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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제 / 이헌 조미경
대학시절 은사님이며 지도 교수였던 k 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 할때만 해도, 나름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다. 졸업후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동기들과 만나면, 의례 이어지는 자녀들의 입시 문제 특히 사는 지역은 다르지만 학원 정보와
일타 강사들에 관련한 그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 했다. 나를 제외한 대학 동기들은 오로지 sky 를 향한 맹목적인 맹신 교도의 그것 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통해 아이들을 케어 하는 열성을 가진 고등학생 엄마들이었다.
반면 나의 경우는 회사에 적을 두고 있어, 동기들처럼 캥거루 맘이 되어 학교의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여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승진과 실적에 목을 매고, 연봉이 오르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자라목 직장인이 었다.
결과 적으로 몇몇은 자녀들을 특목고와 외고에 입학시키더니, 서울대를 향해 앞으로 가 구령을 붙이며
먹으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총명탕을 사기 위해, 적은 남편 월급을 쪼개지도 않고, 전문직에 근무 하는 그녀들은
아이들의 개성을 중시 한다는 명분으로
명품 운동화를 사기 위해 오픈런도 마다 하지 않았다.그러나 어떤 동기는 저녁 아이들 학원 근처 식당에서 몇시간 설거지 하는 알바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경력은 없지만 일찍 부터 경제에 눈을 뜬 이들은, 주식으로 남편 월급의 두배를 번다는, 그래서 모임 때는 누구나 부러워 히는 샤넬이니 에르메스를 들고 와서는, 신주 단지 모시듯 했다,반대로 나는 헬리콥터 맘이 되지도 못하고 모바일로 푼돈 몇푼으로 주식을 하면서 가장 손쉬운 부업으로
부족한 아이들 학원비에 충당 했다.
k의 출판기념회는 명동역 부근 M호텔에서 열렸다. 대학 동기들의 소식통에 의하면
k는 A대학총장을 퇴임 하고, 정계에 입문 하려 출판기념회를 시작으로, 정치 후원금을 유치해 서울의 어느 지역 구의원 선거에 출마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M호텔 로비에 들어섰을때 였다. 누군가 알은체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부르는 이름을 듣고 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착각하는 것으로 생각 했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성장을 한 젊은 남.녀가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학교를 물었다. 아마도 K 의 제자들인듯 했다. 그의 제자라면 아마 나에게는 후배가 될 것 같았지만 그들이 안내하는 자리에 착석을 하려는 순간 들려 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좌석을 잘 못 찾은게 아닌가 했다. "어 ...이게 누구야? 너 정말 오은서 맞아 아니지..."
어이가 없어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이수가 "애? 밖에서 보면 몰라 보겠다. 우리 그동안 코로나로 한동안 못만난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어이 없는 표정으로 동기들이 내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다들 한마디씩 하는 말들이 가관이 아니다.
아직 우리 나이가 갱년기 올 나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부은거야? 아니면 살이 찐거냐?"
"너 ,정말 우리과 퀸카 맞아? 예전에 우리들이 캠퍼스를 누비고 다닐때 한창때의 오은서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웃픈 우리의 여신님 ,오은서만 남았구나.' 하하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렇게 누군가 나의 코앞에서 비웃듯이 말을 할때는 그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살이 찌는게 죄도 아닌데,아이 둘 낳고 보니 처녀적의 야리야리한 몸매는 어디로 가고 세월의 이끼가 끼어 참신 하지 못한 펑퍼짐한 맏며느리가 거울 앞에 서 있다.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면 출 근 시간을 아낄수 있지만 아이들은 전학을 극구 꺼렸다.
