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즉열반」이란 생사의 괴로움 그 자체가 열반의 깨달음이며, 양자(兩者)가 일체불이(一體不二)의 관계가 있음을 말하는데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도 합니다.
1. 생사(生死)란?
‘생사’는 번뇌와 미혹, 괴로움의 경계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태어나면 죽고 죽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생사윤회의 세계를 괴로움의 세계라 설하는데, 구체적으로 사고팔고(四苦八苦) 등을 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혹한 중생은 번뇌로 인해 업을 만들고, 업으로 인해 사고팔고 등 다양한 괴로움을 느끼며 육도(六道. 지옥계~천계) 속에서 유전(流轉)해 가는 것입니다.
2. 열반(涅槃)이란?
한편, 열반이란 깨달음, 안락(安樂)의 경계를 말합니다. 생사의 괴로움은 수많은 번뇌가 근본이 되어 일어나는 것임은 앞서 기술하였습니다만 불교에서는 그 번뇌를 끊음으로써 육도의 생사의 괴로움에서 탈각(脫却)하여 열반이라는 깨달음의 경계에 이른다고 설합니다.
그 때문에 무량(無量)이라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역겁수행을 설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번뇌는 무수히 많아서 범부로서는 도저히 다 끊을 수 없습니다.
3. 법화경에서 나타난 생사즉열반
법화경 적문에 이르러 이승(二乘)의 성불이 밝혀져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불계즉구계(佛界卽九界)의 법의(法義)가 확립되어 생사 괴로움의 구계(九界)와 불계(佛界)의 호구(互具) 호융(互融)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러나 법화경 적문에서 구계즉불계·불계즉구계를 설했다하더라도 이승의 성불은 미래의 일이므로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일입니다.
본문 수량품에 이르러 석존이 구원상주(久遠常住)의 생명을 설하였는데, 시각(始覺)의 십계호구를 열어 본각(本覺)의 십계호구·일념삼천이 드러나 여기에 생사즉열반의 의의가 부처의 신상(身上)을 실체로 하여 확립되었고 일체중생은 자신의 생명이 부처처럼 영원한 생명임을 지각(知覺)하여 진정한 성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4. 진정한 생사즉열반이란?
말법 본미유선(本未有善)인 우리 중생에게 생사즉열반이란,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에서는 「법화경을 염념(念念)에 일심삼관(一心三觀)·일념삼천의 이치를 관(觀)한다면 나의 몸이 본각의 여래임이 깨달아져서 무명(無明)의 구름 개이고 법성(法性)의 달은 분명하니 망상의 꿈 깨고 본각의 월륜(月輪) 깨끗하게 부모 소생의 육신, 번뇌구족의 몸 곧 본유상주의 여래로 될지니라. 이를 즉신성불이라고도 생사즉열반이라고도 하는데(중략) 일념삼천의 관념도 일심삼관의 관법도 묘법연화경의 오자(五字)에 간직됐고」(신편어서 p.108)라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직 니치렌 대성인의 하종의 묘법연화경에만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이라는 불가사의한 묘용(妙用)이 갖춰져 있어, 중생이 그 몸을 바꾸는 일 없이 번뇌가 정화되어 일체의 고뇌를 안락으로 바꿔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어의구전(御義口傳)』에서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라 봉창함은 생사의 어둠을 비추어 밝혀 열반의 지화(智火)가 명료하며 생사즉열반이라고 개각(開覺)함을 『조(照)는 곧 어둠을 생기게 하지 않느니라』고 하느니라」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대성인의 제자 단나는 어본존을 향해 남묘호렌게쿄라 부를 때 생사의 괴로움이 묘법의 광명을 입어 그 모습 그대로 열반의 지혜로 개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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