다.”
“수술 날짜랑 수술비용은 밖에 나가서 간호사랑 상담하세요.”
나는 꾸벅 절을 하고 물러 나왔다. 간호사는 내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병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수술비용을 알려주었다. 310만 원이란다. 대학 병원에서 한쪽 수술비용이 150만 원 정도 들 거라고 한 것과 비슷한 비용인데 하나도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대로 진행될 수술에 대한 기대감으로 발걸음 가볍게 병원 문을 나섰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신 여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모님 조언대로 두 쪽 다 해준다고 해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에 감사드려요.”
“참 잘했어요~~”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 9. 25.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