친구들과의 친분등을 이유로
한마디로 거절 당하고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동분서주 하면서 직장과 회사로 위킹맘으로 살다 보니, 매일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화장 하며 여자로서의 삶은 멀리 날아가고 없다. 가끔 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내 또래의 엄마들은 모두 하나같이 예쁜데 나 혼자, 펑퍼짐한 아줌마가 되어 있다. 예전의 몸매를 찾기 위해 아침을 굶고 저녁은 일찍 먹으며 나름 다이어트를 했지만, 한번 부풀어 오른 몸은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편은 처녀적 청순가련형의 불면 날아갈듯한 몸보다는 지금 건강한 몸이 좋다며, 칭찬을 하는 바람에 한해 한해 조금씩 늘어난 몸무게가 15킬로 이상 늘다 보니 예전에 입었던 옷은 입을 수도 없고,
어쩌다 한번 동창 모임에 나가려면 마땅히 입을 옷이 없었다. 그날 K 의 출판기념회는 성황리에 끝났지만
나의 머릿속은 동창들의 놀리는 듯한 말들이 귓가에 쟁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중대한 결심을 하고 거실 구석에 처 박아 두었던 런싱머신에 올랐다. 약 30분간 달리기를 했더니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한참 땀을 빼고 나서 체중계에 올라 갔다. 체중계의 숫자는 나의 칭찬을 바라는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문제는 계기판의 숫자는 비열하게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며칠동안 아침을 굶고 점심은
칼로리가 낮은 냉면을 조금 먹고
포만감을 주기 위해 물을 많이 마셨다.
저녁은 가족들이 좋아 하는 고기 대신 야채 샐러드와 곤약을 앙념해서 푸짐하게 먹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를 몇바뀌 뛰었다. 땀을 흘리고 났더니 아침에 보았던 눈금에서 눈금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순간 너무 좋아서 런닝 붙잡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운동을 30분 가량 했더니, 잠이 오지는 않고 자꾸 음식이 당기는 신호가 온다.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다. 약 5분후 이번에는 냉장고에서 칼로리가 가장 낮은 오이 반개를 천천히 음미 하며 먹었다. 그랬더니 오이의 상큼한 맛이 식욕을 자극 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면 퉁퉁 부어 터진 라면의 면발처럼 생기를 잃은
내 모습에 지친 나머지 식욕 억제 효과에 좋다는 한방다이어트 약에 관한 인터넷 서핑을 하다 점심시간
여고 절친인 해미와 통화 했다.
해미는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내며
나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러게 내가 뮈랬니
운동 해서 살빼면 몸매 예쁘다
하는데
그게 어디 단기간에 되는 일이니?
내가 머뭇대다 비결을 묻자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돈 투자해
돈 많이 쓰면 힘들지 않고
요요 없이 살뺄수 있어.
하고 해미는 확고 하게 답했다.
다음날 부터
다이어트에 좋다는
한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니 거짓말처럼 식욕이 줄고 여기에 매일 저녁 런닝머신과 2시간씩 사투를 벌인 끝에
약 3개월만에 5킬로 그램의 체중 감량에 성공 했다.
옆구리 살이 삐져 나와
둔하게 보여 오리처럼 뒤뚱거리던 걸음걸이도 제법 일자로 걷게 되자
삶이 핑크빛으로 보였다.
출근 하면 고객들이 몰라 보게 날씬 해진 내 모습에
무슨일 생긴거냐 반문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몇달의 시간이 흘렀다.
회사 창립 기념일 40주년 행사에 맞추어 특별 승진이 있었다.
특별 승진은 회사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특별 보너스와 함께
행장이 직접 수여하는 공로패와, 그리고 직급이 적힌 사령장을 받게 되는데, 이날은 정말 감격스러운 자리로
전 직원들 앞에서 축하 박수와 함께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도 내심 승진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내가 재직 하고 있는 은행은 서울에서도 변두리에 속해서 오피스 빌딩 보다는 작은 복합 상가 건물이 많아서 주요 고객층은 자영업을 하는 고객들이 많아 여신면에서는 다른 지점 보다 낮았다.
지점장님은 아침 회의 때마다 매일 외치는 구호가 '고객들의 마음을 얻자' 였다. 나의 직급은 과장으로 여신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승진은 동기들 보다 빠른 편이다. 그것은 고객의 마음을 우리 은행에 붙잡아 둔 것도 있었지만, 나의 장기인 꾸준한 고객 관리를 한 덕분에 내가 속한 지점도 꾸준히 여신이 늘어나 지점장님과 함께 본점에서도 능력을 높이 사고 있었다. 승진은 누구나 꿈꾸고 있지만 절대 쉽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열심히 일 하고
고객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여신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승진의 여신은 나보다 5년 늦게 입사한
같은 지점의 대부계에서 잔뻐가 굳은 9에게 돌아갔다.
