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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퇴계(退溪)와 유헌(游軒)이 화답시(和答詩)를 주고 받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지금부터 470 여년 전(1552년과 1553년), 거제시 고현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이 선배이자, 벗(知己)이었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과 서로 교류하며 주고받았던 서찰(書札, 편지)이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이에 총4편, 7수(首)를 소개하고자 한다. 퇴계(退溪) 선생과 유헌(游軒) 선생이 주고받은 화답시들은 조선 중기 사화(士禍)의 폭풍 속에서 피어난 지식인들의 고결한 우정과 학문적 의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작품이다.
거제도의 유헌(游軒)은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을사사화(1545년)의 여파로 1548년부터 거제도에서 약 13년간 유배 생활을 하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강직한 선비다. 퇴계(退溪)는 유배지에 홀로 남겨진 후배이자 동료인 유헌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편지와 시를 보내 위로했고, 유헌 역시 척박한 고립 속에서 퇴계의 글을 정신적 지주로 삼아 화답시를 남겼다. 이 당시 퇴계 선생은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와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이곳에서 독서와 사색에 잠겼다. 이런 와중에 1552년 성균관대사성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대부분 사퇴하며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헌과 퇴계 두 분 다, 이미 진주에 낙향하여 사망한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 1470~1550)에게 학문을 배우고 그 영향을 받았던 과거 경력이 있었기에 나이를 떠나 정신적으로 아주 가까운 지기(知己)였다.
○ 이번 지면에는 ① 오언율시(五言律詩) 「서상퇴계간후 임자년(1552년) (書上退溪簡後 壬子)」 2수(首), ② 오언절구(七言絶句) 「화퇴계(和退溪)」 2수(首), ③ 오언율시(五言律詩) 「부상퇴계 계축년(付上退溪 癸丑)」 1553년, ④ 칠언율시(七言律詩) 「서답퇴계찰후(書答退溪札後)」 2수(首) 등 총 4편의 작품, 총7수(首)의 유헌(游軒)과 퇴계(退溪)의 한시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서상퇴계간후 임자년(書上退溪簡後 壬子)」 작품은 '임자년(1552년), 퇴계 선생께 편지를 쓰고 나서 [그 뒤에 적다]'라는 뜻이다. 유헌(游軒) 정황(丁熿)이 거제도 유배지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 영남의 거유(巨儒)인 퇴계에게 안부와 학문적 고민을 담은 편지를 보낸 후 그 감회를 시로 덧붙인 것이다. 이는 먼 남쪽 거제섬에 격리되어 조정과 학계로부터 잊혀가는 처지였던 정황(丁熿)이,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에게 선비로서의 지조를 잃지 않고 있음을 고하는 기록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학문(성리학)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고독한 의지가 담겨 있다.
(2) 「화퇴계(和退溪)」 작품은 퇴계가 유배지의 유헌(游軒) 정황(丁熿)을 위로하기 위해 보내온 시에 정황(丁熿)이 운을 맞추어 답한(차운·次韻) 2수의 화답시다. [제1수]에서는 자신을 잊지 않고 시를 보내 준 퇴계의 깊은 온정에 대한 눈물겨운 감격과 감사를 표현했다. [제2수]에서는 "비록 몸은 바다 끝 외딴섬에 갇혀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고 있으나, 선생이 보여주신 학문적 가르침과 도리 덕분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다"는 요지를 담아, 외물(外物)에 흔들리지 않는 선비의 평정심을 노래했다.
(3) 「부상퇴계 계축년(付上退溪 癸丑)」 작품은 '계축년(1553년), 퇴계 선생께 인편에 부쳐 올리다'라는 의미다. 유배 생활이 6년 째로 접어들며 몸과 마음이 더욱 쇠약해진 유헌(游軒) 정황(丁熿)이 퇴계에게 올린 작품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자신을 챙겨주는 퇴계의 두터운 은혜에 다시금 깊은 존경을 표한다. 동시에, 당시 조정의 어지러운 정세를 멀리서 걱정하며 퇴계 선생만큼은 부디 건강을 보존하여 유학의 정통(道統)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염원이 투영되어 있다.
