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쪽 현관 유신의 선봉 가고시마
신 승 엽
일본은 코로나 전에 열 번 이상 다녀왔었다. 특히 가까운 규슈는 여섯 번을 갔었다. 코로나 범유행이 지나가고 다시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마침 ㅎㄴ투어에서 아직 못 가본 가고시마 단체여행 상품이 있었다. 코로나기간 동안 중단되었던 국적기 항공사에서 가고시마(鹿兒島)에 다시 취항하는 첫 비행편이라 우대하는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가고시마는 일본의 땅끝이고 남쪽 현관 역할을 하여 유럽의 선진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유신의 선봉에 섰던 유신삼걸인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한 여러 선각자를 배출한 역사적 인물의 고향이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가고시마였다. 여행 기간은 10월31일부터 11월3일까지 3박 4일로 짧은 여행이었다. 여행 경로는 규슈의 후쿠오카시로 들어가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루를 숙박하고 구마모토시를 거쳐 가고시마로 내려가는 여정이었다,
다녀온 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웠던 꿈의 대교(현수교)의 폭포가 그림 같이 절벽을 내리쏟는 풍경,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사진 찍기 좋았던 가고시마시 인근의 꽃밭과 양을 키우는 관광목장의 목가적인 정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규슈의 중심지인 대관봉大觀奉에서 바라본 아소산 연봉의 능선은 부처님이 누워 계시는 듯한 여성적인 실루엣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좋은 곳은 역시 가고시마의 활화산 사쿠라지마였다.
식사는 가고시마에서는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흑돼지가 유명한 그 지역의 특산물이라서 4일째 공항으로 오는 길에 들린 관광목장에서 맛있게 들었다. 특산물은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목장에서 연치즈 한 개를 샀다. 호텔에서의 식사는 일본 호텔의 보통 수준으로 썩 잘 차린 편은 아니었다. 나중에 설명을 들었지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지방의 관광종사원들이 직장을 많이 떠나고 도쿄, 요코하마, 교또, 오사카 등 도시로 가버려서 일손이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관광숙박업소의 형편이 비슷한지라 이해가 되었다. 후쿠오카의 호텔에서는 나름 소박한 지역 특산물로 차려진 음식이 나와서 기분 좋게 사케를 한 잔 곁들여 즐겁게 먹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국적기는 비행시간 사십여 분만에 후쿠오카시 하카다구에 있는 비행장에 가볍게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지역이 규슈니 마치 제주도에 도착한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이 지역 규슈는 일본압제 시절,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이 징용으로 끌려와서 2차대전 때 군수공장에서 힘들게 지낸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올 때마다 우리와 가깝기에 더 많은 고통을 받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란 때는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와서 도공이나 목수, 일본인의 처로 고난의 삶을 살았고, 천년 그 이전부터는, 신라, 백제의 유민을 비롯한 수많은 도래인이 건너와 일본문화에 중요한 정수精髓를 전해 주었다. 특히 이번에 가는 가고시마에는 갑돌천(甲乭川고스키가와), 고려정(高麗町고라이마치), 고려교(高麗橋고라이바시)라는 유적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호텔에 짐을 풀기 전에 우선, 시 외곽에 있는 국가지정사적지인 다자이후 텐만구를 찾았다. 이곳은 후쿠오카를 올 때면 제일 먼저 들리는 단골 코스이다. 일 년에 관람객이 천만 명 이상이고 일본의 13,000여 개 신사(신도) 중에도 삼위 이내의 높은 서열이라는 유명한 곳이라니 과연 후쿠오카시가 자랑할만한 사적지이다. 그런데 건물이나 정원 등은 여러 번 보았기에 큰 감흥이 없었지만, 이곳에 모셔진 학문의 신이라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라는 이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이라는 새로운 일화를 알게 되었다.
전에 다녀왔던 구마모토성에서는 임진란에 잡혀 왔던 목수들이 성을 지으면서 일 층에 우리 식으로 서까래를 올린 것을 보았고, 일본 여러 곳에 백제, 고려라는 이름의 신사나 유적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백제, 고구려 유산이 오히려 일본에는 많이 남아있다. 일본에 보전된 천년 이상 된 건물을 보거나, 전래 구전 문화로 전승傳承되고 있는 일본의 노래 와가和歌는 우리나라의 고대어를 연구하는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구마모토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삼 일째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아소산을 둘러싼 산맥의 멋진 고원지대를 통과하였다. 가을을 상징하는 갈대가 흰머리를 흔들며 드넓은 초원지대를 펼치는 풍경이 마치 제주도의 중산간지대에 온 것 같다. 점심을 산중에 있는 삿포로 맥주 공장의 부속 식당에서 토속음식을 한 상 차려 잘 먹었다. 공장에서 제공하는 삿포로 맥주를 한잔했다. 맥주공장이어서 그렇겠지만 드넓게 잔디밭을 조성해 놓고 정원수를 잘 심어 놓은 정원이 아름다웠다. 인상적인 것은 삿포로 맥주 공장을 일본 열도의 제일 아래쪽인 규슈의 중앙부에 세워 놓은 것이었다.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로 보내는 물류비용도 줄이고 규슈의 중앙 산림지역의 깨끗한 화산암 용출수를 맥주 양조용으로 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생각한 것 같았다.
점심을 마치고 버스는 쉬지 않고 달렸다. 드넓은 규슈(면적 32,267km²인 한국의 경상도와 대략 비슷한 규모다.) 중앙부의 삼나무 숲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국도를 통과하면서 3시간 30분을 달려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가고시마에서는 제일 먼저 가고시마 시내 뒤편의 시로야마 공원(사이고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듯)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사쿠라지마 화산이 잘 보인다. 이곳에는 가고시마 서부(옛 사쓰마번) 출신의 일본을 천황제로 이끈 유신3걸(메이지 유신의 시작은 1868년으로 본다, 위키백과 인용)의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이 있다. 이 공원에서 멀리 바다 건너로 보이는 사쿠라지마 화산분화구에서 오늘도 뿜어져 나오는 화산의 연기를 보았다. 인생사진을 찍고는 시내관광에 나섰다. 가고시마시의 인구는 59만여 명으로 규슈 남부에서 중심 도시이다. 가고시마의 일본 근대화 시기 역할을 살펴보면 이 지역 출신 사람들의 역할이 매우 컷다고 일본 역사는 쓰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사이고 다카모리의 생애와 그 유적지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시로야마 공원에서 그의 동상을 본 것 외에는 그의 생가터나 그가 세웠던 학교 등 그와 관련된 유적지를 돌아보지 못하고 가고시마에서의 일정을 마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무산호텔을 출발하여 푸른 초원의 양떼목장에서 흑돼지 소금구이로 근사한 점심을 들고는 코로나 이후 처음 취항하는 국적기에 몸을 실었다.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면서 눈 아래 보이는 대한해협을 건넜다. 비행기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려 인천공항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