나이로 따져도 한참 후배에게 승진의 기회를 넘기고 나니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
눈앞에서 사라진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밤새도록 고민을 했지만, 딱히 하고 싶고 일하고 싶은 직종이 마땅치 않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중국어를 공부 했지만, 학교 생활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부모님은 수유리 근처에서 작은 백반집을 하셨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백반집과 사는 집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손님들은 주로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오다가다 잠시 식사를 때우기 위해 들리는 손님들로 테이블 회전율은 높았다. 메뉴는 계절에 맞추어 겨울에는 따끈한 수제비와 여름이 되면 시원한 콩국수와 냉면을 추가 했다. 저녁에는 주로 술과 안주를 겸해 식사 하시는 손님들로 분주 했다. 일을 돕기 위해 강의가 끝나면 동기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가방만 내려 놓고, 앞치마를 두르고 써빙을 했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시고 아빠는 홀에서 서빙을 하는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설거지를 하는 아주머니를 두는 것을 본적이 없다. 남동생도 대학생이 되면서 서로 번갈아 가면서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식당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여름이면 펄펄 끓는 뚝배기를 쟁반에 옮기게 되면 목에서 부터 등줄기 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기 일쑤였다. 매일 흐르는 땀을 닦아 가며 부모님 일을 돕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되었다. 부모님은 재료를 싸게 사기 위해 새벽에 농수산물 시장에 직접 다녀오셨다. 자연 아침 식사 준비는 언제나 나의 몫이 되었다. 엄마가 미리 만들어 둔 밑반찬을 동생들 도시락에 담아 학교에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들의 아침은 분주하고 바빴다. 졸업을 앞둔 2학기 가을에 한달 동안 노인복지관에서 실습이 있었다. 문제는 실습 점수를 잘 받아야 취업에 영향을 준다는 교수님들 말씀에, 복지관 관장님께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사님들의 보이지 않는 예리한 시선을 느끼며 하루하루 근무를 했다. 실습은 학교 생활과는 엄연히 달랐다. 여느 직장과 똑같이 출근 하고 퇴근 해야 하는 복지관 근무는., 본의 아니게 근무 태만이라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날 아침은 갑작스레 몸이 좋지 않은 엄마를 대신해서 주방에서 재료를 다듬다, 그만 지각을 하고 말았다. 하필 그날 관장님이 나를 콕 찍어서 호출 하는 바람에 지각 한 것이 들통이 나게 되어
꾸중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실습 시간 동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나름 열심히 했지만
번번히 실수를 하게 되었다. 나의 발목을 붙잡은 일 중의 하나는 매일 기록 해야 하는 실습일지 였다.
매일 프로그램을 짜고 그곳에서 느낀 점을 간략하게 보고서 형식으로 쓰는 일은 글솜씨가 없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약 한달의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때, 나는 결심을 했다. 적성이 맞지 않은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조금 시간이 지체 되더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졸업전부터 취업 문을 두드리기 위해 여기저기에 이력서를 들고 뛰어 다니다
은행에 취업 지금에 이르렀다.
부지점장이 내 자리까지 다가와 업무 지시를 할때 바짝 긴장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허투르 듣고 실수 했다고 잔소리를 늘어 놓기 때문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였다. 야속하게 책상에 올려 놓은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 할때 감히 통화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폰에 뜬 메시지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서 까지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부지점장을
앞에 두고 "죄송합니다. 잠깐 통화좀 하겠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올때 부지점장 표정을 안 본게 다행이었다.
폰을 들고 뛰면서 아무도 없는 탕비실로 허겁지겁 들어와 숨 한번 크게 쉬고 "여보세요,
예 선생님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어머님 많이 바쁜신것 같은데..." 하고 말끝을 흐린다.
"아닙니다., 지금 통화 괜찮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했다.
"사실 오늘 학교에서 우빈의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어머님도 아셔야 할듯 해서요."