(4) 「서답퇴계찰후(書答退溪札後)」 작품은 '퇴계 선생의 편지(札)를 받고 그 뒤에 답장을 쓰다'라는 뜻의 2수다. 유헌(游軒)이 퇴계가 보낸 편지 속 격려의 글귀를 읽고 또 읽으며 느낀 감회를 적었다. 퇴계가 제시한 학문적 방향이나 삶의 자세에 대해 "선생의 말씀이 구구절절 제 어두운 마음을 깨우쳐 주었습니다"라며 깊이 공감하고, 죄인의 신분이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성찰적 태도가 짙게 나타난다.
○ 화답시에서 보여주는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
두 사람의 화답시는 단순한 문학적 교류를 넘어, 조선 사대부들이 추구했던 가장 이상적인 인간관계와 도덕적 의리(義理)를 보여준다. 당시 유헌(游軒) 정황(丁熿)은 사화에 연루된 '죄인'이자 유배객이었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유배를 보낸 훈구·척신 세력의 눈총을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퇴계는 유헌(游軒)의 인품과 학문적 가치를 아꼈기에, 시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끊임없이 편지와 시를 보내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권력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퇴계의 진정한 '의리'가 빛나는 대목이다. 반면 유헌(游軒)에게 퇴계의 시는 단순한 위로문이 아니라 '암흑 속의 등불'이었다. 유헌(游軒)은 퇴계를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도덕적 사표로 극진히 경외했다. 그는 유배지의 절망감에 빠져 자포자기할 수 있었던 순간마다 퇴계의 화답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고, 선비로서의 도리와 지조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술이나 풍류로 맺어진 가벼운 사귐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탐구하는 동지로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과 학문으로 소통하는 고결한 '도반(道伴)'의 관계, 즉 도학(道學)으로 맺어진 정신적 신교(神交)였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오간 이 한시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유교적 이상을 함께 고민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뜨거운 호흡을 그대로 담고 있다.
1) 다음 ‘庚’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2수(首) 「서상퇴계간후 임자년(書上退溪簡後 壬子)」 ‘퇴계 선생께 편지를 쓰고 나서, 임자년(1552년)’는 조선전기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거제도 유배객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이 1552년(壬子年), 귀양살이 시름 속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에게 먼저 올린 편지 1편과. 이에 퇴계(退溪) 선생이 혼탁한 정치 속에서 지조를 지킨 유헌(游軒) 선생에게 격려와 위로의 화답시를 보낸 1편, 총 2편의 오언율시다.
○내용인즉, 임자년(1552년)에 주고 받은 2편의 오언율시 편지다. 정황은 을사사화(1545년)에 연루되어 1548년부터 거제도로 유배를 가 있던 상태였다.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벗인 퇴계 이황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보낸 것이다. 먼저 정황이 보낸 시의 정서에선, 인생의 덧없음과 유배지의 쓸쓸한 봄 풍경을 대비했다. 병마와 싸우며 잠 못 드는 외로운 밤의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리움과 울분을 붓을 들어 시로 달래고 있다. 이어 퇴계의 화답시에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기술했다. 퇴계는 유배지에서 병고를 치르는 벗(정황)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러면서 혼탁한 정치 현실(道未明) 속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정황을 '선비는 궁할 때 절개가 보인다(士窮方見節)'며 높이 평가한다. 세상의 영욕에 흔들리지 말고 건강을 지키라는 깊은 우정과 위로가 담겨 있다.
**「서상퇴계간후(書上退溪簡後) 임자년(壬子)」** / 정황(丁熿 1512~1560)
① 정황의 「서상퇴계간후 임자」 퇴계에게 편지를 쓰고 나서, 임자년(1552) 평기식
思君將一紀 그대를 그리워한 지 제법 일기(12년)가 되었고
百歲內人生 백 년도 못 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네.
頭上暮雲影 머리 위에는 저무는 구름 그림자 드리우고
耳邊春雁聲 귀에는 봄철 기러기 울음소리 들려오네.
孤吟愁易老 홀로 시를 읊조리니 수심에 쉽게 늙어가고
臥病夜難明 병들어 누우니 밤은 왜 이리 새기 어려운지.
意到無言地 생각(말 고을 마음)이 말로 다 못할 지경에 이르러
濡毫瀉得輕 붓을 적셔 마음을 가볍게 쏟아내 보았네.
② 부화(附和) : 퇴계(이황)의 화답시(和答詩) ‘庚’ 측기식.
遠謫眞無恙 먼 곳의 유배지에서 정말 별고 없으신지
沈痾尙保生 깊은 고질병 중에도 오히려 삶을 보전하고 계시구려.
春風愁絶域 봄바람 부는 아득한 변방에서 시름겨워 하실 터인데
書信喜同聲 보내온 편지를 보니 소리를 같이하듯(뜻이 맞아) 기쁘기 그지없소.
莽莽天難問 아득하고 아득하여 하늘의 뜻은 묻기 어렵고
寥寥道未明 쓸쓸하고 고요하여 세상의 도는 아직 밝아지지 않았구려.
士窮方見節 선비는 궁지에 몰려야 비로소 그 절개를 볼 수 있는 법,
榮辱摠知輕 세상의 영화와 치욕 따위는 모두 가볍게 여길 줄 아신다네.
2) 다음 ‘虞’과 ‘支’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2수(首) 「화퇴계(和退溪)」는 조선전기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유헌(游軒)과 퇴계(退溪)가 서로 주고받은 2통의 편지 속의 한시 2편이다. 유헌이 퇴계 이황의 시에 화답하여 지은 작품이 「화퇴계(和退溪)」 [제1수]이고, 유배지에서의 학문적 자세와 퇴계에 대한 존경심을 담고 있으며, [제2수]는 퇴계가 보낸 시로 “중국의 소동파와 황정견처럼 유배지에서도 슬퍼하지 말고 의연하게 지내라”고 위로하고 격려한 내용이다.
○ 내용인즉, 정황은 을사사화(1545년) 이후 거제도 등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다. 퇴계 이황은 그에게 시[제2수 원운]를 보내 "소동파와 황정견처럼 유배지에서도 슬퍼하지 말고 의연하게 지내라"고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에 정황이 감사의 뜻을 담아 답한 시가 [제1수]다. 정황은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유학의 핵심 가치인 '성(誠,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한여름에 뱀을 보고 어머니를 업고 달리는 지각한 아들의 마음'은 주자학에서 자주 쓰는 비유다. 재앙이나 두려운 상황(뱀)을 만났을 때, 오직 어머니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초인적인 힘을 내듯, 자신도 유배지의 고난 속에서 오직 '성(誠)'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一誠字)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화퇴계(和退溪)」** / 정황(丁熿 1512~1560)
[제1수] 퇴계의 시에 정황의 화답시(和答詩) ‘虞’ 운목, 측기식
自謂蘇黃足法無 스스로는 소식(소동파)과 황정견을 본받기에 부족하다 말하지만
先生拓我取人途 선생께서는 내가 타인을 본받고 배울 길을 넓혀 주셨습니다.
紀餘專恃一誠字 남은 생은 오로지 '정성 성(誠)' 자 하나만을 믿고 가려 하니
盛暑蛇奔擔母夫 한여름 무더위에 어머니를 업고 달리는 지극한 효자의 마음입니다.
[제2수] 퇴계가 정황에게 보낸 위로시(慰勞詩) 원운. ‘支’ 운목, 측기식
海上遷居久未歸 바닷가 유배지로 옮겨 살며 오래도록 돌아가지 못해,
鵬鶱鯨戲慣恢奇 대붕이 날고 고래가 뛰노는 광대하고 기이한 광경에 익숙해졌으리.
請君看取蘇黃法 그대는 소동파와 황정견의 법을 살펴보게나,
蠻蜑曾無一字悲 남쪽 오랑캐 땅(유배지)에서도 일찍이 슬픈 글자 하나 쓰지 않았네.
[주1] 소황법(蘇黃法) : 송나라의 대문장가 소동파와 황정견의 문장과 삶의 태도를 뜻하. 두 사람 모두 먼 변방으로 유배를 갔으나 그곳에서 좌절하지 않고 초연하게 학문과 문학에 정진했다.