우빈의 담임은 말 할듯 말듯 말을 아낀다.
"무슨 문제라도..."
우빈 담임 선생님 전화는 늘 긴장을하게 했다.
얼마전에도 학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나를 답답하게 했다.
학원 수업 시간에 지각은 다반사고 어느땐 결석을 해서 우빈에게
전화해서 무슨 일이냐 물어도 묵묵 부답이라는 설명에 할말이 없다.
근무중 우빈에게 전화 해 학원 가야 된다는 잔소리 외에는 할일이 멊다.
전업 주부라면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하교 하면, 간식 챙기고 직접 운전해서 학원까지 픽업 하고 신경을 쓸텐데
"후유우, 긴 한숨을 쉬어도 가슴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다.
대신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꾸를 했다.
"오늘은 우빈을 타일러서 학원에 보낼게요 ".라고 그런데 이번에는 우빈의 담임 전화다.
긴 통화 끝에 우빈 담임은 요즘 우빈이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온종일 잠만 잔다고 한다. 혹시 집에서 고액 과외를 하느라 학교 수업에
불성실 하게 임하는게 아닌지 아니면 집안에 무슨 일이 샘긴거 아닌지 물었다.
"아니요, 별일은 없어요."
하고 답 하고 나서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우빈이 고 3이 되면서 뒤떨어진 과목인 수학 때문에 과외를 시작 했는데 새벽 까지 잠도 재우지 않고
공부 시키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 얘기처럼 혹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지 부모님의 관심과 팩트 체크가 중요하다 고 했다.
다음날 오후회사에 반차를 내고, 우빈 담임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운전 하는데 머릿속이 웅웅거라다.
내가 모르는 무슨 문제가 생긴게 아닐까. 요즘 학교에서 왕따 때문에
수업을 집중 못하나 아닐거야 설마 아닐거야
담임도 모르는 무슨 고민이 생긴 것일까.
우빈의 담임은 지난 3월 모의고사 성적을 컴 화면에 띄우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컴에 뜬 우빈의 성적표를 보고 그만 '헉' 하고 눈을 감았다. 그동안 우빈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선생님 앞에 얼굴을 들수초자 없다.
'이 성적으로는 서울권 대학은 꿈도 못 꿉니다. 그래도 4년제 대학에 보내실 생각이시면
지방대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막막했다. 수능은 이제 8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리 몰아 세운다 해서 수능 등급이 올라가기는 힘들것 같은데 나오는게 한숨이다.
"그리고 어머님 보시기에 우빈이 성적 관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 까요?" 라고 담임이 물었다.
그날 저녁은 잡다한 집안 일을 모두 마치고 우빈이 집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거실에 앉아서 우빈의 간식을 챙겨서 방문을 노크했다.
방에서는 분명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다.
재차 방문을 손으로 똑똑 두드리니 그제야 후다닥 하는 발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뭔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방문을 여는 우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무슨 일인데 문을 안 여니?
아니 아무것도 수상한 짓을 하다 들킨 얼굴을 한 우빈
을 바라보다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되자
우빈에게 자라고 한 다음 거실 불을 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우빈의 방 불이 꺼질때
까지 기다렸다 잠이 들었다.
우빈을 일찍 재우기 위해
방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새벽에 간신히 일어나 부족한 잠을 청하고 회사에 출근 하면 졸음이 쏟아졌다.
특히 점심 식사후 몰려오는 잠을 쫒기 위해 산책을 하기도 했지만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아 포기 했다.
점심시간 쪽잠을 자기 위해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눈을 감고 있으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수능이 몆달 남지 않은 어느날
모의고사를 치른 우빈이
심각하게 내게 말했다.
엄마 나 이번에도 모의고사
망쳤는데
대학 안가면 안돼
뭐라고 대학을 안가
아직 6월인데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면
서울은 힘들지만 수도권을
될거야 라고 위로를 했다.
우빈 방을 나와
거실에 푹 쓰러지듯이 주져 앉으니
남편이 당신 왜 그래
우빈이 대학을 포기 하고 싶대
아 어떻게
어떻 하냐고
뭘 어떡게
대학 안 가면 기술 배우라 그래