[주2] 일성자(一誠字) : 정황은 문장(소황법)을 배우는 것보다,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유학의 핵심 가치인 '성(誠,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실천하는 데 남은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한다.
3) 다음 ‘沁’과 ‘侵’을 통운한 오언율시(五言律詩) 「부상퇴계 계축년(付上退溪 癸丑)」 계축년(1553년)에 퇴계 선생께 올림'은 조선 중기의 학자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이 유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에게 보낸 한시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는 어른을 향한 깊은 그리움과 존경, 그리고 소식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작가인 정황(丁熿)은 을사사화(1545년) 때 윤임 일파로 몰려 거제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이 시가 쓰인 계축년(1553년)은 그가 유배지에 있으며 학문을 가르치던 시기다. 동시대의 위대한 스승인 퇴계 이황을 깊이 흠모하여 마음을 전하고자 이 시를 지어 올렸다.
전반부[1~4구]에선,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꿈속에서만 만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다. 후반부[5~8구]에선, 퇴계 선생의 고결한 인품을 예찬하면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澤畔) 속에서도 스승의 가르침과 소식을 간절히 갈구하는 지식인의 고뇌와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는 명시다.
**「계축년(1553년)에 퇴계 선생께 올림(付上退溪 癸丑)」** 정황(丁熿 1512~1560)
伊人不相見 그 사람을 서로 만나보지 못해
抵此紀餘深 이곳에 이르러 그리움만 더욱 깊어지네.
魂夢能交面 꿈속에서나마 한 번씩 얼굴을 마주하니
札行可了心 편지가 오가야 이 마음을 다 풀 수 있으리.
三辰雖北照 해와 달과 별(조정)은 비록 북쪽을 비추지만
二白實南臨 두 분의 맑은 덕은 실로 남쪽에 임해 계시네.
澤畔 [缺三字] 굴원의 못가처럼(세 글자 빠짐)나도 그럴진대
毋金玉爾音 부디 그대의 귀한 목소리(소식)를 아끼지 마소서.
[주1] 이인(伊人) : '그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화자가 간절히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대상인 퇴계 이황을 가리킨다.
[주2] 찰행(札行) : 편지가 오고 가는 행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다.
[주3] 삼진수북조(三辰雖北照) : '삼진'은 해, 달, 별을 뜻하며 보통 임금이나 조정의 권위를 상징한다. 임금이 계신 한양(북쪽)을 바라보는 신하의 도리를 뜻하면서도, 현재 자신들의 물리적 처지를 대비시켰다.
[주4] 이백실남임(二白實南臨) : '이백'은 두 가지 결백함 또는 덕망 높은 두 인물(맥락상 퇴계 선생과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을 뜻한다. 조정의 빛은 북쪽에 있지만, 진정한 현인의 덕화와 정신적 지주(퇴계)는 남쪽 지방에 내려와 있음을 칭송하는 표현이다.
[주5] 택반(澤畔) : '못가'라는 뜻입니다. 초나라의 굴원이 쫓겨나 못가를 거닐며 충정을 읊었던 고사(어부사)를 연상시키는 시어로, 유배나 은거 중인 화자의 외롭고 쓸쓸한 처지를 암시한다. (안타깝게도 뒤의 세 글자가 결손되어 정확한 문장 파악은 어렵지만,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주6] 무금옥이음(毋金玉爾音) :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편에 나오는 '너의 말을 금이나 옥처럼 아끼며 멀리하려는 마음을 두지 말라(毋金玉爾音 而有遐心)'이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제발 소식을 뜸하게 하여 나를 멀리하지 말고, 금옥 같은 귀한 편지를 자주 보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다.
4) 다음 ‘文’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2수(首) 「서답퇴계찰후(書答退溪札後)」 ‘퇴계의 편지 뒤에 답장을 쓰다’는 조선전기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가 귀양살이하던 시절, 자신의 정치적 무력감과 학문적 성취, 그리고 벗과의 깊은 우정을 노래한 한시이다.
○ 내용인즉, 먼저 첫수(首)에선, 귀양살이 몇 년 동안 관직에서 멀어져 세월을 보낸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한탄하였고 또한 백성의 세금을 독촉하지 못해 좌천되었던 당나라의 청렴한 관리 양성(陽城)에 자신을 비유하고, 당나라의 명재상 육지(陸贄)가 쫓겨난 유배지에서 의학 서적인 《집험방(集驗方)》을 지었던 것처럼 자신도 은거하며 학문이나 저술에 몰두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둘째 수(首)에선, 앞서 보내 준 시를 보고 퇴계가 고독과 은거 삶에 깊이 공감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헌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 답시다. 비록 몸은 천 리 밖에 떨어져 있고 거친 음식을 먹는 힘든 처지일지라도, 두 사람의 백년가약 같은 의리는 서리처럼 매섭고 단단함을 강조했다. 또한 주위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가 늘 추구하던 고결한 군자의 도리(난초 향기)를 세상의 풍파 때문에 잃어버리거나 변치 말자고 당부하며 위로하였다.
**「서답퇴계찰후(書答退溪札後)」** ‘퇴계의 편지 뒤에 답장을 쓰다’ / 정황(丁熿 1512~1560) 평기식.
龍蛇守歲是初分 용(辰年)과 뱀(巳年)의 해에 제석(섣달그믐)을 보낸 것이 그 시작이었으니
四五年來只看雲 지난 4~5년 동안은 그저 구름만 바라보며 지냈구나.
手試牛刀鷄割體 손으로는 소 잡는 칼을 시험하여 닭의 몸을 잡고 있고
氣橫星斗劍埋文 기운은 은하수를 가로지르건만 검의 무늬는 땅에 묻혀 있네.
催科政拙憐陽子 세금을 독촉하는 정치가 서툴러 양성(陽城)을 가련하게 여기고
集驗方成笑陸君 경험을 모은 처방전이 완성되니 육지(陸贄)를 비웃노라.
爲謝滿花親汗物 꽃이 가득한 옷에 땀을 흘리며 친히 일함을 고맙게 여기노니
能令坐臥襲餘芬 앉으나 누우나 그 향기가 여전히 몸에 배어들게 하는구나.
[주1] 용사(龍蛇) : 용(辰年)과 뱀(巳年)의 해. 진(辰)·사(巳)년의 시기부터 시작해 약 4~5년간 관직에서 멀어져 유배당하여 세월을 보낸 상황을 말한다.
[주2] 우도할계(牛刀割鷄) : 큰 재능(소 잡는 칼)을 가지고도 고작 작은 고을을 다스리거나 미천한 일(닭 잡는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유했다. 가슴속 기개는 여전하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재능이 묻혀 있음을 한탄했다.
[주3] 육지(陸贄, 754~805) : 중국 당나라 덕종이 간신들을 중용하고 명문장가이자 개혁정치인 육지(陸贄)와 같은 청렴하고 충직한 신하들을 내쳐, 나라가 어지러웠다.
[제2수] 부화(附和) 퇴계의 화답시. 측기식
死者長辭生亦分 죽은 자는 영원히 떠나가고 산 자 또한 헤어지게 마련이니
窮山藜藿瘴鄕雲 궁벽한 산속에서 명아주 국을 먹으며 장기(瘴氣) 낀 시골 구름을 바라보네.
百年契分明霜義 백 년의 깊은 두터운 정분(契分)은 서리발처럼 의리가 분명하고
千里心懷爛貝文 천 리 밖에서도 마음속 품은 생각은 조개껍데기 무늬처럼 빛나네.
坐對鹿眠常戀友 앉아서 사슴이 조는 모습을 대할 때면 늘 벗이 그리우며
臥看鳶跕尙思君 누워서 솔개가 맴도는 모습을 볼 때면 여전히 그대를 생각하네.
從來佩服皆蘭臭 예로부터 마음속에 차고 따르던 것은 모두 난초 같은 향기였으니
莫爲催傷少替芬 (세파에) 꺾이고 상처 입었다 하여 그 고결한 향기를 조금도 바꾸지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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